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85)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85화(85/215)
세 로마 (5)
* * *
“공자님에 대한 명성은 유럽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음유시인들이 궁전을 돌아다니며 콘스탄티노플의 반란을 노래하지요.”
하르트만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직접 반란군을 물리친 예루살렘의 왕족을 말입니다.”
“어린 황제가 막지만 않았어도 더 많은 공적을 세웠을 겁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작 반란을 진압해주니 어떻게든 콘스탄티노플 밖으로 내쫓으려 안달이더군요.”
“그리스 황제들이 그런 법이지요.”
난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냐고?
간단한 연극이라고 해두자.
신성로마제국 사절단.
더 나아가 프리드리히 황제를 속이기 위한 연극.
결혼식 후 난 사절단과 꾸준히 대화했다.
거기에 사냥까지.
사절단은 날 자기네들 편으로 만들려 했고….
난 그들에게 넘어간 척 연기했다.
동로마와 보두앵 4세를 줏대 없다 욕하고 테오도라와 강제로 결혼했다고 투덜거렸다.
‘처음부터 날 믿진 않았지.’
하지만 난 의심을 걷어내고 그 자리를 확신으로 채웠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섬세함이 중요했다.
육감으로 상대방의 본심을 알아내고 그걸 바꾸는 것.
하지만 난 그 일을 훌륭히 해냈다.
‘멍청이처럼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네.’
그사이 발리앙이 사절단의 첩자들을 알아내 거짓 정보를 흘렸다.
신성로마제국을 속이기 위한 거대한 연극인 셈.
“요즘 예루살렘 외곽에서 자주 훈련하신다 들었습니다만. 다른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폐하께서 직접 명하신 겁니다. 꾸준히 훈련해야만 군대를 이끌 수 있다 하시더군요.”
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귀찮은 티를 팍팍 내야지.
“덕분에 매일 쉬지도 못하고 끌려다니기만 하고 있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저보고 이탈리아로 가라니. 국왕 폐하께서도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군요. 시간이랑 인력을 낭비하는 일인데 말입니다. 안 그래도 사라센들이 코앞에 있는데 전력을 분산하라니. 바보 같은 짓입니다.”
“저와 황제 폐하의 생각도 공자님과 같습니다.”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이젠 아예 대놓고 날 얕보는군.
“보두앵 공자님처럼 현명하신 분이 국왕 자리에 올라야 예루살렘 왕국도 안전해질 겁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요.”
난 속이 뒤틀리는 걸 애써 참았다.
“백작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그나마 위안이 되는군요.”
“만약 공자님께서 이탈리아로 가신다 해도 황제 폐하께선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롬바르디아 도시들이 아닌 제국을 도와주신다면….”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마 콘스탄티노플 못지않은 기부금과 선물을 예루살렘에 주시겠지요. 어디까지나 공자님만을 위한 선물이 될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내가 씨익 미소 지었다.
멍청한 망나니 왕족.
이 연기도 나름 재밌네.
난 백작과 사절단의 감정을 느꼈다.
‘이젠 아예 의심도 안 하는군.’
오히려 비웃음에 가까웠다.
내가 이룬 공적이 모두 보두앵 4세가 꾸며낸 선전이라고 믿을 정도.
하르트만 백작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주님께 뛰어난 지식과 성품을 받은 이는 누구나 그것을 기꺼이 쓰고 드러내야 하는 법입니다. 공자님이야말로 이 말에 딱 맞는 분이십니다.”
난 대답 대신 미소 지었다.
그래, 계속 그렇게 생각하라고.
나중에 내 진짜 속내를 알면 놀라 까무러지겠군.
이 정도면 배우를 해도 되겠는데?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할 게 생긴 셈이다.
12세기 왕족이자 기사.
중세 라틴어와 로망어 구사 가능.
몇 년간 연기 경력 있음.
“앞으로도 공자님과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도 백작님과 같습니다. 하지만 친구라면 우정의 증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잘하면 미리 돈을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탈리아에 가면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까요.”
