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67)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67화(567/619)
EP.567 20. 방황하는 성자 (34)
이반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그는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는 지난 사흘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도시 곳곳을 쉬지도 않고 뛰어다니며 100명이 넘는 경찰과 30명이 넘는 프롤로의 신도들을 쓰러트렸다.
‘절대 죽이면 안 돼요!’
숙소가 습격당했을 때, 클라라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상황을 냉정히 살폈다. 경찰들과 프롤로의 신도들 사이의 온도 차를 보고 원더스타인을 검은 마도사로 단정할 만한 증거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녀는 괜히 일반인들을 죽였다간 돌이키기 힘든 상황에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원 중에 유일하게 원더스타인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상대는 총칼을 들고 달려드는데 이쪽은 상대를 죽이면 안 된다니. 이반의 전투 능력은 개활지에서의 1대1 겨루기와 살상에 특화되어 있었다. 다수를 상대로 한 시가전에서 상대의 목숨까지 신경 쓰다 보니 제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반은 고지식할 정도로 클라라의 당부를 철저히 따랐다. 그는 설사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손속을 조심히 했다. 명령이 합당하다 싶으면 그는 절대 그것을 어기지 않았다.
하지만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고 나서가 문제였다. 엄격한 무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삶의 절반을 노예 검투사로 보낸 탓에 그는 수동성이 몸에 뱄다.
아무런 지시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다 보니 그는 점점 지쳐갔다.
열심히 뛰어다니긴 했지만 동료를 한 명이라도 구한 것도 아니고, 적들의 전력을 효과적으로 분쇄한 것도 아니며, 추적자들을 완전히 떨쳐버린 것도 아니었다. 체력과 정신력만 바닥났을 뿐이었다.
그는 길잃은 어린아이처럼 거리를 방황했다. 그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스승이 마지막으로 가보라고 명령했었던 장소였다. 그는 프라빈 제일의 검수인 리히텐의 검술 도장에 들어섰다.
“자네는?”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던 리히텐은 도장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이반을 바로 알아봤다. 그는 의문의 침입자를 막아서는 제자들을 물리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내 손님이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모두 연무장으로 가서 개인 정비 시간을 갖도록.”
리히텐은 이반을 자신의 처소로 안내했다. 그는 씻지도 않고 침대 위에 쓰러졌고,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가 눈을 뜬 것은 자정을 넘겨서였다. 평소에 6시간 이상 자는 일이 없던 그가 무려 16시간이나 내리 잔 것이다.
“일어났나.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해주겠네.”
리히텐은 주방에서 죽을 끓여 내왔다. 이반은 걸신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죽을 세 그릇이나 해치웠다.
“휴, 이제야 좀 살 것 같군요.”
“며칠을 굶었나?”
“사흘입니다. 숙소를 나온 뒤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배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법인데, 거리에서 빵이라도 훔쳐 먹기 그랬나.”
“명색이 기사 지망생이 그럴 수 없죠. 아, 맞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리히텐은 다 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제자들 입단속은 시켜두었네. 자네를 내 먼 친척으로 소개했네.”
“제가 수배 중인 걸 아셨군요.”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 난리를 피웠는데 모를 수가 있나.”
“그런데 절 이렇게 도와주셔도 되는 겁니까?”
“뭘. 서로 돕고 사는 거지. 어차피 나도 프롤로 그 작자가 싫거든.”
“네?”
“노천극장이 폐쇄되었네. 시험들도 무기한 연기되었고 말이야. 원래 이번 시험에도 막간극으로 패왕과 나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리히텐이 아쉬운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반은 그런 그를 보며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는 리히텐이 배우로서의 일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반의 편견에 불과했다. 돌이켜보면 며칠 전의 대담에서도 리히텐은 가볍게 투덜거리기만 했을 뿐, 질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겠나? 신문은 아무리 봐도 알맹이 없는 중상모략뿐이더라고.”
잠시 고민하던 이반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해서 원더스타인을 만나 서커스단에 들어와서 겪은 일까지 모두 말이다.
그는 과장해서 감정을 담지도 않았고 애써 자신들의 행동을 선행으로 포장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백하게 보고 들은 그대로를 전달할 뿐이었다. 그래서 리히텐은 오히려 이반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알겠네. 아무리 봐도 자네 스승은 결코 검은 마도사 같은 황당한 누명을 쓸 분은 아닌 것 같군. 사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프롤로를 의심하고 있어.”
“그렇습니까?”
“그래. 원래부터 구린 구석이 많은 작자니까. 사실 이번 일도 교황 자리에 눈이 멀어서 벌인 일이 아닐까 해. 재개발 지역 철거에 열을 올리는 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고 말이야. 도시민들 사이에서는 괴물서커스단이 희생양으로 선택된 게 아니냐는 말도 떠돌더군. 안 그래도 프롤로가 이전에 벌인 정화에도 의심되는 점들이 많다고 하고.”
리히텐의 말에 이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클라라의 판단이 적중해서 다행이었다.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기다리다 보면 타개책이 나올지도 몰랐다.
“그런데 자네 정도 되는 검사가 이 정도까지 몰리다니. 상대가 강했나?”
“네. 프롤로의 신도들은 다들 보통이 아니더군요.”
“저주받은 자들이니까. 몇 번 먼발치에서 봤는데 다들 특이한 몸을 가져서 그런지 예측하기 힘든 움직임을 보이더군.”
“네. 그중 프롤로의 자식들이라는 자들은 상당히 강했습니다.”
