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49)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49화(549/619)
EP.549 20. 방황하는 성자 (16)
루미가 며칠간 달라붙어 집중적으로 수련을 시켜준 덕에 마야는 자신의 마음속 도화지를 순조롭게 넓혀 나갈 수 있었다. 그녀는 폴리곤을 통해 만드는 환상을 ‘설계’, 마음의 상을 통해 만드는 환상을 ‘투영’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이제 많은 것들을 투영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가장 능숙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당연히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이었다. 어느새 자신이 마음을 허락하고 만 사람들. 그들은 원더스타인이나 월리만큼은 아니었지만 제법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게다가 그녀는 이제 처음 보는 대상도 마음의 환상으로 빚어낼 수 있었다. 물론 사물 하나를 투영으로 만들어 내려면 그것을 며칠간 거의 끌어안고 살다시피 해야 가능했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이었다.
마법 아카데미에서는 수년을 그렇게 연습해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녀는 수련을 거듭할수록 그 기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야는 어서 자신이 이룬 성과를 원더스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칭찬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리고…….
“들었어? 단장님이 마야에게 고백했대.”
“청혼했다나 봐.”
“핫핫, 둘이 예전부터 사귀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마야가 좀처럼 예뻐야 말이지.”
그녀가 명상에서 깨어난 것은 수십 명의 사람이 웅성대는 소리 때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구현해낸 단원들의 환상이 제멋대로 그녀의 망상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녀는 화들짝 놀라서 재빨리 환상을 지우고 주변을 둘러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있는 곳은 은막의 숙소였다. 엿들어도 문제없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여기서는 자신도 어디까지나 ‘보통’이었으니까.
“너무 뻔뻔해진 거 아냐? 뭘 당당히 감상하고 있어?”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두꺼비가 혀를 날름거리더니 마야의 환상을 모두 집어삼켜 버렸다. 엘라의 환상은 두꺼비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갔으나 그녀의 환상도 예외 없이 두꺼비에게 먹혔다.
마당 한가운데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던 마야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화난 표정의 루미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서 있었다.
“이것 보게. 내가 잠시라도 안 보고 있으면 또 엉뚱한 상상이나 하고 있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소녀에게 꾸지람을 듣자 마야는 기분이 상했다. 안 그래도 자신이 만든 환상이 허무하게 상대의 손에 소멸해 자존심이 상한 그녀는 불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기는 더 이상한 짓도 하면서…….”
“내, 내가 뭘!”
“풍선 인형 같은 거 만들어서 때리고 있잖아요.”
“그, 그건 그냥 저, 정신 건강을 위한 거야!”
루미는 종종 감정이 한계치에 달하면 상대의 모습을 3등신으로 데포르메한 인형을 꺼내 들고 직접 두들겨 패곤 했는데, 그저께 그 모습을 마야에게 들키고 말았다.
‘야, 이 자식들아, 너희들 자꾸 내 머리 쓰다듬지? 이 몸은 단장이라 말이다!’
‘인형이라고? 이것들이 장난하나! 옷 갈아입히기 놀이나 하는 변태들!’
루미는 씩씩대며 환상 사이를 뛰어다니며 주먹을 휘두렀다. 그러다 그녀는 마침내 오늘 그녀를 폭발하게 만든 대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넌 여자들 좀 그만 홀려! 이 바람둥이 자식아!’
원더스타인의 3등신 인형이 그녀의 날아 차기를 맞고 데굴데굴 굴렀다. 오늘 루미는 마야의 상태도 보고할 겸, 괴물서커스단을 찾았다가 그가 아나이스와 호텔에 들어가고 있는 장면을 발견하고 말았다.
예전부터 업계에 소문은 돌고 있었고, 둘 다 성인이었기에 루미가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가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있다는 건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두 눈으로 본 건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인형을 소환해 무지하게 때려댔다.
비록 그 장면을 마야에게 들키기는 했지만, 루미는 그녀에게 차마 자신이 목격한 것을 털어놓지는 못했다. 그랬다간 그녀가 충격에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몰랐기 때문이다.