“물론입니다. 저희 사절단이 떠나기 전에 적절한 증표를 마련하도록 하지요.”
우리 둘은 서로를 비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진짜 승자는 한 명.
나뿐이었다.
* * *
며칠 뒤.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 난 시빌라와 함께 상황실을 들렀다.
“살면서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것 같구나.”
시빌라가 상황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상황실은 이전보다 더 북적거렸다.
신호탑이 늘어나면서 인력도 더 늘어난 상태.
“한 건물에 이렇게 많은 사제와 서기들이 있다니.”
“이곳에선 속도가 가장 중요하죠. 사람이 많아야 그만큼 빨리 업무를 처리할 수 있고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다행히 기사단들이 통합 절차를 밟으며 인력난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정말 이 모든 걸 네가 만들었다는 거냐?”
“전 그저 방향만 제시했을 뿐입니다.”
내가 제시한 시스템을 현실에 구현한 건 어디까지나 기사와 사제들.
그들은 생각보다 효율적으로 신호탑을 운용했다.
요새마다 물자와 병력 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
이곳 예루살렘 상황실에서 그 모든 정보를 취합해 새로운 명령들을 보냈다.
물자가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수송.
이렇게 신호탑은 군대뿐만 아니라 행정 부분까지 집어삼켰다.
12세기에 이런 정보화 혁명이라.
다들 놀라는 것도 이해가 가네.
보두앵 4세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처음 봤을 때 꽤 놀란 눈치였지.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만. 사라센인들이 우리를 따라 하진 않을까 두렵구나. 그들이 신호탑들을 곳곳에 세운다면….”
“그럴 수 있겠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살라딘이 바보는 아니니.
지금쯤이면 신호탑이 뭔지 눈치챘을 터.
마음만 먹으면 비슷한 걸 시도할 수 있지.
“하지만 사라센인들은 아직 망원경, 천사의 눈을 만들지 못합니다.”
다행히 아직 유출된 망원경은 없었다.
기사단은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망원경의 보안에 집착했다.
누가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화형에 처할 기세.
“망원경이 없으면 그만큼 더 많은 탑을 촘촘히 세워야겠죠. 돈이 두 배로 더 들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지.
“거기에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생기고요.”
난 매달 돌아가며 신호수들을 체크했다.
정기적인 사상 점검인 셈.
정보를 유출한 배신자가 생긴다 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살라딘은 다르지.’
그에겐 내가 지닌 육감이 없었다.
누가 배신자인지는 물론 정보가 유출되는 것도 모른다는 뜻.
“오히려 신호탑을 만들어 준다면 저희에겐 좋은 일이죠. 정보를 빼돌릴 수 있을 테니까요.”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시빌라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둘은 북적거리는 상황실을 지나쳤다.
“테오도라와 지내는 건 어떻니?”
“나쁘진 않습니다.”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동안 긴장했던 게 바보같이 느껴지더군요.”
“다행이구나.”
시빌라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가 날 바라봤다.
“그 아이를 잘 대해주거라, 보두앵. 한 번 꺾인 꽃은 다시 살릴 수 없어.”
“물론입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왕족의 부부생활은 왕국의 운명도 결정할 수 있지.
아키텐을 상속받은 엘레오노르가 그 좋은 예시였다.
그녀는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결혼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이혼한다.
그리고 지금 잉글랜드의 왕인 헨리 2세와 재혼.
어마어마한 남프랑스 땅, 아키텐 지역을 지참금으로 가져간다.
이 땅이 나중에 백년 전쟁의 원인이 됐을 정도.
생각해보니 기 그 자식도 이혼한 엘레오노르를 납치하려 했었지.
“난 네가 왕위에 오르면 수녀원에 들어갈 생각이다.”
“…. 진심이십니까?”
난 시빌라를 바라봤다.
수녀원이나 수도원에 들어가는 건 사실상 은퇴나 마찬가지.
죽기 직전이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났을 때 가는 게 보통인데.
시빌라는 진심이었다.
애초에 내게 거짓말할 이유도 없나.
