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75)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75화(575/619)
EP.575 20. 방황하는 성자 (42)
원더스타인은 이제 감독실을 사용하는 요령을 제법 터득했다. 이 능력으로 거대한 이정표에 대한 답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불과 30분 뒤의 미래를 예견하는 일에도 엄청난 자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건을 지금 당장, 이곳으로 한정할 때는 꽤 유용한 답변을 얻어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눈앞의 마야를 가장 무난하게 제압하는 법 같은 것 말이다.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질문했고 상태창은 바로 답을 내려주었다. 그것은 대본의 형태로 출력되었다. 배우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연기를 시작했다.
“마야 양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신을 데려갈 수 없어요.”
“왜요?”
“당신이 옆에 있으면 싸우는 데 집중할 수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마야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눈을 껌뻑였다. 원더스타인은 짐짓 화난 척, 부끄러운 척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나요?”
“무엇을 말인가요?”
“당신을 향한 제 마음 말입니다. 당신은…… 당신은 제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네? 어, 엇? 자, 잠시만요. 그, 그런…….”
마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력의 폭풍이 순간적으로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해하고 있었다.
엘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뒤로 돌아선 엘라는 재빨리 그녀의 뒤통수에 발차기를 날렸다. 마력의 방패를 해제한 덕에 그녀는 쉽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윽!
뒤통수를 가격당한 그녀의 몸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엘라는 기절한 마야의 몸을 받으며 경멸 어린 표정으로 원더스타인을 흘겨봤다.
“치사하네. 그거 알아? 예전보다 지금이 더 악마 같다는 거.”
“제 뜻이 아니었습니다. 키르쿠스의 인도였죠.”
“그래. 나도 ‘단장 대리’ 능력으로 훔쳐볼 수 있었어. 흥. 누가 그런 답변을 얻는 데 신에게 물음을 구해? 어지간히 공물이 남아도나 봐?”
“어쩔 수 없죠. 마야 양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그 수십 배의 자원이 들었을 텐데요. 저는 최선이었다고 믿습니다. 어쨌든 일이 잘 풀렸잖아요?”
“나 참. 당신 그러다 언젠가 마야에게 칼 맞는다?”
엘라의 위협에 원더스타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칼에 찔리는 것은 그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엘라, 레이나, 유라크네, 루미에게 한 번씩 공격당해 봤다.
“저는 그녀를 위해 이런 겁니다.”
“퉤퉤, 소녀의 마음을 우롱하는 쓰레기, 바람둥이, 저질.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몇 번이나 가지고 논 거야? 흥. 만우절 때도 그렇고……. 설마 지금까지 나를 달래거나 할 때도 저따위 대본을 읽고 연기한 건 아니지?”
“맹세합니다.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당신과는 항상 진심으로 말했어요.”
“그, 그래……? 히힛, 아, 크흠, 크흠.”
엘라는 갑자기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헛기침을 연발했다. 방금까지 질색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던 그녀의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어쨌든 내일 유라크네 언니를 구출하러 혼자 가겠다는 거지?”
“네.”
“정말 괜찮겠어? 캇피라도 붙여 줄까?”
“그랬다간 빼도 박도 못하고 검은 마도사로 몰리게 될걸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 같은 거 안 해. 당신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며?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 진출할 때까지 절대 죽지 않을 거야. 그렇지?”
“물론이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교환했다.
***
루엘로는 그들이 찾아가는 사람이 한트케 교수의 은사인 것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전에 세르지오 팔리에르라는 이름을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 어디서 들었는지 떠올리지 못했지만, 삼손이 기억하고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들개들’을 기억하나?”
“음, 그것도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데?”
“지난번 대회에서 파파엘 서커스가 연기했던 극본이다.”
루엘로는 털북숭이들로 득실댔던 무대를 기억해 냈다. <들개들>은 개들을 주인공으로 한 군담 극이었다. 배우들 모두 네 발로 기어다니며 개가 짖는 듯한 독특한 발성법으로 노래를 불렀었다.
