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64)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64화(564/619)
EP.564 20. 방황하는 성자 (31)
“유라크네 씨?”
니카의 부름에 유라크네는 과거의 기억에서 깨어나 법정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오른쪽에서는 도스빌 남작과 아나이스가 머리를 맞대고 그녀의 혐의에 대해 반박할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왼쪽에서는 코르도바 남작이 그녀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정면에는 예심 판사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질문드리겠습니다. 부군이신 발렌틴 코르도바를 죽인 사람이 당신입니까?”
막힘없이 대답하던 그녀가 머뭇거리자, 도스빌 남작과 아나이스가 일하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봤다.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유라크네는 그녀가 과거에 사랑했던 남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또 한 명. 그녀가 현재 사랑하는 남자를 떠올렸다.
자기기만의 시간은 끝났다. 어쩌면 좀 더 빨리 현실을 직시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작년에 발렌틴의 형인 미구엘이 병사들을 이끌고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말이다.
‘거미 여인을 내놓으시오.’
‘그녀를 어쩔 작정입니까?’
‘내 동생이 그 괴물에게 죽었소. 그 요망한 년을 내 손으로 참해서 동생의 넋을 달랠 것이오.’
‘제가 그렇게 두지 않는다면?’
‘흥. 그럼 같이 죽는 거지. 당신의 괴물 패거리도 전부 다!’
싸움이 벌어졌다. 미구엘을 비롯한 병사들은 그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엘라는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고 펄펄 뛰었지만, 가까이서 그들의 대화를 들은 유라크네는 알고 있었다. 저들을 살려 보냈다간 진짜로 군대가 왔을 것이고 단원들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굳이 자신에게 아까 저 남자가 한 말이 사실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모든 사정을 가슴에 묻고 엘라의 증오와 단원들의 두려움을 혼자서 받아냈다.
그때부터였다.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녀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지조 없는 여자. 남편 잡아먹은 괴물.
복수를 다짐한 지 얼마 됐다고 원수와 사랑에 빠져? 그냥 자신을 감싸주는 남자라면 다 좋다는 거야? 남편만 불쌍하게 됐네. 이런 여자인 줄 모르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버렸으니…….
“너무하잖아. 남편의 죽음을 유라 언니의 탓으로 몰다니.”
“유라 씨, 힘내!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래. 저 귀족들이 무슨 짓을 하면 우리가 가만히 안 있을 거라고!”
변호인 측 방청석에서 단원들이 그녀를 응원했다. 반대쪽 방청석에서는 코르도바 남작의 가신들이 질세라 그들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한쪽에서는 그녀에 대한 사랑이, 다른 한쪽에서는 그녀에 대한 살의가 넘쳤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유라크네는 딱 그 정중앙에 서 있었다.
“제 남편 발렌틴 코르도바는…….”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남편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면 간단했다. 여기서 원더스타인의 이름을 말하면 됐다.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을지, 아니면 세상이 그를 심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그를 너무 사랑하고 있었다. 그를 배신할 수는 없었다.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그녀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만약 그가 정말로 자신을 속이고 남편을 죽게 만든 거라면 그녀는 그 절망감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진실을 외면하는 게 속 편했다. 어차피 남편의 당부 때문에 억지로 끌고 가던 삶이었다. 복수를 핑계로 그것이 연장되었을 뿐이었다. 그냥 여기서 끝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제가 죽였습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법정은 큰 소란이 일었다. 코르도바 남작은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것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고, 도스빌 남작은 재빨리 손을 들고 이의를 제기했다.
“재, 재판장님? 지금 피고인은 심신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살해당할 뻔했던 공포와 아픈 기억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재판장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양측 방청객들 사이에서도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판사는 법 봉을 두드려 재판장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전에 한 무리의 사람이 들이닥쳤다.
“이곳에 잔뜩 있었군.”
