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69)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69화(569/619)
EP.569 20. 방황하는 성자 (36)
엘라의 정신 상태는 며칠 사이에 점점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자신들을 뒤쫓고 있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대로 서커스단이 해체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원들이 사형당할지도 모른다.
그 두려움과 걱정에 그녀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다가도 악몽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깨어나기 일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에 원더스타인은 자신들을 모두 죽일 생각일까? 자신들을 배려한다고 여겼던 그 모든 것이 전부 기만이었을까? 교묘한 거짓말로 자신들을 농락한 것일까? 겉으로는 친절한 단장을 연기하면서 속으로는 자신들의 순진함을 비웃고 있었을까?
엘라가 지금까지 그에 대한 호감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서커스에 대해서는 그가 진심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괴물이라고 해도, 아무리 잔인한 짓을 일삼는 악마라고 해도 그것만큼은 진실이라고 여겼기에 그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속임수였다면? 마지막에 단번에 그녀를 무너뜨리기 위한 악마의 계략이었다면?
그녀의 가슴 속에서 온갖 감정들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배신감, 분노, 좌절, 슬픔, 그리고…… 실연.
“엘라 양?”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해가는 것을 느끼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그녀는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당신…….”
짧게 머리를 친 턱수염의 신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과 눈은 웃고 있었지만 웃는 남자라는 그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 그녀는 이제 그의 웃음 속에 깃든 그의 진짜 감정을 어렴풋이 읽어낼 수 있었다.
자신이 잘못 읽은 게 아니라면 지금 그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건 과연 그의 진심일까 연기일까.
“내가 뭐 어쨌다고?”
그녀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두 손을 펼쳐 보였다.
“아뇨.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요. 또 단원들 걱정을 했나요?”
“그럼 당신 걱정을 했겠어?”
“아, 물론 당신이 그럴 리 없다는 건 제가 잘 알고 있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에 엘라는 오히려 짜증이 치밀었다. 뭐야, 내가 자기 걱정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엘라가 그를 향해 다시 뭔가 트집을 잡으려는데 그가 갑자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그녀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품속으로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마구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어, 어어?”
“가만히 있으세요.”
“무, 무슨 짓이야! 이 변태! 소, 손 떼, 이 악마!”
엘라는 주먹으로 마구 그의 가슴을 때리고 발로 그의 다리를 찼다. 행인들은 연인들끼리 애정행각을 벌인다고 여기는지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며 지나쳤다. 엘라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사람들이 경찰이라도 부를까 싶어서 그러지 못했다.
둘만 남았다 싶으니 드디어 그가 본색을 드러내는 것일까? 역시 만우절 때 한 농담은 농담이 아니라 진짜 자신에게 흑심이 있어서…….
“찾았다.”
그는 그렇게 외치며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의 손에는 작은 플라스크가 쥐어져 있었다.
그 순간, 엘라는 상쾌한 바람이 확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뜨겁고 끈적한 타르 속에 빠져 있다가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방금까지 마구 솟구치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쑥 하고 가라앉았다.
“사신의 낫은 다른 사람의 행복한 기억을 잠재우고 부정적인 기억을 자극할 수 있다죠?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당신이 엘라 양을 괴롭혔군요. 이거 계약 위반 아닙니까?”
원더스타인이 플라스크를 흔들며 말했다. 그 안에는 토끼 머리의 수인이 낫에 기대어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억울하다는 듯 두 팔을 펼치며 항변했다.
“저는 그녀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녀는 제게 ‘큰 전투가 있을지도 모르니 힘을 비축하라’라고 했죠. 저희 종족은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 살아서 말이죠. 어쩌다 보니 그녀에게 영향이 갔을 뿐입니다.”
엘라는 그제야 며칠간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감각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캇피가 저지른 짓이었다.
카타로피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빨아들이고 부정한 감정을 불어넣는 사신의 낫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종종 엘라의 명령을 곡해해서 장난을 치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가 저지른 짓이었다.
“당했군.”
“끼끼, 저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어지간히 해. 자꾸 그러면…….”
“오호, 저를 어비스로 추방하기라도 하실 건가요? 계약을 어길 순 없을 텐데요?”
“리본 달고 ‘토순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려서 춤을 추게 할 거야.”
“……앞으로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약자여.”
캇피가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엘라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그는 완전히 짐 덩어리였다. 아니, 그것을 넘어 폭탄이라는 비유가 어울리겠다.
며칠 전, 프롤로의 무리가 숙소를 습격했을 때, 그녀가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건 바로 캇피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는 어비스 전역을 통틀어도 100체를 넘지 않는 사신이라는 고위 마귀 중 하나였다. 만약 자신이 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들켰다간 꼼짝없이 검은 마도사의 동료로 낙인찍히고 말 것이다.
“끼끼! 그래도 덕분에 계약자의 속내를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풉. ‘실연’이라고요?”
“실연?”
“와악! 아무것도 아니야!”
엘라가 펄쩍 뛰며 팔을 휘저었지만 원더스타인은 이미 그 단어 하나로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다. 그는 엘라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뭐야! 뭐, 뭘 알고 이러는 거야?”
“제가 눈치가 얼마 빠른데요. 찰리 군 일을 떠올린 거 맞죠?”
“뭐?”
엘라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캇피는 병 속에서 배를 잡고 마구 뒹굴며 웃어댔다.
“크캬캿! 누, 눈치 정말 빠르군요! 크캿!”
