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135)
〈 135화 〉 9. 흑과 금 (6)
* * *
레카체프의 입학시험의 채점관은 재학 중인 학생들이었다.
그 말은 학생들이 직접 시험의 점수를 매긴다는 뜻이 아니었다.
입학 과제에서 점수를 받는 기준이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이 같은 시험을 치렀을 때 받을 수 있는 기록으로 결정된다는 의미였다.
수험생들이 각 과제에서 최고점을 받기 위한 조건은 간단했다.
재학 중인 학생들이 달성한 기록들을 모두 꺾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입학시험의 어떤 과제에서 최고점을 받았다는 것은 해당 재주만큼은 학교에 현재 다니고 있는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찰리는 입학시험에 나온 25가지 과제 모두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즉, 그는 입학하는 순간부터 당시 학교에 다니고 있는 모두를 꺾은 것이다.
그중 13가지는 황금 천칭 레이나의 기록보다 높았다.
겸손한 찰리는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13승 12패가 아닌 12승 12패 1무라고 정정했다.
마지막 과제에서 그가 레이나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 말했다.
마지막 과제에는 함정이 있었다.
그건 몇 년간 레카체프의 훈련을 받은 재학생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찰리와 레이나는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먼저 도전했던 레이나는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실수하고 말았고, 찰리는 앞서 그녀가 실수하는 것을 보고 함정을 파훼해 낸 후 최고점을 받은 것이다.
찰리는 늘 말했다.
그때, 자신이 먼저 과제를 치렀다면 서로의 점수는 반대로 됐을 거라고.
과연 두 사람은 4년 동안 얼마나 차이가 벌어졌을까?
여전히 호각일까?
그런 아쉽게도 알 수 없었다.
찰리는 졸업식을 마치고 1달 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오직 학교의 수석 졸업생만 받아준다는 엘리트 서커스단 ‘레카체프 25’에 들어갈 기회까지 포기하면서 말이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기록으로 최고점을 방어해 낼 수 있을까 걱정했다.
로드 판타스틱의 딸이 이번에도 또 입학시험을 치르겠다고 신청해왔기 때문이다.
학교 측이 대회 참가자들에게 부과한 ‘드래프트’ 규정 때문이었다.
서커스단이 수험생들을 입단시키기 위해서는 기존 단원을 1명 방출해야 했다.
그리고 드래프트에서 단원을 선발하는 순서는 방출한 단원이 입학시험을 치르고 받은 성적순으로 결정되었다.
이 드래프트 규칙을 알면서도 딸을 방출하여 시험에 내보내는 로드 판타스틱의 의도는 선명했다.
그는 딸이 모든 수험생을 꺾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저번에는 찰리 같은 신인이 우연히 수험생들 사이에 있은 덕분에 구원받았지만, 이번에는 그런 행운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어떻게든 재학생들의 실력으로 점수를 방어해내야 했다.
“자신감을 가지자. 우리는 레카체프에서 몇 년 동안 실력을 갈고닦았잖아.”
“그래. 황금 천칭이 다 뭐야.”
“저 애는 자기 아빠 밑에서 인기 맛에 취해 돌아다닐 때, 우리는 노력했잖아.”
“그럼 그럼.”
친구들이 태평하게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25가지 과제 중 절반 이상에 최고 기록을 기록한 푸른색 머리의 여학생이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그녀의 이름은 클라라.
찰리의 1년 후배이자 현 학교 수석이었다.
그녀는 다른 학생들보다 유난히 증오 어린 눈으로 강당으로 들어오는 레이나를 노려봤다.
그녀는 친구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녀는 상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천재라는 것도.
한때 레이나는 그녀가 숭배했던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클라라는 그녀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얄미웠다.
그녀는 몇 달 전, 졸업식 직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녀는 찰리가 학교를 떠나기 전에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에게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마음을 거절했다.
“왜죠?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건가요?”
“아냐, 아냐. 넌 좋은 친구야, 클라라. 하지만 내가……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그의 말에 클라라는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누구죠?”
“……하하, 밝히기에는 좀 쑥스러운데.”
“알고 싶어요! 서커스 관계자인가요? 우리 학교 학생인가요? 설마……교수님은 아니죠?”
클라라는 그가 길들이기 교수와 친하게 지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성적을 보인 그였지만, 그중에서 길들이기에 대한 공부를 유독 열심히 했다.
