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9)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9화(9/215)
출발의 노래 (4)
* * *
“모두 공격에 대비하라! 방어진형을 짜라!”
“방어 진형!”
투르크 궁수들이 말에 올라타며 활을 맸다.
말들이 움직이자 희뿌연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렸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모래.
“아무래도 공자님 말씀이 맞는 것 같군요.”
가니에르가 말에 올라타며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칼날이 반짝이는 게 보였습니다. 이 거리에서 어떻게 눈치채신 겁니까?”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설명은 다음에 듣도록 하죠. 일단 저 느려터진 부하 놈들 엉덩이부터 걷어차야겠습니다.”
“시민들을 중앙으로 모으죠. 그편이 통제하기 편할 겁니다.”
내가 소리쳤다.
자세히 안 물어봐서 다행이군.
그냥 감이었다고 하면 아무래도 미심쩍겠지.
난 하늘을 바라봤다.
해가 천천히 지평선 아래로 떨어졌다.
적들은 우리 바로 앞 언덕 위에 있었다.
사십에서 오십 정도.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몰랐다.
아직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겠지.
‘숫자는 우리가 더 많으니까.’
보병과 궁기병을 합해 이백.
거기에 갑옷으로 중무장한 기사들도 삼십.
난 고개를 흔들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었다.
그때 인영들이 모습을 감췄다.
반대편으로 갔거나, 아니면 언덕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는 뜻.
“바다위 도적들이라면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몰아내겠습니다.”
가니에르가 투구를 뒤집어쓰며 말했다.
“공자님께선 이곳의 지휘를 맡아 주시죠. 시민들이 겁에 질려 흩어지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공격은 경에게 맡기죠.”
내가 무턱대고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
지금 내 실력으론 기사들 발목만 잡을 게 분명했다.
가니에르가 투구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우선 갑옷부터 입으시죠, 공자님. 눈먼 화살이 나는 새를 잡는 법입니다.”
그가 곧장 기수를 돌려 달려갔다.
다른 기사들도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래, 일단 갑옷부터 입자.
천막으로 돌아가자 에이그가 기다렸다는 허겁지겁 다가왔다.
“어서 이쪽으로 오시죠, 공자님.”
에이그가 숨을 헐떡이며 투구와 갑옷을 들었다.
옆에는 대장장이, 제르날도 서 있었다.
“도와주시러 오신 겁니까?”
“예, 이 꼬맹이 녀석이 아직 서툴러서 말이죠. 저도 옆에서 도우러 왔습니다. 일단 팔을 위로 올리시죠.”
둘이 내게 달라붙었다.
쇠사슬 갑옷과 두건, 정강이받이.
거기에 커다란 그레이트 헬름까지.
정수리에 부드러운 천을 덧대고 투구를 뒤집어쓰자, 한순간에 시야가 좁아졌다.
숨이 면갑에 부딪히며 차가운 습기로 변했다.
이거 아이언맨이라도 된 기분인데.
그래도 마음은 편안하네.
철 덩어리가 주는 이 심리적 안정감.
어떤 공격이든 가볍게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래서 나폴레옹이 기병대한테 쓸모없는 갑옷을 입혔던 거군.
갑옷을 다 걸친 난 뒤뚱거리며 천막 밖으로 향했다.
“저도 공자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에이그가 활을 들며 말했다.
머리에는 가죽 모자뿐.
“네 투구는?”
“아직 투구를 지급받기에는 나이가 안….”
“그럼 이걸 써.”
난 방금까지 쓰고 있던 반투구를 건넸다.
어차피 난 그레이트 헬름을 썼으니 쓸 수도 없겠지.
“이건 국왕 폐하께서 쓰셨던 투구 아닙니까? 미천한 제가 어떻게 이런 걸….”
“잔말 말고 그냥 써.”
난 녀석에게 반투구를 씌워줬다.
“아무도 안 쓰는 것보다는 네가 쓰는 게 낫겠지. 안 그래?”
우리 셋은 지휘 천막을 나왔다.
이제 해는 지평선에 아주 살짝 걸쳐 있었다.
“가면서 한 번쯤은 도적들이랑 마주칠 줄 알았는데….”
에이그가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해가 질 때 이런 일이 벌어지는군요.”
“이런 일이 자주 있어?”
“이 근방에는 순례자나 대상을 노리는 도적 떼가 많습니다. 뭐, 다른 곳들도 비슷하지만요.”
에이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바다위 부족들이 사는 곳이니까요.”
베두인이라.
라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서 베두인 궁기병은 막강한 성능을 자랑했다.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은 기근이나 전염병이 돌면 생존을 위해 도적으로 변신했다.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
그때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우린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화살 몇 개가 진지 외곽에 떨어졌다.
