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86)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86화(86/215)
로마의 모든 것은 가격이 있다 (1)
* * *
“배들이 엄청나게 많군요.”
테오도라가 말했다.
우린 함께 서서 부두를 바라봤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배가 이곳 아크레 항에 몰려 있었다.
아크레.
여기가 십자군이 최후에 저항하던 곳인가.
1291년 치열한 공방전 끝에 십자군은 이 도시를 맘루크 이슬람 군대에 빼앗긴다.
그걸로 우트르메르(레반트) 십자군은 사실상 사라졌지.
하지만 눈앞의 항구는 평화롭고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환영인파가 반겼다.
신혼여행이 아니라 시찰하러 온 것 같네.
“여기 배들이 전부는 아니에요. 키프로스에서 대기 중인 배들도 있으니까요.”
테오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환호성이 들릴 때마다 익숙하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번 이주가 성공하면 더 많은 빈자가 레반트로 오려 하겠죠.”
“미리미리 준비해놔야겠군요.”
내가 답했다.
이주민들을 나르는 배들은 익숙한 형태였다.
동로마 해군.
자국 빈자들을 레반트로 이주시키는 제국 해군이라.
라스트 크루세이더즈 게임에서도 이런 이벤트는 못 본 것 같은데.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각자 지정된 구역으로 이동했다.
나와 테오도라는 함께 서서 그들을 바라봤다.
“1번부터 100번까지 이곳으로 오시오!”
20세기 뉴욕에 입항하던 유럽 이주민들 같네.
불트가 푸르릉 소리를 내며 머리를 흔들었다.
한 행렬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난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다.
강렬한 감정이 그들 사이로 느껴졌다.
공포와 두려움.
행렬이 지나가자 홀로 서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잔뜩 겁먹은 표정.
저 아이한테서 느껴진 거였군.
소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난 말을 멈췄다.
테오도라가 이미 아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나와 루아크는 그녀를 뒤따라갔다.
루아크를 본 소녀가 놀라며 테오도라의 뒤로 숨었다.
“루아크 경은 여기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루아크 인상이 좀 험악하긴 하지.
루아크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아이들이라면 질색입니다. 맨날 시끄럽게 울기만 하니. 그러다가도 또 웃고 재잘거리지 않습니까.”
난 테오도라와 소녀에게 다가갔다.
테오도라가 말했다.
“아무래도 인파 속에서 부모를 놓친 것 같아요.”
“병사들에게 맡겨도 되겠지만….”
난 주변을 살폈다.
병사들은 모두 인파를 통제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제대로 찾아주지도 않겠군.
내가 나서야 하나.
“제가 한번 찾아보죠.”
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아이를 잃어버렸으니 놀라고 당황했겠지.
좋아, 당황한 감정은….
너무 많군.
주변에 곳곳에서 당혹감과 긴장이 느껴졌다.
난생처음 보는 곳에 이주 왔으니 당연한가.
그래도 자식을 잃은 거에 비교할 순 없겠지.
이 중에 제일 다급한 사람이….
우린 성묘단원들을 이끌고 인파를 헤집었다.
몇 번 허탕 친 끝에 우린 마침내 소녀의 부모를 찾았다.
“이레네!”
“아버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니?! 너희 어머니랑 내가 말했지? 절대 손 놓지 말라고. 그런데….”
아버지처럼 보이는 자가 외쳤다.
그가 뒤늦게 나와 테오도라를 발견했다.
“…!”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숨넘어갈 것 같은 표정.
“저,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그….”
루아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섰다.
“예루살렘 왕국의 보두앵 공자님과 테오도라 황녀님이시다. 이렇게 고귀하신 분들께서 직접 나서셔서 네 아이를….”
“거기까지만 해요, 루아크.”
테오도라가 말했다.
그녀가 아버지 품에 안긴 소녀에게 다가갔다.
“이레네. 이쁜 이름이구나. 자, 이건 내가 주는 환영 선물이란다.”
비단으로 된 손수건.
소녀가 손수건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소녀가 이내 손을 뻗어 손수건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황녀님.”
“이만 가보렴. 다음부턴 부모님 안 잃어버리게 조심하고.”
우린 그들을 보내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말했다.
“부모를 찾아서 다행이군요. 병사들을 질서 유지에 더 투입해야겠습니다.”
