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53)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53화(553/619)
EP.553 20. 방황하는 성자 (20)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음에도 아직 가위를 드는 정원사는 없었다. 그들은 일단 자신이 배정받은 나무를 만지고 살피며 어떻게 가지를 쳐 나갈 것인지 계획을 세워나갔다.
원더스타인도 다른 참가자들을 흉내 내며 머리를 굴리는 척을 했다. 물론 그는 그들과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번 과제는 단순히 잘 자르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낙과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가로수로서 미관을 살려야 했다. 그를 위해서는 나무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릴 수 있어야 했다.
가스통이 지금까지 가르친 내용이 원더스타인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몇 년 각 잡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뭔가 보일지도 몰랐다. 물론 그에게는 그럴 생각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지금까지 가스통이 냈던 실전 과제는 모두 유라크네의 도움을 받아서 처리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그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특성: 인스피라-8개의 눈
적용 대상: 거울
효과: 유라크네가 거울을 바라보며 거울 안의 자신과 시선을 8초 동안 마주칩니다. 그때부터 그 거울이 비추는 대상을 유라크네도 볼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최대 8개까지 지정할 수 있습니다. 거울이 깨지면 해제됩니다.
요구 자원: 유라크네의 호감도 50
8개의 눈은 유라크네가 호감도 50을 달성하면서 얻은 새로운 인스피라였다. 그녀는 거울을 일종의 감시 카메라처럼 활용할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TT1에서 그녀와 싸웠던 무대가 거울 미궁이었음을 기억해냈다. 사방팔방 설치된 거울들 때문에 일부 플레이어는 멀미를 호소할 정도로 어지러운 시각적 환경에서 싸워야 했었다.
실제로 공연에서 사용되는 ‘거미 여인’의 무대에도 거울을 이용한 배경 장치가 몇 개 있었다. 그걸로 이쪽에서 휙 하고 사라졌다가 저쪽에서 휙 하고 나타나는 공포 영화의 연출을 가미할 수 있었다.
그가 TT1의 보스 전을 떠올린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TT1 생각은 잘 하지 않게 됐다. 단원들의 광기 어린 변화와 비참한 죽음들이 떠올라 의도적으로 생각을 회피했다는 것이 맞았다.
“준비됐어요, 단장님.”
“알겠습니다.”
유라크네는 현재 그와 시선을 공유하고 있었다. 거울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지만 사실 자기 자신과 시선을 마주치는 게 가능한 수준의 반사체라면 됐다. 사람 눈알의 수정체 역시 그에 포함됐다.
그녀는 그의 눈을 통해 나무의 모습을 살피고 음향실로 원더스타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는 분필을 집어 들고 나무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자, 여기 X자 친 곳은 잘라내시고, O자로 표시한 곳은 건드리지 마세요. 그리고 A 표시한 곳은 대패로 껍질을 벗긴 뒤…….”
어디든지 펜은 연극 때 썼던 펜이 그랬던 것처럼 누르는 힘에 따라 잉크가 나오는 양이 달라졌다. 여기서 잉크의 양은 곧 사정거리를 의미했다. 힘주어 쓰면 2, 30m 떨어진 곳에서도 글자를 띄울 수 있었다.
유라크네는 건너편 건물 위에서 어디든지 펜으로 나무 위에 이리저리 선을 그어댔다. 원더스타인은 혹시나 구경꾼 사이에 있는 가스통이 알아차릴 때를 대비해 몸으로 교묘하게 시야를 가려가며 분필로 펜 선 위를 덮었다.
계획을 모두 짠 원더스타인은 노끈과 가위를 들고 가지들을 엮고 다듬고 자르기 시작했다. 유라크네의 실력은 일류 정원사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떨어져 계획을 수립하는 데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나 그 차이는 그의 손놀림으로 메꿀 수 있었다. 스킬북의 힘을 빌린 그의 솜씨는 세 명의 우승 후보에 버금갔다.
구경꾼 사이에서 가스통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본선 진출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
루엘로는 홍등가에서 태어나 3살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미용실은 상당히 익숙한 공간이었다.
