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50)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50화(550/619)
EP.550 20. 방황하는 성자 (17)
‘이제 며칠만 있으면 끝이군.’
원더스타인은 이번 가로수 경연대회를 마지막으로 가스통을 서커스단에서 내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단원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르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가 계속 정원사 타령을 할 것을 생각하면 그냥 이쯤에서 내보내는 게 좋았다.
물론 그가 또 다른 단원 퀘스트를 만들어 내 저항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이미 단원 퀘스트의 구조에 대해 키르쿠스에게 상세한 답변을 얻어냈기에 그것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
단원 퀘스트는 그가 추측했던 대로 단원의 바람에 따라 발동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사람 간의 인과가 충분히 쌓이지 않으면 그것은 잘 뜨지 않았다. 설사 뜬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았다.
가로수 경연대회에서 입상하라는 가스통의 이번 퀘스트에 강력한 보상과 페널티가 걸린 것은 그가 몇 개월 동안 묵묵히 서커스단에 봉사해왔기 때문이었다. 그 빚이 있기에 이 정도 요구는 할 수 있지 않냐는 식으로 단원 퀘스트가 들어온 것이다.
즉, 이번 일만 잘 마무리한다면 그에게 진 빚은 대부분 청산될 터였다. 내보내려면 그때 하는 게 맞았다.
“이 녀석아, 출발할 시간이다!”
가스통이 그를 채족했다. 원더스타인은 그의 뒤에 서 있는 유라크네와 시선을 마주쳤다. 두 사람은 슬쩍 미소를 교환했다.
오늘 그녀는 그가 대회를 통과하는 것을 돕기로 했다. 원래 가로수 경연대회는 참가자 혼자 과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새로운 아이템의 힘을 빌리면 원격으로 유라크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단원들의 평균 호감도가 48이 되었습니다. 평균 호감도 40을 달성한 보상으로 ‘어디든지 펜’이 제공됩니다. 현재 평균 호감도 48 (다음 보상: 60)]지난번 시험을 통과하자마자 단원들의 호감도가 일제히 크게 상승했다. 아무래도 서커스단 전체가 협동해서 이룬 쾌거라 그런 듯했다.
어디든지 펜은 이번 연극을 준비했던 단원들에게 아주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것은 프란츠와 랄프가 연극대학 비품실에서 한 상자 가져온 것이었는데, 연극을 위해 개발된 물건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유용했다.
종이, 유리 나무, 금속 등 소재를 가리지 않고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물론, 가하는 힘에 따라 선의 굵기를 100배 가까이 조정할 수 있어서 대본에 글씨를 쓸 때도 사용하고 무대 위에 표시를 남길 때도 사용하는 등 다양한 곳에 활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야광 기능까지 있어서 어두운 무대에서 활용하기 제격이었다.
호감도 보상으로 제공된 어디든지 펜은 거기에 더해 허공에도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이것은 스킬북이나 배역 이름표가 그랬던 것처럼 단원들에게만 적용됐다. 즉, 어디든지 펜으로 남긴 흔적은 단원들만이 인식할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이것을 이용해 이번 시험을 돌파할 생각이었다. 대회 진행 방식은 이미 사전에 공개되었기에 유라크네가 어떤 식으로 그를 도울지는 만반의 계획을 세워뒀다.
“이 녀석아! 뭐해, 안 서두르고!”
“네, 스승님.”
원더스타인은 웃으며 가스통의 뒤를 따랐다.
***
레이나의 그림자는 저번 시험을 마침과 동시에 16살로 성장했다. ‘아빠와 함께 무대 위에 서고 싶다’라는 그녀의 욕망을 달성한 덕분이었다.
현재 그녀의 사회적 나이는 18살. 그림자와 페르소나가 일치하기까지는 2살밖에 남지 않았다.
16살이면 그녀가 원더스타인과 처음으로 만났을 때와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이제는 가면을 벗고 지내도 생활하는 데 별문제 없었다.
