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70)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70화(570/619)
EP.570 20. 방황하는 성자 (37)
한동안 분을 삭이던 찰리는 얼마 가지 않아 생각보다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투심과 열등감에 잠시 눈이 멀어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지만, 사실 현 상황은 그가 바라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 원더스타인과 그의 단원들은 모두 수배 중인 상태였다. 방황하는 성자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그를 검은 마도사로 지목했으니, 어쭙잖은 변론으로 수배령이 철회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이번 일로 원더스타인은 끝장났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설사 어떻게든 잘 도망친다고 해도 서커스 그랑프리에 진출하는 일은 좌절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러면 굳이 서커스 그랑프리를 부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었다.
만약 그가 검은 마도사로 판명된다면, 그의 단원들은 어떻게 될까? 아까 게시판에서 본 거미 여인의 사례처럼 뚜렷한 죄가 있는 단원이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협력한 단원이 있다면 역시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협박당해 억지로 끌려다닌 단원이 있다면? 그들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라면 그들을 구해줄 수 있었다. 자신은 프롤로의 아들이었으니까. 설사 프롤로가 자신의 요청을 거절한다고 해도 그의 과거사를 폭로하겠다고 압박하면 충분히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을 터였다.
‘찰리, 고마워……. 내가 잠시 악마에게 홀렸었나 봐. 이미 더럽혀진 몸이지만 널 사랑해도 될까?’
‘역시 찰리 씨. 당신은 저희 아버지 다음으로 제가 가장 존경하는 남자예요. 평생 제 몸을 다 바쳐 은혜를 갚겠어요.’
‘찰리 선배! 또 제 목숨을 구해주셨군요. 두 번째, 아니, 세 번째라도 좋아요. 찰리 선배 옆에 있으면 안 될까요?’
엘라, 레이나, 클라라 등이 자신에게 안기는 장면이 자연스레 상상됐다. 자신이 가져야 마땅한 것을 드디어 되돌려 받는 것이다. 그의 입에 음습한 미소가 떠올랐다.
‘일이 이렇게 잘 풀리게 될 줄은 몰랐군.’
찰리는 우선 바퀴의 서커스로 가기로 했다. 그는 다짜고짜 성당을 찾아가 프롤로를 뵈러 왔다고 떠들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어둡지 않았다.
프롤로 본인과 닮은 출신 불명의 청년이 그의 주변을 얼쩡거리면 세간에 어떤 말이 돌지 불 보듯 뻔했다. 프롤로는 현재 차기 교황으로 점쳐지는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찰리도 괜한 소문으로 아버지의 발목을 잡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프롤로가 교황의 자리에 오른다면 자신에게도 상당히 든든한 배경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를 바랐다.
이것이 바로 찰리가 바퀴의 서커스로 향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세간의 이목을 피해 프롤로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클로팽의 손자가 나타났다는 소식만으로 프롤로는 자신이 누군지 알아채고 적절한 방식으로 접촉해 올 것이다.
그리고 바퀴의 서커스 자체도 찰리에게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었다. 비록 여러 일을 겪기는 했지만, 그는 엘라와 함께 세계 최고의 서커스단을 만들겠다는 꿈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었다. 바퀴의 서커스라면 그 꿈을 이루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자신의 실력에다 부족장의 직계 혈족이라는 배경에 이번 사태에서 클로팽을 감옥에서 빼내는 활약까지 더한다면 차기 단장으로 인정받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미 수백 명의 또래들을 이끌어 본 그였다. 수천 명을 이끄는 단장 자리라 해도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하물며 곡예사 집단이야.
바퀴의 서커스로 향하는 길목은 프롤로의 부하들과 경찰들이 틀어막고 있었다. 그러나 찰리의 곡예 실력과 그가 가진 수첩의 힘이면 쉽게 그곳을 돌파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야영장 외곽을 경계하는 부족민들도 그의 침입을 알아채지 못했다.
“네놈은 뭐냐?”
“쥐새끼처럼 살금살금. 프롤로의 부하냐?”
