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80)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80화(580/619)
EP.580 20. 방황하는 성자 (47)
랫맨들이 모두 풀려난 것을 확인한 그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바로 유라크네에게 달려갔다. 쿠쿠 네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적진 한복판에서 마냥 후회나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라크네를 붙들고 있던 병사들은 어느새 모두 처형대에서 내려가고 없었다. 원더스타인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을 둘러싼 병력의 배치가 변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미리 준비한 것처럼 일사불란했다.
병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였지만 그 형태가 심상치 않음은 알 수 있었다. 역시 이곳은 그를 낚으려고 준비한 함정이 맞는 것 같았다.
“유라 씨.”
그의 부름에 유라크네는 마치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울먹이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그가 내민 손을 잡는 것을 머뭇거리다가 이내 손을 떨어트리고는 질문했다.
“알고 계셨나요?”
“무엇을 말입니까.”
“제가 남편을 죽였다는 것을요.”
원더스타인은 대답을 주저했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엘라 때처럼 거짓말을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그에게 유라크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하게만 대답해 주세요.”
그녀의 눈빛은 결연해 보였다. 그가 대답해 주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기세였다.
“좋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 알고 있었습니다.”
“어, 언제부터요?”
“그건…… 처음부터입니다.”
거미 여인은 원작에서부터 남편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고 설정되어 있었다. 그녀를 쓰러트린 뒤 그녀의 메모리 디스크를 입수하면 그녀가 남편을 죽일 때 느낀 행복감을 고백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그녀와 가까이하는 것을 꺼렸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녀가 정말로 남자를 잡아먹는 미친 여자가 아닐까 두려웠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그는 그녀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작과 현실 사이에 뭔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겠거니 싶었다. 그리고 ‘마인화 페널티’에 대해 알고 난 뒤로는 그녀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게 됐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나가서 하죠.”
원더스타인이 서둘러 대화를 끝내려 했지만, 유라크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여기서 확실히 매듭짓고 싶었다.
“한 마디만 해주세요.”
“무슨 말을요?”
유라크네는 그가 여전히 남편의 죽음을 계획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묻는다면 둘의 사이는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그녀의 원수가 되는 것이었고,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그녀가 사랑을 가장해 증오를 숨긴 일을 그에게 자백하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것을 묻기로 했다.
“저를 사, 사랑하시나요?”
원더스타인은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사춘기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는 그녀가 귀여웠기 때문이다.
커다란 보랏빛 눈동자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저렇게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주 처음에나 저랬던가.
사실 그녀의 질문은 그가 마음속으로 수십 차례 던졌던 질문이기도 했다.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는 게 맞는 건가. 그녀와 오랫동안 몸을 섞으면서도 그는 지금까지 그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내리지 못했다.
전능교에서의 경험이 사랑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를 많이 뒤틀었다. 그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 대상은 사랑하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민했었다. 자신은 그녀를 불쌍하게 여기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를 좋아하는 건지. 그리고 오늘에야 비로소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게 됐다.
“당신이 그런 질문을 한다는 건 제 표현이 그동안 부족했다는 의미군요.”
“말 돌리시지 마시고요.”
“제가 처음이라 그럽니다. 음, 이렇게 말하면 될까요? 사랑합니다, 유라크네 씨. 당신을 좋아해요.”
그는 진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 그리고 그거면 그녀에게 충분했다. 유라크네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과거에 무슨 짓을 저질렀어도 괜찮았다.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족했다. 그렇다면 어떤 진실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 그러고 있을 때예요?”
멀리서 아나이스가 빽 소리쳤다. 귀족 일행들도 막 구속에서 풀려나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는 못했지만 둘이 다정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을 보고 울컥했다.
자신도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그를 선택했는데……. 물론 막 사형대에서 풀려난 사람을 다독이는 일에 질투할 정도로 그녀가 못나지는 않았다. 그저 둘 사이의 묘한 기류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도스빌 남작이 주변을 둘러보며 질문했다. 어느새 관중들은 광장 외곽으로 물러나 있었고, 처형대 근처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만 촌극은 끝내지, 검은 마도사!”
