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73)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73화(573/619)
EP.573 20. 방황하는 성자 (40)
부녀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빈말로도 반갑다고 말할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꺼내는 것조차 그들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침묵을 지키길 십여 초. 먼저 입을 연 것은 레이나였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녀는 그가 방을 들어올 때 절뚝이는 것을 봤다. 문을 열 때도 손잡이를 한 번 놓치기까지 했다. 손가락에도 이상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가 아무리 업계의 유명인이라고 해도 일개 마술사에 불과했다. 공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떠돌이 재인 하나 짓밟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 시대의 상식으로 수사관이 범죄 혐의자의 손가락을 꺾고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은 아주 평범한 축에 속했다. 지몬은 성당에서 당한 일을 떠올리며 불쾌한 표정으로 딸을 흘겨봤다. 감히 누구를 동정하냐는 듯.
“네 걱정이나 해라.”
“저는 보다시피 무사해요.”
“뭐냐. 멀쩡한 몸으로 그따위 재주밖에 못 부린 거냐? 방에 들어오자마자 네 숨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내가 분명 엎드려 있을 때는 서 있을 때와는 다른 부위에 힘을 주고 호흡하라고 누누이 일렀거늘…….”
그의 입에서 날카로운 질책이 쏟아졌다. 이런 판국에 잔소리라니. 레이나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정정하신 듯하네요.”
“그래. 너 따위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저는 아버지 딸이에요.”
지몬은 입을 딱 다물었다. 곧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보다 여긴 웬일이냐. 수배 중인 몸으로.”
지몬의 말투는 차가웠다. 그녀를 걱정하거나 위로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예전에는 그가 이렇게 행동할 때마다 그녀는 막연히 슬프고 화가 났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와 자신 사이에 깔린 제반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며칠 전, 슈슈와 삼손이 서로 자신이 단장님의 딸이라고 주장하며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는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딸이라니. 여기 진짜 딸이 있는데. 누가 감히 그의 딸이라는 말이지?
그녀와 달리 다른 단원들은 그들의 주장을 얼토당토않다고 여겼다. 레이나만 그들의 헛소리에 진지하게 반응했던 것은 그녀의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한번은 자신의 정체성이 ‘가짜’가 되는 경험까지 했다. 그래서 그녀는 기껏 찾은 자신의 자리를 누군가가 노린다고 여기자 울컥하고 만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볍게 웃고 넘길 촌극에 불과했지만, 그날 이후로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더욱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만약 슈슈와 삼손이 한낱 랫맨이나 기생 생명체가 아니고 정말로 잘 만들어진 한 명의 인간이었다면 그녀는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었을까?
만약 그런 주장을 한 애가 금발의 여자애였다면? 그녀가 원더스타인을 아빠라고 부르며 따르고 그가 그녀를 딸이라고 여기고 있었다면?
그녀는 혐오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가짜 레이나. 자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
그래도 덕분에 그녀는 지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아버지는.
아마 지몬은 죽은 딸의 대체품을 만든다는 선택을 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딸에 대한 사랑이 진짜였기에 더욱더. 레이나를 향한 분노는 그런 자기혐오에서 기인한 거라고 봐야 했다.
레이나는 자신이 여전히 지몬을 아버지로 생각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가 원더스타인과 보낸 시간은 고작해야 6살까지였다. 그리고 13년이 지나 다시 만나 보낸 시간은 1년이 채 안 됐다.
그에 비해 지몬과는 13년을 함께했다. 그녀의 현재 인격은 원더스타인보다 그에게서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라하이나 눈. 그림자와 실체의 결합.
그녀의 그림자는 16살. 그녀의 사회적 나이는 18살.
이제 2살의 간격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림자가 적당히 떨어져 있을 때는 실체와 닮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면서 실체에 가까워질 때는 오히려 실체와 확연히 다른 존재라고 느끼기 마련이었다. 현재 그녀가 그림자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그랬다.
그림자는 ‘레이나 원더스타인’이 되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레이나 마기어’로 남고 싶었다. 물론 그것은 순전히 지몬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앞서 여러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역시 가장 두려운 것은 그녀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일 것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 성 빅터의 누나이자 원더스타인의 창조주. 자신이 그녀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버리면 자신을 바라보는 원더스타인의 시선이 바뀔까 두려웠다.
거기다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그녀가 원더스타인의 딸로서 자랐다면 그에게 품기 힘든 종류의 감정이 그녀의 가슴 속에 싹터 있었다. 이제 그녀는 그에게 딸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계속 ‘지몬의 딸’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어떻게 지낸 거냐.”
“최대한 숨어서 다녔어요. 빈집에 들어가서 자고, 음식을 훔쳐 먹고.”
“고생했구나. 힘들었을 텐데.”
지몬은 뜻밖에도 그녀를 달래주는 말을 꺼냈다. 레이나는 그의 눈동자에 담긴 온기를 보고 순간 혹했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와 함께한 세월이 무려 13년이었다. 그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이 느껴졌다.
“암시 걸려고 하지 마세요.”
“……처음이구나. 단번에 눈치챈 것은.”
“뭘 원하시는 거죠?”
“제법이구나. 예전에는 이러면 쉽게 넘어왔는데.”
“더는 그 방법 안 통해요.”
“그거 다행이구나.”
지몬의 입술이 비틀렸다가 다시 원래 대로 돌아왔다.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원더스타인은 지금 어디에 있니?”
“그건 저도 몰라요.”
“그렇겠지.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놈과 접촉할 방법이다. 분명 너희끼리 공유하는 단서 같은 게 있을 거다. 그걸 가르쳐다오.”
