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81)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81화(81/215)
세 로마 (1)
* * *
“예루살렘 왕국의 가니에르 경. 성도에서 이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통역관이 왕의 말을 전했다.
가니에르는 어깨에 힘을 주고 앞을 바라봤다.
궁전의 크기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거대했다.
돌로 이루어진 벽.
정교한 장식과 조각품들까지.
예루살렘 왕궁 못지않았다.
“나와 우리 왕국은 예루살렘에서 온 형제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가니에르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왕좌에 앉은 사내를 힐끗 바라봤다.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얼굴.
금이 새겨진 옷과 보석들이 박힌 왕관까지.
두 여인이 왕좌 옆에서 깃털 부채를 흔들었다.
‘저자가 랄리벨라 국왕이란 말이지.’
알현실의 사람들 모두 가니에르와 기사단원들을 바라봤다.
적진 한가운데 떨어진 듯한 기분.
“베네치아 상인들이 이미 그대들의 방문을 알렸소. 숙소를 준비해놨으니 왕국에 머무르는 동안 편하게 지내시오.”
랄리벨라가 말했다.
“그대들이 선물로 가져온 술과 무기들은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더군. 귀중한 선물에 감사를 표하오.”
“앨릭서는 보두앵 공자께서. 갑옷과 무기들 역시 기사단에서 직접 생산한 것들입니다.”
가니에르가 말했다.
“악마 같은 사라센들이 침략해오면서 우린 다른 기독교 왕국들과 교류할 수 없었지. 이제 주님의 뜻에 따라 형제들이 다시 만날 때가 된 거요.”
랄리벨라가 말했다.
“기독교 형제로서 우린 예루살렘을 지원할 의향도 있소만….”
그가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그대가 부탁한 것처럼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오. 왕국의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겠지.”
“물론입니다, 폐하.”
가니에르가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지 보두앵 공자가 말한 그대로였다.
얼마 전 왕위에 오른 왕.
지지기반이 부족해 지방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란군.
동부에서 침략해오는 사라센 개척자들까지.
“저희가 단순히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이 먼곳까지 온 것은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예루살렘 왕국 역시 기독교 형제로서 폐하를 도와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여기엔 무기 지원과 교역뿐만 아니라 저희 기사들 역시 포함됩니다.”
“그 말은….”
랄리벨라 국왕이 손을 내리며 물었다.
“그대들이 나서서 우릴 도와주겠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하들이 웅성거렸다.
가니에르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 모두 놀랐다는 건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비록 수는 적을지 몰라도…. 저희는 수십 년 넘게 사라센들과 싸워왔습니다. 그들의 전략에도 익숙하지요.”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형제란 힘든 시기에 서로 돕는 것 아니겠습니까?”
“….”
침묵이 흘렀다.
이내 국왕이 손을 들었다.
“우선 신하들과 검토해봐야 할 것 같소. 긴 여정으로 노고가 쌓였을 테니 숙소에서 쉬고 계시오.”
그가 덧붙였다.
“환영 만찬은 오늘 저녁에 열릴 거요.”
“폐하의 환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가니에르는 고개를 숙였다.
알현실을 나오는 그의 뒤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궁을 걸어 나왔다.
경비병들이 그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부하 기사 한 명이 다가왔다.
“랄리벨라 국왕이 적잖이 놀란 표정이더군요.”
“그렇더군.”
“정말 보두앵 공자께서 그 정보들을 다 알려주신 겁니까?”
“공자님이 아니라면 누가 알려줬겠나?”
가니에르가 웃으며 답했다.
이곳 왕국의 현재 상태.
랄리벨라 국왕의 성향과 정치적 기반까지.
이것들 모두 에일라트를 출발하기 전 보두앵 공자가 알려준 것이었다.
“베네치아인들도 이곳에 대해선 그리 잘 알지 못했지.”
그가 중얼거렸다.
언제나 그렇듯 보두앵 공자의 지식은 놀랍기만 했다.
“우린 우리가 맡은 임무만 해내면 된다. 이곳의 기독교 왕국들을 지원하고 설득해 예루살렘의 친구로 만드는 거야.”
“물론입니다. 그나저나 이곳엔 야만인들만 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부하 기사가 말했다.