몸을 파는 여인들은 치장에 관심이 많았고 낮 동안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미용실을 자주 찾았다. 귀부인들이 미용실을 사교의 장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홍등가의 미용실도 그곳 여인들에게 비슷한 역할을 했다.
루엘로도 자신을 돌봐주는 언니, 이모들을 따라가 그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었다. 그곳 사람들은 엄마 없이 자라는 그녀를 안쓰럽게 여겨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갈 때마다 간식을 챙겨주기도 했다. 때로는 밤에 숙소에 어린애를 두기 곤란한 경우가 발생하면 루엘로는 미용실에서 자고 오기도 했다.
그녀가 삼손에게 선뜻 미용실에 가자고 권한 것도 그래서였다. 3살 때부터 떠돌이로 생활한 그녀에게 향수라는 것을 느낄 만한 장소가 있다면 바로 그곳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거의 미용실을 가보지 못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병 때문에 독한 약을 자꾸 먹어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리고 없었기 때문이다. 원더스타인이 병을 고쳐준 이후로는 삼손이 스스로 몸단장했기에 갈 이유가 없었다.
오랜만에 미용실에 들른 루엘로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수다 떠는 여인들의 목소리와 각종 화장품 냄새, 은빛 가위와 집게를 짤깍이며 돌아다니는 미용사들의 모습은 그녀의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풍경이었다.
“어머, 꼬마 아가씨가 이런 곳에 혼자 왜 왔지? 머리 자르러 왔니?”
손님들과 수다를 떨며 쉬고 있던 미용사 한 명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루엘로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20대 남자를 살랑살랑 녹일 만한 것으로 해주세요.”
“크헉!”
“풉!”
“콜록, 콜록.”
미용실 한구석에서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손님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들은 도저히 못 들을 것을 들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루, 루리?’
‘내가 널 예쁘게 만들어줄게. 단장님도 좋아하실 수 있게.’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응? 왜?’
‘네가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어? 미용실 오면 다 이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다행히 루엘로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여자는 경험 많은 미용사답게 차분한 태도로 몇 가지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루엘로는 그에 대해 솔직하게 답했고 사람들 사이에 퍼진 오해는 금방 수습될 수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넌 아빠랑 머리카락 색깔이 달라서 너보고 주워온 딸이라고 놀리는 애가 있다는 거지? 그래서 염색도 하고 예쁘게 꾸며서 본때를 보여주고 싶다?”
“네! 여기 돈도 있어요!”
루엘로가 주머니에서 지폐 뭉치를 꺼내 보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받은 용돈을 차곡차곡 쌓아두었기에 제법 큰 돈이 있었다.
미용사가 분별없는 사람이었다면 얼른 그녀를 의자에 앉혔을 것이다. 바가지를 뜯을 좋은 기회였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루엘로에게 부모님 허락 없이 그녀의 몸에 가위를 대거나 약을 바를 수 없다고 했다.
“다음에는 어른이랑 같이 오렴. 그때는 정말 예쁘게 꾸며 줄 테니까.”
루엘로는 애써 실망한 기색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삼손아.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괜찮다. 어쩌면 잘된 것 같기도 하다. 여기 들어와 보니 알겠다. 약품 냄새가 썩 좋지 않다. 저런 걸 내 몸에 바른다고 생각하니 좀 불쾌하군.’
미용사는 시무룩 해하는 루엘로가 안쓰러웠는지 사탕과 과자를 잔뜩 꺼내 주었다. 금세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미용실 구석의 소파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간식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어이구, 애가 정말 잘 먹네.”
“얘. 이것도 먹어 봐라.”
“헤헷, 감사합니다!”
그렇게 루엘로가 어른들 틈에 둘러싸여 마음껏 배를 채우기 시작한 지 5분쯤 지났을까.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며 또 누군가 미용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천장에 닿을 듯 솟았다가 다시 바닥에 꺼질 듯 가라앉았다. 미용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둘이었다. 한 명은 키가 최소 2m가 되어 보이는 거대한 키의 여자였고, 다른 한 명은 루엘로와 키가 비슷할 정도로 작은 남자였다.