“시끄러워! 그만 웃어, 캇피! 정말 토순이가 되고 싶어? 그리고 당신도 말이야…….”
“제가 왜요?”
“바, 방금 그 행동은 뭐, 뭐야!”
“아, 왠지 사신의 기운이 느껴져서…….”
“그, 그런 건 일단 말로 해야지! 숙녀의 가슴을 마구 헤집다니!”
엘라의 호통에 원더스타인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확실히 실례였군요. 죄송합니다. 사과하죠. 엘라 양의 몸은 여자로 보이지 않아서 제가 실수를…….”
“뭐,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
“응? 말했지 않나요? 키르쿠스의 눈을 가진 사람은 저의 힘이 통하지 않습니다. 엘라 양은 제 눈으로 봐도 생물로 인식이 안 돼요. 그냥 쇳덩어리와 같은 무채색으로 인식되죠.”
그의 말에 엘라는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적어도 자신이 생각한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그래서 실연은 찰리 군이 맞습니까?”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멍청이!”
“하하,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습니다.”
“이익, 됐어. 말을 말지.”
엘라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지나쳐 휙 앞으로 달려나갔다.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기운을 차린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엘라의 발걸음은 아까보다 훨씬 씩씩해졌다. 한바탕 소리치고 나니 그녀는 울적했던 기운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원더스타인에 대한 의혹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가 자신을 걱정해주었다는 사실 하나로 걱정은 말끔히 사라졌다.
‘일단 단장을 도와 단원들부터 구하자. 고민은 나중에 하고.’
두 사람은 연인처럼 딱 달라붙어서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당장 필요한 일에 집중하다 보니 불안감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럼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가는 건 사흘 뒤로 하자?”
“네. 그렇게 증거를 확보하고, 언론과 유력자들의 조력을 받아 법원으로 쳐들어가는 거죠.”
“거기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아마 일주일?”
“끝나고 바로 베르너 가도로 달려가면 되겠네.”
그렇게 거리를 걸으며 최종적인 작전을 검토하던 그들은 잠시 후 사람들이 몰려서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관공서 입구에 설치된 게시판으로 도시의 긴급한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원더스타인과 엘라는 그것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남편을 죽였다는군.”
“자신의 죄를 인정했대.”
“진짜 검은 마도사의 부하 맞는 거 아니야?”
웅성거리는 시민들 속에서 두 사람은 게시판에 걸린 공고문을 읽었다. 엘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것은 그들이 잘 아는 누군가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유라크네 코르도바. 그녀의 처형이 확정되었다.
처형 장소는 트레 베네 대성당 부지 내에 있는 성 파올로 참수 터. 처형 주관자는 방황하는 성자 클로드 프롤로.
처형일은 바로 이틀 뒤였다.
***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 찰리는 걷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소리가 들린 방향에는 두 남녀가 서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희롱하는 모양새였지만, 여자 쪽이 저항하는 모습을 보니 누가 봐도 일부러 앙탈을 부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연인들끼리의 그러는 모습을 빤히 바라볼 정도로 낯짝이 두껍지 않았던 찰리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여자 쪽이 긴 금발을 가진 것으로 보아 그가 떠올린 소녀는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찰리 일행이 프라빈에 도착한 것은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원래 그들은 다 함께 도시에 들어올 예정이었으나 생각보다 검문이 강해서 그럴 수 없었다.
수배 중인 그들로서는 최대한 신분을 드러내는 일을 피해야 했다. 괜히 말이 돌았다간 경찰 쪽에 소식통을 가진 현상범 사냥꾼들에게 공격당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행들은 도시 외곽에서 대기하고 찰리 혼자 움직이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 일은 그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차라리 혼자인 게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길을 걷던 찰리는 얼마 가지 않아 관공서 앞에 걸린 공고문을 읽게 되었다. 사람이 워낙 많이 몰려 있었던 터라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이민 것이다.
“괴물서커스단 수배 중?”
찰리는 현재 프라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경악했다. 그들 일행은 지금까지 밀항선을 타고 움직이느라 바깥소식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신문을 읽었던 것이 10일 전인데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서커스 그랑프리에 또 하나의 괴물서커스단이 나타나 3대 우승 후보 중 하나인 레카체프 25를 격파했다는 것이 가장 큰 화제였다.
“설마?”
찰리는 지나쳐 왔던 장소를 돌아봤다. 현재 괴물서커스단의 단장과 부단장은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도주 중인 그들이라면 머리카락 정도는 바꿨을지도 몰랐다.
그는 재빨리 아까 엘라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 장소로 돌아가 봤다. 그러나 그곳에 그들은 없었다. 이미 그들을 지나친 것이 30분 전의 일이었다. 벌써 다른 곳에 갔을 것이다.
찰리는 거친 욕을 내뱉었다. 그들이 변장한 원더스타인과 엘라라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모습이 아까 본 두 사람의 형상 위로 겹쳐졌다.
뒷모습밖에 보지 못했지만, 한번 ‘연인들끼리의 애정행각’으로 단정 지어 버리니 다른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로를 뜨겁게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말이 되나? 쫓기는 와중에 그런 짓을 하고 있다고? 아니, 아니지.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찰리는 길바닥 한중간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기억 저편에 밀어 넣었다고 생각한 4개월 전의 일이 밀어닥쳤다.
돌덩이가 된 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그 일들. 지금까지 증오를 자양분 삼아 강한 척해왔지만, 그날 본 장면은 갓 20살을 넘긴 청년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충격이자 고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