“창과 투구. 방패의 수준이 유럽 못지않더군요.”
“눈빛도 살아있더군. 훈련 수준도 나쁘지 않아.”
가니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라면 성도 수호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먼저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 나오며 북쪽을 바라봤다.
구름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예루살렘에선 지금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아, 이곳 국왕은 교회를 땅 아래에 짓고 있더군요. 사라센인들이 쳐들어와도 지킬 수 있도록….”
“교회를 땅 아래에 짓고 있다고?”
가니에르가 웃으며 물었다.
“어디 한번 직접 가서 봐야겠군.”
* * *
예루살렘
“프리드리히 황제가 교황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고요?”
내가 마르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가 서신들을 뒤적이며 한두 장 꺼내 들었다.
“예, 저희 쪽 상인들이 보낸 정보는 그렇습니다.”
그가 비단옷으로 땀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제후 회의가 소집됐다더군요. 제후들을 모아 분위기를 만들려 하는 것이겠지요.”
“신성로마제국이 나선다라.”
“회의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난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회의 내용까지 알아내기는 힘들겠죠. 지금까지 알려주신 정보들로도 충분합니다.”
신성로마제국.
‘신성하지도, 로마도, 제국도 아니다.’
볼테르가 이렇게 말했었나.
애초에 왜 독일이 로마 제국이라고 불리는 걸까.
원래 이탈리아와 유럽은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제국이 서방과 동방으로 나뉜 후에는 서로마제국.
이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며 유럽은 갈가리 찢겨 흩어진다.
그건 로마 교회 역시 마찬가지.
로마 교황들은 무능한 로마 제국이 아닌 새로운 보호자를 찾았다.
이때 등장한 게 바로 프랑크족의 왕인 카롤루스 대제.
로마 교황은 그를 직접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추대한다.
이후 오토 1세가 체계적인 제국을 세웠고.
‘교황이랑도 꾸준히 싸웠지.’
지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는 자기 파벌의 인물을 대립 교황으로 내세웠었다.
직접 군대까지 끌고 이탈리아로 갔고.
교황을 따르는 롬바르디아 동맹에 패배하긴 했지만.
“이번에도 산맥을 넘어와 교황을 치려는 계획이라면….”
지금 내가 이탈리아로 가는 걸 반기진 않겠지.
그래서 이렇게 사절단을 보낸 건가.
“이번에도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내가 마르코에게 말했다.
“따로 포상금을 빼두라고 해야겠군요. 현지 상인들에게도 전해주시지요.”
“물론입니다, 공자님.”
기뻐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난 그와 가벼운 잡담을 나눈 뒤 건물을 나왔다.
내가 향한 곳은 보두앵 4세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보두앵 4세와 맞은편에 앉은 세 사내가 보였다.
흰색 옷과 푸른 비단 조각.
한눈에 봐도 고위 귀족들이었다.
“아, 보두앵. 마침 잘 왔구나. 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두앵 4세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둘은 시선을 교환했다.
이미 계획은 조율되어 있었다.
내가 정보를 모으는 사이 보두앵 4세가 시간을 끄는 것.
지금까진 쓸데없는 잡담만 하고 있었을 터.
보두앵 4세가 맞은편의 중년 사내를 소개했다.
“이쪽은 뷔르템베르크의 하르트만 백작이시다. 프리드리히 황제 폐하께서 가장 총애하시는 분이시지.”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작님.”
“영광은 제 몫입니다, 공자님.”
그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공자님에 관한 많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반란군을 몰아내신 이야기부터 대천사 미카엘까지….”
그가 날 살폈다.
“많은 이야기가 나돌더군요.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입니다.”
“헷갈리는 걸 말씀해주시면 얼마든지 자세히 답해드리겠습니다.”
내가 웃으며 답했다.
만나자마자 신경전이라니.
난 보두앵 4세의 옆 의자에 앉았다.
돌의 차가운 촉감이 엉덩이에 느껴졌다.
보두앵 4세가 입을 열었다.
“어린 보두앵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조카요. 그러니 함께 대화를 나눠도 문제는 없을 것 같소만.”
“물론입니다, 폐하.”
하르트만 백작이 말했다.