“그래야겠죠. 이곳에 온 첫날부터 자식들과 헤어지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테오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
“미리 마을들을 준비해놔서 다행이군요. 만약 저들이 머무를 집이 없었다면….”
“원래 살던 무슬림들을 내쫓아야 했겠죠.”
그럴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네.
20, 21세기 이스라엘이 했던 게 그런 짓이었지.
이스라엘을 세운 유대인들은 원래 살던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을 내쫓고 곳곳에 불법 정착지를 세웠다.
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들은 그에 맞서 테러를 벌였지.
애초에 영국이 팔레스타인이랑 이스라엘 양측에 거짓 약속을 했던 게 문제지만.
영국이라.
그러고 보니 지금 내 목표도 잉글랜드까지 가는 거였지.
난 테오도라를 바라봤다.
“제가 없는 동안 이주민들의 관리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고압적인 왕국 관료들보단….”
“로마 황녀인 제가 나서는 게 낫겠죠. 제국 신민들도 절 더 좋아하고요. 안 그런가요?”
테오도라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던 건가.
“불편하다면 안 맡으셔도 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녀가 말했다.
“전 가만히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 이렇게 백성들과 있는 게 더 편해요. 그런 면에서 이곳 예루살렘은 로마 제국보다 훨씬 나은 곳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까요. 이주 문제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럼 다행이군요.”
내가 답했다.
준비도 잘 해줬으니 관리 정도야 큰 문제 없겠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여왕은 남편과 함께 직접 십자군 원정까지 왔었죠. 저도 마음만 같아선 공자님을 따라가고 싶지만….”
테오도라가 말했다.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거예요. 공자님의 빈 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겠죠.”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침묵이 흘렀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제 유럽으로 갈 차례였다.
잉글랜드, 프랑스, 신성로마 제국, 롬바르디아 동맹.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따로 없군.
‘그래도 뒤 걱정은 안 해도 되네.’
테오도라, 시빌라, 보두앵 4세와 발리앙까지.
이젠 확고한 내 편이 있었다.
내가 할 일은 무사히 돌아오는 것뿐.
난 테오도라와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 * *
“또 배로군요.”
“또 배로구나.”
두 사내가 부두에 서서 배들을 노려봤다.
녹색 망토와 검은색 망토가 바람에 흩날렸다.
위그와 에이그.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뱃멀미가 익숙해졌다지만 또 타기는 싫은데.”
“위그 경께선 다미에타 때도 배를 타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젠 문제없으실 줄 알았는데요.”
“그땐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지. 오히려 뱃멀미는 느낄 틈도 없었어.”
위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에이그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넌 뱃멀미만 걱정하는 표정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는 거냐?”
“그럴 리가요.”
에이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공자님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제가 어디든 따라가야지요. 그게 당연한 거고요.”
“숨겨둔 애인을 걱정하는 건 아니고?”
“수, 숨겨둔 애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사단 소속인 제가….”
“이 꼬맹이 녀석이 거짓말하기는.”
위그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그가 에이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구호기사단 본부에 매주 기도하러 오는 남작가 딸이 있다던데. 이름이 베렝겔라였나?”
“아니 그걸 어떻게….”
“다 아는 방법이 있지.”
위그가 계속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꼬맹아. 아직 나만 알고 있으니 말이야. 그나저나 설마 본부 안에서 그렇고 그런….”
“그런 저급한 짓을 하진 않았습니다!”
에이그가 새빨개진 얼굴로 외쳤다.
“그냥 통로를 지나가다 가끔 만나서 대화한 것뿐입니다.”
“그래, 대화한 것뿐이겠지. 하지만 기사단에서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당장 서임은 물 건너가겠지. 너도 그건 알 거다만.”
“….”
“공자님이 결혼하시는 걸 보더니 너도 눈이 돌아간 게냐?”
“그런 건 아닙니다. 적어도 제 생각으로는요.”
에이그가 중얼거리듯 답했다.
“제가 기사단에서 쫓겨나면 뭐가 되겠습니까? 고아 출신에 아는 거라곤 검을 다루는 것뿐인데….”
“몇십 년 전 유럽에서 내 가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가문이 명성을 얻은 건 이곳 예루살렘 온 이후였지. 수십 년 넘게 싸우고 성도를 수호한 이후에야 비로소 인정을 받았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모든 가문이 그렇게 시작하는 법이야. 핏줄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이 비열한 도적이었던 자들도 적지 않지. 모든 왕은 한때 노예였던 민족이고….”