다른 교수들은 학교 창립 시절부터 자리를 지켜온 늙은이들이었지만, 길들이기 교수만은 30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다들 그가 그녀에게 푹 빠져 지낸다고 떠들어댔다. 특히 야밤에 그녀와 함께 걷는 그의 모습이 목격된 뒤로 그 소문은 더욱 커졌다.
찰리는 교내에 떠도는 소문을 떠올리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아냐, 아냐. 절대 아냐. 우리 학교에 있는 사람은 아니야. 곡예사는 맞아. 누구보다 뛰어난…….”
그의 말에 클라라는 울컥해서 외쳤다.
“누구보다 뛰어나다고요? 저보다 더 실력이 뛰어날까요? 전 찰리 선배만큼은 못 돼도 그래도 학년 수석이에요.”
“글쎄, 아무리 너라도 말이지……. 그녀에게 안 될 거야. 나도 아직 승부를 내지 못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그가 미처 승부를 내지 못한 사람.
그가 늘 무승부였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
‘황금 천칭’ 레이나 마기어.
업계 최고의 마술사인 ‘로드 판타스틱’ 지몬 마기어의 외동딸.
클라라는 그녀의 팬이었다.
나이를 초월한 완벽한 외모와 몸매, 그리고 뛰어난 실력으로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10대 천재 곡예사.
그녀를 질투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클라라는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약간의 감정의 동요 없이 늘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는 그녀가 너무 대단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꿈꾸는 우상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그날 그녀는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벽에 붙어 있는 레이나의 포스터를 모두 찢어버렸다.
모아두었던 그녀의 잡지 기사나 공연 상품도 모두 쓰레기통에 쳐넣었다.
그저 멀리서 동경의 대상이었을 때는 그렇게 눈부셔 보였던 사람이 그와 자신의 옆으로 비집고 들어오니까 그렇게 혐오스러울 수가 없었다.
클라라는 강당 안에 설치된 시험 과제를 돌아보며 혀를 할짝거렸다.
레이나 마기어.
한때 자신의 우상.
그녀가 비참해지는 꼴이 보고 싶었다.
***
강당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총 2그룹으로 나뉘었다.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과 그들을 보러온 서커스단 측이었다.
수험생들은 강당 곳곳에 설치된 기기묘묘한 기구들을 관찰하며 수군댔다.
저것들이 오늘 그들이 치러야 할 과제였다.
다들 잔뜩 긴장하거나 흥분한 얼굴을 했다.
물론 그중에서 엘라만큼 들떠 있는 아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와! 저것 좀 봐! 저거 뭐지? 점프력과 균형감각을 활용한 훈련 기구인 거 같은데? 저런 거 처음 봐! 저건 원심력을 이용한 힘 측정 장치인가? 스프링이 엮인 각도를 봐서 그냥 휘두르면 근육 구조상 팔이 엉키겠는걸?”
엘라는 상기된 얼굴로 강당을 둘러봤다.
예쁜 장신구나 옷을 봤을 때도 시큰둥했던 그녀가 곡예기구에는 눈을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원더스타인은 기억을 잃어도 이런 면은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을 보며 다행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엘라 양도 서커스 학교에 있었잖아요. 거기에는 저런 게 없었나요?”
“우리같이 가난한 시골 학교에 저런 게 있겠어? 전부 사부님이 손수 망치 들고 만드셨는데. 훈련 효과는 좋았지만……. 어, 잠깐! 저건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원더스타인은 엘라가 가리킨 기구를 슬쩍 보더니 작동 원리와 쓰임새를 말해주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봤다.
“어떻게 안 거야?”
“흠, 그냥 척 보면 보이는데요.”
“그럼 저건?”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기구들을 가리킬 때마다 척척 대답을 내놓았다.
그를 바라보는 엘라의 눈빛에 한층 더 존경심과 애정이 깊어졌다.
대단하다.
대단한 남자다.
조각 같은 외모와 자상한 말투.
부드러운 웃음과 자신을 아끼는 마음.
무엇보다 그녀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박식함과 다재다능한 재주.
그녀는 주변에 외치고 싶었다.
이게 바로 내가 선택한 단장이라고.
이게 바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이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남자라고.
그와 나란히 서서 무대 위에 올랐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젠가 분장 없이도 함께 서고 싶었다.
원더스타인과 엘라!
최고의 콤비!
“헤헤.”
원더스타인은 행복한 웃음을 흘리는 그녀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헬스 마니아도 아니고.
