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74)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74화(574/619)
EP.574 20. 방황하는 성자 (41)
호텔은 황금 카니발의 숙소에서 도시 반대편에 있었다. 레이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진즉에 출발했어야 했는데 지몬의 안부를 확인하고 가느라 상당히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뛰어 그녀는 가까스로 해가 뜨기 전에 호텔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작 호텔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곳에는 이미 수십 명의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나는 가면을 벗고 구경꾼들 사이로 섞여 들었다.
“검은 마도사와 그의 일당들이 나타났다더군. 야밤에 호텔을 공격했다지?”
“으, 소름 끼쳐.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뭘 하려던 거야?”
“또 무슨 역병을 퍼트린 건 아닐까.”
“설마 여기도 정화 대상으로 지정되는 건 아니겠지. 재개발 지역은 무자비하게 철거되던데…….”
사람들이 하는 말을 봤을 때, 이곳에 원더스타인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생겼고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모양이었다.
레이나로서는 낭패였다. 이곳은 그가 남긴 일정표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전 도시를 돌며 보물찾기 장소에 메시지를 남긴 그는 여기서 계속 머무르며 일행들을 기다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서 사라진 이상, 이제 더는 그를 쫓아갈 단서가 없었다. 혹시나 어디든지 펜으로 호텔 안에 남겨둔 단서가 없을까 조사하고 싶어도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이상 접근은 쉽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그들이 머물렀다는 방은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반파되어 있었다. 도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만약 내일 유라크네의 처형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녀는 다시 보물찾기 장소를 돌며 갱신된 내용이 없는지 살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레이나는 니카가 건넨 쪽지를 다시 펼쳐 보았다. 지금 그녀가 기댈 곳은 이곳밖에 없었다. 그년 쪽지에 적힌 주소를 향해 움직였다.
***
몇 시간 전, 엘라는 어딘가 답답함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눈을 뜬 그녀는 바로 앞에 원더스타인의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분명 자기 전만 해도 등을 돌리고 누워 있던 그가 어느새 그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팔과 다리로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고 있기까지 했다.
한때 원더스타인과 같은 방을 썼던 니카가 ‘그의 잠버릇이 고약하다’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녀가 남자 행세를 하고 다녔을 때인데 원더스타인이 자꾸 몸을 부대껴 와서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고 했다.
‘내가 미쳤지.’
엘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와 침대를 같이 쓰자고 했던가.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그와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침대 위에서 말이다.
‘이걸 어떡하지?’
평소의 그녀였다면 욕을 내뱉으며 그를 밀쳐냈을 것이다. 그러나 바닥에서 자겠다는 그를 그녀가 침대 위로 부른 주제에 그러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러고 있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조금 덥긴 했지만, 그의 품 안이라고 생각하니 이대로 온몸이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있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어쩐지 너무 더웠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에게 면박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얼굴이 이렇게 가까운 건 반칙이잖아.’
엘라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가슴에 단단하게 와닿는 그의 근육도, 등을 꽉 죄는 그의 손길도 견딜 만했다. 하지만 한 뼘도 안 떨어진 간격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자다 깨어나 몽롱한 상태에서 보는 그의 얼굴은 너무 매혹적이었다. 잘 세워진 콧날과 호선을 그리는 붉은 입술, 날카로운 턱선과 왠지 꽉 깨물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목 근육 등. 지켜보는 것만으로 엘라는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엘라는 결심을 내렸다. 그녀는 입을 살짝 벌리고 그의 얼굴을 향해 다가갔다.
‘당신이 나쁜 거야. 이렇게 무방비하게 구니까…….’
그녀는 자신에게 변명했다. 이건 자다 일어난 사고야. 이렇게 가깝다 보면 입술이 맞부딪칠 수도 있지 뭐.
“응?”
하지만 그녀의 입술이 그에게 닿기 직전 그녀는 어떤 힘이 뒷덜미를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강제로 고개가 들어 올려진 그녀는 머리맡에 있는 유리창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달빛에 비친 붉은 눈동자. 본인의 머리카락만큼이나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마야였다.
“뭐해……?”
마야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엘라는 그녀가 분노했음을 직감했다.
“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숙소를 찾아온 그녀였다. 그녀는 같은 침대를 쓰고 있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평소에 그렇게 꼬리를 치더니 결국 엘라가 그분을 침대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어, 어, 마, 마야? 자, 잠시만! 왜 화났는지는 알겠는데…… 오해야! 오해!”
“오해? 내가 방금 본 것도?”
“어? 어, 그, 그건…… 으악!”
마야는 엘라를 염동력으로 집어 들어 바닥에 패대기쳤다. 방이 쿵 하고 흔들렸다. 만약 소동이 거기서 그쳤으면 경찰이 오는 사태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인해 벽에 걸려 있던 엘라의 외투가 떨어지면서 그 안에 든 유리병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엘라의 마도구인 ‘교수의 플라스크’였다.
기본적으로 소품실로는 마법적인 힘을 지닌 물건은 복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과 엘라에게 귀속된 키르쿠스의 마도구는 연계 능력으로 인정되어서인지 복제할 수 있었다.
복제 플라스크 속에 든 것은 바로 베티의 동물들이었다. 그들은 동물의 몸에 인간의 혼을 착상시킨 존재들이었고 만약 방황하는 성자의 손에 그들이 들어간다면 원더스타인이 검은 마도사라는 증거품으로 제출될 수 있었다. 프롤로의 부하들이 숙소에 들이닥쳤을 때,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엘라는 재빨리 후원으로 달려가 교수의 플라스크를 복사해 그 속에 동물들을 담았다.
