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48)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48화(548/619)
EP.548 20. 방황하는 성자 (15)
검은 마도사 수사팀의 팀장이자 마신 카이랄의 사도인 바예르는 복잡한 표정으로 신문을 읽어내려갔다.
요즘 카리브해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서커스 그랑프리 참가자로 알려진 인형극 전문 서커스단이 해적들에게 납치된 것부터 시작해서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와 같은 수사팀의 일원인 기자 레빈스는 이 모든 일 뒤에 부두교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수사팀에 합류하기 전부터 부두교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었던 터라 신문에 보도되는 각종 사고의 이면에 어떤 자들이 암약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10년 넘게 잠잠하던 부두교가 무슨 일일까요?”
“모르겠소. 부두교의 목적은 매번 달랐으니까 말이오.”
부두교 혹은 마신교로 불리는 이 집단은 지난 수백 년간 십여 번 이상 여러 지역에서 여러 이름으로 발호해왔다. 엄밀히 말해 부두교는 하나의 단일 계보를 가진 집단이 아니었다. 정교회가 세상의 주류로 자리 잡은 뒤로 쭉 탄압을 받아왔던 마신 숭배자들의 집단 움직임 자체가 곧 부두교라 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에는 국가 하나에 자리를 잡고 정복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고, 어느 시대에는 대학생들의 데모보다 더 온건한 수준의 권리 신장 운동을 보여주다가 자진 해산하기도 했다.
이번 시대의 부두교가 발호한 것은 십수 년 전의 일이었다. 히포드롬에 테러가 발생한 뒤, 전 세계적으로 마도사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탄압이 벌어지면서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결성된 것이 지금의 부두교였다.
바예르로서도 잊을 수 없는 시기였다.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그는 여론을 핑계 삼아 지역의 불온분자들을 청소하려는 영주의 소탕령에 끌려가 하마터면 처형대에 오를 뻔했다.
그런 그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미리엘 대주교였다. 비록 그가 바예르를 구하러 나선 것에는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그라는 사람이 종교인답지 않게 굉장히 합리적이고 깨어 있는 사람인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다른 정교회 성직자들처럼 진정한 구원은 빛의 신을 섬기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굳이 그것을 위해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구원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의 존속과 번영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마신 숭배자들과도 적지 않은 교분을 이어갈 수 있었다.
미리엘 대주교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바예르는 그를 위해 많은 일을 처리해주었다. 미리엘이 검은 마도사 추적대를 조직하고 그 책임자로 바예르를 임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인연 때문이었다.
바예르는 추적대를 이끌기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성과를 냈다. 저주 역병이 검은 마도사와 관련되어 있고 그가 데볼루트를 다루는 자임을 증명한 것이다.
바예르는 그 결과를 아직 세상에 발표할 생각이 없었지만, 미리엘 대주교는 성급하게 그것을 세상에 공개해 버렸다. 수사 책임자로서 성과를 자랑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같은 교황 후보로 꼽히는 방황하는 성자 프롤로를 견제하기 위함도 있었다.
저주 역병이 검은 마도사의 짓이라는 사실은 다시 말해 저주 역병을 전문적으로 쫓고 다루는 프롤로가 지금까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말이 됐다. 그는 자기 전공 영역에서 경쟁자보다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 셈이었다.
프롤로로서 더할 나위 없는 굴욕이었을 것이다. 그가 그때 잃은 명성을 만회하려면 검은 마도사를 직접 잡아서 대령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정말 그가 그런 일을 해낸다면 오명을 반납하는 것을 넘어서 차기 교황 자리는 떼 놓은 당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원더스타인이라는 자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가만히 앉아 대화를 들으며 장비를 손질하고 있던 악마 사냥꾼 퀴네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는 최근 수사팀의 행보에 불만이 많았다.
그들은 이미 지난 반년간 원더스타인이라는 남자를 조사했다.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었지만, 그 주위에서 이상한 일들이 계속 터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퀴네스는 이미 두어 달 전부터 원더스타인과 괴물서커스단을 구속하고 단원들을 직접 신문해볼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팀장인 바예르가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검은 마도사’를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죄 없는 사람 수천 명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었다. 그중에는 그의 가족과 스승, 친구들도 있었다. 비로소 그때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위치에 왔는데, 또 유사한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해진 지 3개월째가 되자 그도 더는 퀴네스의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어졌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대장님! 저희 돌아왔습니다!”