훈련 기구를 보며 저렇게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세상에 그녀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좋습니까?”
“……뭐, 뭣? 사람 많은 데서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네?”
엘라는 그제야 그가 곡예기구들을 가리키며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혼자 망상에 잠겨 있다가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놀라고 말았다.
“아, 그……아, 아니야, 헤헤. 하여간 대단한걸, 우리 단장? 저걸 한눈에 다 알고…….”
원더스타인이 눈앞의 기구들의 작동방식을 모두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은 당연했다.
레카체프에서 준비했다는 25종 과제에 쓰이는 곡예기구들은 모두 TT2에서 나왔던 것들이다.
절반 정도는 미궁을 공략하는 데 응용 가능한 도구였고, 절반 정도는 망가진 상태로 나와 함정으로 작동했다.
그때, 종이 울리며 강당의 무대 위로 6명의 남녀가 올라섰다.
서커스 학교의 교수들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현재 출장으로……자리를 비우셔서 제가 대표로 인사를 하겠습니다.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교감이자 ‘줄타기’ 과목을 맡은 교수인 엘파라입니다.”
검은색 고깔모자에 검은색 벨벳 원피스를 입은 50대의 여인이 단상 위에 섰다.
그녀는 레카체프를 세운 5명의 곡예사 중 한 사람이었다.
레카체프의 교과는 크게 7가지로 구분됐다.
흔히 ‘전통의 다섯 마당’이라 불리는 다섯 가지 곡예 과목과 광대를 위한 화술과 연기, 극작가를 위한 문예와 창작이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서 전통의 다섯 마당을 이루는 다섯 가지 곡예는 레카체프를 세운 5명의 곡예사가 각각 장기로 내세우는 것이었다.
힘자랑의 야코블레프.
줄타기의 엘파라.
땅재주의 카일로.
쏴의 르고.
길들이기의 우르수스.
이들 다섯 명은 30년 전, ‘5인방’이라는 이름으로 서커스 업계에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다 황제가 보낸 광대의 제안에 따라 함께 학교를 설립하고 교수직을 맡게 된 것이다.
여기서 길들이기의 우르수스만 은퇴했고, 나머지 4명은 현재는 물론이고 4년 뒤에도 여전히 교수를 하고 있었다.
4인방.
그들은 TT2의 예테린푸르크 스테이지의 마지막 보스들이었었다.
원더스타인은 하나둘 앞으로 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TTT 전체를 통틀어 가장 살인적인 난이도를 자랑하는 자들이어서 그런지 기억에 확실히 남았다.
길들이기를 맡은 젊은 여교수가 나왔을 때는 조금 불쾌해졌다.
그녀는 TT2에서 조력자로 나왔다.
카바레의 유령 같은 경우에도 그랬지만, 모두가 광기에 휩싸일 때, 혼자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은 원래부터 자신만의 광기에 취해있던 사람이었다.
그녀 역시 그랬다.
“저분이 바로 우르수스의 수제자야! 나 저 사람 사인도 가지고 있어. 친구가 받아준 거였는데…….”
엘라가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원더스타인은 우르수스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보았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기억을 되짚던 그는 개막식 때가 떠올랐다.
혹시나 그가 실수할까 봐, 엘라가 인터뷰를 대비해 대사를 미리 준비해주었다.
거기에 그의 이름이 언급됐었다.
가장 존경하는 곡예사는 역시 우르수스?
그때는 별생각 없이 그녀가 불러주는 대사를 외었다.
길들이기로 유명한 곡예사라고 해서 그녀가 존경할 만하다고 여기고 말았다.
그런데 그가 5인방의 일원이었을 줄이야.
게임에서는 늘 4인방이라고만 나왔기에 그의 존재가 있는 줄도 몰랐다.
길들이기 교수만 30대인 게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제 스승님이신 우르수스 님이 돌아가신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회 주최자들이 마련했다는 전담반이 반드시 그 ‘검은 마도사’라는 자를 잡았으면 바랍니다.”
길들이기 교수가 17년 전의 테러 사건을 언급했다.
우르수스는 그곳에 참가했다가 사망했다고 했다.
원더스타인은 또 하나 적립된 악덕에 이제는 놀라지도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럼 드래프트에 참가할 서커스단은 방출할 인원을 앞으로 내보내 주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일단 방출되고 나서 수험자가 된다면, 시험 중간에는 절대 서커스단과 접촉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에서 호명하는 순서대로 각 서커스단에서 방출되는 단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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