“제 환상이 너무 쉽게 사라졌어요.”
마야는 루미의 손짓 한 번에 자신의 단원들이 다 쓸려나간 게 충격이었던 것 같았다. 루미는 또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져서 화를 가라앉혔다.
“그야 그럴 수밖에. 네가 만든 환상에 힘을 더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염동력으로 힘을 실었기 때문이잖아? 진짜로 마음의 환상을 ‘실체화’할 정도로 단련한 건 아니지. 당연히 약할 수밖에.”
“아.”
“그리고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 은막 아르노라고. 페어리와 인간의 마법 양쪽 다 능통한 사람은 나밖에 없어. 네가 날 이기려면 아직 10년은 일러.”
루미는 짐짓 거만한 태도로 말했지만, 실제로는 마야의 성장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10년은커녕 5년이면 따라잡힐지도 몰랐다.
그래도 루미는 상대에게 초조함이나 질투의 감정은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함을 느꼈다.
마야가 자신의 지도에 따라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친구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던 시절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지금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마야는 두 사람의 딸이었으니까. 루미가 그녀를 가르치는 것은 그들 셋이 힘을 합쳐서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았다.
루미는 마야가 대마법사에 오를 인재라고 평했던 원더스타인의 말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라면 정말로 언젠가 그 경지에 오를지도 몰랐다.
대마법사를 정의하는 데는 옛날부터 여러 요소가 있었지만 지금 시대에 대마법사로 인정받기 위해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바로 ‘자유로운 마력 전환’이었다.
마법사의 수준을 측정하는 데는 마력 전환만큼 객관적인 지표가 없었다. 여기서 마력 전환이란 자신의 영혼이 머금고 있는 기를 사용 가능한 에너지 형태로 바꾸는 과정을 의미했다.
보통 생명이 막 싹을 틔울 때 영혼은 둥그스름한 부정형을 띠었다. 그러나 일단 생명이 활동을 시작하면 육체와 유사한 형태를 띠게 됐다.
태초의 상태에서는 자유로웠던 기가 점점 육체의 감각에 종속되는 것이다. 마법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마법을 쓸 수 있는지는 이 육체의 형상으로 퍼져 있는 기를 얼마나 자유롭게 끌어다 쓸 수 있느냐에 달렸다.
과거에는 도제식으로 마법이 전승되었던지라 마법사마다 마력 전환의 방식이 다 달랐다. 그래서 유파마다 그 전환 감각을 가르치기 위한 각종 특이한 훈련법이 횡행했었다. 흐르는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든지, 외나무다리 위에서 제자리 회전을 한다든지, 달군 모래 속에 손을 담갔다 뺀다든지.
하지만 그것도 지금 와서는 다 옛말이 되었다. 현대에는 특별한 전승을 이어가는 소수의 주술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명상을 통해 마력을 전환하는 ‘호흡법’을 배웠다. 물론 거기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어 사용하는 마법의 종류마다 즐겨 쓰는 호흡법이 달랐다.
마야가 배운 것은 주로 환상 마법사들이 애용하는 ‘감각 포착 방식’의 호흡법이었다. 명상에 들어가서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아주 작은 감각을 포착한 뒤, 그 근처에 그보다 더 작은 감각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좌표계가 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더 작은 감각’을 원래의 ‘포착된 감각’에 가까이 움직이는 상상을 하다 보면 해당 부근의 기가 에너지 형태로 전환되어 눈앞의 좌표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은 바로 이렇게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확보한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력 전환’을 얼마나 빨리해내느냐는 마법사의 숙련도를 가늠하는 척도였다.
마야의 마력 전환은 그 속도도 안정성도 훌륭했다. 마법 아카데미의 수석다운 솜씨였다.