“예사 몸놀림이 아니야. 전문적으로 곡예를 익힌 놈 같은데.”
그러나 그도 푸리 다이의 마차 근처에 이르러서는 더는 자신을 숨기는 게 불가능해졌다. 그 주변에 있는 실력자들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찰리의 존재를 쉽게 알아차렸다.
바퀴의 서커스가 군대도 아니고 부족장의 마차 근처라고 해서 원래 경비가 특별히 삼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는 비상사태였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부족의 최고 전력들이 모두 중앙에 모여 있었다.
사방에 널린 천막과 마차에서 바퀴의 곡예사들이 튀어나오더니 찰리를 에워쌌다. 푸리 다이의 마차를 불과 몇 미터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저는 이곳의 단장인 조르주 클로팽 님의 손자입니다. 제 증조모 되시는 푸리 다이를 뵈러 왔습니다.”
좌중이 잠시 조용해지더니 잠시 후 큰소리로 웅성대기 시작했다. 일부는 불신의 빛을 드러냈고 일부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찰리가 아까부터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작은 체구의 노인이 지팡이를 쥐고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몇 달 전에 율리안의 딸을 만났다. 그녀는 외동딸이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클라라를 알았다.
“그럼 너는 율리안이 아닌 율리아의 아들이라는 말이 되는군.”
“그분은 저를 낳으시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최근까지 다른 분들을 부모로 알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진실을 알게 됐죠.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누군지 말입니다.”
찰리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푸리 다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교로운 때에 왔구나.”
“저도 여기 와서 알았습니다.”
둘이 방금 주고받은 대화의 뜻을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율리아가 프롤로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부족 내에서 푸리 다이와 클로팽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찰리가 그것을 알아들었다는 것만으로 그의 신분은 반쯤 증명이 된 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에스메랄다는 그를 시험하기도 전에 이미 상대가 자기 증손자인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밉살맞은 얼굴. 그는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을 닮아 있었다.
찰리는 그녀의 눈빛에 깃든 감정을 감지하고는 재빨리 무릎을 꿇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처음 뵙겠습니다, 푸리 다이. 저는 찰리라고 합니다.”
“할 이야기가 많겠구나. 모두 물러가라. 이 아이와 둘이서 얘기하고 싶다.”
찰리는 푸리 다이의 마차로 초대받았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두 털어놓았다.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에 있었단 말이냐? 그러면 클라라를 알겠군.”
“네. 제 1년 후배입니다. 그런데 할머님께서 클라라를 어떻게 아십니까?”
“그 애가 바로 몇 달 전에 찾아왔다던 네 사촌이다. 율리안의 딸이지.”
이곳에 와서 계속 침착함을 유지하던 찰리도 그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클라라가 자신과 혈연관계였다니.
‘선배를 좋아해요. 선배는 저를 여자로 생각한 적 없나요?’
결국에 자신은 사촌 여동생으로부터 고백받은 셈이었다. 그녀의 사랑을 받아줬다면 자괴감이 들었겠지만, 그녀를 찼던 그로서는 왠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과연 진실을 알게 된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네 아버지랑은 만났느냐?”
“아뇨.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요.”
“그렇지. 갔다가 문전박대나 당하지 않았으면 다행일 거다.”
찰리를 바라보는 푸리 다이의 눈빛은 처음보다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내쫓은 자식을 마주하는 기분이라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번듯하게 자라줘서 안심됐다.
“그래. 네가 보기엔 원더스타인 그자가 정말 검은 마도사라는 거냐?”
“확실합니다. 모든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길지만, 저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실험실에도 갔었습니다. 성자 빅터를 부활시키려다 실패해서 탄생한 괴물이 바로 그입니다.”
에스메랄다는 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상황을 이용해 그는 그녀가 가진 것과 원더스타인이 가진 것을 챙기려 하고 있었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었다. 젊잖은 체하면서 탐욕스럽게 구는 모습은 딱 제 아비를 닮았다. 그녀는 찰리에 대해 가졌던 한 줌의 호감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박대할 수 없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었을 때, 스벤, 조르주, 클라라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좋다. 한동안 이곳에 머무르도록 해라.”