말과 낙타를 탄 적들이 우리 쪽으로 접근하며 활을 쐈다.
“아직 쏘아 맞히기에는 거리가 멀군요. 저런 화살 낭비를….”
“우리를 겁주려고 쏘는 거야.”
내가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패닉에 빠져 다들 도망치기라도 하면 난장판이 되겠지.
“우리가 앞장서자. 왕실 깃발을 들어, 에이그.”
생도 시절을 통해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지휘관은 항상 여유롭고 당당해야 한다는 거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야겠지.
‘사자가 이끄는 양 떼가 양이 이끄는 사자 떼를 이긴다.’
난 불트에 올라탄 뒤 앞으로 향했다.
에이그가 바로 옆에서 깃발을 들고 따랐다.
“겁먹지 마라! 보두앵 공자께서 함께 계신다!”
제르날이 내 의도를 눈치챈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동시에 주변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몸을 타고 퍼지는 아드레날린.
아마 얼굴도 새빨개졌겠지.
투구 덕분에 안 보이는 게 다행인가.
“모두 대열을 유지해라!”
효과는 있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외친 건 아니었지만, 아까보단 긴장이 풀린 분위기였다.
낙타와 말들이 다시 방향을 돌려 다가왔다.
그때, 우리 기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의 측면.
말들이 땅을 박차는 소리에 땅이 흔들렸다.
“맞부딪친다!”
누군가 외쳤다.
가니에르와 기사들이 빠르게 적을 향해 접근했다.
하지만 적은 곧바로 기수를 틀었다.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한 기동.
사막에서의 추격전이 잠시 이어졌다.
적이 거리를 벌리며 점차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게 맞는 거야?
낙타가 저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소리 질렀다.
“가니에르 경께서 놈들을 몰아냈다!”
“꺼져라, 사라센 놈들아!”
에이그도 투구를 벗으며 미소 지었다.
“막상 저희 수를 보곤 겁먹었나 보군요.”
“아니, 놈들은 다시 올 거야.”
내가 말했다.
저렇게 순순히 물러날 리 없었다.
이건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긴 밤이 될 것 같은데.
“병사들에게 야간 경계를 강화하라고 해둬야겠어. 가니에르 경이 오면 바로 내 천막으로 보내줘.”
* * *
왜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걸까.
“밤새 연기가 날아와서 말과 병사들 모두 긴장해 있습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주변 나무들에 불을 붙인 것 같습니다.”
“이래서는 제대로 행군도 못 하겠군요.”
난 졸린 눈을 비볐다.
지휘 천막에 있는 세 사람.
나와 가니에르, 그리고 마르코였다.
베두인들은 밤새 우리 진지를 염탐했다.
이쪽의 수비태세를 확인해보는 듯한 정찰.
맞서 싸우려 가까이 접근해도 활을 쏘고 도망치는 게 전부였다.
“대체 왜 놈들을 따라가서 끝장을 내지 않는 겁니까?”
마르코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가니에르에게 물었다.
“기사단의 전사 한 명이 사라센 야만인들 백 명도 상대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과장이었나 보군요.”
“놈들은 정면승부를 철저히 피하고 있소. 갑옷을 걸친 채로 무작정 놈들을 쫓아가라니.”
가니에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다른 놈들이 나타나서 무방비한 본대를 치면 어떻게 하란 거요? 당신이라면 기진맥진한 말을 끌고 제때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소?”
가니에르가 쏘아붙이자 마르코가 깨갱거리며 물러섰다.
보는 내가 속이 다 시원하군.
가니에르가 다시 내 쪽을 바라봤다.
“진짜 문제는 놈들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주변 부족들도 하나둘 습격에 가담하는 것 같습니다.”
“살라딘이 벌인 짓일지도 모릅니다, 공자님.”
마르코가 호들갑을 떨었다.
“만약 살라딘이 공자님과 저희를 노리고 미리 매복시켰던 군대라면….”
“살라딘이 보낸 건 아닐 겁니다. 지금 그가 먼저 공격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그가 지금 평화 협정을 흔들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그에겐 고유한 특성이 있었다.
‘살라딘은 협정을 철저히 지키지. 그게 이교도와 맺은 협정이라고 해도.’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건 베두인 부족들.
그 점은 확실해.
‘게임할 때도 이런 이벤트가 몇 번 있었는데.’
놈들의 목표는 우리를 죽이는 게 아니었다.
죽여서 얻는 이득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물건을 빼앗고 인질을 잡아 몸값을 받아내는 것.
이슬람 율법에 따라 같은 무슬림은 노예로 삼을 수 없었지만, 이교도는 얼마든지 허용됐다.
식량이 부족해질 때마다 베두인 부족들은 이런 식으로 습격을 벌였다.