프롤로가 자신감 가득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상대는 그가 마련한 함정에 완전히 걸려들고 말았다. 놈이 처형대에 오른 시점부터 그의 승리는 확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무대를 멋지게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나 요한 라데츠키! 프라빈의 사회당 대표로서 도시의 안전을 위협한 네놈을 징벌하겠다!”
물론 그 영광은 혼자 독차지하는 것보다 나눠 가지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득이었다. 프롤로가 프라빈에서 활개 칠 수 있도록 협조한 라데츠키 의원이 그의 옆에 서서 함께 조명을 받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롤로가 벌이는 일에 한 발 빼고 있던 그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나섰다. 프롤로가 정화 건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에 만족하기도 했고, 그가 검은 마도사로 지목한 자가 정말로 범인일 확률이 유력하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라데츠키 의원은 프롤로와 교황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이는 미리엘 대주교 측에도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알아보기로 현재 그쪽도 그 건을 가지고 난리가 아니라고 했다. 검은 마도사 수사팀은 미리엘 대주교가 추진하던 프로젝트인데 프롤로 측에 과실을 뺏겼다고 말이다.
만약 프롤로가 헛다리를 짚은 거라면 미리엘 대주교 측은 조용히 내부를 단속하며 정적이 큰 실수를 저지르길 관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 정보가 어떻게 샜는지 한창 단속 중이라고 했다. 괴물서커스단과 검은 마도사와의 관계를 입증하는 증거가 확보되어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더는 주저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라데츠키 의원은 오늘 대중 앞에서 프롤로와 한배를 탔음을 확실하게 어필했다.
“여러분의 보금자리로 침입해 끔찍한 병을 퍼트린 자가 바로 저자입니다! 성자님의 혜안이 없었다면 역병은 도시 전체를 오염시켰을지도 모릅니다!”
“라데츠키! 라데츠키!”
군중들이 큰 소리로 호응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절반은 이번 정화 때문에 집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천벌 역병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저 요한 라데츠키! 이번 일에 대해 서커스단의 후원자인 베르그송 상회로부터 배상금을 단단히 받아낼 것입니다! 이미 의회에 그들의 지역 계좌를 동결하는 안건을 넣어 뒀습니다! 안심하십쇼!”
“라데츠키! 라데츠키! 라데츠키!”
군중들의 호응이 더 커졌다. 시큰둥하게 그를 바라보던 다른 당 지지자들도 돈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하니까 신나서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제길, 단장님이 치료해 주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주 역병 마을에서도 그렇고. 어째 단장님은 남 좋은 일 해주고 오해만 받는군.”
“저 머릿수 좀 봐. 이번에는 진짜 끝장인가…….”
단원들은 처형대 위에서 등을 맞대고 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비록 원더스타인의 표정이 여유롭긴 했으나 그는 사신이 나타났을 때나 거대한 지네가 도시를 때려 부술 때도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전혀 위안거리가 못됐다.
“어리석군, 검은 마도사. 부하들을 구하겠다고 사지에 뛰어들다니.”
“부하가 아닙니다.”
원더스타인은 죽은 친구들을 떠올렸다. 함께 서커스단을 만들자고 맹세했든 그들. 그에게 있어서 그들은 무엇이었는가? 단순한 동료?
“이들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들은, 그리고 이들은…….
“내 가족입니다.”
그의 말이 떨어짐과 커다란 웃음소리가 광장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높고 우렁찬 남자의 목소리였다.
“으핫핫, 영웅호걸이로다!”
목소리의 주인을 발견하는 일은 쉬웠다. 그는 오색의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는 머리에 사나운 마귀의 형상을 한 투구를 쓰고 있었다. 그는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집채 만한 크기의 거대한 가마에 앉아 있었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다니. 과연 기개가 대단하구나!”
