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77)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77화(577/619)
EP.577 20. 방황하는 성자 (44)
프롤로는 푸리 다이가 찰리의 존재를 공표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그를 자신이 기거하는 곳으로 초대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번 사태에 대해 바퀴의 서커스 대표와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그가 초대장을 보낸 사람은 푸리 다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찰리를 보내왔다.
“네가 정말 내 아들이냐?”
프롤로는 찰리를 보자마자 대뜸 질문했다. 사실 물어볼 것도 없었다. 청년은 그의 아들이 맞았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바퀴의 서커스와 사전에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찰리는 자신을 증명할 만한 증거를 프롤로 쪽에 보냈다.
“네. 제가 바로 율리아 클로팽의 아들입니다.”
프롤로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찰리는 젊었을 적의 자신과 똑 닮아 있었다. 그리고 미세한 부분 부분에서 율리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정교회의 성직자는 원칙적으로 혼인이 금지되어 있었다. 남몰래 혼외자를 남기는 사람은 있었지만, 들키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기는 힘들었다.
만약 프롤로에게 자식이 있는 것이 알려진다면 그는 끝장이었다. 순결의 원칙을 위반해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사는 성직자들은 모두 지역에 뿌리를 깊게 내렸거나 힘 있는 가문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그에겐 그런 배경이 없었다.
성자로 오랜 시간 활동한다고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터였다. 방황하는 성자는 성직자의 서품을 받으면서도 수도자의 생활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성자로 임명된 사람은 평생 낮은 곳을 떠돌며 빈민을 구호해야 했다. 지역적 기반을 마련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식과 연을 끊고 살기로 했다. 자식이 있음을 공표한다고 해도 결국에 그가 자식에게 물려줄 것은 가난과 세상으로부터의 비난밖에 없었다. 그럴 바에 가짜 가정이나마 자식이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하고 뒤에서 지원이나 해주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여겼다.
그러나 프롤로 역시 사람이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 혈육에 대한 정이 가슴이 사무쳤다. 특히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혈연, 학연, 지연으로 맺어진 그들만의 벽이 더욱 단단하게 느껴짐으로써 고독은 더욱 깊어졌다.
그의 주변에는 그의 자식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부리는 도구에 불과했다. 진짜 가족이 될 수는 없었다.
“여기 부모님이 남겨주신 증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담에서의 일도 증언하라 명령하시면 충분히 말해드릴 수 있고…….”
“됐다.”
프롤로는 손을 들어 찰리의 말을 제지했다. 그리고 대뜸 그를 껴안았다. 그의 몸이 격정으로 떨렸다. 찰리 역시 조용히 그를 포옹했다.
“찰리.”
“네. 성자님.”
“아버지라 부르거라.”
“제가 어찌 감히…….”
”둘만 있을 때는 괜찮다.“
잠시 주저하던 찰리는 곧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
“반갑구나, 아들아.”
두 부자는 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찰리는 자신이 겪은 일을 적당히 잘 포장해서 그에게 들려주었다.
“많이 고생했구나. 특히 네가 그 검은 마도사와 그렇게나 지독하게 엮였을 줄은 몰랐다.”
“놈 외에는 대부분 그에게 협박당하거나 세뇌당해 끌려다니는 피해자들입니다. 아버지께서 잘 선처해 주시길 바랍니다.”
“네 부탁이면 그렇게 하도록 하마. 하지만 그냥은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내 부하들이 그들의 처형을 주장할 때, 네가 나서서 그들을 변호해라. 그러면 네 입지가 살지 않겠느냐. 널 배신했던 친구들도 네게 은혜를 입었다고 느끼겠지.”
“아버지…….”
찰리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고향을 떠난 지 1년 만에 드디어 자신에게 제대로 된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을 만났다. 지금까지 얼마나 배신당하고 또 배신당해 왔던가.
