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78)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78화(578/619)
EP.578 20. 방황하는 성자 (45)
유라크네가 갇혀 있는 감옥은 사방이 막혀 있는 곳이었다. 차가운 강철 문이 닫히면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녀의 인스피라인 ‘8개의 눈’도 이곳에서는 쓸 수 없었다. 성역 안에서 마신의 힘은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가 보고 있는 곳이 정말 천장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서 문을 바라보는 중일지도 몰랐다. 혹은 천장에 붙어서 바닥을 내려다보는 중일 수도 있었다. 진짜 거미처럼 말이다.
어둠은 그녀의 머릿속에 부정한 상상을 자꾸 밀어 넣었다. 난자당한 남편의 시체가 계속해서 나타났고, 원더스타인이 그 앞에 서서 그녀를 보며 조소했다.
“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불지 않으셨다죠?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그거 알고 있습니까? 사실 제가 당신을 미치게 만들어 남편을 죽이게 했다는 것을요. 하하, 의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걸 어쩌죠? 제게 당신은 그저 유희용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데? 설마 제가 당신을 구하러 와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겠죠?”
그의 모습과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뚜렷해졌다. 유라크네는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래봤자 지금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진 않았다. 원더스타인은 그곳에서도 불쑥불쑥 솟아나 그녀의 처지를 조롱했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 모르겠다. 경첩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페와 뒤엔 남매가 무장한 병사들을 데리고 그녀를 데리러 왔다.
“유라크네 코르도바. 집행장으로 갈 시간이다.”
병사들이 그녀를 밧줄로 묶었다. 뒤엔은 동정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 여자는 지금까지 그들이 사냥했던 마인들과 달랐다. 그 속은 자신들처럼 평범한 인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뒤엔은 그녀가 그저 검은 마도사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평소의 프롤로였다면 그녀의 죄를 사하고 속죄의 길을 걷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번 일에 있어서 어쩐지 상당히 조급해 보였다. 유라크네의 처형도 충분한 조사 없이 서둘러 결정해 버렸다.
“아마 상대가 검은 마도사라서 그럴 거야.”
누나가 그의 뒤통수에서 속삭였다. 두 사람은 뇌 일부를 공유했고 서로의 생각을 약간 읽을 수 있었다.
검은 마도사가 저주 역병을 다루는 게 사실이라면, 그는 역병 군주의 후계자라 칭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즉, 방황하는 성자의 이름을 물려받은 프롤로에겐 숙적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평소보다 강경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판단을 의심하지 마.”
아페가 힐난하는 어조로 뒤엔을 다그쳤다. 남동생이 프롤로에 대해 불순한 마음을 품을 때마다 그녀는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뒤엔은 프롤로를 향한 누나의 충성심이 단순히 존경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감정 역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뒤엔은 누나가 프롤로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품고 있음을 예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아페 역시 남동생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똑바로 못해?”
“내가 뭘.”
“죄수의 편의를 너무 봐주고 있잖아!”
속내를 들킨 그녀는 괜히 그의 일 처리를 트집 잡았다. 그녀는 뒤엔과 몸을 교대하더니 비틀대며 걷는 유랴크네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빨리 걸으란 말야! 남편을 죽인 여자 주제에 새삼 억울한 척하지 말라고!”
“윽!”
“흥. 랫맨들이 다 불었어. 검은 마도사랑 배를 맞춘 사이다 이거지? 그런데 어쩌나? 그 잘난 서방님은 안 보이시는데?”
아페를 심술궂게 말했다. 저주받은 몸이라고 해도 차라리 저렇게 태어났다면 자신도 온전히 여자로서 대우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질투심이 솟는 것이다. 유라크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걷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그들은 대성당의 안마당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게 됐다. 확 트인 시야 아래로 광장이 보였다. 그곳에는 나무로 지어진 커다란 연단이 세워져 있었다. 오늘 유라크네가 처형될 장소였다.
