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71)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71화(571/619)
EP.571 20. 방황하는 성자 (38)
엘라가 진정되었음을 확인한 원더스타인은 그녀에게 유라크네를 구하기 위한 대강의 계획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방금까지 그에게 화냈던 것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듯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괜찮겠어? 당신이 상당한 위험 부담을 지는 일인데…….”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죠.”
“그렇지만…….”
“설마 엘라 양이 절 걱정하는 건가요?”
원더스타인이 얄밉게 입술을 씰룩이며 말했다. 그는 당연히 엘라가 평소처럼 반발하리라 예상했다. ‘누가 당신 따위를 걱정한대?’라고 버럭 소리치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그녀에게 흔히 치곤 하는 장난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을 꺼냈다.
“왜? 나는 당신 걱정하면 안 돼?”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대는 그녀를 보고 원더스타인은 당황했다. 혹시 그녀가 자신에게 역으로 장난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엘라는 미소 한 번 짓지 않고 조금 화난 듯, 조금 토라진 듯 중얼거렸다.
“부단장이 단장 목숨 걱정할 수도 있지. 안 그래?”
“뭐, 음, 그렇죠…….”
둘은 잠시 말없이 걸었다. 엘라는 그가 당황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할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모두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경거망동하지 말자고.”
“저도 나름대로 자신 있어서 꺼낸 제안입니다. 엘라 양이 밖에서 잘 응수해 주시면 돼요.”
“내가 도망쳐 버리면 어쩔 건데?”
그녀가 톡 쏘아붙이자, 원더스타인은 할 말이 없어졌다. 확실히 이번 일은 그녀가 그를 팔아넘겨 버리면 작전이고 자시고 그냥 끝장이었다. 말문이 막힌 그를 보고 엘라는 조금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야, 그 반응은? 내가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야?”
“혹시나 해서요. 엘라 양은 절 미워하지 않습니까?”
“…….”
엘라는 대답 대신 입술을 오물거리기만 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뭔가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언제나 그에게 격한 반응을 보이던 그녀가 한바탕 감정을 쏟아낸 이후로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게 변했다.
원더스타인은 현재 그녀의 감정 상태를 가늠할 수 없어 함부로 말을 붙이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침묵을 유지한 채 계속 걸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둘은 목표로 했던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바로 재개발 지역에서 몇 블록 떨어져 있지 않은 호텔이었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예약도 하지 않았던 것인데 오늘따라 왠지 손님으로 붐볐다.
“죄송하지만 방이 하나밖에 안 남아 있습니다.”
“뭐예요? 예전에 보니까 파리만 날리던데…….”
엘라는 말을 내뱉고도 자신이 실언했다 생각했는지 입을 재빨리 다물었다. 그러나 지배인은 오히려 웃어 보이고는 친절하게 답했다.
“그랬었죠. 하지만 방황하는 성자님의 정화 활동 때문에 철거민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잖습니까? 게다가 마침 이번 주는 원래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 주간이었던지라 타지에서 구경 온 손님들도 많고요. 그래서 시 전체적으로 숙소 난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서둘러 결정하지 않으면 방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일행과 잠시 얘기해 보고…….”
“남은 방으로 주세요.”
엘라가 재빨리 나서서 지배인에게 돈을 내밀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원더스타인에게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어, 어쩔 수 없잖아……. 오늘은 여기에서 자야 하니까.”
“굳이 오늘 안 자도 되지 않나요?”
“서둘러야지. 계획이 바뀌었잖아.”
두 사람은 호텔의 가장 구석진 객실로 안내받았다. 그곳은 왜 지금까지 나가지 않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초라했다. 아무래도 손님이 몰리니까 평소에 직원들 휴게실 따위로 쓰던 방에 남는 침대를 넣어서 급하게 객실로 개조한 듯했다. 사람 둘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침대가 방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방에 그 가격을 받는단 말이야? 폭리잖아.”
