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97)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97화(97/215)
제5열 (2)
* * *
“이제 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군요.”
위그가 말했다.
난 그와 함께 언덕에 서서 아래를 바라봤다.
사내들이 기다란 창을 들고 훈련 중이었다.
파이크 창.
군단병들의 훈련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고대 로마가 이런 광경이었을까.
아니, 로마 군단은 저런 기다란 창을 쓰진 않았지.
거기에 방패도 있었고.
파이크 창을 이용한 진형은 간단했다.
진형 외곽에 장궁과 쇠뇌를 든 병사들이 선다.
이들이 달려드는 기병을 향해 사격.
적 기병이 가까이 접근하면 창으로 된 방어벽에 숨는다.
‘사슬갑옷을 걸친 기사는 죽이지 못하더라도 말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지.’
하지만 이런 진형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돌격을 허용하면 진형은 바로 붕괴할 터.
사기와 훈련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농민들이 기사를 상대로 버틸 수 있을까?
“고향을 지키려는 이들보다 더 강한 전사들은 없습니다.”
내 말을 들은 위그가 말했다.
“사실 저도 처음엔 공자님과 같은 걱정을 했습니다. 저들이 훈련을 제대로 끝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죠.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모두 아침 일찍 나와 밤늦게까지 훈련만 반복했습니다. 단 한 명도 투덜거리지 않더군요.”
“코무네(도시) 시민들은 수십 년간 황제와 싸워왔죠. 폐허가 된 도시도 계속 재건했고요.”
내가 말했다.
어쩌면 위그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우린 그 방법을 제공한 것뿐.
“그리고 저희 기사단원들이 진형 중간중간에서 지휘관 역할을 맡을 겁니다. 지휘권을 문제 삼는 이는 아직 없더군요.”
“승리할 때는 모두 제 말을 따를 겁니다. 하지만 몇 번 패배한다면 곧바로 늑대처럼 달려들겠죠.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할 겁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패배할 순 없었다.
오직 승리.
승리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때 단원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모두 휴식하도록! 배를 채우고 다시 훈련을 시작한다!”
벌써 점심시간인가.
성벽 밖으로 나온 여인과 아이들이 병사들에게 빵을 나눠줬다.
몇몇 사내들은 빵을 대충 입에 쑤셔 넣고 공을 차며 놀았다.
12세기에도 21세기랑 똑같은 건 있군.
즐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사람들 모두 곧 있으면 전쟁이 벌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울하거나 슬퍼하기만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뛰어다니며 놀았고 부모들은 잡담을 즐겼다.
공을 차는 사람 중 에이그도 보였다.
녀석은 갑옷을 벗고 뛰어다녔다.
나도 같이 공이나 차고 싶은데….
내가 가면 군대스리가 짬축구가 펼쳐지겠지.
난 몸이 근질근질거리는 걸 애써 참았다.
위그가 말했다.
“에이그 저 녀석은 하루종일 잘도 뛰어다니는군요. 제 장담컨대 저놈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닙니다.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죠.”
“저한테 뭔가 숨기시는 거라면 빨리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저번에도 그렇고 뭔가 수상하단 말이지.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도….”
그때 누군가 무리 지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
아직 열 살이 채 안 된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아찌들도 빵 드실래요?”
바구니를 든 소년이 빵 몇 조각을 꺼내며 물었다.
방언이 심하긴 했지만 알아들을 순 있었다.
거칠어 보이는 갈색 호밀빵.
아이들이 이렇게 접근해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애초에 이탈리아 평민들은 우리 주위에 다가오지도 않았고.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평민들은 귀족과 기사, 왕족와 마주치면 그에 맞는 예의를 표해야 했다.
이 아이들은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거겠지.
같이 훈련받는 병사인 줄 알고 빵을 주려 온 것 같은데.
“고맙구나. 공자님께서도 하나 드시겠습니까?”
위그가 빵을 건네받았다.
그의 새하얀 장갑이 햇빛에 비쳤다.
“호밀빵이 퍽퍽하긴 하지만 맛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든든하지요.”