“우리랑 정면 승부를 피한다는 건….”
놈들의 전략은 간단했다.
우리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것.
시민들이 공포에 빠져 대열이 흐트러지면 그때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하겠지.
그때까진 우리 기사들이 아무리 돌격한다 해도 무시하고 도망치면 그만.
‘그걸 계속 반복하면 무너지는 건 결국 우리야.’
이렇게 공격당하면서 행군할 수는 없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유대인들을 미끼로 던지고….”
마르코가 손뼉을 쫙 쳤다.
“놈들이 정신없을 때 저희가 빠져나가는 겁니다! 사라센 놈들이 저렇게 많은 노예를 포기할 리 없겠죠.”
“정말 간편한 발상이시군요.”
어이없어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나름 상인다운 생각이긴 하지만….
내가 너로 플레이할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그때 가니에르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놈들을 가까이 유인할 수만 있다면 될 텐데 말입니다. 그럼 궁수들이 단번에 놈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확 트인 평야에서는 유인하기 힘들겠죠.”
내가 말했다.
적들도 그걸 아는지 철저히 거리를 유지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적들을 속이고 가깝게 끌어들일 만한 방법이….
눈에 뭔가 들어왔다.
천막 밖 낙타들.
그리고 그 옆에 쌓여있는 커다란 나무 조각들.
그걸 본 순간 한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물자랑 보급품, 식량을 놈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전부 쌓아두고 후퇴하는 겁니다.”
내가 말했다.
“기사들이 도망치는 걸 보면 놈들도 안심하고 물자를 훔치러 오겠죠.”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마르코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이번 에일라트 재건을 위해 저희 베네치아에서 얼마나 많은 자재와 물자를….”
“물론 진짜 버리고 가는 건 아닙니다. 일종의 함정일 뿐이죠.”
내가 말했다.
물건을 내주면 무사히 갈 순 있겠지만 그럼 마르코 말대로 손해가 너무 크지.
“놈들이 물자 가까이 다가오면 그때 숨어 있던 궁수들이 공격하는 겁니다.”
“몇 명이면 모를까 수십 명이 몸을 숨기긴 힘들 겁니다. 미리 엄폐물이라도 만들어 놓지 않는 이상….”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미 큰 엄폐물들이 저기 잔뜩 쌓여있으니까요.”
내가 웃으며 바깥쪽을 가리켰다.
배를 분해한 커다란 나무 조각들.
“저걸 언덕이나 산 쪽에 세워두면 되겠죠. 백 명 정도는 거뜬히 숨을 수 있을 테니까요.”
“배 조각들이라.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다위 부족들은 전리품을 놓고 싸우는 일이 많으니까요.”
가니에르가 중얼거렸다.
“골짜기 깊숙한 곳에 물자를 쌓아두면 놈들도 들어올 수밖에 없겠죠. 놈들이 전리품을 앞에 두고 서로 싸울 때 골짜기 입구를 틀어막는 겁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화살 공격에 후방을 차단하는 기병까지.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문제는 적절한 지형을 찾는 것.
“골짜기라면….”
난 지도를 살폈다.
낡은 지도에는 지형지물이 두루뭉술하게만 적혀 있었다.
이곳 지리를 자세히 아는 현지인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잠깐.
우리 바로 옆에 있었잖아.
난 에이그를 불러 유대인 족장, 에마누엘을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익숙한 얼굴의 노인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며칠 전 나와 대화를 나눴던 유대인 족장, 에마누엘.
“무사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지고하고 고귀하신 공자님. 저 야만스러운 도적놈들 때문에 이런 고초를 겪으시다니….”
“부족의 피해는 없으셨습니까?”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직까진 없었습니다만…. 아이와 여인들 모두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바다위 놈들은 저희가 에일라트에 살 때도 몇 번 습격해온 적이 있었죠. 그때마다 수많은 여인과 아이들이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이번에 저희를 도와주시면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난 지도를 가리켰다.
“혹시 이 근처에 골짜기가 있는지 아십니까? 안쪽 깊숙이 들어가는 곳이라면 더 좋습니다.”
“그런 골짜기라면….”
노인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지도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희가 별의 골짜기라고 부르던 곳입니다. 워낙 꾸불꾸불하게 이어져 있어 들어가거나 나오기 둘 다 힘들죠.”
“정확한 건 알아봐야겠지만….”
가니에르가 말했다.
“일단은 괜찮게 들리는군요. 제가 오전 중으로 정찰대를 보내보겠습니다.”
“그럼 오후에 정찰대 보고를 듣고 자세히 계획을 짜보죠.”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애 첫 실전을 이런 곳에서 치르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무섭다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이런 곳에서 발목 잡힐 수는 없지.’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전력으로 싸우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