안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미키도 원더스타인의 편을 들어서 그는 상당히 불만에 차 있던 상태였다. 미키는 지난번 인형의 집에서 석화에서 풀린 그가 엘라에게 폭언을 던지고 떠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어린 동생 앞에서 그런 장면을 보인 것은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미키 놈은 원더스타인과 엘라가 어떤 짓을 했는지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찰리는 엘라, 레이나, 클라라, 니카 등이 교수대에 섰을 때, 용감히 나서서 그들을 변호해 주는 자신을 상상했다. 다들 자신의 품에 안겨 눈물을 펑펑 쏟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프롤로는 흐뭇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그는 찰리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우선 현명한 방식으로 자신과 만날 자리를 마련한 게 기특했다. 대뜸 자신이 있는 곳의 문을 두드리고 찾아왔다면 어떤 식으로 소문이 퍼졌을지 몰랐다.
게다가 자신을 닮아 잘생긴 얼굴도 흡족했다. 사람의 기분을 잘 살피는 언행도 호감이 갔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그의 신분이었다.
“그래. 이번 일이 해결된 이후에도 서커스 일은 계속할 생각이냐?”
“혹시 별로 탐탁지 않으십니까?”
찰리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떠오르자, 프롤로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그는 행여나 아들의 마음이 상했을까 봐 서둘러 변명했다.
“아니, 나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응원한단다. 특히 바퀴의 서커스 정도 되는 부족의 장이 될 수 있다면 기쁜 일이지! 그냥 좀…… 그러니까…… 기묘해서 말이다. 내가 방황하는 성자고 네가 키르쿠스의 신도라니.”
프롤로는 찰리에게 키르쿠스와 데볼루트, 저주 역병과 역병 군주, 성자 빅터가 얽힌 사연에 대해 말해주었다. 방황하는 성자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지식과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연구소에서 밝혀낸 사실이 합쳐져 원더스타인의 정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런 것이었군요. 그 악마가 바로 성자 빅터의 클론이었다니. 게다가 역병 군주는 잠든 혼돈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고 잠든 혼돈의 정체가 바로 서커스의 신이라니.”
“세상에서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서커스를 하는 게 문제가 된다는 소리는 아니다. 너는 자유롭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프롤로는 말하면서도 자신에게 놀랐다. 자신 방금 한 말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완전한 권력 지향적 인간인 줄 알았는데……. 자식이 있다는 것만으로 사고의 폭이 달라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서커스를 악용하는 검은 마도사가 나쁜 거지. 넌 잘못한 게 없다.”
“그 남자가 서커스 그랑프리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도 순전히 서커스를 좋아해서가 아니었군요.”
“아마 사람들을 대거 제물로 바쳐서 키르쿠스의 힘을 더 끌어내기 위해서겠지. 또 테러를 일으킬 게 틀림없을 거다.”
찰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버지 덕분에 이제 그는 원더스타인에게 대항하는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엘라를 비롯한 여자들이 그에게 속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놈을 잡을 수 있을까요?”
“하하, 걱정하는 거냐?”
프롤로는 여느 아버지처럼 아들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찰리를 데리고 트레 베네 대성당의 중심부로 향했다. 그곳은 커다란 돔 형태의 홀이었고 그 중앙에는 백색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성화라고 한단다.”
불은 커다란 백색 나뭇가지 위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타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찰리는 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강렬한 열기를 느꼈다.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는데 몸이 다 화끈거렸다.
“이 성스러운 불꽃은 물리적인 불이 아니라 영적인 현상이란다. 모든 마도의 힘을 불사르는 힘을 지니고 있지. 과거 한 성자가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고 그 불이 꺼지지 않고 남은 것이 바로 이것이란다. 몇몇 대성당이 이 불을 나누어서 보관하고 있고 여기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자, 거기 서 있으렴. 더 다가가면 위험하니.”
프롤로는 불꽃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는 불꽃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마신을 섬기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이 불꽃을 가까이하기는 힘들단다. 오직 믿음이 충만한 사람만이 불꽃의 열기에 영향을 받지 않지. 하지만 아무리 독실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 불에 직접 접촉한다면 영혼에 손상을 입게 될 거다. 일개 인간의 영혼으로는 버틸 수 없는 힘이거든.”
프롤로는 그렇게 말하고는 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찰리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프롤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 보였다.
“괘, 괜찮으신 겁니까?”
“그래. 보다시피 나는 이 불꽃을 만져도 괜찮다. 그러나 이건 내 믿음이 뛰어나서가 아니야. 나는 ‘신앙’의 보호를 받고 있어서 그렇다.”
“신앙이요?”