“아, 맞아! 카렌 언니도 개로 분장했었지?”
“그래. 그 극본의 원작자가 바로 세르지오 팔리에르라고 했다.”
그때 응접실의 문이 열렸다. 밤새 거리를 전전하느라 엉망이 된 머리카락과 복장을 정리하고 있던 수지는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오는 노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오, 오랜만입니다, 학장님.”
“반갑습니다, 수지 님.”
팔리에르 학장은 그녀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와 그녀 사이의 나이나 사회적 위치 차이를 생각하면 예의가 지나칠 정도였다. 그의 응대법은 마치 몰래 암행을 나온 군주를 대하는 신하의 방식과 비슷했다.
“너, 너무 깍듯하게 하시면 제가 불편해요…….”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그녀를 보고 팔리에르 학장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 모습을 보고 누가 그 오만하고 잔인한 ‘패왕’을 떠올릴까.
“당신은 패왕 가면의 주인입니다. 가면 배우인 저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 그런가요?”
수지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곳 대학 내로 들어오면서 그녀는 은근한 멸시의 눈빛을 많이 받았다. 척 봐도 신분도 낮고, 차림새도 초라한 데다가, 태도도 주눅들어 있어서 사람이 만만해 보이는 그녀였다.
연극대학 교직원들은 아예 학장님을 만나게 해달라는 그녀를 문전 박대하려고 했다. 다행히 팔리에르 학장이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그녀를 발견해서 사무실로 올라올 수 있었지만, 노골적으로 멸시당했던 아까 일은 수지가 자괴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그것이 팔리에르 학장의 말에 조금 풀렸다.
“그런데 이쪽은 괴물서커스단의 단원이 아닙니까? 현재 수배 중인.”
“마, 맞아요. 안 그래도 저랑 인연이 있어서 보호해 주고 있었는데 제가 머무르던 미용실이 방황하는 성자의 정화 대상에 들어가 철거되어 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학장님께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 하고…….”
“루엘로라고 해요, 학장님!”
“반갑네, 스콜처 양. 얘기는 많이 들었어. 머리카락 기예와 괴력의 소유자라지?”
“맞아요! 그런데 누구한테 얘기를 들었다는 거예요? 수배서?”
“아니. 내 제자를 통해서.”
응접실의 문이 다시 열리면서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수지는 재빨리 경계하는 태세를 취했지만, 루엘로는 그들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렌 언니! 교수님! 그리고 아저씨들!”
“어, 뭐야, 손님이라는 게 루리였어?”
“학장님이 제법 예의를 갖추시길래 단장이라도 온 줄 알았는데…….”
“옆에 있는 여자분이 높은 신분 아니야?”
“그래? 그냥 일반인처럼 생겼는데.”
그들은 카렌, 한트케, 알렌, 조, 프란츠, 랄프였다. 그들은 응접실에 둘러앉아 해후를 나누며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이 도시에 연고가 없는 다른 단원들과 달리 한트케, 프란츠, 랄프는 연이 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지인들의 도움 덕에 수배를 피해 쉽게 도망 다닐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한 카렌, 알렌, 조도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여자가 정말 패왕이라고?”
“그럴 리가!”
수지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 사람들은 선뜻 그녀의 말을 믿지 못했다. 이곳 사람인 프란츠와 랄프는 물론이고, 지나가다 가면극을 몇 번 본 적 있던 카렌, 알렌, 조도 마찬가지였다. 팔리에르 학장의 보증과 그녀가 나서서 보여준 몇 가지 연기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의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입니까? 학장님도 가면 배우라고요?”
한트케 교수는 패왕의 정체보다 자신의 스승이 노천극장 소속인 것을 더 믿기 힘들어했다. 프라빈 연극대학의 총우두머리가 가면 배우로 일하고 있었다니. 그와 알고 지낸 지 30년이나 됐는데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한심했다.
“사실이라네.”
“학장님이 맡은 가면은 뭡니까?”
“한 번 맞춰보겠나?”
