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57)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57화(557/619)
EP.557 20. 방황하는 성자 (24)
옛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프롤로는 이만 예배를 마치고 일어서기로 했다. 인근의 부유층들이 병을 고쳐 달라며 자신을 찾아올 시간이었다.
물론 별것도 아닌 병을 안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했다. 프롤로가 그들에게 해주는 처치도 통상적으로 병원에서 행해지는 치료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들은 성자의 치료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했다. 프롤로는 그에 걸맞은 퍼포먼스와 접객으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실제로 병을 돌보는 그의 실력은 뛰어났다. 원래 부랑자들을 돌봐주며 키운 실력에 더해 지난 십수 년간 쌓인 경험 덕분이었다.
프롤로는 거울을 보며 의관을 정제했다. 어차피 예배라고 해봤자 향을 그윽하게 피어두고 하루 정도 누워 있다가 나오는 것뿐이었다. 복장이 그렇게 많이 흐트러져 있지는 않았다.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수심에 잠긴 표정, 온화한 표정, 기쁜 표정 등을 연습했다. 이제 50줄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였지만 젊은 시절 뭇 여인들을 사로잡았던 그의 얼굴은 어디 가지 않았다. 그가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살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외모 덕분도 있었다.
그렇게 채비를 마친 그가 막 마차를 나서는데 울타리 너머에서 소란이 이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야영장의 경비 책임자인 한니발의 목소리였다.
“무기를 숨기고 들어오다니! 목적이 뭡니까?”
“아, 말했잖아. 실수라고. 직업병이라서 말이야.”
한니발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손님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일행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옆에서 그녀를 만류하는 게 보였다.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마르틴 경.”
막 아침 수련을 하다 온 것인지 몸이 온통 땀으로 젖은 50대의 검객이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주변에 대한 경계를 전혀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수십 번은 헤쳐나온 사람 같습니다.”
“평범한 여인은 아니라는 거군요. 응, 잠시만. 저건?”
프롤로는 탁자 위에 놓인 물건 하나에 손을 뻗었다. 그것은 한니발이 여인의 몸을 수색해 꺼낸 것들이었다. 단검, 총, 폭탄, 쇠뇌 등 무기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온갖 종류의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 프롤로의 눈길을 끈 것은 가죽 조각에 박힌 오각성 모양의 금색 배지였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델로스 공화국의 연방 보안관들에게 주어지는 배지였다. 게다가 금별이면 보안관 중에서도 받은 사람이 별로 없다고 들었다.
“한니발, 그만하거라.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구나.”
프롤로가 나서자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한니발이 바로 뒤로 물러섰다. 그것을 보고 퀴네스는 눈앞에 선 남자가 바로 자신이 찾던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방황하는 성자 프롤로 님입니까?”
그녀의 말에 사방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프롤로를 보러온 다른 손님들이 낸 소리였다. 성자를 접견할 때는 응당 취해야 할 격식이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누가 공화국 출신 아니랄까 봐.”
“어휴, 저 싼 티 나는 말투.”
“하여간 무례하기로는 대륙 제일이라니까.”
프롤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소란을 가라앉혔다. 애초에 그는 예의나 격식 같은 것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네. 제가 바로 그 프롤로입니다.”
“아, 잘 됐군요. 그러니까 우리는 말이죠…….”
그녀는 바로 용건을 밝히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뛰어난 보안관이자 사냥꾼이었지만 방금 봤듯이 대화로 무언가를 풀어가는 데는 소질이 없었다. 더 말해봤자 또 오해만 초래할 공산이 컸다. 그녀는 이 일을 동료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말해.”
“진즉에 좀 그러지.”
카진스키는 투덜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
이틀 뒤, 가로수 경연대회의 본선에 외빈으로 참석한 가스통은 사람들 앞에 원더스타인을 데리고 다니며 인사를 시켰다.
“이 친구가 바로 내 제자일세.”
그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말년에 얻은 제자가 어지간히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이것으로 퀘스트의 조건이 충족되었다. 원더스타인은 알림창이 무더기로 뜨는 것을 확인했다.
[단원 퀘스트 ‘토마토 온실의 후계자’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가스통의 호감도가 15 상승합니다.] [호감도 50을 달성한 보상으로 식물을 대상으로 한 데볼루트 소모 비용이 50%에서 25%로 감소합니다. 현재 호감도: 56 (다음 보상: 호감도 75)]이걸로 그는 식물에 한해서 4배의 데볼루트 효율을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이건 가스통이 서커스단에 나가는 순간 사라질 혜택이었기에 별 의미가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지운 부채를 정리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원더스타인은 이만 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의 눈앞에 뜬 ‘천벌’ 퀘스트 창에 역병이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인 게 눈에 들어왔다. 퀘스트가 처음 떴을 때보다 30% 이상 증가해 있었다.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유라크네 씨, 그럼 부탁합니다.”
“정말 가시게요?”
현재 유라크네는 원더스타인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가슴에 그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붙이고 있었다. 물론 이걸로 그녀가 그 대신 대회에 참석하는 건 불가능했다. 배역 이름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 정도를 속이는 정도의 힘이 한계였다. 대회처럼 이목의 집중을 받는 상황을 넘길 수는 없었다.
“1시간 정도만 끌어주세요.”
원더스타인이 그녀에게 부탁한 건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그녀가 파라솔 아래에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가스통은 현재 대회의 외빈으로 초청받은 터라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멀리서 자신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모습만 얼핏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이름표는 어디까지나 주변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용도입니다. 단원끼리는 이름표의 효과가 통하지 않으니 파라솔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는 마세요. 스승님의 눈에 띌 수도 있으니. 그리고 대회가 시작되면 무대에 오르지 마시고 그냥 기권하고 나오세요. 괜히 걸렸다가는 예선을 통과한 것도 속임수라고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요.”
