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62)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62화(562/619)
EP.562 20. 방황하는 성자 (29)
발렌틴은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먹으며 지난 3개월 동안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자신도 모르게 식탁에 머리를 박고 개처럼 음식을 먹으려 했다.
유라크네는 그것을 보고 남편이 이곳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힘들게 생활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를 멈춰 세우고 그의 입에 손수 음식을 넣어주었다.
“미안하군……. 내 꼴이 좀 한심하지?”
“그럴 리 없잖아. 내게 당신은 언제나 멋진 남자야. 그런 말 하지 마.”
“하하, 맞지. 아무래도 그동안 나도 많이 지쳤었나 봐.”
발렌틴은 씁쓸하게 웃었다. 양팔을 잃고 이곳까지 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그의 자존감을 많이 무너뜨렸다.
특별히 심한 시비가 걸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더는 검을 들게 될 수 없는 그로서는 동정심과 호기심 섞인 그 시선들을 예전과 달리 웃으며 넘길 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이런 꼴이 되어서야 아내의 심정을 겨우 이해하게 된 건지도 몰랐다.
“이고르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비행선이었어. 부자들의 미술품 경매가 이루어지는 비행선. 거기서 ‘별빛’이라는 가루를 입수하는 게 우리 목표였지.”
이고르는 발렌틴을 비롯하여 제법 이름난 용병들을 고용했다. 그는 그들에게 이번 일의 목적과 주의해야 할 적을 가르쳐 주었다.
“금발의 20대 남자. 이름은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라고 하지. 아마 별빛을 입찰하려 들 거야. 이 자는 죽여도 상관없네.”
“잠시만. 비록 고용된 몸이라고는 하나 사람을 해치라는 지시는 따를 수 없소.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을 거요.”
발렌틴이 정색하며 나섰고 몇몇 용병들도 그에 동조했다. 이고르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두 팔을 벌려 보였다.
“푸흐흐, 당연하지. 계약할 때 그러기로 약속하지 않았나.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하게. 하지만 이 남자를 마주하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이자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보면 알 걸세. 직접 보고 판단하게. 사람인지 괴물인지. 자, 시간이 됐군. 그러면 시작해볼까. 각자 위치로 가게. 그리마만 내 호위로 따라오고.”
그리마는 이고르만큼이나 구부정한 몸을 가진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고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컸다. 발렌틴은 그가 옷 속에 뭔가 감추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유라크네와 오랫동안 함께해온 덕분에 그는 그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작전에서 발렌틴이 맡은 역할은 경매장 밖의 경비들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그는 웨이터 차림에 가면을 쓰고 복도를 돌아다니며 경비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던 중 그는 이고르가 말한 인상착의와 딱 맞아 떨어지는 남자를 발견했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는 일행과 함께 복도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내 딸의 몸을 고쳐줄 수 있소?”
“제가 가진 힘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별빛을 낙찰해주신다면 반드시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 왜 직접 낙찰하지 않는 거지? 당신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
“당신만큼은 없습니다.”
“훗, 당신의 행적을 외부의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모양이군?”
“눈치가 빠르시군요. 정확합니다.”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니. 누군지 물어봐도 되겠소?”
“누님 두 분입니다.”
“황당하군…….”
발렌틴은 그들의 대화를 좀 더 엿듣고 싶었지만, 경비로 분하고 있는 이상 정해진 동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경매장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의 인상착의를 확실히 눈에 담았다.
“다음 상품은 별빛입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목표했던 물건이 경매 상품으로 나왔다. 발렌틴은 경비원들을 제압한 뒤 복도에서 이고르의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낙찰자는 베르그송 자작!”
다만, 별빛이 누군가에게 낙찰된 뒤로 경매장 안에서 한바탕 소란이 이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걸 신호로 봐야 할까? 안으로 난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쾅 하고 경매장의 문이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괴물이다!”
“경비! 경비!”