그들의 행색은 남루했고 몸에서는 썩은 내가 났다. 아무래도 거지인 듯했다. 실제로 그들은 사람들에게 동냥 그릇을 내보이며 적선을 요구했다.
“배, 배고파요.”
“거기 남는 음식이나 돈 있으면 좀 줘보쇼.”
거인 여자는 최대한 사정하는 자세를 보였으나 난쟁이 남자는 맡겨 놓은 물건이라도 요구하는 것처럼 태도가 불손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들의 행색에 불쾌함을 느끼고 쫓아냈을 것이다. 원래 동정을 베풀 마음이 있었던 사람이라도 남자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도움을 주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루엘로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미용사는 보통 이상의 상냥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가게 뒤에 어제 짓고 남은 밥이라도 갖다 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난쟁이 남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뒤에 서 있는 거인 여자의 허벅지를 팔꿈치로 툭 쳤다.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모자란 사람처럼 괴성을 내지르더니 미용실 구석에 설치된 어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대뜸 그곳에 팔을 넣고 휘젓더니 안에 든 관상어를 꺼내 잡아먹으려 들었다.
“배, 배고파요! 이거라도 먹게 해주세요!”
사방에서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그녀가 어항을 바닥에 내던지며 깨버렸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곧 이 건물의 경비원들이 뛰어 올라왔고 거지 둘은 건물 밖으로 끌려 나와 구경꾼들이 보는 앞에서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사람들을 매 맞는 거지들을 보며 혀를 찼다. 경비원들은 그들에게 침과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는 이곳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두 사람은 바닥에 엎드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
사람들의 노골적인 비웃음이 그들에게 쏟아졌다. 그들은 겁에 질린 듯 그곳에서 허겁지겁 벗어났다.
하지만 골목에 들어서자 두 사람의 표정에서 비굴함이 사라지고 싸늘함이 나타났다. 그들의 입에서 엄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난하고 굶주린 병자에게 빵 한 조각 베푸는 이 없었으니.”
“주께 노하심이 이 땅에 역병의 저주가 내려질 것이다.”
그것은 ‘성 빅터 복음서’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난쟁이는 희열에 찬 표정을 지으며 킥킥거렸고, 거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막내야, 봤지? 봤지? 죽어 마땅한 놈들이야. 동정심을 가질 필요 없어.”
“저, 근데…… 방금은 제가 잘못한 것도 있지 않나요? 난동을 피웠잖아요.”
“난동? 흥. 호작 물고기 몇 마리 건져 올린 거? 그렇다고 사람을 그렇게 두들겨 패서 모욕을 줘? 너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 그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자면 우리가 하려는 일도 옳지 않은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막내의 질문에 난쟁이는 혀를 찼다. 힘과 공이 있어서 아버지가 자식으로 삼아주기는 했지만, 그녀는 아직 세상 경험이 부족했다.
“옳지 않다니. 이건 성경에도 나와 있는 일이야.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박대하는 저런 놈들은 벌을 받아 마땅해. 너도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을 것 아니냐.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네 원래 부모란 작자들이 너에게 어떻게 했지?”
“그, 그건…….”
“오직 우리 아버지만이 우리를 진정한 인간으로 대해주셨어. 그걸 기억해라. 아까도 한 명만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어도 이런 일은…….”
난쟁이는 말을 멈췄다. 뒤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멀리 안 가서 다행이에요.”
뒤를 돌아본 두 사람이 발견한 사람은 바로 루엘로였다. 그녀는 급히 달려와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넌 누구냐?”
“저 아까 미용실에 있었어요.”
“아, 그래. 맞아. 그랬던 것 같네.”
“그래서 왜 우릴 쫓아온 거지? 우리가 구경거리라도 되는 줄 아냐, 응?”
난쟁이가 윽박지르자 루엘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경거리라는 단어를 왜 저렇게 화를 내며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서커스단 식구들은 다들 구경거리 아닌가?
“저…… 그냥 전 이걸 전해드리고 싶어서요.”
루엘로는 주머니를 뒤적여 주섬주섬 미용실에서 챙겨온 사탕과 과자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