자칫 몰수패라도 됐다간 가스통에게 공개적으로 큰 망신을 주는 셈이 됐고, 그러면 또 그에게 부채를 질지도 몰랐다. 철저하게 전략적인 시선에서 짠 계획이었지만 유라크네는 그가 가스통을 배려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일은 제가 잘 처리할 테니까요.”
“네. 그럼.”
채팅을 마친 원더스타인은 광장을 떠났다. 그가 향하는 곳은 그들의 숙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였다.
클라라의 말에 따르면 요 며칠 사이에 그곳을 중심으로 정체불명의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고 했다. 정황상 그곳이 바로 ‘천벌’이라는 역병이 퍼지는 곳일 확률이 높았다.
‘도대체 천벌이라는 놈이 뭐길래 퀘스트까지 뜬 걸까?’
원더스타인은 클라라가 말한 거리에 도착하자마자 진화 연구소를 켰다. 게임의 시스템 인터페이스와 비슷한 문자열들이 떠오르더니 시야에 보이는 생체 물질을 분석해주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이봐, 몸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이만 들어가지? 어제부터 안색이 영 아니야.”
“그럴까요? 집사람도 그렇고 애도 그렇고 오늘 다들 앓아누웠어요. 무슨 병이 퍼진 건지.”
“병원에 가보지 그랬나.”
“그러려고 했는데 줄이 말도 안 되게 길더군요.”
“이런. 뭔가 돌림병이 도는 건가?”
“글쎄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증상이 다 제각각이라.”
원더스타인은 병색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몸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반짝이는 색으로 강조된 작은 입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원더스타인은 눈앞에 떠오른 물질의 분석 내용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데볼루트의 구조와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이중 나선 구조의 이중 나선. 데볼루트는 나선 사이의 염기 서열에 무엇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온갖 종류의 생체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생물이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단이었다.
그러나 이 천벌이라는 녀석은 그 계단의 발판들이 모두 망가져 있었다. 이 녀석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접촉하는 대상을 불완전하게 복제해내는 것뿐이었다. 그 힘도 형편없어서 생명을 가진 것은 복제해낼 수도 없었다. 몸 내부로 들어간 녀석들은 체내 분비 물질의 열화 판울 계속 찍어낼 뿐이었다.
즉, 이 천벌이라는 녀석은 일종의 내분비계 교란 물질 공급 장치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란 현대에서 ‘환경 호르몬’이라 불리던 녀석을 말했다. 물론 천벌이 할 수 있는 일은 환경 호르몬 이상이었다.
갑자기 혈당을 급격히 떨어트릴 수도 있었고, 혈압을 급격히 올릴 수도 있었으며, 심장을 전력으로 뛰게 만들 수도 있었고, 땀을 비 오듯이 흐르게 만들 수도 있었다. 진단하는 의사로서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증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으니 말이다.
원더스타인은 키르쿠스가 왜 이 천벌이라는 역병이 불경스럽다고 표현했는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데볼루트는 혼돈이 내재한 위험성은 별개로 치더라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데볼루트가 있으면 생명은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벌이라는 녀석은 생명을 바꾸지는 못하고 오직 안으로 썩어가게 하는 힘만 있었다.
인간으로서 마신의 ‘취향’이라는 것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키르쿠스가 원하는 그림은 이런 게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이제 이걸 어떻게 한다.’
병이 퍼지는 꼴을 보아 한 명씩 붙잡고 진료하다간 시간 안에 진압할 수 없었다. 퀘스트는 1주일이 지난다면 이 녀석들이 ‘자유 데볼루트’로 변할 거라고 예고하고 있었다.
자유 데볼루트. 그것은 ‘저주 역병’을 의미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예전이었다면 일부러 데볼루트가 퍼지게 방치하고 그것을 흡수해 힘을 불리는 방향도 고려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저주 역병에 걸렸던 사람들이 아이를 낳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알게 된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나 단원들과 같은 삶을 또 만들어 내기는 싫었다. 퀘스트는 반드시 완수하고 싶었다.
그가 찬찬히 거리를 둘러 보며 계획을 짜보는데 거리 한쪽에서 성난 고함들이 들려왔다.
“이 망할 집시 놈들!”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내버려 뒀더니 기어이 이런 짓을!”
“저놈들 붙잡아! 분명 저놈들이 병을 퍼트렸을 거야!”
주민들이 유랑민 한 무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전염병이 퍼지면 흔히 그러듯 외지인들이 원흉으로 지목되기 마련이었다.
성자 빅터가 방역법을 보급한 이후로 유랑민들이 악마의 술수를 썼다고 죽이는 일은 없어졌다. 그러나 대신 역병이 퍼지는 기전을 확실히 알게 된 덕에 유랑민들이 역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일은 늘어났다.
현재 거리에 역병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역병을 가져온 장본인들이 ‘바퀴의 서커스’라는 집시들이라는 것이다.
“오, 오해요! 우리는 도시에 들어온 지 벌써 3달이 넘었소!”
“마, 맞소! 다들 진정하시오!”
“지금 거리에 퍼진 병은 우리랑 관련 없소!”
주민들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바로 바퀴의 서커스 곡예사들이었다. 그들은 평소처럼 시내를 다녀오는 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시끄러워! 너희는 병을 앓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너, 너희들이 그 보, 보…….”
“보균자.”
“그래! 지난 3달 동안 보균자 짓을 하며 돌아다닌 거 아냐?”
사람들 사이에서 괜히 집시가 원흉이라는 소문이 퍼진 게 아니었다. 바퀴의 서커스가 야영장을 펼친 지역은 이번에 천벌이 내려진 지역들과 밀접해 있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는 아직 단 한 명의 감염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