그가 덧붙였다.
“모든 노예는 자기 조상 가운데 왕이 있는 법이다.”
“….”
“내가 듣기로 베렝겔라의 가문은 아들이 없다더구나. 거기에 아버지는 늙어 더 이상 자식을 볼 수 없고. 네가 나서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을 거다. 저기 보두앵 공자님을 봐라.”
그가 손을 들어 보두앵을 가리켰다.
그는 테오도라와 함께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계셨다면 아마 지금까지 궁에서 매사냥만 하고 계셨을 거다. 직접 나서신 후에야 비로소 인정을 받으셨지.”
“그 말씀은….”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꼬맹이 녀석아. 알 아딜을 잡을 때는 그렇게 열심히 싸우더니.”
위그가 에이그의 머리를 치며 웃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항상 그걸 명심하거라. 고대 로마인들이 한 가지 진실을 말했다면….”
그가 자신의 은가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기회는 두 번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는 거다.”
* * *
독일, 신성로마제국
뷔르츠부르크
“하르트만 백작. 성도 순례는 어땠소?”
“주님의 축복과 영광이 넘쳐흐르는 곳이었습니다, 폐하.”
하르트만 백작은 자신의 주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붉은 수염, ‘바르바로사’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대가 일전에 보낸 서신을 읽어봤소. 보두앵 공자가 교황을 지원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 한 게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보두앵 공자에 관한 소문은 모두 예루살렘 국왕이 지어낸 과장에 가까웠습니다.”
하르트만 백작이 말했다.
“적절한 선물만 준다면 보두앵 공자를 확고히 끌어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선물이라….”
프리드리히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황제는 결정을 내리는 자였다.
“필요한 자금을 내어줄 테니 백작의 생각에 맞춰 집행하도록 하시오. 예루살렘을 뺄 수 있다면 그리 아까운 투자는 아니겠지.”
프리드리히 황제가 말했다.
그가 말할 때마다 특유의 붉은 수염이 앞뒤로 흔들렸다.
“그 망할 이탈리아 도시들은 매번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조아렸소.”
그가 몸을 일으켰다.
“밀라노 놈들로부터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눈물을 왈칵 쏟았지. 수십 년간 군대와 돈을 퍼부어 놈들을 구해준 대가가 뭐요?!”
그가 소리쳤다.
하르트만 백작과 주변의 신하들 모두 고개를 조아렸다.
“자기들을 죽이려던 자들과 손잡고 내게 대항하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롬바르디아 동맹은 날 향한 모욕이오! 모욕!”
“황제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르트만 백작이 말했다.
“하오나 원정은 신중히 결정해야 할 일이옵니다. 설령 저번과 같은 참사가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지난번엔 부족한 보급이 원인이었소. 거기에 시기를 잘못 고르는 바람에 산맥을 제때 넘지도 못했지.”
황제가 말했다.
“이번엔 그만큼 철저히 준비를 마쳤지.”
“밀라노와 로마 사이는 흙탕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한 병력을 좀 더….”
“흙탕물도 해가 뜨면 메마르는 법.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소.”
황제가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각 도시와 제후들에게 서신을 보내라!”
오래 지나지 않아 세금징수인들이 도시 곳곳으로 파견됐다.
이들은 전쟁 자금을 위한 특별세를 거둬들였다.
“황제 폐하께서 결단을 내리셨다!”
“황제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하라면 누구나 기사와 병력을….”
기사와 병사들이 무장을 준비했다.
대장간에선 매일매일 새로운 창과 갑옷들을 찍어냈다.
“롬바르디아 놈들에게 당한 수모를 되갚아 주자!”
바빠진 건 독일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지중해 역시 새로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수송 한 번이면 떼돈을 벌 수 있다!”
“예루살렘의 돈이 넘쳐흐른다!”
수십 척으로 이루어진 대선단들이 지중해 곳곳에서 이탈리아로 식량과 물자를 날랐다.
이들이 아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물자를 나르면 예루살렘에서 돈을 지불한다는 것뿐.
그것도 한두 푼이 아닌 어마어마한 돈을.
“교황 성하께 가장 가까운 도시로 가라! 어서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