복제품들은 최대한 데볼루트를 적게 들여 만들었기에 품질이 조악했다. 캇피가 든 진품은 더없는 안락함을 제공했지만, 복제품은 안에 든 동물들 말로는 냄새나고 축축하고 좁은 헛간에서 자는 기분이라고 했다. 게다가 병 자체의 강도도 원본과 달리 평범한 유리에 가까웠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병 하나가 깨지며 코끼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충격에 나머지 모든 병이 깨지며 다른 동물들도 방 안에 쏟아졌다. 그 순간 깨어난 원더스타인이 재빨리 엘라와 마야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둘은 동물들의 무게에 압사당했을지도 몰랐다.
엘라는 재빨리 플라스크를 다시 복사해 동물들을 안에 담았지만, 이미 호텔 건물 한쪽이 무너져 내린 뒤였다. 소란을 들은 경찰들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몰려왔고 그들은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나타난 마야 양에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다가 병이 깨지고 말았다는 거죠?”
“으, 응!”
호텔에서 멀리 도망쳐 나온 원더스타인은 엘라의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뒤에서 마야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엘라간 한 짓을 고자질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군요. 또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겠군요.”
원래 계획은 뱀 마녀와 까마귀 마녀의 조력을 구하는 것이었다. 뱀 마녀가 정치적으로 힘을 써 주고, 까마귀 마녀가 다른 지방에서 검은 마도사로 행세해서 프롤로의 주장에 대한 반발 여론을 형성한 다음 프라빈의 유력자들을 움직여서 프롤로가 도시에 역병을 풀었음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에는 최소 1, 2주가 소요될 예정이었고 내일 있을 유라크네의 처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변경한 계획이 바로 양동 작전을 이용해 그녀를 구출하는 것이었다.
어디든지 펜은 단원들만이 볼 수 있었고, 단원들의 영혼에만 반응했다. 펜의 글씨는 단원들과 접촉하면 물에 잉크를 풀어 놓은 것처럼 흐트러졌다. 이를 이용해 그들은 원격으로 누가 보물찾기 장소에 남겨 놓은 메모를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 장소에 펜으로 단원들의 이름을 쓴 다음 전달하고 싶은 내용과 함께 읽은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지우라고 적어 두었다. 그리고 해당 글 전체를 복사해 펜에 저장해 두면 나중에 다른 곳에 글을 투사할 때, 어떤 이름이 지워졌는지 표시됐다.
이 기능 덕에 그들은 누가 글을 읽었는지 알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어디든지 펜의 저장 기능을 열어서 글을 허공에 띄웠다. 레이나, 마야, 이반, 알렌, 조 등의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아마 오늘까지 계속 호텔에 머물렀다면 그들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다. 합류한 것은 마야뿐이었다. 이래서는 양동 작전을 펼치기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원더스타인은 혼자서 유라크네를 구하러 가기로 했다.
“안 돼요!”
“안 돼!”
마야와 엘라는 펄쩍 뛰며 그를 만류했다.
“저희끼리 단장님을 도우면 되잖아요.”
“맞아. 사람 수만 좀 줄었을 뿐이잖아?”
“아뇨. 충분한 인원이 없다면 전력은 분산되지 않습니다. 두 사람만으로 적들을 상대하기는 무리에요.”
원더스타인은 프롤로의 자식들과 그가 지닌 군대의 힘을 알고 있었다. 만약 TT2에서 조력자로 등장한 프롤로의 퀘스트를 모두 충족시킨다면, 세이브 파일 연동을 통해 그는 TT3에서 정교회의 교황으로 나오게 됐다. 그리고 프롤로의 여섯 자식과 그의 부하들은 ‘교황청 근위대’로 등장했다.
그들은 게임에서 플레이어들과 싸울 수는 없었고 직접적으로 활약하는 일도 적었다. 그러나 꼼수를 통해 적들을 프롤로 근처로 보내보면 그들은 세 마녀와 원더스타인을 제외한 모든 스테이지 보스를 무난하게 처리하곤 했다.
물론 지금의 그들이 6년 뒤의 그들보다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나 엘라와 마야에게 마음 놓고 맡기기는 어려웠다.
“단장님을 혼자 보낼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들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마야 양이 좀 더 성장한다면 모르겠지만…….”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마야가 마력을 개방했다. 아르노와 한 특훈 덕에 그녀는 며칠 사이에 큰 성과를 보였다.
“저 제법 강해졌어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을 뒤에 남기려는 건 단순히 힘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제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말에 엘라는 안색이 바뀌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단원들을 책임질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지난 며칠간 계속 나누었던 이야기였기에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했다.
“그러면 엘라는 남겨두고 저만 갈게요.”
그러나 마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단원이고 자시고 원더스타인의 옆에 있는 게 제일 중요했다.
“마야 양.”
“이런 수작 이제 저에겐 안 통해요.”
마야의 뒤에 무지개색이 번쩍이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곳에는 한 마리의 벌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놈은 방금 원더스타인이 몰래 만들어 내어 그녀에게 보낸 ‘수면 벌’이었다. 침 한 방이면 사람을 잠재울 수 있는 녀석인데, 마야는 녀석의 접근을 알아채고 셀레스티얼로 태워버린 것이다.
‘이거 어쩐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앞에 두고 고민했다. 이제 힘으로 그녀를 제압하는 건 힘들었다. 그녀의 셀레스티얼 마법은 데볼루트의 천적이었다.
마법의 사용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매끄러워졌다. 방금 그녀가 보여준 속도는 게임 속의 그녀와 비슷할 정도였다.
원더스타인은 어쩔 수 없이 상태창의 힘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런 ‘무대’에 ‘배우’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감독’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