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85)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85화(585/619)
EP.585 20. 방황하는 성자 (52)
찰리가 프롤로에게 간청한 덕분에 클로팽은 처형이 벌어지기 몇 시간 전에 성당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전혀 고맙지 않았다. 그에겐 찰리의 퍼포먼스가 자신을 바퀴의 후계자로 삼으라는 협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분을 삭이며 부족으로 돌아온 그는 의외의 인물들이 그곳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은막 서커스의 아르노.
황금 카니발의 지몬 마기어.
파파엘 서커스의 홉스.
스맥다운 서커스의 렉스 로건.
르 보드빌리앙의 시크릭.
다섯 서커스단의 단장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하길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원더스타인이 어젯밤에 미리 그녀에게 소집을 부탁한 것이라고 했다. 푸리 다이의 이름값이면 이들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클로팽은 며칠 전에 원더스타인과 함께 천벌 역병을 한 번 다스려 본 적 있었기 때문에 그가 왜 이들을 필요로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형 시각이 닥치자,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성당 앞 광장에 천벌 역병이 퍼진 것이다. 원더스타인이 기르는 매 호크가 날아와 그 소식을 전했다.
“트레 베네 앞 광장으로 가서 우리가 공연을 펼쳐야 할 것 같구려.”
미리 원더스타인으로부터 언질을 받은 아르노는 쉽게 승낙했고, 괴물서커스단에 가족이 있는 지몬과 홉스도 순순히 계획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렉스 로건은 웃음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웃음으로 악마를 물리친다고? 그러니까 ‘웃는 남자’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지? 하하, 그게 가능한 소리입니까? 크육체를 단련하는 것 외에는 곡예로 사람이 건강해질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렉스 로건의 스맥다운 서커스는 전원이 차력사로 이루어진 곳으로 다들 우락부락한 근육질을 자랑했다. 로건은 자신이 피땀 흘려 만든 육체와 기술 외에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인스피라를 받아 놓고도 마신의 변덕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힘이라며 사용하길 꺼릴 정도였다. 그런 그가 웃음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황당한 주장에 선뜻 넘어올 리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시크릭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는 로건보다 다소 냉소적인 자세를 취했다.
“설사 원더스타인 단장님의 말이 맞는다고 쳐도 우리가 정교회 행사를 방해하면 일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각자 자기 서커스단을 책임진 몸입니다. 위험을 감수할 순 없어요.”
두 사람의 얘기를 가만히 듣던 아르노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자네 둘 다 원더스타인에게 빚이 있지 않나! 칼디르에서 자네들을 구해준 게 누구였지?”
신년 축제에서의 일을 꺼내자, 둘은 할 말이 없어졌다. 지네 괴물이 광장을 덮쳤을 때, 그들은 괴물서커스단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로건, 그때는 괴물서커스단 사람들이 공연으로 괴물의 시선을 붙잡아 놓은 일에 대해서 그렇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자네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이제야 이성적으로 따지고 싶어졌나? 그리고 시크릭 자네는 그때 일이 끝나고 원더스타인에게 감사의 말을 하러 찾아오지 않은 유일한 서커스단 단장이었네. 흥. 이전에 공개 코미디에서 그를 조롱했던 게 부끄러웠던 모양이지?”
은색 장포의 남자가 맹렬한 지적에 렉스 로건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시크릭은 광대 패를 이끄는 남자답게 지지 않고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래요. 그건 우리들이 비겁한 놈들이라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참 이상하군요. 제가 아르노 단장님과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흥분하신 건 처음 봤습니다. 원더스타인 그 남자가 단장님께 그렇게 중요합니까? 혹시 좋아하시나요?”
“무, 무슨 그런 헛소리를!”
아르노가 책상을 쾅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끄러워하실 것 있습니까? 이미 단장님이 여자라는 사실을 세상이 다 아는 마당에.”