“그래. 정교회의 사제들이 쓰는 수법 중에는 물리적인 힘을 동반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도 고위 성직자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한단다. 그들을 우러러 받드는 사람들의 믿음이 그들에게 일종의 영적인 갑옷을 선사하기 때문이지. 나도 마찬가지야. ‘방황하는 성자’를 숭배하고 그의 은총을 갈구하는 신자들의 믿음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단다.”
프롤로는 이만 불에서 손을 뺐다.
“내일 말이다. 만약 녀석이 자기 부하를 구하러 나타난다면 나는 이 불로 놈을 태울 거다. 놈은 영혼째 증발해 버릴 거다. 놈의 혼은 그 자체가 마도의 산물이기 때문이지. 아마 녀석의 혼은 흔적도 없이 부스러질 거다.”
프롤로는 원더스타인을 확실히 제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의 미소에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
유라크네의 처형 개시 시각까지 이제 12시간이 남았다.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랫맨들은 깨끗이 몸을 씻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혀 지상의 숙소로 이송되었다.
이 시대의 재판에서는 원고 측에게 유리한 증인들은 비교적 멀끔한 모습으로, 불리한 증인들은 추레한 꼴로 새우는 게 보통이었다. 증인의 인상을 통해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내일 원더스타인의 악행을 증언하기로 한 랫맨들에게는 좋은 대우가 보장되었다.
“이 배신자들!”
“단장님이 언제 너희를 괴롭혔냐? 응? 슈슈한테 다 들었다. 우리도 다 피에 굶주린 악당들이라고 말했다지?”
그들이 쇠창살 앞을 지나가자, 단원들은 앞다투어 나서서 그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랫맨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갇힌 꼴을 보며 조소할 뿐이었다.
“제길. 얄미워 죽겠네!”
“참아. 랫맨들은 원래 저런 종족이잖아.”
“그래. 그것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가 문제야. 유라크네 씨가 정말 사형당할지도 모른다고.”
“경거망동하지 마. 다들 단장님의 당부 기억하잖아.”
수배령이 내려졌던 날. 원더스타인은 음향실을 통해 전 단원에게 고했다. 그는 단원들에게 추가적인 지시가 있을 때까지 위험한 행동은 함부로 벌이지 말고 자신의 안전을 우선하라고 했다.
“단장님을 믿자.”
“어차피 여기 갇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잖아?”
“그래. 밖에서 어떻게든 해주시겠지.”
단원들은 화내던 것을 그만두고 다들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한 명만은 계속 철창을 붙잡고 랫맨들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찍찍! 엄마! 나 슈슈야! 찍찍!”
증인들의 호송을 담당하던 요벨은 분홍색 털의 어린 랫맨을 보고 앞에 가던 쿠쿠를 불러세웠다.
“네 딸은 증언을 거부해서 저기 갇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너희들 전부가 협력한 덕분에 굳이 저런 어린애의 증언은 필요 없게 됐다. 그러니 데리고 나가도 좋다.”
“엄마!”
슈슈가 쿠쿠를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나 쿠쿠는 경멸 어린 표정으로 딸을 한 번 쏘아보더니 곧 시선을 외면하며 소리쳤다.
“너 같은 건 내 자식이 아니다! 찍찍! 그 검은 마도사가 만들어 낸 불결한 생명이다!”
“엄마!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찍찍!”
“내일! 그 남자가 내 뱃속에 어떤 짓을 했는지 말할 것이다!”
“나 슈슈야! 엄마 딸! 찍찍!”
슈슈가 필사적으로 쿠쿠를 불러세웠으나 그녀는 앞으로 쌩하니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랫맨들을 호송하던 병사들은 혀를 찼다.
“역시 쥐새끼답다고 해야 하나?”
“비열하고 더러운 종족. 배고프면 자기 자식도 잡아먹는다더니.”
“뾰족코는 믿는 게 아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슈슈는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지금까지 그녀를 부족의 보물이라고 아껴왔던 어른 랫맨들 모두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랫맨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자식을 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의리를 지켜 감옥에 남은 슈슈가 이상한 것이다.
“엄마! 엄마!”
슈슈는 마지막 랫맨이 계단 위로 사라질 때까지 엄마를 불렀으나 그녀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