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81)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81화(581/619)
EP.581 20. 방황하는 성자 (48)
그의 폭탄과도 같은 선언에 좌중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 시대의 공개처형은 보통 축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가족들끼리 몰려와 다 같이 사형수를 향해 고함치고 욕하고, 광대가 나서서 사형수를 조롱하면 그에 호응하며 웃기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가면 배우들이 출현했을 때까지만 해도 관중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이 이번 일을 소재로 풍자극이라도 준비했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패왕이 이번 일의 원흉으로 라데츠키 의원을 지목했다. 방금까지 여기저기서 깝죽대던 다른 배우들이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이것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패왕의 폭로에 말문이 막힌 라데츠키 의원은 프롤로를 돌아봤다. 뭔가 도움이라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는 라데츠키의 시선을 모른척하며 딴청을 피워댔다.
패왕의 단어 선택은 교묘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라데츠키 의원이 역병을 풀었고, 성자 프롤로를 부추겨 그것을 정화하도록 했다고 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프롤로는 악당에게 속은 것일 뿐이다. 만약 패왕이 둘이 한통속이라고 주장했다면 프롤로는 라데츠키와 같이 바로 반박하고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프롤로에게 빠져나갈 여지를 준 탓에 그는 잠시 라데츠키와 거리를 두고 사태를 관망하는 쪽을 택했다.
‘제길,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건가.’
라데츠키 의원은 측근을 불러 당장 패왕 가면을 체포할 것을 지시했다. 광장 외곽에 있던 경비대원들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만! 이 이상 허튼소리를 하면 시의 법률에 따라 체포하겠다!”
경비대원 한 명이 가마를 타고 올라 패왕의 목에 칼을 겨눴다. 그러나 패왕은 겁먹기는커녕 조소하며 손가락 두 개로 칼날을 집었다.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가면 배우들은 출연 빈도에 따라 주역, 조역, 단역으로 나뉘었다. 여기서 주역을 맡은 가면 배우들은 대부분이 인스피라 보유자였다.
보통 인스피라는 100명 중 한둘 나올까 말까한 희귀한 축복이었다. 그런데 노천극장의 인스피라 보유자 수는 다른 서커스단이나 극장과 비교해 봐도 압도적으로 높았다.
사람들은 그들이 키르쿠스 신앙의 오래된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 여겼다. 바로 무대 위와 무대 밖의 삶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규칙 말이다.
가면 배우들의 인스피라는 대개 그들이 쓴 가면의 내력과 연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가면을 썼을 때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어떤 경우는 아예 가면을 따라 인스피라가 대물림되곤 했다.
패왕 가면에 얽힌 인스피라는 2가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와 ‘인중룡(人中龍)’이었다. 그녀가 지금 사용하는 역발산기개세의 능력은 단순했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이 강해지는 것이다.
“감히 누구에게 칼을 겨누는 것이냐?”
“이익!”
경비대원이 악을 쓰며 손에 힘을 줬다. 그러나 패왕의 두 손가락 사이에 잡힌 칼은 땅에 단단히 박힌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원래 참해야 마땅하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니 이 정도로 봐주겠다.”
“우아악!”
패왕은 손가락 두 개만으로 경비대원을 검째 들어 올렸다. 사람들의 감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서커스 공연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패왕은 가볍게 손을 한 번 털었다. 그러자 경비대원의 몸이 십수 미터를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병사들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패왕은 그들을 보며 안심했다. 역발산기개세의 힘은 대단했지만, 이것만 믿고 전투에 뛰어들기는 힘들었다.
이 힘은 관중들의 시선이 쏠릴수록 증가했다. 반대로 말해 방금 보인 힘은 이 자리에서 발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라는 말이 됐다. 진짜 싸움이 벌어져서 관중들이 광장 밖으로 도망치거나 자신을 주목해 주지 않는다면 지금만큼 힘을 증폭 받기 어려웠다.
게다가 인스피라라는 것은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공연을 통해서만 그 힘을 충전할 수 있었다. 지금 그녀가 가진 힘으로는 2, 30명 정도 때려눕히는 게 한계였다.
역발산기개세는 상대를 위협하는 용도면 충분했다. 지금 그녀가 신경 써야 할 것은 패왕의 두 번째 인스피라인 ‘인중룡’이었다.
그것은 노천극장의 가면 배우들에게 원격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인중룡의 명령을 받은 가면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전까지 가면을 벗을 수 없는 제약이 가해졌다.