“대회가 진행되는 도시들은 원래 다 비쌌습니다. 우리 주머니에서 내다보니 확 체감되는 거지요.”
“으윽, 내 용돈. 이딴 호텔 콱 망해버려라.”
원더스타인은 객실 안을 둘러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침대가 하나밖에 없네요. 어쩌죠?”
“뭘 그런 걸 묻고 있어. 당연히 당신이 바닥에서 자는 거지. 설마 연약한 여자애를 바닥에서 재울 건 아니겠지?”
“둘 다 침대 위에서 자는 수도 있는데요.”
“엉큼하긴! 엉뚱한 수작 부리지 마! 침대는 나 혼자 쓸 거니까!”
엘라는 그렇게 외치며 가발을 벗어 던졌다. 가뜩이나 7월이라 날씨도 더운데 가발까지 쓰고 다니려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그녀의 목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나 먼저 샤워할게.”
그녀는 재빨리 욕실로 들어가더니 문밖으로 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침대까지는 선을 그었지만, 벽 하나를 두고 옷을 벗는 건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몸을 시는 동안 상태창을 열어 단원들의 현재 상황을 확인했다.
“아웃, 시원하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30분 정도 지나서 엘라가 욕실에서 나왔다. 샤워만 한 것치고 꽤 오래 걸렸다.
“엘라 양, 왜 이렇게 오래…… 잠깐, 설마…… 화장까지 다시 한 건가요?”
“어? 어, 어……. 그, 그러게……?”
엘라는 그제야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원래 자기 전에 씻을 때는 그냥 가볍게 보습용 크림 정도만 바르고 나오는데 오늘은 꽤 공을 들이고 말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던지라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원더스타인이 지적하니 왠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워, 원래 여자들은 밤에도 화장하거든!”
“그런가요? 확실히…… 유라크네 씨도 매번 그랬던 것 같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방금 유라 언니 어쩌고 했잖아.”
“씻을게요.”
원더스타인은 재빨리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엘라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문을 노려봤지만, 곧 시선을 뗐다. 유라크네는 새벽 시장을 빈번하게 나갔었으니, 밤에 화장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안에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엘라는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다시 확인했다. 별 생각 없이 한 건데 그가 지적하고 나니까 갑자기 신경이 너무 쓰였다. 옷매무시도 한 번 더 살폈다.
“너무 단단하게 묶었나.”
그녀는 가운의 매듭을 느슨하게 풀었다. 숨쉬기 갑갑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 변명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주 보는 사람이 풀기 편하도록’ 매듭을 조정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멍청하긴.”
엘라는 갑자기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끼며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유라 언니가 사형당할지도 모르는 판국에 혼자 엉뚱한 상상이나 하고 있다니.
그녀는 베개에 머리를 파묻은 채 욕실 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안에서 원더스타인이 울펜슈타인 백작의 한 구절을 흥얼거리며 몸을 씻고 있었다.
샤워하며 노래를 부르다니. 저 인간에게도 저런 면이 있었구나.
지금까지는 전혀 몰랐다. 당연하지만 그와 함께 같은 방을 쓴 적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둘이서만 오래 붙어 다닌 건 오랜만이었다. 사실상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고 몇 주는 둘이서만 여행을 다닌 적이 있지만, 그때는 그와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던 시절이라 같이 지냈다고 하기 어려웠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엘라는 언제나 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비록 그에 대한 증오가 희석된 지금이지만 그 시절 받았던 충격이나 마음의 상처는 지금도 생생했다.
그래서 속이 뒤틀린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 그녀가 그에 대해 가진 감정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만 그에 대한 감정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낮에 그에게 폭발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는 아직도 그녀에게 진실을 숨기려 했다.
그에겐 비밀이 많았다. 그는 유라크네의 과거에 대해 뭔가 알고 있으면서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엘라는 유라크네에게 칼을 들이밀었던 늙은 기사의 갑옷에 새겨진 문장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원더스타인이 몰살키셨던 병사들의 갑옷과 방패에 새겨진 것과 똑같았다.