“마침 배가 고팠는데 잘됐군요.”
내가 말했다.
한 번쯤은 퍽퍽한 빵도 나쁘지 않겠지.
애초에 왕족 식단은 고기가 너무 많단 말이지.
거기에 채소랑 야채는 농민들이나 먹는 음식이라며 식탁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때 무심코 장난기가 들었다.
“위그 경. 혹시 빵값도 안 내고 드시려는 겁니까?”
“이거 기본적인 예의도 없었군요. 제가 공자님 것까지 내드리겠습니다.”
위그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가 품을 뒤적거리더니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이거 돈주머니를 천막에 놓고 왔군요. 애초에 돈 쓸 일이 없어서….”
“이젠 돈 내기 싫어서 거짓말까지 하시는 겁니까? 제가 대신 내드리죠.”
내가 웃으며 답했다.
난 품속에서 은화 몇 개를 꺼내 아이들에게 던져줬다.
아이들이 동전을 받아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우와! 은이다! 은!”
“정말 주시는 거죠?!”
화들짝 놀란 어머니들이 나타나 아이들을 데려갔다.
연신 사과하는 그들에게 우린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테오도라랑 헤어질 때가 기억나네.
그쪽은 잘하고 있으려나.
“이탈리아인들이 공자님을 좋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위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공자님께선 독일의 고압적인 황제랑 정반대 아니십니까?”
“위엄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내가 말했다.
왕족처럼 행동하는 건 아직도 어색하단 말이지.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위엄은 꼭 전사처럼 행동해야 나오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왕처럼 행동하지는 않으셨지요.”
빵을 다 먹은 위그가 은가면을 다시 썼다.
그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위엄있는 자가 곧 왕이 되는 겁니다. 그 반대가 아니라요.”
“….”
“그나저나 좀 더 이곳에 머무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예전에 산티아고로 순례 갈 때 이곳에 처음 들렀었죠. 가니에르랑 귀도를 만난 곳도 여기였고요.”
그가 말했다.
“나병 환자가 지내기 딱 좋은 곳입니다.”
“예루살렘만큼 덥지도 않고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탈리아의 공기와 풀밭은 아늑했다.
푹신푹신한 호텔 침대에 누운 듯한 느낌.
이곳에 여행 온 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전 이만 내려가서 훈련을 감독하겠습니다. 놀고 있는 저 루아크 녀석 엉덩이도 한 대 걷어차야겠군요.”
저 멀리 루아크는 빵을 먹으며 엉덩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욱신거리는 모양이군.
위그가 언덕을 내려가며 그에게 소리쳤다.
“이봐, 루아크! 어젯밤엔 어떤 놈이랑 화끈한 시간을 보냈길래 그렇게 엉덩이가 욱신거리는 건가?!”
루아크가 그를 향해 뭐라 소리치며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둘이 투덕거리는 모습에 난 웃으며 호밀빵을 씹었다.
그때 뭔가 감정이 느껴졌다.
긴박함.
감정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기사가 보였다.
그가 내 앞으로 달려와 말에서 내렸다.
“공자님!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다니. 좀 더 자세히 보고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
제국군이 감시망을 피해 베로나에 도착한 건가?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제국군이 알프스산맥을 넘으면 우리 경계망이 포착했을 터.
“무장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선두에는 수도사 한 명이 서 있더군요.”
“수도사라고?”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안 가네.
주변 병사들이 허겁지겁 무기를 들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아이와 여인들도 서둘러 성벽 안으로 돌아갔다.
머지않아 불청객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이 넘는 무리.
평범한 농민처럼 보이는 사내와 여인들.
거기에 아이들까지.
기사의 보고대로 무장한 병사들은 아니었다.
무슨 난민 떼를 보는 것 같네.
불트에 올라탄 난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들에게 접근했다.
날 발견한 그들이 소리쳤다.
“예루살렘 왕국의 문장이다!”
“보두앵 공자님이다!”
웅성거림이 퍼져나가더니 그들이 날 향해 달려왔다.