방황하는 성자 클로드 프롤로가 선두로 들어섰다. 그의 양옆에는 한니발과 발터가 호위처럼 붙어 있었고, 그의 뒤에는 검은 복면을 쓰고 장병기와 석궁으로 무장한 저주받은 자 한 무리가 따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그들의 난입에 판사가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곳은 법정입니다, 성자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긴급한 문제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코르도바 남작의 방청객으로 있던 프롤로의 부하 한 명이 그에게 달려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프롤로는 잘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침 죄인 중 한 명이 자신의 죄 한 가지를 실토한 모양이군요.”
그는 손에 든 황금 장식이 달린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곳에는 교황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 재판을 열 권리가 기재되어 있었다. 그것을 한 차례 읽은 프롤로는 아직도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검은 마도사의 하수인들을 체포해라!”
수십 자루의 창과 석궁이 그들을 겨눴다.
***
원더스타인은 오후 내내 바퀴의 서커스에서 머물면서 몰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했다. 어느덧 퀘스트 창에 남은 천벌 역병의 수는 20% 이하로 줄어 있었다.
혼자였다면 결코 이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바퀴의 서커스 곡예사들이 협조해 준 덕분이었다. 환자들이 마침 이곳으로 몰려와 준 것도 행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손수 제거한 천벌 입자의 수도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제거하는 열화 데볼루트 일부가 진짜 데볼루트로 전환되어 그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상태창에 과부하가 걸렸다.
‘지금쯤 누적 데볼루트가 1만을 넘겼겠군.’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데볼루트가 오르던 속도를 고려해 그 양을 짐작해 볼 수는 있었다. 이 정도면 원작의 3단 보스 모드 중 1단계인 마술사 모드의 필요치를 채우고도 절반 이상이 남았다. 2단계인 전사 모드에 근접한다고 할 수 있었다.
“다음 환자들을 들여보내 주세요.”
“괜찮겠소? 안색이 좋지 않은데.”
“문제없습니다.”
과부하가 진행되면서 몸이 피로해졌지만, 저주 역병 때처럼 피를 쏟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때보다 모든 면에서 성장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이어서 데볼루트 전환 작업을 계속해 나가려는데 갑자기 천막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어디서 또 자신을 숭배하는 무리라도 나타났나 고개를 내민 그는 곧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짜 성자 나와라!”
“프랑크 원더스타인!”
“검은 마도사를 잡아라!”
성난 폭도들이 바퀴의 서커스 안으로 밀어닥치고 있었다. 부족민들이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클로팽과 부족의 지도자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왕좌왕했다.
그때, 인파 속에서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는 자신을 막으려는 손길들을 유려한 동작으로 피하더니 원더스타인 앞에 도착했다.
“단장!”
“엘라 양?”
검은 머리칼의 소녀가 그를 보고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에게 물어보려는데 그녀는 대뜸 그의 팔을 잡아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서 뛰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일단 달려. 설명하자면 길어. 그러니까 왜 연락을 안 받는 건데! 몇 번이나 말을 걸었는지 알아?”
“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느라 힘이 잠시 마비됐어요.”
그의 대답에 엘라의 표정이 왈칵 일그러졌다.
“쳇. 당신이 그렇게 성자 흉내를 내는 동안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알아? 진짜 성자가 우리를 덮쳤어.”
“성자라고요? 잠깐. 설마 클로드 프롤로 말하는 겁니까?”
“그래. 그쪽 사람들이 우리 단원들을 다 잡아갔어. 검은 마도사의 부하라는 죄목으로 말이야.”
그 말에 원더스타인은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은 가장 피하고 싶던 일이 최악의 형태로 발생하고 말았다.
자신이 검은 마도사라는 사실은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절대 들켜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발렌티나로부터 검은 마도사 수사팀이 어디까지 범인 후보를 좁혔는지 들은 참이었다. 수사팀 안에도 자신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혐의를 피하려고 일부러 성자 행세를 하며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준 것인데……. 설마 그 며칠 사이에 상대가 이런 수를 동원할 줄은 몰랐다. 팀의 이인자라는 악마 사냥꾼 퀴네스의 수완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해?”