그러나 이것을 아무리 능숙하게 해낸다고 해도 대마법사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호흡법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효용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경로 의존성’의 함정이었다. ‘육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마력을 끌어쓰기 위해 개발된 호흡법이 바로 그 호흡법이라는 틀에 고착화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당장 마야가 익힌 호흡법만 해도 그 기전을 관찰하면 손가락 끝에 존재하던 기가 신경계를 타고 올라 뇌에 전달되었다가 다시 신경계를 타고 안구로 향했다가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거쳐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정말 마력이 자유로운 거라면 그냥 손가락 끝의 기가 바로 마법으로 구현되면 그만이었다. 물론 정말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간단한 마법 하나 쓰기도 버거울 터였다. 원하는 속도로 딱딱 마력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호흡법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호흡법을 통해 전환되는 마력의 에너지 효율은 대부분 5%를 넘지 못했다. 당장 이 시대에 개발된 호흡법 중에 10%를 넘는 것은 없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호흡법을 통한 마력의 전환은 이론상 결코 12.5%를 넘길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멋 옛날부터 이 효율을 무시하고 마력을 끌어다 쓰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대마법사였다.
대마법사는 지식을 쌓거나 기술의 숙련도를 높인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완벽하게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정신적 수양이 필요했다. 그래서 과거 대마법사들이 현자로 불렸던 것이었다.
과연 원더스타인의 호언장담이 맞을까? 루미는 기대에 찬 눈으로 그와 자신의 제자를 바라봤다.
“뭘 자꾸 히죽대며 쳐다봐요? 할망구.”
“앗, 실수.”
마야는 재빨리 손을 휘저어 카렌의 환상을 지워버렸다. 투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환상이 늘어날수록 그녀는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툭툭 튀어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할망구?”
“카, 카렌이 말한 거예요. 카렌의 환상이…… 평소 말버릇대로.”
“그래. 둘이 만나면 그렇게 날 씹고 놀았단 말이군.”
루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늘이 무너져도 무심할 것만 같던 마야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요정이 화를 내면 어떤 끔찍한 악몽 속에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는지 며칠 전에 경험했었다.
“……환상을 좀 더 정교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됐어요, 언니.”
“이게 말을 돌려? 이제 와서 언니라고? 기가 막혀.”
“이것 보세요.”
마야는 상황을 진정시킬 비장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잘스타인 씨였다. 그는 전신을 탈의하고 트렁크만 입은 채 균형 잡힌 근육질의 몸을 과시하며 루미 앞에 나타났다.
환상 마법사가 본인이 만든 환상에 탐닉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뻔히 가짜라는 것을 본인이 제일 잘 느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이 만든 환상을 마주한다면 그런 위화감을 덜 느끼며 환상을 즐길 수 있었다.
“흐, 흐응? 꽤, 꽤 늘었는데?”
루미는 마야의 성과를 평가하는 척하면서 잘스타인 씨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마야가 가장 공들여 만든 환상이라 호흡에 따른 자연스러운 목, 어깨, 가슴 근육의 움직임도 구현되어 있었다.
루미는 지난 며칠간, 마야의 성과를 확인한다면서 시시때때로 잘스타인 씨를 소환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이용해 사심을 채웠다.
“흐, 흐흥. 제, 제법이야.”
루미는 잘스타인 씨의 다리 사이로 쑥 고개를 밀어 넣고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야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변태 할망구.’
그렇게 마야는 루미의 도움 덕분에 일주일 사이에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단장인 루미의 시간이 상당히 뺏기고 말았지만, 은막 서커스로서도 손해는 아니었다. 마야가 그들에게 ‘레이 트레이싱’과 ‘아웃 포커스’ 기술을 전수했기 때문이다.
레이 트레이싱은 마야 정도 연산력 있는 마법사가 아니면 사용하기 어려운 기술이었지만, 은막은 수십 명의 마법사가 집단으로 환상을 구현하는 데 익숙했다. 기술은 미숙해도 젊어서 머리는 잘 돌아가는 신입 단원들이 나누어서 연산을 담당하니 훌륭하게 기술이 적용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세계 가로수 대회 예선전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