그가 흰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이탈리아의 상황이 혼란스럽다는 것뿐입니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루치오 교황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로마에서 쫓겨났습니다. 로마뿐만 아니라 유럽 신도들의 지지를 잃었지요.”
“루치오 교황 성하께선 적법한 절차를 통해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으로 선출되셨소.”
보두앵 4세가 말했다.
“거기에 전임 교황이셨던 알렉산데르 3세께서도 오랜 기간 로마 밖에 계셨지. 프리드리히 황제께선 그분을 정통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으셨소이까?”
“그건 어디까지나 알렉산데르 교황이었습니다. 이번 교황은 아니지요.”
하르트만 백작이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대단한 말 실력이군.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저런 논리를 당당히 말하다니.
난 입을 다물고 그들을 바라봤다.
내가 공연히 나설 필요는 없었다.
감정들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대들이 하려는 말은 무엇이오? 이탈리아의 상황이 혼란스러우니 신성로마의 편을 들어달라?”
“황제 폐하께선 도움이 필요하신 게 아니십니다. 기독교 신자들과 유럽의 수호자이신….”
하르트만 백작이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답했다.
그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황제 폐하께선 라인란트, 덩치가 큰 바바리아, 창을 팔처럼 다루는 색슨, 튀링겐, 매를 기르는 베스트팔렌, 알프스, 프리지아, 폴란드, 보헤미아 사람들을 통치하십니다.”
목록이 줄줄 이어졌다.
저거 외우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또한 베네치아와 피사, 토스카나의 사람들 역시 황제 폐하께 충성을 바치지요.”
“그쪽 도시 사람들은 돈만 따르는 줄 알았소만.”
보두앵 4세가 웃으며 말했다.
백작 옆의 한 사내도 피식 웃다 멈췄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백작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황제 폐하께선 예루살렘 왕국의 지원을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저 성도가 이 혼란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실 뿐이지요.”
“무슨 뜻인지 잘 알겠소.”
보두앵 4세가 말했다.
그가 날 힐끗 바라보더니 다시 백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 백작을 유심히 바라봤다.
감정의 기복이 그리 크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뭘 원하는지는 분명했다.
내 예상대로군.
예루살렘 왕국.
즉 내가 이탈리아로 가지 못하게 막는 것.
교황 쪽에서 정보가 샌 건가?
백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또한 황제 폐하께선 예루살렘 왕국과 성도 수호를 위한 관대한 기부금을 약속하셨습니다. 장차 십자군 원정 또한 계획하고 계시지요.”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 유럽의 상황이 안정되었을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예루살렘 왕국이 이탈리아 문제에 개입한다면….”
“개입이라. 그리 좋은 단어는 아니군.”
보두앵 4세가 말했다.
“교황 성하를 따르는 기독교 왕국으로서 우린 적법한 교황 성하를 지지할 의무가 있소.”
“그건 신성로마제국과 황제 폐하 역시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르트만 백작이 태연한 어조로 답했다.
“하지만 어디가 적법하느냐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 제국은 어떤 수단이든 동원할 계획입니다.”
난 그들의 대화를 차분히 들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12세기 중세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달랐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게 도덕적이고 신앙적이지만, 현실은 극히 실리적이고 계산적이었다.
왕과 귀족.
전사와 성직자, 평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차가운 타협과 갈등 속에 돌아갔다.
이런 건 21세기도 마찬가지인가.
“황제 폐하의 뜻이 뭔지는 잘 알겠소. 대화는 이 정도로 충분할 것 같군.”
보두앵 4세가 일어서며 말했다.
“부디 그대들도 보두앵의 혼인식에 참가해 자리를 빛내주길 바라오.”
“물론입니다, 폐하. 어찌 이런 영광스러운 일을 그냥 두고 갈 수 있겠습니까?”
하르트만 백작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가 날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나 역시 미소로 답했다.
그들이 나가자 집무실엔 나와 보두앵 4세만 남았다.
“그래, 네 생각은 어떻더냐? 만약 놈들이 진심이라면….”
“진심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느껴진 감정은 확신.
그리고 자신감이었다.
“놈들은 교황 성하가 계신 곳. 롬바르디아 땅을 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