“누군가의 음모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건 이제 지쳤다. 차라리 수녀원에 있으면 마음 편히 쉴 순 있겠지.”
그녀가 미소 지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기는 확실히 처리할 테니. 네 계획도 도와야 하고 말이야.”
“제가 유럽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기 백작 문제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겁니다.”
함정은 이미 파뒀으니.
그때쯤이면 모든 준비가 다 끝나겠지.
“그래서 네가 더더욱 안전히 돌아와야 해. 그걸 명심하거라.”
“국왕 폐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더 이상 할 말을 찾긴 힘들었다.
그녀가 빙긋 미소 지었다.
“이만 테오도라한테 가거라. 이제 신혼 여행을 준비해야지.”
“항구로 가는 걸 신혼 여행이라 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만.”
내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테오도라는 항구까지 나와 동행할 예정이었다.
유럽 원정을 떠나기 전 신혼 여행이라.
참 로맨틱하네.
난 주변을 둘러봤다.
준비는 다 끝났다.
이제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딜 차례였다.
* * *
베네치아 항구
“아니, 마르코 이 친구야! 레반트에 가더니 얼굴이 아주 노릇노릇 제대로 익었군. 이렇게 보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나도 정확히 모르겠군. 일 년 정도 됐나?”
마르코가 동료와 포옹하며 답했다.
그들 뒤로 수십 척의 배들이 분주히 물자를 날랐다.
인부들이 나무로 된 크레인에 소리치며 갑판을 뛰어다녔다.
마르코가 물었다.
“사업은 잘되나?”
“지금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콘스탄티노플에선 상품이 넘쳐나고 레반트에서도 향신료와 비단이 쏟아져 들어오니. 들어오는 족족 모두 팔리고 있네.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야.”
사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나저나 다들 이렇게 말하더군. 마르코 자네가 그 누구보다 경건한 사람이 됐다고 말이야.”
그가 마르코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자,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다 보두앵 공자한테 잘 보이려 그런 거 아닌가? 자네가 앨릭서 사업으로 떼돈을….”
“난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사람이 됐네.”
마르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동료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느꼈던 성스러움과 아름다움, 기쁨을 자네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진지한 얼굴로 헛소리 한 번 잘하는군. 앨릭서 한 잔 한 건가?”
“지금 자네랑 농담 따먹기를 할 시간 없네. 내가 말한 건 알아봤나?”
“일단 계산해보기는 했네만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게….”
“가능하단 건가, 안 된다는 건가?”
“일단 가능은 하네. 가능은 해.”
사내가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수천 명이 몇 달간 먹을 식량을 준비하라니. 시간이 더 필요할 게야.”
“이집트, 시칠리아, 콘스탄티노플. 어디에서 구하든 상관없네. 어떻게든 시간에 맞춰 이탈리아에 준비해놓기만 하면 돼.”
마르코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자넬 찾아온 거 아닌가. 베네치아에서 가장 많은 수송선을 가진 사람을 말이야.”
“내게 배가 많은 건 사실이네만. 그걸 다 놀리는 것도 아니지 않나.”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일 년 어치 계약이 되어 있네. 최소한 내년은 되어야 그 정도 물량을 소화할….”
“그럼 지금까지 맺은 계약을 다 취소하게. 위약금은 이쪽에서 대신 물어주지.”
“농담도 정말 재밌군. 지금 몇만 마르크랑 디나르가 걸린 얘기를….”
침묵이 흘렀다.
사내가 마르코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군.”
“처음부터 진심이었네. 어떤 방법을 쓰든 상관없어.”
마르코가 말했다.
그가 동료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식량이 롬바르디아에 도달하기만 하면 자넨 떼돈을 벌게 될 걸세. 상단 몇 개를 새로 만들 수도 있겠지.”
“그 정도로….”
사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자네 후원자가 돈이 넘쳐난다는 건가?”
“물론이지.”
마르코가 코웃음 쳤다.
그가 검지와 엄지를 비비며 속삭였다.
“그분한테 이 정도 돈은 푼돈이야. 푼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