*단원 퀘스트-부녀 선언
: 레이나의 그림자는 자신이 원더스타인의 딸이 되었음을 알리길 원합니다.
달성조건
: 지몬 마기어 앞에서 레이나와 함께 부녀 선언을 하십시오.
성공 시 보상
: ‘그림자-16살의 레이나’가 ‘그림자-17살의 레이나’로 변화합니다.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앞선 퀘스트들이 그랬듯 그림자가 주는 퀘스트는 그녀가 그 나이 때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행동들이었다. 레이나가 지몬을 떠나 괴물서커스단에 합류한 것이 작년 일이니 그녀는 서커스단을 나올 때, 지몬에게 이렇게 한 방 먹이고 싶었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그녀가 요구했던 것에 비하면 양반이라 할 수 있었다.
퀘스트는 이제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대로 그림자를 계속 성장시켜 나가도 되는지였다.
퀘스트의 설명에 따르면 그림자와 가면의 정체성이 일치하는 순간 페르소나가 소멸한다고 했다. 원더스타인은 키르쿠스에게 해당 퀘스트의 결과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가 받아온 답변은 레이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가면 역시 사라집니다. 진정한 당신의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가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
레이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만져봤다.
현재 그녀의 모습은 죽은 어머니와 지몬을 반반씩 닮아 있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지몬은 콤프라치코스에 죽은 딸을 복제하길 요구했었으니까.
즉, 현재 이 모습은 어디까지나 죽은 레이나가 성장했을 때를 가정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진짜 모습은 이 안에 숨어 있었다.
레이나는 원래의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인형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라테나 고모, 제 원래 모습을 알고 싶어요.’
‘오직 바이오맨서만이 트릴의 힘을 빌려 고정된 데볼루트를 지울 수 있지. 원더스타인은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녀석에게 그런 일을 부탁하는 게 그 녀석한테나 너한테나 좋은 일일지 모르겠어.’
‘왜요?’
‘그건 그 녀석이 저지른 죄와 관련이 있어.’
‘죄요?’
인형의 집에서 벌어진 소란이 가라앉고 나서 라테나는 레이나를 저택 구석에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어떤 여인의 초상화가 먼지가 쌓인 채 벽에 걸려 있었다.
‘난 네 모습을 원래 대로 돌려줄 수는 없지만, 네가 어른이 됐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알려줄 수 있지. 단순히 궁금해서 그런 거라면 이 그림을 보면 될 거야. 이건 원래의 네가 몇 년 뒤에 될 모습이니까.’
레이나는 초상화의 얼굴을 살펴봤다. 흰색 가운을 걸친 금발의 무표정한 20대 여성이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묘하게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이 그림……. 그린 지 수십 년은 된 것 같은데요. 어째서 제 미래의 모습이 여기에 담겨 있다는 거죠?’
라테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원더스타인은 널 만든 걸 한동안 후회했었어. 자신의 창조주와 같은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말이야.’
‘후회…… 실수……라고요?’
레이나는 귀를 꽉 닫고 싶어졌다. 라테나는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것을 보고 주저하다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해하지 마. 그 녀석은 널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너를 떠나보낼 때, 얼마나 자신을 혐오했는지 넌 상상할 수 없을 거야. 창조주와 같은 실수를 한 것도 모자라 창조주와 같은 죄를 저질렀으니까 말이야.’
라테나는 아련한 향수에 잠겨서 초상화를 바라봤다. 액자 속의 여인은 그녀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라테나의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넌 우리의 창조주,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세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어. 그래서 너는 성장하면 이런 모습이 될 거야.’
그것이 바로 원더스타인이 저지른 실수이자 죄였다. 떠나버린 창조주를 다시 보고 싶다. 그 충동에 휩싸여 멋대로 가족을 만들어 버렸고 종국에는 또 그 가족을 버려버렸다.