그가 막 입을 열려는데 밖에서 씩씩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퀴네스는 조금 맥빠진 표정을 짓더니 다시 무기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곧 그들이 있는 숙소 안으로 분홍색 머리카락의 수녀와 덩치 큰 대머리 수도사 그리고 검은 도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세 사람은 수사팀의 일원인 발렌티나, 노들, 카진스키였다.
세 사람은 시내에 장을 보고 오던 길이었다. 수사팀 중에서 태평한 축에 속하는 발렌티나와 노들은 정말 순수하게 먹거리를 구하러 간 것이었지만, 카진스키는 제국 정보부의 요원으로서 정기 보고를 받기 위해 다녀온 것이었다.
황태자 암살 미수범을 놓친 탓에 원래 한직으로 좌천당하는 모양새로 수사팀에 합류한 카진스키였다. 그런데 하필 그가 이곳에 오자마자 미리엘 대주교의 발표가 터짐으로서 갑자기 수사팀의 위상이 급상승했다.
덕분에 그는 이전에 파견되었던 정보부 요원들보다 훨씬 높은 정보 접근 권한과 우선순위를 얻을 수 있었다. 대륙 반대편에 있는 시골 지역의 마을 소식지도 이틀만 있으면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근 두 달간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던 수사팀으로서 그가 오늘 물고 온 소식은 상당히 반가운 것이었다. 바로 서커스 그랑프리에 새로운 괴물서커스단이 출현했다는 것이었다.
“이고르 서커스단이란 말이지?”
“뭔가 갑자기 딱 등장한 것이 수상쩍기 그지없습니다! 분명 뭔가 있을 겁니다!”
“좋아. 그럼 내일부터 당장 이들을 추적한다.”
다들 들뜬 표정을 한마디씩 하는 와중에 퀴네스가 손을 들었다.
“잠깐, 거기에 굳이 우리 모두 몰려갈 필요가 있을까? 그건 전력 낭비지.”
“그렇다면?”
“여기서 둘로 갈라지자. 3명은 이고르 쪽으로 다른 3명은 원더스타인 쪽으로.”
퀴네스의 선언에 발렌티나와 노들은 괜히 눈치만 살폈고 다른 세 사람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원더스타인에게 호감이 있는 바예르로서는 꺼리는 일이었지만, 그녀의 의견은 타당했다. 안 그래도 오늘쯤에 원더스타인 서커스단을 구속할지 말지 결정을 내리려 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그녀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좋아. 자네 말대로 하지. 단, 어디까지나 동향을 살피고 정보만 수집하는 거야. 구속은 이고르 쪽의 조사가 끝난 다음에 하는 것으로.”
“그래.”
퀴네스는 군말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녀를 따라갈 사람으로는 발렌티나와 카진스키가 뽑혔다. 노들과 레빈스는 바예르를 따라 이고르 쪽으로 가기로 했다. 정보 담당과 무력 담당을 한 명씩 나눠 가진 것이다.
퀴네스는 지금의 수사팀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별명은 ‘악마 사냥꾼’으로 공화국 보안관 중에서 특별히 마귀와 마도사를 상대하는 데 뛰어나서 수사팀에 발탁된 것이다.
그녀가 적을 상대하는 방식은 보통 수류탄을 던지고 닥치는 대로 총을 쏴 갈기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조용한 정보 수집과 탐문은 그녀에게 맞지 않았다. 그녀가 대장이었다면 일단 원더스타인 쪽을 전부 감옥에 던져 놓고 정보를 실토하는 놈이 나올 때까지 압박을 가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방금 바예르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따로 생각해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퀴네스는 며칠 전의 보고에서 레진스키가 가져왔던 어떤 정보를 기억했다. 바로 방황하는 성자 프롤로가 프라빈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후원자인 미리엘 대주교에게 한 방 먹어서 몸이 달아 있을 그였다. 검은 마도사라는 미끼는 그에게 아주 달콤할 것이다.