엘라는 보기 드물게 겁에 질려 있었다. 지금까지 이것보다 물리적으로 더 큰 위기는 많았지만, 이번만큼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린 것은 처음이었다.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원더스타인은 지금 상황이 그렇게 걱정되지만은 않았다. 일단 그는 프롤로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이 천벌 역병을 뿌린 사람이 그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충분히 상황을 뒤집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그는 이미 TT2에서 성자의 지위를 잃고 일개 수도사로 전락해 있는 프롤로를 봤기에 이번 일도 잘 풀리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도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들 무사할 겁니다.”
원더스타인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엘라는 투덜거리면서도 불안감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만만한 그의 태도는 그녀를 종종 화나게 만들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무슨 방법이 있어?”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겠죠.”
현재 야영장은 원더스타인의 정체에 대한 소식을 듣고 분노해 몰려온 주민들과 그를 체포하러 온 경찰들, 그리고 프롤로의 부하들에 의해 포위된 상태였다. 그들은 목책을 둘러싸고 나가려는 사람들의 신분증을 검사했다.
마침 과부하가 종료되었다. 그는 소품실을 열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원더스타인이 접촉했던 물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그중에서 신분증 2개를 복사해서 꺼냈다.
“자, 이걸 씁시다.”
“뭐야, 당신이랑 나랑 성이 같잖아! 이거 완전 부부…….”
“호적 사항을 보세요. 아빠와 딸입니다.”
“아…….”
어딘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 엘라에게 원더스타인은 가발을 꺼내 던졌다.
“금발이네?”
“저들은 지금 ‘금발 장발 20대 남자’와 ‘흑발 단발 10대 여자’를 쫓고 있을 겁니다. 그걸 뒤바꾸는 거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원더스타인이 한 번 고개를 흔들자, 그의 머리카락이 짧게 줄어들면서 색깔이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엘라는 그걸 보고 짧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가 던진 가발을 썼다. 그것은 곧게 빗은 긴 금발이었다.
모습을 바꾼 두 사람은 복장도 갈아입었다. 원더스타인은 검은 정장 대신 긴 보라색 코트를 걸쳤고, 엘라도 하늘색의 긴 원피스를 입었다.
“자, 그러면 나가 볼까요?”
“잠깐, 당신 설마 그걸로 끝낼 생각은 아니지?”
“무슨 문제 있나요?”
“나이가 이상하잖아. 신분증은 40대 초반인데 당신 지금 모습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대 후반이라고. 근데 나 같은 딸이 있다는 게 말이 돼?”
“아, 그렇군요. 수염이라도 기르죠.”
그가 손을 한 번 갖다 대자 그의 턱에 풍성한 수염이 자라났다. 엘라는 잠시 그의 얼굴을 넋놓고 바라봤다. 이건 이것대로 또 중후한 매력이…….
“그럼 나가볼까요?”
“딸에게도 존댓말을 쓰나?”
“아빠에게 반말을 씁니까?”
“응. 난 써. 할아버지에게도 그랬는걸.”
“저도 딸에게 존댓말을 씁니다.”
“딸 누구? 슈슈?”
“슈슈 말고요.”
“모르는 새 한 명 더 생겼나 봐?”
그들은 서로에게 틱틱거리면서도 겉으로 정겨운 부녀 관계를 연출하며 목책을 향대 다가갔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사들은 신분이 확인된 사람들은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원더스타인과 엘라는 팔짱을 끼고 그들 앞에 섰다. 엘라는 겁에 질려 아빠에게 꼭 안겨 기대는 10대 딸 연기를 했다. 둘은 검문을 맡은 병사에게 신분증을 내밀었다.
“장이라고 합니다.”
“코제트예요.”
검은 턱수염의 신사와 금발 소녀는 병사들 사이를 가로질러 포위망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