시크릭은 그를 보며 히죽 웃어 보였다. 그가 이렇게 뻗댈 수 있는 이유는 이번 일에 제일 필요한 것이 르 보드빌리앙의 광대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서커스단도 각자의 분야에서 다들 최고라 할 만한 자들이었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쳐들어가서 즉석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데는 역시 코미디만 한 게 없었다. 긴 빌드업도 필요 없이 마이크 하나만 쥐여주면, 몇 마디로 수백 명을 단번에 웃길 수 있었다.
물론 시크릭도 원더스타인에게 빚을 진 이상 그의 도움을 무작정 거절할 정도로 뻔뻔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프롤로도 두렵지 않았다. 권력자를 열받게 해서 목이 잘리는 건 광대의 로망이었다. 당장이라도 성자를 씹고 놀 생각에 그는 입이 근질거렸다.
그래도 그전에 일단 뜯어낼 수 있는 건 뜯어내고 싶었다. 그가 아르노의 심기를 자극한 것은 그에게서 받아내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노 단장님께서 본 모습을 보여주시면 저희도 기꺼이 협력하겠습니다.”
“뭐, 뭐라고?”
언제나 냉혹함을 유지하던 아르노의 표정이 흔들렸다. 시크릭은 자신이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하며 씩 웃었다.
“다른 단장님들은 각자 가족이 괴물서커스단에 있어서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로건 단장님이랑 저는 뭡니까? 뭐라도 득이 되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왜 내 본 모습이 왜 궁금한 건데?”
그녀의 물음에 시크릭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은막 단원들이 워낙 주변에 호들갑을 떨고 다녀서요.”
“내 단원들이?”
“네. 다들 입이 근질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뭔가 말할 듯 말 듯 간만 보며 사람들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니 덥디다. 아르노 단장님의 정체에 대해서요.”
“비밀은 지킬게요. 꼭 보고 싶습니다.”
둘이 자연스럽게 말을 맞추는 모양새가 처음부터 분위기를 이렇게 몰고 가고 싶었던 듯했다. 클로팽은 이 시급한 와중에 이런 엉뚱한 짓을 벌이는 두 사람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르노 군. 그냥 본 모습을 보여주게. 다 같이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데 혼자만 진짜 모습을 숨긴다면 불공정한 건 사실이니까.”
업계의 대선배인 그가 그렇게 말하자 루미도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환상을 해제했다. 그러자 은빛 장포의 중년인이 사라지고 온몸을 천으로 칭칭 감은 작은 체구의 여성이 나타났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그녀의 모습이었다.
“하여간 뭐가 그렇게 궁금하다고……. 알았어. 보여줄게. 그건 그렇고 일단 숙소에 돌아가면 단원 자식들 모아서 기합을 줘야지. 신비주의를 지키라니까 이 인간들이 이상한 짓을…….”
그녀는 몸을 칭칭 감싸고 있는 천을 풀었다. 그녀의 몸집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천이 두꺼운 데다 몇 겹이나 둘러놓은 탓이었다. 천 무더기 속에서 뾰족한 귀와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아이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자, 어때? 이게 나야!”
그녀는 조금 겁먹은 눈망울로 사람들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단원들 앞에서 정체를 밝히는 것도 두려웠는데 외부인에게 공개하려니 괜히 움츠러들었다. 그나마 맨얼굴로 단원들과 몇 달을 생활했기에 이런 용기도 나온 것이었다.
“…….”
다섯 명의 남자는 멍하니 그들의 허리춤에 닿을락 말락 한 꼬마를 바라봤다. 설마 은막 아르노의 정체가 이런 깜찍하게 생긴 요정이었다니.
“나, 나 약속 지켰어! 그러니 너희들도 지켜!”
두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로건은 키가 작고 뚱뚱한 곰보 상의 아줌마를, 시크릭은 구부정한 노파를 예상했는데 둘 다 틀렸다.
“잠깐, 저 모습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러게요. 저도 어디선가…….”
지몬과 홉스는 루미의 본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 다 원더랜드에 있는 동안 대부분 경비대에 붙들려 있었기에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들이 경비대에서 풀려난 뒤에는 루미가 요정들의 서커스단인 ‘한 여름밤의 서커스’에 가 있었기에 역시 거의 마주치지 못했다.