찰리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물러났다. 예상대로 일이 이대로만 흘러가면 자신이 그녀의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차를 나가니 찰리 또래의 곡예사들이 몰려와 그와 인사하려 했다. 벌써 그에 대한 소문이 부족 전체에 퍼진 듯했다. 몇 달 전이었다면 경쟁심을 불태우며 그를 견제했을 그들이었지만 클라라의 사례를 한번 겪고 나서인지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러웠다.
“멀리서 보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찰리 형이었구나.”
부족민들과 인사를 나누던 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소년을 바라봤다. 찰리는 그에 대해서 증조모한테서 이미 들었기에 그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바퀴의 서커스가 괴물서커스단의 10대 단원 한 명을 숨겨주고 있다고 했었다.
“그 단원이 너였냐 미키?”
두 사람은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서로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를 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
“어, 어떡해? 유라 언니는 어떡하냐고?”
유라크네에 대한 처형 공고를 읽은 엘라는 한동안 공황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충격적인 소식 앞에서 간신히 회복했던 그녀의 평정심은 다시 무너져 내렸다. 캇피가 비록 사신의 힘을 거두었다고 해도 지난 며칠간 피폐해진 그녀의 정신 상태는 바로 회복되지 않았다.
“진정하세요. 아직 이틀이나 남지 않았습니까.”
“‘이틀이나’라고? 우리가 계획했던 건 일주일 뒤잖아. 어떻게 진정하란 말이야? 유라 언니가 죽는다고!”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지할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서커스단은…….”
“엘라 양, 제가 말했잖습니까. 제 누님은 제국을 좌지우지하는 최고 권력자입니다. 그 정도 일은 무마해 줄 수 있어요.”
뱀 마녀 이야기가 나오자, 엘라의 불안감은 간신히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동안 억눌러왔던 다른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래. 그렇게 잘난 인간이 왜 서커스 그랑프리에 목을 매는 건데?”
“네?”
“그렇게나 엄청난 힘을 가졌으면서 왜 이 모든 일을 벌이는 거야? 결국 우리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도 그 때문이잖아. 당신만 없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모두 당신 때문이라고! 왜 그토록 대회에 못 나가서 안달하는 거야?”
“그건…….”
“당신이 정말 검은 마도사라서 그런 거 아냐?”
“엘라 양!”
“당신 누나 덕분에 이번 일을 모면한다고 해도 당신이 결백해지는 건 아니잖아!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대회에 나가려는 이유가 뭔지 한 번 속 시원하게 말해준 적 있어? 하지만 당신이 검은 마도사라면 모든 게 다 설명돼! 모든 게! 솔직히 말해! 당신의 진짜 목표가 또 그런 일을 저지르는 거야? 사람들을 다 죽이는 거냐고!”
엘라는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것처럼 거칠게 소리쳤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모든 불만과 불안이 유라크네의 처형 소식에 폭발한 것이었다.
원더스타인으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지만, 여기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저는 검은 마도사가 아닙니다.”
“거짓말.”
“진짜입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엘라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녀는 과연 자신의 항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걸까? 겉으로 봐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원더스타인으로서는 몇 시간 같은 몇 초가 흘렀다. 엘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간신히 들릴 법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야?”
“네.”
“믿어도 돼?”
“물론이죠. 제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던가요?”
원더스타인은 일부러 과장되게 웃어 보였다. 순간 그는 자신이 실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도둑이 제발 지려서 그러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본 엘라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픽 웃음을 흘렸다.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자신의 연기가 잘 먹혀든 듯했다.
“자, 약속.”
엘라가 손을 내밀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것이 손가락으로 지장이라도 찍자는 것 같았다.
그녀답지 않은 어린애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원더스타인은 군말없이 그녀에게 어울려 주었다.
“약속.”
두 사람의 엄지가 꾹 맞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