***
카진스키는 정보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대신 수사팀의 행적을 계속 정보부장에게 보고해야 했다.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수사팀의 회의 내용도 전신을 통해 정보부장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는 그중 특기할 만한 사항들을 정리해 황제가 머무르는 궁의 별실로 보냈다.
그곳은 바로 황실 극단의 부단장이자 황제가 총애하는 조언자인 뱀 마녀 메리사 세르펜티의 거처였다.
메리사는 정보부장의 보고를 읽고 그것을 자신의 동거인이 읽도록 탁자 위에 두었다. 방금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라테나는 그것을 보고 알몸 그대로 성큼성큼 방을 가로질러 왔다.
“뭐야 이건?”
“라테나! 옷을 입으십시오!”
“뭐, 어때. 우리끼리. 나는 원디랑 같이 살 때도 늘 이랬는데?”
라테나의 말에 메리사가 경악해 소리쳤다.
“무, 무슨 나, 남매끼리 그런 남사스러운 짓을! 자, 작별 키스도 그렇고……. 다, 당신 때문에 원디가 그렇게 여자에 무방비해진 것 아닙니까?”
메리사가 두 팔을 붕붕 휘둘렀다. 라테나는 두 눈은 여전히 보고서에 집중한 채 보지도 않고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메리사는 세 자매 중에 머리 쓰는 데는 제일 뛰어났지만, 몸 쓰는 일에는 제일 굼떴다.
“워, 워. 어릴 적에는 잘 즐겨놓고 왜 지금 와서 수녀 행세야?”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너도 원디랑 같이 다닐 때, 그 녀석을 껴안고 잤다며.”
“딱 그 정도가 남매 사이에 허용된 선입니다!”
“웩, 그 머릿속에 어떤 상상이 오갔을지 누가 알고.”
“무, 무슨 사, 상상을 누가 해, 했다고…….”
“예전부터 네 특기였잖아. 나랑 렐이 네 머릿속에 경악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그, 그때는 어렸다고요!”
라테나는 자신의 목을 조르려 드는 메리사의 손을 피해 보고서를 모두 읽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등에 달린 날개를 펴고 천장의 샹들리에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래. 이고르 녀석이 활동을 개시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수사팀 역시 반으로 나누어져서 놈을 쫓는다 말이지…….”
“이고르보다 걱정해야 할 건 원디예요. 수사팀의 전력은 보통이 아니에요. 6명 중 전투담당 4명은 모두 사도 급의 힘을 지녔죠. 우리 둘이 힘을 합쳐도 당해내기 힘들 정도예요. 원디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다 프롤로까지 원디가 있는 곳으로 향하다니……. 안 되겠어요. 제가 가진 힘을 동원해서 프롤로와 추적팀을 모두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는 게…….”
메리사가 외부로 서신을 보내기 위해 펜을 들려는데 라테나가 그녀를 제지했다.
“그랬다간 네가 견제받게 돼. 교황청에 명분을 줬다가 서커스 그랑프리에까지 영향이 갈 수 있어.”
“하지만 원디가 중간에 죽기라도 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걱정하지 마. 그 녀석도 이제 어른이니까. 네가 자꾸 애 취급하니까 걔도 널 밀어내는 거잖아.”
라테나의 말에 메리사의 뱀 머리카락들이 기가 죽은 듯 몸을 웅크렸다.
“제게는 아직 미숙한 어린아이로밖에 안 보인단 말입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녀석에게 맡겨. 괜히 나섰다가 계획을 망치면 녀석에게 원망을 들을걸?”
“알았어요……. 기다려야겠지요. 원디가 알아서 잘하기를…….”
라테나는 그녀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보였다.
“그러다 문제가 터지면 내가 가야겠지. 원디가 제일 좋아하는 누나인 내가.”
“비겁자! 항상 그런 식으로 원디의 호감을 뺏어갔죠, 당신은!”
메리사와 라테나가 다시 서로의 과거를 들추며 다투기 시작했다.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뱀 마녀의 처소에서 들리는 대화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유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