“도망쳐!”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탈출정이 있는 쪽으로 달아났다. 큰 사달이 났다 싶어 경매장 안으로 뛰어든 발렌틴은 곧 그들이 말한 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괴물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크윽, 아직 눈의 개수가 모자란 건가?”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눈을 모은 겁니까?”
도무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경매장 안을 휩쓸고 있었다. 온갖 생물의 몸을 형상화한 근육과 뼈들이 이고르와 원더스타인 두 사람의 몸에서 자라나더니 서로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끼힛힛.”
그 사이 이고르의 호위로 따라갔던 그리마가 경매장 무대 위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제야 발렌틴은 어째서 그에게서 아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몸은 평범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4m는 될 것 같은 길쭉한 몸에 12쌍의 팔을 달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네’와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몸을 아르마딜로처럼 둥글게 말고 다님으로써 이형을 숨긴 것이었다.
발렌틴은 괴물들로 가득한 경매장 안에서 자신은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지 고민했다. 한쪽은 괴물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보호하려 하고 있었고, 한쪽은 거치적거리는 것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말의 고민 없이 치우려 들었다.
그것을 보고 그는 용병으로서 도의를 저버리기로 했다. 즉, 고용주를 배신하기로 한 것이다.
“어이, 그거 이리 내놔!”
“못 준다. 너희는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거든.”
발렌틴은 별빛이 든 병을 들고 재빨리 원더스타인 쪽으로 내뺐다. 그는 발렌틴이 누군지 알아봤다.
“아까 복도에서 마주친 경비로군요.”
“대단하군. 그걸 알아챘나?”
“아마 이고르 쪽에서 고용하신 분 같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물건은 위험합니다. 제게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고요. 절대로 저들에게 뺏기면 안 됩니다.”
“알았어.”
싸움은 2대2로 진행되었다. 원더스타인이 이고르를 맡는 동안 발렌틴이 그리마를 상대했다.
그러나 판국은 점점 한쪽으로 치우치기 시작했다. 원더스타인은 이고르보다 약간 더 우위에 있는 정도였지만, 발렌틴은 그리마에게 일방적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제길, 두 팔이 멀쩡했더라면…….”
“끼힛힛, 팔 모자라나? 하나 빌려줄까?”
“닥쳐, 이 지네 영감!”
“끼힛힛, 그 와중에 내 별명을 맞춰버렸네? 동료들이 날 그렇게 부르거든!”
그리마는 16자루의 곡도를 꺼내어 휘둘러댔다. 검술 솜씨 자체도 상당한 데다가 16자루가 유기적으로 몰아쳐 들어오는 것은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빈틈 발견!”
결국에 발렌틴은 상대에게 팔 한 짝을 또 헌납할 수밖에 없었다. 잘린 팔이 바닥을 뒹굴었다. 물론 그는 그 대가로 상대의 목에 칼을 박아 넣을 수 있었다.
“끄억, 이, 이런 제길…….”
지네 영감은 목에 박힌 칼을 뽑기 위해 허우적댔다. 발렌틴은 공격을 마무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양팔을 잃어 비록 검을 들 수는 없었지만, 몸으로 밀어붙여 검을 더 깊게 쑤셔 박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이 채 검에 닿기도 전에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발아래를 내려다본 그는 경악에 찬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방금 잘려나간 자신의 팔이 있었다.
“몇 명 없는 부하라서 말이지. 죽게 내버려둘 순 없지.”
이고르는 발렌틴의 떨어진 팔에 데볼루트를 잔뜩 주입했다. 그러자 팔의 근육이 붉은색을 띄며 원래의 몇 배나 되는 크기로 부풀었다.
원래 뛰어난 무사와 마법사는 데볼루트에 저항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몸에서 떨어져 나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인식한 부위는 그 힘을 잃기 마련이었다. 근육 덩어리 팔은 발렌틴의 다리를 있는 힘껏 비틀었다.