“저자는…….”
프롤로와 라데츠키가 어리둥절해하는 와중에 찰리는 그가 누군지 눈치챘다. 그는 엘리트 서커스 학교의 수석답게 그의 가면과 분장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다.
“패왕!”
“패왕? 그게 뭐냐.”
“잠깐, 패왕이라면…… 저 가면…… 설마 노천극장의 그?”
프롤로는 찰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프라빈 사람인 라데츠키는 그것이 백면극의 등장인물임을 알아보았다. 그곳의 가면은 지역의 명물이었다. 그중 인기가 좋은 패왕 가면은 라데츠키도 지나가면서 몇 번 본 기억이 있었다.
“아이고, 전하. 패왕 전하 아니십니까?”
그때, 군중 속에서 또 한 명 가면 배우가 불쑥 솟아났다. 그는 일전에 서커스 그랑프리 시험에서 사회를 맡은 적이 있는 ‘수다쟁이’ 가면이었다.
“오랜만이군, 수다쟁이. 그렇게 혼나고도 그 주둥이는 잘도 나불대는군.”
“전하께서 충고하신 대로 묶을 때는 잘 묶고 있습니다.”
수다쟁이 가면이 입 부분에 튀어나온 고무로 만들어진 입술을 쭉 당겼다가 묶는 시늉을 했다.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심각했던 광장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풀어졌다.
“그런데 전하께선 오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가면 배우들의 호흡은 절묘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의식이 어느 지점에 몰입하는지 감각적으로 아는 듯했다. 사람들은 방금까지 무슨 상황이었는지 잊고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오늘! 이 몸이 이곳에 행차한 까닭은! 부패한 정치를 펼치는 쥐새끼를 처단하기 위해서다!”
패왕의 손가락이 라데츠키 의원을 향했다. 졸지에 부패 정치인으로 지목당한 그는 격분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광대 놈들이 무슨 장난을 치려는지 모르지만 이제 끝낼 때였다.
“경비병! 당장 저놈들을…….”
“아이고! 나는 죽었다!”
“설마 우리는 아니겠죠?”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바보 영주’와 ‘간잽이 마름’ 가면이 그가 앉아 있는 연단 앞에 나타났다. 둘은 서로의 몸을 붙잡고 벌벌 떨었다.
둘은 부패한 지배층으로 자주 나오는 자들이었다. 라데츠키는 ‘민감한 현실’에서 ‘우스운 희극’으로 상황이 전환되자 한순간에 끌어올려진 긴장감이 풀리며 안심했다.
자신이 지목당한 줄 알고 괜히 흥분해서 제 발 저린 꼴이 됐다.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아야 할지 이들을 끌어내라고 외쳐야 할지 잠시 주저했다.
그리고 패왕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이 준비한 이 짧은 쇼는 모두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너희 둘이 아니다! 이 몸이 지목한 부패한 정치가란 놈은 바로 저기 위에 앉아 있는 요한 라데츠키라는 놈이다!”
패왕의 외침은 광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바보 영주와 간잽이 마름은 마치 짠 듯이 입을 딱 다문 탓에 그의 외침은 더욱 크게 들렸다.
사람의 의식이 전환되는 절묘한 타이밍에 끼어든 탓에 라데츠키 의원은 바로 반박하지 못하고 어버버했다. 연극에서 관객들의 긴장감을 역이용하는 연출 기술에 당한 것이다.
“죄인 요한은 들어라! 이 몸은 네놈의 죄를 고하러 왔나니! 너는 재개발 지역에 역병을 풀고 성자 프롤로가 그곳을 철거하도록 종용했다! 그리고 그 죄를 무고한 서커스단의 단장에게 뒤집어씌웠다! 네 죄를 천하 만민이 모두 알지니! 죄인은 어서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고 벌을 달게 받아라!”
산천초목을 뒤흔든다는 패왕의 기세가 광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