게다가 원더랜드에 다녀온 사람들의 기억은 그렇게 또렷하지 않았다. 산 사람인 그들이 어비스를 방문한 것은 현실과 꿈 사이 어딘가를 거닐다 온 것과 유사했다. 평소에 영력을 다루는 데 익숙한 마야 정도나 되어야 루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크하핫, 어쨌든 호기심이 풀렸다!”
“후훗, 좋습니다. 칼디르에서의 빚을 갚는 셈 치고 협력하지요.”
반대하던 두 단장이 마음을 돌리자,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마침 밖에 대기 중이던 단원들도 떠날 준비를 마쳤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렇게 이만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려는데, 천막의 입구가 걷히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여섯 단장을 오늘 이 자리에 불러 모은 사람, 푸리 다이였다.
“어머니?”
“어르신께서 왜 여기에?”
그녀는 나이 때문에 걷는 것도 힘든지 지팡이에 의지해 천막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그녀는 여섯 단장 앞에 서서 눈을 꼭 감더니 뭔가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키르쿠스의 계시가 내렸다.”
“계시?”
“그게 무슨…….”
“설마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 건가?”
“푸리 다이는 가끔 신탁을 듣기도 한다는 그거?”
다들 놀란 표정을 짓는 와중에 클로팽만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네. 어머니께서는 가끔 신의 음성을 듣곤 하시지.”
그의 말에 다들 엄숙한 자세를 취했다. 키르쿠스의 계시라니. 과연 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키르쿠스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 그 자리에서 이 세계에서의 그분의 입지가 크게 변할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날 거라고!”
푸리 다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팡이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 그녀는 방금까지 허덕대던 노인네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위압감을 뿜어댔다.
“가거라! 너희들에게 서커스의 미래가 달렸다! 가서 싸워라! 키르쿠스의 전사들이여!”
그녀는 피를 토할 것처럼 소리치고는 그대로 소파 위에 발라당 쓰러져 눈을 감았다. 다들 놀라서 그녀에게 달려가려는데 가까이 있던 클로팽이 그녀의 안색을 살피고는 손을 내저었다.
“탈진하신 것이네. 키르쿠스의 음성을 듣고 나시면 항상 이러셨지. 엄청난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기 때문이라 그러네. 푹 쉬시면 다시 일어나실 걸세.”
그때, 밖에서 호크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괜찮겠어요, 클로팽? 야영지에 남아서 푸리 다이를 돌보시지 않으셔도.”
“어차피 부족에는 어머니를 보필한 사람은 많다네. 그보다 우린 지금 서둘러야 하네. 급한 일은 따로 있지 않나.”
여섯 단장은 쓰러진 푸리 다이 앞을 지나며 경건한 표정으로 이번 일의 중요함을 되새기고는 천막을 나섰다. 클로팽은 어머니가 걱정되는지 마지막에 그녀를 슬쩍 돌아보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푹 쉬고 떠났다.
잠시 후, 모두가 떠난 것을 확인한 에스메랄다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녀의 입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잠깐의 연기로 모두의 의욕에 불을 붙여줄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었다.
***
엘라와 마야는 며칠간 도시를 돌아다니며 만우절 수수께끼 장소에 다시 메시지를 남겨둘 계획이었다. 수수께끼를 풀었던 다섯 장소는 도시 전역에 퍼져 있었다. 그들은 다른 단원들을 만나려면 저번처럼 며칠은 걸릴 거라 여겼다.
하지만 카렌 측은 이미 그녀를 포함해 루엘로, 알렌, 조, 한트케, 프란츠, 랄프까지 해서 7명이나 됐다. 각자 한 장소씩 맡아서 확인하면 한나절 만에 메시지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마침 수수께끼 장소 중 한 곳에서 프란츠가 레이나를 만나기까지 했다.
그 덕에 레이나, 카렌, 루엘로는 처형식이 열리기 전에 함께 엘라와 마야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트레 베네 대성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원더스타인 혼자 유라크네를 구출하러 보낸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