그는 마치 학생의 역량을 재보는 교수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트케 교수는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답을 알고 있는 수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거기에 동참했다.
“그래도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있으신데 근엄한 ‘교황’ 같은 것 아닐까?”
“아니, 내 생각에는 오히려 ‘웃는 남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낮에는 교수, 밤에는 광대. 이중생활로 제격이지 않아?”
“자네들 생각은 재밌지만, 학장님의 일과를 봤을 때, 주역은 아닐 듯싶네. 교황이나 웃는 남자는 너무 자주 무대에 오르지 않은가? 조역 중 한 명일 확률이 높아. 설마 ‘늙은 교수’ 같은 뻔한 결말은 아니겠지. 아마 조금의 의외성이 있지 않겠나. ‘수다쟁이 바텐더’가 의외로 학장님 성격에 잘 어울릴지도.”
그들의 대화를 듣는 팔리에르 학장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수지는 눈을 딱 감고 그들의 대화를 못 들은 척했다. 아무래도 이중 답이 없는 모양이었다.
“방 안쪽에 가면이 있네. 수지 님이 도와주시면 금방 분장을 마칠 수 있어. 그전까지 잘 생각들 해보게.”
팔리에르 학장이 건너편 방으로 간 이후로도 몇 가지 가면이 더 후보군에 올랐으나 정확히 이거다 할 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가면을 쓴 학장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모든 사람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멍멍!”
그곳에 있는 건 한 마리의 개였다. 털투성이 옷을 껴입고 개의 탈을 쓴 녀석은 혀를 내밀고 네 발로 선 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멍! 멍멍!”
개는 그들을 보며 반갑게 짖어댔다. 한트케 교수는 도저히 힘들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충견 벳지.”
“으아악! 그만!”
“우리 동심이……. 우리 동심이!”
프란츠와 랄프는 눈물을 흘리며 발광을 해댔다.
백면극은 기본적으로 성인 취향의 코미디였다. 사회 직군을 대표하는 가면이 나와 세태를 풍자하는 것이 기본적인 골자였다. 그러나 종종 애들도 즐기기 좋은 가면극도 나오곤 했는데 그중 단골로 등장하는 가면이 바로 저 충견 벳지였다. 특히 어린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벳지가…… 알고 보니 할아버지……?”
“루리, 정신 차려!”
카렌은 루엘로가 정신을 잃으려 하자 그녀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알렌과 조는 벳지가 나오는 백면극을 보지 않아 그가 어떤 캐릭터인지 몰랐지만, 근엄하게 수염을 기르고 있는 노인네가 눈앞의 개라고 생각하니 기가 막힌 건 마찬가지였다.
“잠깐! 분명 학장님의 가면은 여러 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끄악, 제발! 다음 가면! 다음 가면 보여줘요!”
“충견 벳지는 그만!”
프란츠와 랄프가 거의 악을 써대자 학장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가면을 스고 다른 분장을 한 채 밖으로 나왔다.
그것 역시 털 달린 탈과 옷이었다. 그리고 그 정체는 충견 벳지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었다.
“도둑고양이 엠마.”
“냐오옹! 냐앙! 이오옹!”
검은 타이츠를 입고 고양이 탈을 쓴 사람이 고양이처럼 손을 할짝거렸다. 그는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채 네발로 기지개를 켜기도 했다.
충견 벳지가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다면, 도둑고양이 엠마는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새침한 태도에 요염한 복장, 그리고 매력적인 성격은 그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게 저런 쭈그렁 할아버지였다니!”
“우리 꿈을 돌려내, 이 악마!”
노천극장의 백면극은 6대 극장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세계적으로 수준이 뛰어났다. 당연히 충견 벳지와 도둑고양이 엠마의 팬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 정체가 연극대학의 학장인 팔리에르라니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침착하게. 자네들 어린 시절의 벳지와 엠마는 학장님이 아니었을 수 있지 않는가?”
“아니, 난 20년 전부터 이들로 분장하고 있었다네.”
프란츠와 랄프는 거의 졸도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