“으아악!”
그가 멈칫한 사이 그리마는 자신의 목에 박힌 검을 겨우 뽑을 수 있었다. 그는 분노에 찬 얼굴로 발렌틴을 노려보고는 다시 16자루의 곡도를 꺼내들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때, 이고르와 대치하고 있던 원더스타인이 발렌틴을 향해 소리쳤다.
“상대는 저주받은 자입니다. 별빛을 상대의 입속에 던지세요!”
발렌틴은 괴물 손에 붙잡혀 다리가 부러져 나가는 와중에도 강한 의지력을 발휘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병에서 쏟아져 나온 가루를 향해 고개를 숙여 그것을 입에 머금고는 그리마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순간 그의 벌린 입을 향해 가루를 내뱉었다.
“끄아악!”
그러자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그리마가 두 눈을 까뒤집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몸이 마치 누군가가 주물럭거리는 것처럼 뒤틀리고 꺾이더니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곧 그곳에는 왜소한 몸을 가진 평범한 노인만이 남아 있었다.
발렌틴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저주받은 자가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다음에 보자, 원더스타인!”
이고르는 바닥에 쓰러진 부하의 몸을 챙겨 들고 냅다 경매장 밖으로 달아났다. 발레틴은 이겼다는 생각에 몸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원더스타인이라는 남자 덕분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일행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는 발렌틴을 안고는 공중에서 뛰어내렸다. 비행선이 지상으로부터 몇십 미터 안 남겨뒀던 순간이었다.
“덕분에 별빛을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원더스타인은 발렌틴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늘 곳곳에서 구명정들이 낙하산을 펼치고 떨어지고 있었다. 비행선이 추락하기 전에 탈출한 사람들이었다.
“대가로 가루를 좀 나눠주면 안 되는 거요?”
“그럴 순 없습니다. 제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제게 너무 소중한 것이기도 하거든요. 무엇보다 이건 모르는 사람이 다루기에는 위험한 물건입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원더스타인은 그가 먼 길을 떠날 수 있도록 넉넉하게 여비를 챙겨주었다.
“언젠가 당신이 사는 곳으로 가서 당신의 팔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당신이 아까 삼킨 별빛이 몸에 남아 있어서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흠,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멀리서 비행선의 추락 소식을 듣고 구조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원더스타인은 가볍게 인사하고는 날개를 펼치고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발렌틴은 그가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머니 안쪽으로 무언가를 퉤 하고 뱉어냈다. 그곳에는 아까 그가 입에 머금었던 별빛 가루가 한 움큼 남아 있었다.
그가 이것을 삼켰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이것은 그의 아내를 위해 쓸 것이다.
“그래서 가져왔지.”
발렌틴은 별빛을 먹이자 지네 영감이 평범한 몸으로 바뀌었다는 대목에서 이미 그것을 꺼내 아내에게 보이며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선을 탈출한 뒤에 나눈 대화는 그녀에게 제대로 들려주지 못했다.
“정말 이것을 먹으면 평범한 몸으로 바뀐단 거야?”
“그래. 내가 확인했어.”
“하지만…… 왠지 불안한데……. 그냥 먹어도 되는 걸까?”
머뭇거리는 아내를 보며 발렌틴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소심하게 구는 그녀의 등을 떠미는 것은 그의 역할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원더스타인이라는 남자가 보증했다니까. 이걸 가지고 가서 아내에게 먹여 보면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이야. 비행선에서 탈출해서 사정을 말하니까 선뜻 선물로 주더라고.”
이번에는 거짓말도 약간 섞었다. 어서 그녀가 가루를 먹었으면 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는 평소보다 조급하게 굴었다. 팔을 잃은 상실감을 만회하고 싶어서였다. 그녀가 평범한 몸으로 바뀌고 기뻐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보답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알았어. 그럼 먹어 볼게.”
유라크네는 별빛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