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72)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72화(572/619)
EP.572 20. 방황하는 성자 (39)
지몬과 홉스는 며칠 간의 강도 높은 조사 끝에 겨우 구속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들이 참고인으로 소환되었던 것은 그들의 가족이 그곳의 단원으로 있었기 때문이지 별다른 혐의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검은 마도사와 관련되었음에도 그들이 이렇게 빨리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후원자들이 뒤에서 힘을 쓴 덕이 컸다. 특히 지몬의 경우, 후원하는 상회의 이사가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
“제가 사방팔방 떠들고 다녔죠. 단장님은 검은 마도사의 협력자가 아니라 그의 대적자라고 말이죠. 서커스 대결을 통해 지금까지 검은 마도사의 행보를 저지해 왔다는 겁니다. 서커스 신의 축복을 4개나 받은 사나이! 지몬 마기어! 서커스의 축제를 수호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들어 악과 맞섰다!”
후원하는 서커스단이 테러리스트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상회의 신용이 떨어질 수 있는 위기였다. 그러나 알베르트 라이프니츠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는 황금 카니발을 서커스 그랑프리의 수호를 위해 모인 초인 집단쯤으로 포장해 언론에 선전했다.
실제로 그들이 괴물서커스단과 여러 차례 대립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의 여론몰이는 제법 잘 먹혔다. 벌써 로드 판타스틱을 주인공으로 이번 일을 연극으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한 극단도 있었다.
“그런 헛소리가 잘도 먹혔군요. 제 딸도 괴물서커스단에 몸담고 있습니다만?”
“그건 또 그것대로 극적인 맛이 있는 겁니다. 악의 수중에 넘어간 딸! 방황하는 사춘기 소녀의 일탈! 마침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아빠의 품으로 돌아오는 마무리 정도가 딱 좋겠죠?”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홉스는 혀를 내둘렀다.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알베르트 저 남자는 대중을 상대로 이미지 전략을 짜는 일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저, 그런데…… 이사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괴물서커스단이 무사하리라고 봅니까?”
홉스가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질문했다. 여동생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해봐야 했다.
“흐음, 글쎄요. 그건 오늘 나눌 대화의 결말에 따라 다르겠죠.”‘
“대화요?”
“하하, 제가 설마 우리 단장님 마중하러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저 이래 보여도 바쁜 사람입니다. 중요한 상담(商談)을 나누러 왔습니다. 베르그송 상회의 회장님과.”
괴물서커스단에서 신분이 높은 단원들은 지하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 비해 나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개별로 방을 배정받았고, 바깥과의 연락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알베르트가 면회를 신청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베르그송 회장님? 잠자리가 편안하십니까? 사방에 저주받은 자들이라니. 무섭지 않던가요?”
“아무래도 제가 그동안 어떤 분들과 지내왔는지 잊으신 것 같군요. 오히려 신입 단원들이 몇 배로 늘어난 기분이라 즐겁답니다.”
아나이스의 싱긋 웃으며 알베르트의 도발을 맞받아쳤다. 그러나 응접실에 모인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못했다. 그녀의 집사인 바텔부터 해서 가스통, 도스빌 남작, 니카, 나타샤 등 모두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듯 안색이 퀭했다.
특히 니카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짝 얼어서 특유의 언변도 발휘하지 못한 채 조사관 앞에서 벌벌 떨어야 했다.
물론 그런 태도는 조사관들의 의심을 피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 그들이 보기에 그녀는 정말 세상 구경을 나왔다가 봉변을 당한 귀족 아가씨로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저를 찾아온 목적이 뭐죠?”
아나이스의 태도는 당당했다. 그녀는 오랜만에 진짜 자신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가 방황하는 성자의 손아귀에 떨어지자마자 상회 본사에 있던 가짜 아나이스는 갑자기 칩거에 들어갔다. 본체인 그녀가 시시비비에 휘말린다면 도플갱어인 그녀도 무사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짜는 최대한 몸을 엎드리고 풍파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아나이스는 오랜만에 자신의 진짜 신분을 누릴 수 있었다. 비록 이곳에 갇힌 상태였지만 말이다.
“최근 1년간 회장님은 부회장 파벌에 계속 밀리기만 하더군요. 상회의 중요 직책에 앉은 사람들이 조용히 물갈이되던데요? 부회장 쪽 사람으로.”
아나이스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갈았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그녀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가짜 아나이스는 중요한 직책과 사업권을 부회장에게 그냥 마구 퍼주고 있었다. 그리고 곧 부도 날 사업들만 골라서 떠안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상회 내에서 그녀의 입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저를 놀리시러 온 건가요?”
“아니요. 저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이번 일이 말이죠.”
“기회라고요?”
“설마 상계의 재녀께서 제가 생각한 걸 못 떠올렸을 리는 없을 테지요?”
알베르트의 말에 아나이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상인으로서 언제나 모든 가치를 숫자와 돈으로 평가하도록 훈련받았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안 따라도 머리가 먼저 움직였다. 실제로 실행할 생각이 없다고 해도 자동으로 계산에 들어갔다.
원더스타인이 진짜 검은 마도사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그를 후원하기로 한 상회에도 타격이 갈 것이다. 그리고 그에 연루된 사람들의 입지는 상당히 위태로워질 것이다.
일차적으로 그를 끌어들인 아나이스에게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디까지나 그에게 이용당한 피해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지난 8월부터 대외활동을 금한 채 모든 실권을 부회장 파벌에 양보한 상태였다. 지병이 재발했다는 핑계로 외부와의 접촉도 피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즉, 검은 마도사를 끌어들임으로써 실질적으로 이득을 본 것은 부회장 파벌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나이스에게는 그 주장을 증명할 물증도 존재했다.