이반은 도주 중에 맞붙었던 쥬스네라는 여인을 떠올렸다. 자신을 프롤로의 막내딸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키가 무려 3m 가까이 되었다. 그녀는 거대한 쇠몽둥이를 무기로 썼는데 힘도 보통이 아니라서 그녀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은 마차는 그대로 십수 미터를 날아가 버렸다. 우몬에 버금가는 괴력이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녀의 피부였다. 이반은 그녀를 무력화하기 위해 그녀의 다리를 베었으나 그대로 튕겨 나오고 말았다. 그녀의 피부는 강철만큼이나 단단했다.
“투기를 쓰지 않았나?”
“이상하게 요즘 들어 투기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투기는 무사들이 쓰는 무형의 기운이었다. 마법사가 자신의 영기를 마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처럼 무사도 자신의 영기를 무기에 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무기는 강철도 베는 절삭력을 얻게 됐다.
보통 이야기나 연극에서 고수들의 대결을 묘사할 때, 휘황찬란한 색의 투기를 한껏 끌어올리고 서로 무기를 맞부딪치는 식으로 표현되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무사들끼리의 대결에서 투기가 쓰이는 일은 잘 없었다. 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했고, 당연히 순발력과 반응 속도는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는 농부의 낫질로도 충분했다. 순간의 틈이 생사를 가르는 대결에서 무기의 위력을 올리겠다고 자신에게 족쇄를 채우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투기는 인간 외의 생물과 싸우거나 전장에서 갑옷을 입은 기사들끼리 부딪칠 때나 혹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 크고 단단한 것을 자르는 시범을 보일 때 사용하는 게 보통이었다.
범용성이 떨어진다지만 그렇다고 투기가 누구나 쓸 수 있을 만큼 쉬운 기술은 아니었다. 기사 중 절반은 투기를 아예 사용할 수 없었고. 그리고 쓸 수 있는 사람의 절반도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곧이곧대로 뽑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전에서 사용 가능한 사람들 중 절반은 자신이 평소에 쓰던 무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투기란 보통 ‘신검 합일’의 경지로 설명되곤 했다. 사람이 무기에 통달하면 무기를 자신의 신체 일부로 여기게 되어 원래 본인의 육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혼을 무기까지 연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친화도는 당연히 평소에 끼고 살던 무기가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반은 이미 그 경지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는 어지간한 검에는 모두 투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 만지는 무기도 몇 번 휘두르다 보면 투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투기장을 나오고 나서부터 투기의 발현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인형의 집에서 선보였던 필살기인 검풍도 지금 다시 재현해보라고 한다면 셋에 한 번 성공할까 말까였다.
“이번에는 더 심했습니다. 투기를 내려고 열 번 시도했는데 겨우 한 번 나왔거든요. 왜 이러는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이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리히텐은 뭔가 알았는지 눈을 빛냈다.
“나는 알 것 같은데? 사실 과거에 나도 비슷한 증상을 겪었거든.”
“정말입니까?”
한 번 투기를 체득한 무사가 투기를 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마땅히 참고할 사례가 없었다. 원더스타인에게 상담하고 싶었지만, 스승에게 실력이 퇴보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동안 숨겨왔다. 그런데 리히텐이 그 증상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다니 이반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이반의 요청에 리히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무에 대한 순수한 열망에 불타는 상대의 눈빛을 보고 체념한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좋아. 그러도록 하지. 연무장에 나가 볼까? 제자들은 모두 귀가하고 없다네.”
“좋습니다.”
“그럼 나가서 몸을 풀고 있게. 나는 준비가 조금 필요하니.”
이반은 연무장에 나가 리히텐을 기다렸다. 금방 뒤따라 나올 줄 알았던 그는 30분이 넘었는데도 나오질 않았다.
자신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도 수련의 일환일까? 이반이 리히텐의 진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무장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리히, 아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반은 상대의 모습을 보고 굳어버렸다. 상대의 모습은 비록 그림자 속에 반쯤 잠겨 있었지만, 복장이나 걸음걸이로 봐서 여자가 분명했다.
그녀는 살랑거리는 걸음으로 홍색의 비단 치마를 휘날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이윽고 그와 마주 선 그녀는 양손의 소매를 서로 맞붙이고는 그에게 다소곳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소녀 ‘경국지색’이라고 하옵니다.”
그녀는 화려한 화장을 한 여성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반이 상황을 알아차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행동거지나 간드러진 목소리는 완벽한 여자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상대의 정체를 깨달은 이반은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리, 리히텐 씨?”
“오호호, 지금은 그냥 경국이라고 불러주시옵소서.”
경국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진짜 여인처럼 웃었다. 이반은 그의 기행에 입을 쩍 벌렸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가면의 여인을 보고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저, 저기 그러니까…….”
경국은 그의 우려를 이해했는지 옅은 웃음소리를 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어요. 소녀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저 가면을 쓰면 무조건 그 인물의 연기를 하는 게 우리의 규칙일 뿐이니 엉뚱한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길.”
이반은 극장에서 리히텐의 연기를 보지 못했다. 막연하게 그가 하얀 분칠을 하고 검을 휘두르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설마 이런 배역이었다니? 그의 비밀이 협박 재료로 통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크흠, 아, 알겠습니다. 가, 갑자기 그런 모습을 하신 데는 사정이 있겠지요……. 그러면 어서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제가 갑자기 투기를 쓰지 못하게 된 데는 무슨 이유가 뭡니까?”
경국은 대답 대신 품에 안은 검을 뽑아 들었다. 예리한 빛을 뿌리는 진검이었다. 그는 이반을 향해 검을 내밀며 말했다.
“나으리, 소녀와 검을 한 번 겨뤄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