코르도바 남작의 첫째 아들과 부하들을 죽인 것은 원더스타인이었다. 당시 단원이었던 사람들 모두가 목격자였다.
하지만 단원들 누구도 그에 대해 증언하지 않았다. 그들이 유라크네를 죽이러 온 자들이었던 것을 이제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녀가 자기 남편을 죽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마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과거를 감싸주기 위해 병사들을 죽이고 그 죄까지 자신이 짊어진 것일 것이다.
그것이 그의 방식일까? 그렇다면 숲속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킨 데도 무슨 이유가 있을까? 자신의 고향에 일어난 비극에도 말 못 할 어떤 사정이 있을까?
‘이번 일만 끝나면 꼭 물어봐야지.’
엘라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졸음이 밀려왔다. 목욕 가운을 걸친 무방비한 상태지만 상관없었다. 원더스타인과 같은 방을 쓰는 것을 경계하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아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믿었다. 그게 가끔은 열받긴 하지만 말이다.
잠시 후, 원더스타인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작게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돌아다닌 피로가 한꺼번에 밀어닥친 듯했다.
원더스타인은 바닥에 내던져진 이불과 베개를 보고 쓴웃음을 짓고는 불을 껐다. 그리고 이만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다.
그때, 엘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잠시 후, 그녀가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
“당신 거기 있어?”
“네. 썩어가는 마룻바닥에 누워서 몸을 뒤척이고 있습니다.”
“칫, 설마 삐친 거야?”
“그럴 리가요. 그저 약간 화났을 뿐입니다.”
“설마 그 정도로?”
“당신에게 말고요. 제 머리맡을 기어다니는 바퀴벌레에게요.”
“으악, 진짜 바퀴가 있어?”
“한 마리가 아닙니다. 구석구석 있어요.”
“진짜야?”
“불운하게도 저는 생물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죠. 가끔 밤에 이 능력을 사용했다가 후회하곤 합니다.”
“으으, 상상되네.”
“앗, 방금 한 마리가 침대 위로!”
“으악!”
“농담입니다.”
“이런 씨. 죽을래?”
원더스타인은 엘라에게 몇 가지 장난을 더 걸었다. 그녀는 그때마다 격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냐니?”
“뭔가 울적해하는 것 같아서요.”
“…….”
“아닌가요?”
“흥.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이럴 때만? 저 평소에도 눈치가 빠른데요.”
“푸핫핫, 그 농담이 제일 웃겼어!”
“농담 아닌데…….”
몇 번 더 우스갯소리를 늘어놓던 엘라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금 악몽을 꿨거든.”
“어떤 꿈이죠?”
“다 죽어.”
“네?”
“이번 일로 우리가 다 죽어. 당신을 비롯해서 모두 다……. 나 혼자…… 나 혼자 거기 서 있었어……. 혼자 살아남아서…… 죽은 동료들을 봤어…….”
잠시 후, 엘라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당차게 굴어도 그녀는 아직 17살에 불과했다. 그녀가 겪는 심적 부담이 얼마나 클지 원더스타인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다 잘될 겁니다.”
“정말 그렇게 될까?”
“네. 물론이죠.”
그의 자신감 있는 대답에 엘라는 이내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고마워.”
“천만에요.”
제법 긴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다시 잠든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무렵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침대 위에 올라와서 자.”
“싫다면서요?”
“사실 싫지 않아.”
“…….”
“몰랐어? 사실 싫지 않아.”
원더스타인은 잠시 입을 뗐다가 다물었다. 중의적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한 번 더 캐물으면 그녀가 답해줄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침대 위로 올라가 자겠습니다.”
창을 통해 들어온 달빛에 두 사람은 잠시 얼굴을 마주쳤다. 두 사람 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한마디씩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