“그걸로 어쩌시게요?”
“팔아넘겨야지.”
“아버지!”
레이나의 외침에 지몬은 손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놈과 엮였다는 이유로 나는 며칠간 감옥신세를 져야 했다. 고문이라고까지 말하기는 힘들지만, 꽤 강도 높은 신문을 당했지. 이 손도 수사관 한 놈이 ‘실수로 의자로 찍어서’ 다친 것이다. 라이프니츠 상회의 힘이 없었다면 지금도 계속 갇혀 있었을 거야. 팔 하나 정도는 부러졌을지도 모르지. 놈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과 척을 졌어.”
“그래도 어떻게 무고한 사람을…….”
“지금이라면 너 하나 정도는 빼줄 수 있다. 대신 놈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증언이나 증거를 제출해! 거짓이라도 상관없다.”
레이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가 프롤로의 부하들에게 고초를 겪다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찾아온 자신이 어리석었다.
“떠나겠어요.”
“네가 그럴 수 있을까?”
지몬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 상태는 현재 정상이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업계 최고의 실력자였다. 레이나 하나 붙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레이나에겐 가면의 힘이 있었지만, 그도 4개의 인스피라를 지니고 있었다. 그중 두세 개만 동원해도 그녀는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둘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가 흐르는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황금 카니발의 곡예사들이었다.
“아이고, 단장, 여기 있었네?”
“검은 마도사의 대적자, 지몬 마기어!”
“고생했어! 두부 먹어야지!”
그들은 지몬을 둘러싸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그들을 밀치려 했지만, 다친 몸으로 그러기는 힘들었다.
“너, 너희들. 역시 레이나가 들어온 것을 알면서도…….”
“응? 무슨 소리일까?”
“자자, 두부 먹어! 두부!”
황금 카니발 사람들은 레이나에게 어서 나가보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녀는 그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지붕 위로 올라선 그녀는 한참을 달렸다. 지몬이 쫓아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그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만큼 그에게 느낀 실망감이 컸다.
“아.”
충분히 멀리 왔다고 생각한 그녀는 이만 가면을 벗고 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는 망토의 클립 사이에 끼워진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그녀는 쪽지를 펼쳐 보았다. 거기에는 아무 맥락 없는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녀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니카의 글씨체라는 사실과 쪽지 마지막에 적힌 것이 프라빈의 어떤 주소를 가리킨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레이나는 황금 카니발의 숙소가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
지몬은 알베르트를 따라 귀족 단원들이 있는 곳을 방문했을 때, 니카로부터 이 쪽지를 전달받았다. 원래 그녀는 홉스에게 그것을 전달하려 했지만, 자연스럽게 전달할 상황이 나오지 않아 지몬에게 그것을 건넨 것이다.
만약 그녀가 예테린푸르크에서 그가 저지른 짓들을 알았다면 선뜻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몬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고 레이나의 아버지라고만 생각했기에 그를 믿을 수 있었다.
지몬은 그것을 받고 고심했다. 그것을 수사관에게 건네주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지만, 며칠간 자신에게 굴욕감을 준 상대에게 꼬리를 흔들고 다가가는 것은 그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그의 앞에 레이나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부채감을 하나 더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몰래 쪽지를 건네는 것이다. 그녀의 예상대로 그는 굴욕을 당한 상대에 얌전히 고개를 숙일 위인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느 순간에?”
레이나는 지몬이 언제 옷에 이것을 끼워 넣었는지 알 수 없었다. 업계 최정상 마술사의 실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니카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것을 건넨 이상 무언가 도움이 될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쪽지에 쓰인 주소는 그녀가 이곳에 와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단 단장님을 만나는 게 우선이야.’
그녀는 쪽지를 갈무리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쪽지는 단장님께 드리면 그만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오늘 그녀는 단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며칠 전, 다른 사람들과 뿔뿔이 흩어졌을 때, 그녀는 어떻게 그들과 접촉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일부는 붙잡혔고, 일부는 도주 중이었다. 이런 일은 작년에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잘스타인 씨를 찾는다?’
그녀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이 넓은 도시에서 사람 한 명의 이름만으로 뭔가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때는 원더랜드의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잘스타인 씨에 대해서는 모르는 단원들이 많았다.
모든 단원이 공유하고 있는 단서. 그런 거라면 딱 하나 있기는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중에 들어온 한트케 교수와 그의 두 제자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만우절을 함께 보낸 단원들은 모두 이 도시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레이나는 100일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모든 단원이 머리를 맞대고 몇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온 도시를 뒤지고 다닐 때를.
그들에게 있어 이번의 ‘잘스타인 씨’는 바로 만우절 행사 때 했던, 가면 배우를 찾는 보물찾기 게임이었다. 클라라가 던져주는 몇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도시를 며칠 내내 헤집고 다녔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지금도 서로 그것 가지고 척하면 척 말이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레이나는 지난 며칠간 그들이 보물찾기했던 장소를 방문했다. 처음 두 곳은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었지만, 세 번째 장소에서 그녀는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오직 그녀만이 볼 수 있었다.
어디든지 펜. 단원들만이 인식할 수 있는 글씨와 그림을 남겨둘 수 있는 마도구. 허공에 남겨진 글씨는 그것으로 쓴 게 분명했다.
거기에는 원더스타인과 엘라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앞으로 일주일간 어느 곳에 머무를지 그 장소가 적혀 있었다. 오늘 밤 그들이 머무를 곳은 재개발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어느 호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