바로 피에르와 부두교의 밀월 관계를 보여주는 내부 문건들이었다. 작년 초에 원더스타인이 그녀에게 후원받으러 왔을 때, 피에르는 그녀를 죽이고 그 문서들을 뺏으려 했다. 다행히 원더스타인의 활약 덕분에 그녀는 목숨도 구하고 문서들도 무사히 보존할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것만으로 피에르를 실각시키긴 무리라고 생각했다. 당시 부두교는 조금 위험한 종교 집단에 불과했고, 외부 활동이 활발해진 지금도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검은 마도사 건을 엮는다면? 교황의 자리를 노리는 방황하는 성자로서 옳다구나 하고 더 큰 공을 세울 기회라고 덥석 물 게 틀림없었다.
즉, 알베르트가 제안하는 것은 검은 마도사라는 이름이 가진 파괴력을 이용해 정교회를 움직여 베르그송 상회의 상층부를 청소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요즘 세상에 종교의 이름으로 상회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이기 쉽지는 않지만, 그 상회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회장이 협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프롤로에게 협력한다면 아나이스의 안전은 보장될 것이다. 그녀가 검은 마도사에게 인질로 붙잡혀 있는 동안 부두교가 상회를 장악했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도플갱어가 발각된다면 게임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알베르트가 도플갱어에 대한 것까지 알고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녀가 부회장 일파에게 밀려 도피성 외유를 하는 중이라고 추측했다. 원격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면서 말이다.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는 건 올해 10월이죠. 앞으로 3달 뒤입니다. 우리 라이프니츠 상회가 가진 베르그송 상회의 지분은 5%인 거 아시죠? 회장님의 의사에 따라 미리 표를 어디에 쏟을지 준비하고 싶군요.”
알베르트의 제안은 달콤했다. 그의 힘을 빌리는 과정에서 라이프니츠 상회도 자기 잇속을 단단히 챙길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겐 빼앗긴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였다. 도플갱어를 비롯하여 상회에 뿌리내린 부두교 세력을 일거에 일소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부득이한 희생도 생길 것이다. 그저 남해의 물류업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피에르 밑에서 승진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두교의 끄나풀로 엮여서, 검은 마도사의 수하로 판명돼 감옥에 가거나 죽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희생은 아나이스가 지금까지 서류 위에서 펜으로 몇 번이나 처리했던 것이었다. 지금 와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이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는 결정적인 이유가 따로 있었다.
바로 원더스타인이었다. 이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그라는 장작이 필요했다. 이 모든 계획은 그가 검은 마도사로서 판결이 나야 성립되는 것이었다.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죽을 거예요. 그것도 저를 위해 오랫동안 봉사해 온 사람들이 대거 피를 보겠죠.”
“뭐 어때요. 우리가 자주 하는 일 아닌가요? 굴릴 대로 굴리다가 이윤이 안 난다 싶으면 정리하는 거죠. 자, 숫자만 생각하자고요.”
“하지만…….”
알베르트는 아나이스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단순히 도덕적인 이유에서 머뭇거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저건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얼굴이었다.
“설마 소문대로 그 남자에게 반하신 건가요? 하하, 확실히 잘 생기긴 했죠. 자기 분야에서 실력도 확실하고요. 그러나 어차피 떠돌이에 신분도 별 볼 일 없는 뜨내기 마술사 놈 아닙니까? 설마 대상회의 회장이시나 되는 분이 중요한 게 뭔지 구분 못 하는 건 아니겠죠?”
아나이스는 침묵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작위, 그리고 자신의 진짜 신분. 그 모든 것을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프롤로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그의 누나가 제국의 실세라고 하니 목숨을 보전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교회 측도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안 그래도 뱀 마녀는 제국 안에서 적이 많은 인물이었다. 지금은 본인의 정치적 역량으로 잘 버티고 있지만, 여기서 정교회가 끼어든다면 그녀도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반전된다면 그녀의 눈을 피해 어디선가 몸을 숨기고 있을 황태자가 나타나 그녀를 몰아낼지도 몰랐다.
이러나저러나 원더스타인과 더 엮이는 것은 분명 악수였다. 그와의 인연은 여기서 알베르트가 제시한 가격으로 팔아치우는 게 가장 남는 장사였다.
’설마 착각한 것은 아니겠지? 너는 이 서커스단의 일원이 아니야. 저런 떨거지들과 넌 달라. 너에겐 돌아갈 자리가 있잖아. 이 지긋지긋한 가난한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아? 어차피 그는 끝났어. 그냥 버려버려.‘
알베르트는 이만 작별의 말을 남기고 물러갔다. 그는 아나이스의 눈동자가 점점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회장이 된 지 몇 년밖에 안 됐지만 알베르트는 건너 들은 소문으로 그녀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냉정한 사업가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답을 찾을 것이다. 여기서 괜히 그녀를 더 부추기는 것은 역효과였다.
알베르트가 떠난 후, 지금까지 옆에서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늙은 집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가씨…….”
“아니.”
아나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가 아니야, 그렇지, 바텔?”
“……회장님.”
늙은 집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차가운 각오를 느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주인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그는 끝까지 충직한 집사로서 함께할 것이다.
***
숙소로 돌아온 지몬은 바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의 후원자는 단원들을 모아 놓고 앞으로 언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한바탕 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겹게 들었기에 이만 쉬고 싶었다.
방으로 들어선 지몬은 불을 켜기 위해 스탠드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전등의 끈을 잡아당기기 직전에 손을 멈췄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레이나.”
금발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귀신의 가면을 쓴 여인이 그림자 속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