인중룡은 지금까지 일종의 비상 연락망으로 써먹었던 능력이었다. 노천극장의 배우들이 익명을 유지함에도 서로 연락이 가능했던 것은 이처럼 통신 기능을 하는 인스피라를 보유한 가면이 몇 명 있었기 때문이다.
패왕은 오늘 아침에 이 능력으로 가면 배우들을 광장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해 라데츠키 의원을 고발하는 쇼를 준비하게 했다.
“이런 하찮은 공격이나 시도하다니. 내가 우스운 것이냐? 어서 저기 모인 주민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라, 요한 라데츠키!”
패왕의 일갈에 라데츠키 의원은 사색이 되었다. 프롤로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그는 계속 자기 부하와 대화를 나누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에 괜히 더 울컥해서 소리쳤다.
“잘도 떠드는군! 가면 뒤에 숨은 비겁한 놈이! 날 고발하고 싶으면 너 자신부터 누군지 밝혀라! 프라빈 시의원에게 진실을 요구할 권리는 오직 프라빈의 시민에게만 있다! 나 라데츠키! 시민의 고발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 그럴 의무는 없다! 가면을 벗어서 자신이 누군지나 밝혀라!”
그의 요구에 패왕은 당황하고 말았다. 가면을 벗으라니?
“네, 네놈이 무슨 소리를…….”
적지 않은 동요였다. 라데츠키는 회심에 찬 미소를 지었다. 한 번 찔러본 것인데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주먹으로 탁자를 쾅 쳤다.
“흥! 가면 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나? 네놈도 검은 마도사의 부하인가 보지?”
패왕이 당황해서 아무런 반박을 못 하자 사람들은 그를 수상쩍은 눈초리로 바라봤다. 라데츠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저런 수상한 자의 주장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프라빈의 시민 여러분! 저 라데츠키! 신께 맹세코 불의한 짓은 절대로…….”
패왕은 가면을 붙잡고 고민했다. 지금 다시 상황을 이쪽으로 끌고 오기 위해선 가면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진짜 정체를 밝혔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실망하고 경멸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하지만 그녀의 파트너라 할 수 있는 경국지색조차 떠나버릴까 두려웠다.
수지는 이를 악물었다. 의리를 지키다 죽어간 랫맨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저 수 많은 병사 앞에 나타나 단원들을 구출하러 나타난 원더스타인의 용기가 부러웠다.
자신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 패왕처럼 되고 싶었다. 그녀는 가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좋다! 가면을 벗겠다!”
패왕은 그렇게 일갈하고는 바로 투구를 젖혔다. 색색의 물감으로 덧칠된 화려한 장식의 투구가 벗겨지며 그 안에 있는 30대의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생김새였다. 그렇게 예쁜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박력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게 기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거 미용실 실장 아니야?”
“미용실?”
“왜 있잖아. 3번가 근처에. 거기에 혼자 사는…….”
마침 이곳에는 수지와 같은 동네에 사는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이 많았다. 그들 중 상당수가 그녀의 얼굴을 알아봤다.
“진짜 패왕의 정체가 저 사람이야? 가짜 아니고?”
“목소리 들었잖아. 진짜 맞아.”
“솔직히 실망스럽군.”
가면 배우의 정체 공개는 노천극장에서 종종 일어나는 이벤트였다. 그것은 주로 기존의 배우가 가면을 물려주고 은퇴할 때 이루어졌다.
예전에는 은퇴하는 배우들 대부분이 해당 행사를 치렀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빈도가 상당히 줄었다. 신상 공개의 후폭풍 때문이었다. 풍자극의 성격을 띠는 백면극의 특성상 그동안 해당 배역에게 조롱당했던 권력자들이 그들에게 보복을 한 것이다.
“그러게 왜 나서서.”
“그냥 연극이나 하지.”
“자기가 진짜 패왕이라도 된 줄 아는 거 아냐?”
사람들이 수지의 정체를 알고 실망하는 것은 단순히 그녀가 평범해서가 아니었다. 시의원이나 방황하는 성자에게 맞서는 사람치고 신분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저쪽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 같은 인물을 짓밟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 당당한 패왕이 그렇게 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평소에 백면극을 즐겼던 사람일수록 패왕의 팬이었던 사람일수록 실망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내가 틀린 걸까…….’