깜짝 놀란 불트가 앞발을 치켜세웠다.
난 다리를 두드려 진정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흥분은 몇 분이 흐르고 나서야 가라앉았다.
“모두 물러나게!”
누군가 큰소리로 외치며 내게 달려왔다.
호위기사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아, 보두앵 공자님! 공자님을 뵙게 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난 달려든 사내를 바라봤다.
비쩍 마른 몸에 긴 수염.
두건이 달린 수도복에 맨발 차림이었다.
방랑 수도사인가?
수백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수도사와 마찬가지로 모두 헤진 옷차림.
적의가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감정이 흘러넘쳤다.
경외감? 감동?
난 호위기사들에게 물러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일단 대화를 나눠봐야 정체를 알 수 있겠지.
“처음 뵙는 것 같군요, 사제님.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주님의 미천한 사제인 이 피에르가 인사를 올립니다.”
그가 몸을 엎드리며 말했다.
그는 말릴 틈도 없이 내 발에 입을 맞췄다.
잠깐, 피에르라고?
난 사내를 다시 바라봤다.
‘그’ 피에르 수도사?
* * *
은자 피에르.
사실 그 이름이 맨 처음 등장한 건 1차 십자군 때였다.
방랑 수도사인 피에르는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십자군 원정을 선전했다.
잔뜩 해진 사제복에 당나귀.
그는 유럽에 십자군 열풍을 일으켰다.
“주님께선 그리스도인이 예루살렘을 되찾길 원하신다! 성도 예루살렘을 되찾자!”
수많은 유럽인이 그의 열변에 감동해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다.
그 수만 해도 무려 몇만이었지.
그는 성인 취급을 받으며 민중들을 이끌었다.
그렇게 모인 게 바로 민중 십자군.
대부분 가난한 민중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무작정 동쪽으로 진군했다.
도중에 마주친 마을들을 약탈하다 헝가리 군대에 쫓기기까지.
콘스탄티노플까지 도달한 민중 십자군은 결국 룸 술탄국에서 전멸을 당한다.
십자군 원정 중에 제일 어이없는 이벤트였지.
‘그 후에도 자신을 피에르 은자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많이 나타났고.’
라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서도 마찬가지.
이들은 모두 비슷한 특징을 지녔다.
높은 카리스마와 설교 능력.
하지만 대부분 뻘짓을 하다 사라졌다.
이자도 그중 하나인 것 같은데.
벌써 사람들 수백을 끌고 왔으니.
그가 침을 튀기며 말을 쏟아냈다.
“제가 맨 처음 공자님 이야기를 들은 건 프랑스의 파리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별다른 생각은 안 들었지요.”
피에르가 말했다.
초췌한 얼굴과 달리 그의 눈빛은 생기로 넘쳤다.
“영웅담은 이전에도 여러 번 들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얼마 뒤 지독한 열병을 앓으며 전 천상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가 양손을 허공으로 흔들었다.
“그리스도께서 제 꿈에 직접 나타나 말씀하셨지요. 보두앵 공자를 도와라! 성도 예루살렘을 수호하라!”
“그래서 이곳까지 오신 거군요.”
내가 말했다.
몸이 비쩍 마른 게 영양실조가 심각해 보이는데.
몸이 허약하면 헛것이나 환청도 더 자주 보이지.
특히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확신으로 가득 찼을 때는.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런 주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이렇게 공자님을 만났으니 이 또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가 횡설수설 말을 늘어놨다.
묘하게 카리스마가 있긴 하네.
이 자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확신.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우선 예루살렘의 수호를 위해 싸워야겠지요. 곧 주님께서 길을 인도하실 겁니다.”
“그렇군요.”
난 그를 바라봤다.
굶주리고 헐벗은 수백의 순례자라.
이들이 큰 전력이 될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싸운다는 게 꼭 전장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
잘만 쓰면 훌륭한 카드가 될지 몰랐다.
난 의자에서 일어서며 그에게 미소지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사제님. 우선 성십자가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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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도레 – 천상의 계시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