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59)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59화(559/619)
EP.559 20. 방황하는 성자 (26)
그러나 카진스키는 첩보 요원 출신답게 자신이 가진 패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충격적인 첫 마디 이후로 그는 계속 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프롤로의 속내를 떠보려 했다.
만약 퀴네스가 대화를 담당했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프롤로가 검은 마도사에 대해 무지했다면 그들이 던진 떡밥을 덥석 물어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프롤로는 검은 마도사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근거들에 종합해 봤을 때, 검은 마도사는 괴물서커스단 안에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괴물 서커스라…….”
프롤로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연구소를 가보았기에 저주 역병이 어떤 조건에서 발현되는지 알고 있었다. 괴물서커스단이 출몰한 곳과 역병이 퍼진 곳이 겹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저주 역병이라는 것은 키르쿠스를 향한 제사, 즉, 공연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조건이 갖춰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으니까.
프롤로는 안도감과 허탈함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수사팀이 자신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미리엘 대주교를 제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깨진 것은 아쉬웠다.
“일단 제게 말해주신 정보들은 천천히 검토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성자님 이런 중요한 일은 서둘러야…….”
“섣불리 공을 세우려 하는 것보다 억울한 이들이 나오지 않는 게 더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프롤로의 엄숙한 태도에 카진스키와 퀴네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주고받았다. 정보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교황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상당히 혈안이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그는 검은 마도사라는 미끼를 보고도 쉽게 동요하지 않았다.
프롤로는 두 사람을 잘 달래어 돌려보냈다. 비록 유용한 정보는 얻어내지 못했지만, 그들과 척을 질 이유는 없었다. 검은 마도사 수사팀의 내분을 잘만 이용하면 미리엘 대주교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검은 마도사를 잡을 수만 있다면 내가 교향이 되는 건 꿈도 아닐 텐데.’
프롤로는 검은 마도사가 누군지만 안다면 이길 자신이 있었다. 지난 십수 년간 그보다 데볼루트를 깊게 연구하고 상대해온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성자님.”
프롤로의 호위로 따라온 코르도바 남작이 조용히 그의 상념을 일깨워 주었다. 그는 요 며칠 사이에 프롤로가 자신을 따돌리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기회만 있으면 그와 붙어 있으려 했다.
물론 프롤로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정화 의뢰와 검은 마도사 수사팀 관련 일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르도바 남작은 프롤로가 혹시 거미 여인을 발견하고 자신에게서 보호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프롤로가 저주받은 자들에게 온정적으로 구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프롤로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두 아들을 ‘마인’에게 잃은 사람이었다.
저주받은 자 중에서는 종종 인간을 벗어나 진짜 괴물이 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마인이었다.
프롤로는 코르도바 남작의 아들들을 해친 여인은 마인이 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수십 명의 병사를 혼자서 몰살시킨 것을 보면 확실했다.
“자, 그럼 오늘 이 자리를 방문해주신 방황하는 성자님께서 참가자들의 묘목에 축복을 내려주실 겁니다.”
프롤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광장을 돌며 정원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그들이 쓸 묘목에 빛의 힘을 뿌려주었다. 전문적으로 원예를 배운 수도사들의 축복에 비하면 식물을 생장시키는 효과는 미미했지만, 그처럼 급이 높은 성직자가 축복을 베풀어주었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영광입니다, 성자님.”
“별말씀을. 모쪼록 식물이라 할지라도 생명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그렇게 차례로 정원사들과 인사를 나눈 프롤로는 이윽고 원더스타인의 천막 앞에 섰다.
***
원래 계획대로라면 유라크네는 15분 전에 천막을 나섰어야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인물이 방문하는 바람에 떠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방황하는 성자 클로드 프롤로. 오전에 나눠준 일정표에만 해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그의 대회 방문은 불과 몇 시간 전에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구경꾼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원더스타인이 해결하겠다고 나선 그 역병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듯했다. 공교로운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유라크네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가슴에 붙은 이름표도 떼버렸다. 이것으로 원더스타인이 꼼수를 써서(사실 쓰긴 했지만) 예선을 통과했다는 의혹은 피할 수 있었다.
‘아휴, 이게 다 뭐람. 이러면 오늘도 단장님에게 대가를 받아내야겠지?’
유라크네는 멀리서부터 성자 일행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입맛을 다셨다. 지난 일주일간 그녀는 그와 다섯 번이나 잠자리를 가졌다. 이번 대회 관련 일로 계속 그와 붙어 있던 덕분이었다.
유라크네는 밤에 그와 보낼 시간을 생각하며 어린애처럼 웃다가도 마음 한편으로는 울적한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의 정체는 죄책감이었다.
몇 달 있으면 남편의 4번째 기일이었다. 그런데 어제 그녀는 그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지 않아 달력을 넘겨봐야 했었다. 원더스타인과 막 격렬한 정사를 치른 이후에 말이다.
그때 그녀는 왼쪽 약지를 쓰다듬었다. 남편 생각을 할 때면 늘 그곳을 매만지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반지가 그곳에 없다는 것도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어느 순간부터 반지를 빼고 다니는 데 익숙해졌다. 최근 일주일간은 원더스타인과 매일 어울린다고 그것을 아예 어딘가 던져두고 잊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의 마음속에 늘 짙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던 남편의 그림자가 사라져 버린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이 진심으로 단장님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녀는 필사적으로 남편과의 추억을 떠올려 봤다.