수지는 이를 악물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게 좋지 않을 줄은 몰랐다. 가면을 벗은 것은 아무래도 악수였던 것 같았다.
“이번 재개발 지역의 주민이라고?”
라데츠키 의원은 측근에게서 그녀의 신분을 듣고는 히죽 웃었다. 가난뱅이 노처녀 미용사라니. 우습기 그지없었다. 저런 게 패왕의 정체라니.
“아, 예. 프라빈의 시민이 맞으셨군요. 이번에 정화 대상이 되었던 거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셨다고?”
라데츠키 의원의 태도는 이전과 달리 선거철 시민을 대하는 정치인처럼 공손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노골적인 조소와 경멸이 어려 있었다. 수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은…….”
“대학은 나오셨소? 응? 소장은 쓸 줄 아시오? 아, 맞다. 글은 읽을 줄 아오?”
“다, 당연하죠! 그러면 어떻게 연극을…….”
“무고죄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십니까? 잘 생각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단순히 같은 업계 종사자라고 편들면 곤란해요.”
라데츠키 의원 측 사람들 사이에서 노골적인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부는 그녀의 직업이나 나이를 두고 조롱하기도 했다.
수지는 이를 꽉 악물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아무리 궁지에 몰린다고 해도 절대 눈물만은 보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것은 패왕으로서 그녀가 가진 최소한의 긍지였다.
“그런다고 네 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라데츠키! 무고죄라고? 그딴 협박에 내가 굴하기라도 할 것 같나!”
수지의 입에서 패왕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 앞에서 가면을 벗고 패왕 연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역시 목소리와 말투가 달라지니 말에 깃든 힘도 달라졌다. 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무 근거 없이 저럴 리 없다는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노천극장의 배우는 오직 가면을 썼을 때만 인스피라를 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상황을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라데츠키에게 찰리가 조용히 조언을 건넸다. 그는 여전히 처형대 위의 원더스타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에게 다른 일은 알 바 아니었다. 어서 상황을 수습하고 처형이 재개되기만을 원했다.
“고맙네.”
라데츠키는 경비대에게 그녀의 뒤로 몰래 돌아가 그녀를 제압하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그녀와 설전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끌었다. 얼마 있지 않아 경비대원 한 명이 가마 위로 뛰어들어 그녀의 손에서 가면을 낚아챘다.
“앗, 네놈이 무슨 짓을…….”
수지는 병사의 손에서 다시 가면을 되찾으려 했다. 그러나 가면의 힘이 없는 그녀로서는 훈련받은 성인 남성을 이길 수 없었다. 병사는 팔꿈치로 그녀의 어깨를 찍어 눌러 그녀를 제압했다.
“아이고, 귀여우신데요, 전하? 그런데 이런 힘으로 뭘 어쩌겠다고요?”
병사는 그녀를 조롱하며 검을 뽑아 그녀의 목에 겨누었다. 위에서 내려온 정보대로 가면을 쓰지 않으면 그녀는 그냥 평범한 여인일 뿐이었다.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겁니다. 날뛰어 봤자…… 으윽?”
그때, 수지는 병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내민 칼을 향해 뛰어드는 것이다.
병사가 급히 들어 올린 칼이 그녀의 목과 뺨을 베고 지나갔다. 피가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수지는 미소를 지었다.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든 덕분에 병사의 손에 들고 있던 가면을 뺏을 수 있었다.
“이, 이 계집이!”
“아까 그 힘으로 날뛸지 모른다!”
“그냥 죽여!”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지레 겁을 먹고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녀는 가면을 다시 쓰려고 했다. 역발산기개세만 다시 발휘할 수 있다면 저런 병사들쯤이야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칼에 베인 충격 때문인지 몸이 굳어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
찰나의 순간.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칼들을 봤다.
죽음을 앞두고 그녀가 떠올린 것은 지난 십수 년간 함께 해온 그녀의 연인이었다. 오늘 일은 위험할 것 같아서 부르지 않았는데. 역시 부를 걸 그랬나 싶었다. 가면을 벗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첫 번째 사람은 당연히 그녀라고 생각했었는데…….
깡. 청명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그녀를 향해 날아오던 여덟 자루의 검이 공중에 멈춰 섰다. 두 자루의 검이 그것들을 막고 있었다.
수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방금까지 그녀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대상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화사한 꽃장식이 달린 가면에 화려한 금색 무늬가 수 놓인 붉은색 장포.
패왕의 연인 경국지색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