그 순간, 레이나는 흐릿했던 기억 한 조각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14년 전, 그녀가 새로운 부모로 지몬을 선택했을 때, 그녀와 라테나가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죽은 아이의 대용품?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인데. 부모는 결국 아이가 가짜인 걸 자각하게 된다고. 죽은 아이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실은 부모와 아이 모두 상처받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곤 하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고모는 콤프라치코스를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잖아요.’
‘그걸로 아픔을 겪은 녀석을 한 명 알거든.’
‘아.’
‘그렇다고 해서 녀석이 무슨 복수심이나 분노 때문에 널 만든 건 아니야. 물론 창조주와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에서는 변함없지만…….’
‘그건 알고 있어요.’
‘어쨌든 그러니까 너도 잘 생각해서 선택하렴.’
‘저는 괜찮아요. 아니, 오히려 더 좋아요. 이걸로 그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이나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13년 만에 아빠와 재회했을 때 깨달았어야 했다. 그가 13년 만에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에 기뻐할 게 아니라 사실 그가 13년 동안 자신을 피했던 것에 슬퍼해야 했다는 것을.
‘레이나, 당신은 이제 제 딸이 아닙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목적이었다고는 하지만 13년 동안 한 번도 찾지 않은 것에서 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불편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았어야 했다.
‘부디 평범한 부모를 만나서 행복하게 사세요.’
레이나는 손톱을 턱밑에 찔러 넣어 힘을 주었다. 그러자 거울 속의 그녀가 얼굴 가죽을 벗어 던졌다. 그 안에는 자신이 잘 아는 동시에 전혀 모르는 여인이 서 있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 자신은 그녀의 클론이었다.
‘가짜 딸’의 가면 밑에는 ‘가짜 누나’의 얼굴이 자리잡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원더스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전의 그는 미소를 지을 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너무나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대해줬다. 왜일까? 자신이 그의 죄를 상기시키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만약, 자신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그 표정 역시 다시 예전처럼 싸늘해지는 걸까?
‘싫어.’
그건 싫었다.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한다고 해도 좋았다. 가짜라도 괜찮았다.
사랑받는 딸로 있고 싶었다.
***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가면 배우들은 자신의 진짜 신분을 숨긴 채 프라빈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었다. 그들은 오직 공연 날에만 가면을 쓰고 모여 무대 위에 올랐다.
원더스타인의 원작의 지식 덕분에 그들 중 절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 지식은 만우절에서 사람 찾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었다.
그가 파악하고 있는 배우 중에는 신분이 아주 특이한 사람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프라빈 최고의 검수로 이름이 난 리히텐이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내 정체가 ‘패왕의 연인’인 걸 들키고 싶지 않다면 한판 붙어 달라 이거지?”
30대의 미남자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앞의 젊은이를 바라봤다. 갑작스레 검술 도장의 문을 두드리고 나타난 그가 대뜸 자신에게 대련을 신청했을 때만 해도 제자 중 하나를 시켜 적당히 두들겨 패준 다음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숨겨진 정체를 언급하며 도발해오는 것 아닌가.
패왕의 연인은 백면극의 등장인물 중 하나로 작중에서 망국의 공주로 등장했다. 사람들은 현재 노천극장에서 패왕의 연인 가면을 쓴 배우를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 간드러진 목소리 하며 여성스러운 자태를 남성이 낸다고 생각하면 소름 돋는 일이었다. 그것도 배우가 해당 배역을 맡은 지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남자라고 하면 40대 가까이 되었다는 소리니까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리히텐의 정체가 패왕의 연인 가면이라는 것을 들킨다면 사교계에 만만치 않은 소란이 일 것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검사가 사실 여장이나 하고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니.
백면극을 즐겨 보는 사람들에게도 충격이 클 것이다. 그 패왕의 연인이 사실 40대 다 되어가는 아저씨였다니.
“재미있군.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그 도전을 받아주지. 그래. 이름이 어떻게 되나?”
리히텐과 마주본 청년은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이반 페드로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