코르도바 남작과 그를 따르는 기사들이 연단 한구석에 서서 그녀를 보며 조소하고 있었다. 마침내 죽은 이들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통쾌한 듯했다.
‘지금 와서 목숨이 아깝지는 않아.’
병사들은 유라크네를 끌고 가 연단 중앙에 있는 철제 의자에 앉혔다. 그녀는 연단 아래에 있는 철장에 단원들이 갇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라크네 씨!”
“괜찮습니까, 유라 씨?”
“누나!”
그들은 당장이라도 철장을 부수고 나와 달려들 기세로 쇠창살을 흔들어 댔다. 실제로 우몬이 붙잡은 창살은 끼익 소리를 내며 구부러지기도 했다. 놀란 병사들이 창으로 찌르려 들자, 그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철창 안에 갇힌 사람 중에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이는 슈슈뿐이었다. 그녀는 어제 엄마에게 버림받은 뒤로 밥도 먹지 않고 가만히 바닥만 바라봤다. 그녀도 살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미안해요, 여러분. 저 때문에 이런 일에 휘말려서…….’
유라크네는 입을 꾹 다문 채 군중을 살폈다. 혹시나 그가 오지 않았을까 기대해서였다.
‘단장님이 보고 싶어.’
아마 그가 이곳에 나타난다면 그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기적인 바람인 줄 알지만 그래도 그녀는 원했다.
‘죽기 전에 한 번만 더 단장님이 보고 싶어.’
그녀의 간절한 기도를 신이 들어준 것일까. 그 순간, 그녀는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발견했다.
***
원더스타인은 군중 속에 서서 대성당 앞 광장을 자세히 관찰했다. 곳곳에 프롤로의 병사들이 총과 석궁으로 무장한 채 포진해 있었다.
아무래도 엘라와 마야를 데려오지 않은 것은 잘한 것 같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두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곳에서 포위당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인형의 집에서도 대규모 전투를 한 번 치른 적이 있었지만, 지금 싸울 자들은 지성 없는 광전사도 어중이떠중이 마을 주민들도 아니었다. 훈련받은 군대였다.
그들은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고 전투 성과를 내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100명 중 20명을 소모해 적의 양팔을 자르고, 또 20명을 소모해 적의 양다리를 자르고, 끝내 20명을 더 소모해 적의 목을 잘라내는 자들이었다.
붙으면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조건 이쪽이 손해였다.
‘나 혼자서라면 해볼 만해.’
원더스타인은 처형대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봤다. 날개를 펼치고 전력을 다해 돌진한다면 저들이 대응하기 전에 유라크네 한 명쯤은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도박이었다. 실패하면 프롤로의 손에 붙들려 죽는 건 자신이 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될 확률은 절대 낮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 위험을 감수하고 이 자리에 나왔다. 그냥 일주일 숨어 있다가 두 누나의 조력을 받는 게 가장 안전한 길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엘라와 약속해서? 키르쿠스가 퀘스트를 줘서? 단원들의 사기를 위해?
갖가지 핑계들이 떠올랐으나 그것들은 결코 정답이 아니었다. 사실 물을 것도 없었다. 그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다만 선뜻 입에 담기가 힘들 뿐이었다.
그 순간, 그는 연단 위에 올라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서로를 보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데 그때, 연단 한쪽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오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곳을 쏠렸다. 프롤로가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정했던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다리에 붕대를 감은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다친 듯했다. 가면을 쓴 청년이 옆에서 그를 부축했다.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 수군거리는데 프롤로가 손을 들어 군중을 진정시켰다. 프롤로의 첫째 아들인 요벨이 연단 위에 올라서 커다란 두루마리를 펼쳐 읽었다.
“유라크네 코르도바. 그녀는 남편인 발렌틴 코르도바를 살해했다. 그리고 자신을 추적해 온 사람들을 검은 마도사의 힘을 빌려 학살했다. 그녀는 이후로 검은 마도사의 부하가 되어 저주 역병을 퍼트리고 죄 없는 사람들을 악마의 제물로 바쳤다. 이에 대해서는 그녀와 같은 서커스단에 있었던 증인들이 증언해 줄 것이다.”