돌팔매질을 대신 맞아가며 자신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던 10살의 낯선 소년은.
꺾은 꽃을 줄기째 손가락에 묶어주며 함께 할 그날을 약속했던 15살의 친한 친구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둘이 살자며 자신의 손을 잡아끌고 달렸던 20살의 멋진 청년은.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분명 기억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서 있어야 할 곳에는 금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추억은 마음의 작용이 절반이라고. 과거의 연인과 함께했던 경험을 현재의 연인과 함께한 것으로 착각하는 실수가 종종 발생하는 것도 그래서였다. 추억이 현재의 마음에 덮어 씌어 버리는 것이다.
“자, 다음 참가자분.”
대회 관계자의 부름에 유라크네는 가림막을 젖히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참가자분은 기권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여기 그분의 옷을 가지러 온 것입니다.”
“네? 어느새? 통보도 없이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요.”
대회 관계자는 몇 번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더니 이만 다음 참가자로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프롤로가 그녀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당신은…… 저주받은 자로군요.”
“네?”
“저주 역병에 의한 천형을 타고난 사람 말입니다.”
“아, 마,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셨나요? 지금 옷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데…….”
“일반인과 다른 몸 구조를 지닌 사람들과 평소에 자주 어울리다 보니 이제는 보기만 해도 알죠.”
유라크네를 바라보는 프롤로의 눈빛에는 자애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어쩐지 그가 원더스타인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스르릉 하고 금속성 마찰음이 들렸다.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소리가 난 곳을 돌아봤다. 프롤로의 호위 역으로 따라온 중년의 검사가 그곳에 검을 빼든 채 서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마르틴 코르도바는 유라크네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저 얼굴, 저 체형,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깔.
그는 저 모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두 아들의 원수.
“거미.”
검을 뽑아 든 코르도바 남작은 유라크네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무대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한니발이 장내로 뛰어들었다. 그는 등에서 도끼를 뽑아 들고 프롤로의 몸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무슨 짓이오, 남작!”
“거미!”
한니발이 그를 추궁했으나 그는 유라크네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지금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아들의 원수를 죽이는 것이었다.
“다, 당신은?”
유라크네 역시 상대를 알아봤다. 그 순간, 희미해졌던 전 남편의 얼굴도 또렷해졌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봤던 그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온갖 슬픔과 괴로움을 점철된 그의 표정이.
“죽어라! 이 괴물!”
남작이 검을 휘둘렀다. 검은 정확히 유라크네의 목을 베어 들어갔다. 검의 궤적이 그녀의 목을 갈랐다.
그러나 그녀의 목은 멀쩡했다. 검날은 그녀의 몸에 닿지 않았다. 누군가 그의 검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코르도바 남작의 검은 그 충격으로 부러졌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진 칼날이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바닥에 박혔다.
“무슨 짓입니까?”
유라크네의 앞을 막아선 사람은 이반이었다. 그는 오늘도 마야와 함께 스승을 응원하러 왔다가 이 사태를 마주하게 됐다.
“제법이군.”
코르도바 남작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손목을 붙잡았다. 충격 때문에 손이 다 얼얼했다.
“제법이야.”
비록 감정에 휩쓸려 무작정 힘만 쏟아 휘두른 검이긴 했지만, 그것을 단숨에 절단 내다니. 상대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감히 방해하다니.”
“무고한 여인에게 검을 휘두르는데 기사로서 어찌 나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고해? 웃기는군. 저 괴물이 무고하다고?”
코르도바 남작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흘렸다. 그녀를 변호하는 이반의 모습은 막내아들을 떠오르게 했다. 정의롭고 공평하고 기사도에 충실했던.
그렇게 행동한 결과 그는 어떻게 되었나? 그 믿음에 배신당하고 죽고 말았다.
“아, 아버님.”
유라크네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코르도바 남작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닥쳐라! 감히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라. 나는 너 같은…… 너 같은 며느리는 둔 적 없다!”
유라크네와 코르도바 남작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때, 구경꾼들 사이에서 괴물서커스단 사람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그들은 유라크네를 보호하듯 그녀를 감싸고 섰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뭡니까?
“당신은 누구지?”
“언니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다들 진심으로 그녀를 아끼고 있었다. 코르도바 남작은 아들의 원수를 감싸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향수에 휩싸였다.
-그녀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겁니까!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득바득 그녀를 옹호하고 나서던 막내아들이 떠올랐다.
“죄라…….”
아직 모르는구나. 모르기에 이렇게 할 수 있겠지.
“네 입으로 말해봐라.”
코르도바 남작은 유라크네를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를 방금까지 흥분하던 것은 어디 가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 아들은, 아니…… 네 남편은 누가 죽였지?”
유라크네는 떨리는 눈동자로 코르도바 남작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 어른거리는 남편의 흔적 덕분에 그녀는 오랜만에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금발의 남자가 사라지고 다시 그녀의 남편이 본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나타났다. 그는 더없이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자신을 원망하지 말아줘.
-제발 살아가 줘.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랑과 파괴 욕구의 혼동.
그녀의 타고난 몸을 비웃듯 그녀의 정신에 내려진 저주.
거미는 교미가 끝난 후 수컷을 잡아먹는다.
그녀가 남편을 잃은 것은 3년 하고도 9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죽이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