요벨은 두루마리에 적힌 대로 연단 아래의 증인석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가스통, 도스빌 남작, 아나이스, 니카 등 귀족 단원들이 앉아 있었다.
니키는 그냥 눈을 딱 감아버렸고, 도스빌 남작과 가스통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울컥해서 나서려 했지만, 병사들에게 제지당했다. 아나이스만이 조용히 요벨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전에 그녀에 대해 언질을 들은 그는 그녀를 보며 질문했다.
“증언하겠는가?”
아나이스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탁자 위에 놓인 손등을 내려다봤다. 알베르트 라이프니츠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여기서 서커스단 하나를 제물로 삼아 이만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옛날의 그녀라면 그랬을 것이다. 불과 1년 반 전의 그녀라면.
하지만 지난 1년간의 경험이 그녀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이제 그녀는 산소통의 공기를 마시며 저택에 갇혀 살아가던 철가면 아나이스가 아니었다.
“없습니다.”
그녀는 다른 증인들처럼 눈을 딱 감았다. 그녀의 집사가 그녀의 옆에서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예상과 다른 반응에 요벨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철창에 갇힌 단원들에게도 질문했으나 그들 역시 증언을 거부했다.
‘처형대를 보면 마음을 돌릴 인간이 하나둘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요벨은 연단 구석에 대기 중인 발터를 향해 눈짓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프롤로의 권위가 깎이기 마련이었다. 그는 서둘러 다음 증인을 세울 것을 요청했다.
“지금 부를 이들은 서커스단에서 부리던 일꾼들이다. 9명 전원 쥐 수인들로 조사하는 동안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협조했고, 이 자리에서 검은 마도사의 악행에 대해 증언하기로 했다.”
그 말을 들은 원더스타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약은 구석이 있는 친구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을 함께 해오면서 믿을 만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신할 줄이야. 사람들 말대로 종족적 한계가 존재하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요벨의 말이 그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간악하게도 성자님이 베푼 호의를 이용하여 감히 죄인을 탈출시키려고 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어젯밤 숙소를 몰래 빠져나온 그들은 죄인 유라크네가 갇힌 독방의 열쇠를 훔치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성자님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런데 놈들은 감히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성자님을 공격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프롤로의 부상이 어떻게 생긴 건지 이해했다. 다들 종족적 편견이 가득 담긴 욕설을 내뱉었다.
“다행히 그때 성자님의 곁에는 부족의 죄를 사과하러 온 유랑민 청년이 있었다! 그의 활약 덕에 성자님은 약간 다치는 선에서 끝날 수 있었다!”
프롤로 옆에 선 가면의 청년이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쭉 폈다. 사람들은 그제야 재주꾼 나부랭이가 왜 성자 곁에 서 있는 건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랫맨들은 사악한 마도사의 수하가 맞았다! 그들의 공격 자체가 검은 마도사의 수하라는 증거다! 자, 증인이자 죄인들을 사람들 앞에!”
피투성이가 된 랫맨들이 장대 위에 높이 매달린 채 연단 위에 올랐다. 그중 3명은 이미 죽은 듯 혀를 내문 채 몸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살아남은 5명의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다. 어떤 녀석은 창에 몸이 꿰뚫려 있었고, 어떤 녀석은 팔 한쪽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8명?’
랫맨들의 수를 헤아려 본 원더스타인은 한 명이 모자람을 깨달았다. 다른 단원들과 함께 갇혀 있는 슈슈를 제외한다면 랫맨은 9명이어야 했다.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피던 원더스타인은 곧 신음을 토했다. 동시에 철창에 갇혀 있던 슈슈도 사실을 알아차리고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랫맨 장로 버크만이 묶여 있는 장대 꼭대기. 그곳에는 그의 딸이자 슈슈의 엄마인 쿠쿠의 머리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