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86)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86화(586/619)
EP.586 20. 방황하는 성자 (53)
“이럴 거면 그냥 어제 단장님을 따라가는 게 좋았잖아.”
마야는 불만 가득한 눈으로 엘라를 쏘아봤다. 처형대 앞 상황을 알게 된 그녀는 어제와는 국면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이제 더는 숨어다닐 이유도 시간을 끌 이유도 없었다. 서커스단의 모든 역량을 모아 이번 사태를 해결해야 했다.
“나인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 그리고 밖에 남아 있던 덕분에 이것저것 일을 준비하고 얘네들을 만날 수 있었잖아.”
“어쨌든 나 단장님에게 연결해 줘.”
“그건 안 돼. 이미 교신이 끊겼거든. 아무래도 그 인간 성역 안으로 진입한 모양이야.”
“단장님 혼자 그곳을? 내가 도우러 가야겠어.”
마야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엘라가 그녀를 제지했다.
“안 돼. 우리에겐 따로 할 일이 있어. 일단…… 상황이 좀 복잡하네……. 하나하나 차근차근 정리해 보자. 그러니까 레이나 너는 네 아버지로부터 쪽지를 건네받았다는 거지? 거기에 쓰인 장소로 가니까 성자 프롤로의 부정을 증명하는 문서를 줬다고?”
“응. 정황상 단장님의 뱀 누나 분이 뭔가 안배해 주신 것 같아.”
“애초에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었군.”
“니카가 받아서 가지고 있었대. 그런데 현장에서 바로 구속되느라 사용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거지.”
“걔도 은근히 수상하다니까. 단장의 누나가 걔한테 왜 그런 걸 맡겼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어쨌든 그 사람들이 준 증거는 확실했지만 나 혼자서는 그걸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런데 마침 만우절 수수께끼 장소에서 프란츠 씨를 만났고 그분을 따라가니 아테레나 노천극장 사람들과 루엘로와 한트케 교수님 등등이 있었지.”
“난 왜 등등이야. 나도 이름을 붙여줘.”
“그러니까 루리랑 한트케 교수님과 카렌이…….”
“레이나, 카렌의 헛소리에 일일이 반응해 주지 마.”
“헛소리라니. 엘라 너무 해.”
“시간 없는데 쓸데없는 말 좀 그만 끼워 넣어.”
“잉, 마야까지…….”
“설명이나 계속해 줄래?”
“어, 그러니까……. 어디까지 했더라…….”
“노천극장 사람들 만난 거! 레이나가 가져온 증거 문서들을 보니까 그 사람들 아주 길길이 날뛰더라고.”
“특히 미용사 아줌마의 패왕 모드 너무 무서웠어. 사람의 인격이 바뀌는 건 나 처음 봤어…….”
“우린 너 때문에 익숙해, 루리.”
“그런데 패왕 모드? 그건 또 뭐야?”
엘라의 질문에 카렌이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천인공노할 죄로다!”
“아, 그건 말이죠. 백면극의…….”
또 이야기가 딴 데로 새려 하자 레이나가 재빨리 말을 끊었다.
“어쨌거나 그래서 상황이 현재 이렇게 된 거야. 그것보다 엘라? 단장님이 우리에게 무슨 임무를 맡기셨는지 말해줄래?”
“아, 그거.”
엘라는 병사들이 꽉 막고 서 있는 골목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섯 서커스단 사람이 곧 광장으로 진입할 테니까 우리더러 길을 트라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엘라는 프롤로가 광장에 천벌 역병을 풀었다는 것과 웃음이 그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펼치기 위해 여섯 서커스단의 단장들이 모여서 대기하고 있다는 것도.
“와, 단장님은 진짜 모든 경우의 수에 다 대비했구나.”
“그건 아닌 거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엘라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랫맨 중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그들의 최후를 알게 된 다섯 소녀의 표정이 금방 숙연해졌다.
‘나도?’
마야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감정의 공명을 느끼고 있는 데서 놀랐다. 지금까지 그녀는 단원들끼리 다 함께 울고 웃을 때도 거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직 그녀 본인의 감각과 판단에 의해서만 감정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자 자연스럽게 거기에 감정이 끌려갔다. 판단보다 공감이 먼저 앞선 것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낯선 경험이었다.
‘뭔가 달라졌어.’
마야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루미와의 수업이 뭔가 각성의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지난 1년간의 경험이었다. 서커스단과 함께한 시간이 그녀 내부의 무언가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변화는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마야는 마력이 다시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
설마 또 이 중요한 순간에 심마가 도지는 것은 아니겠지. 그녀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한트케 교수님과 도스빌 남작님은 프라빈을 돌면서 라데츠키 의원의 반대파에 속하는 정치인들과 접촉하고 있어.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알렌 씨와 조 씨가 그분들을 호위하고 있고 말이야.”
“그 정치인들이 우리 편을 들어주면 끝인가?”
“아니, 일단 지금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잘 해결해야겠지. 시민 수천 명이 역병으로 죽고, 단장님이 그 흉수로 지목되면 그들도 섣불리 우리를 변호하러 나서기 힘들 테니까.”
“이러나저러나 사람들을 구하는 게 우선이군?”
“단장은 프롤로와 라데츠키를 잡아다 시 법원에 세우고.”
이야기가 모두 정리되자 그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에게 내려진 임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여섯 서커스단의 사람들을 위한 길을 마련하지?”
“양동 작전을 써야 할 것 같아. 그 사람들은 현재 광장 동쪽에서 접근 중이니 우리는 서쪽에서 난리를 피워서 병력을 이쪽으로 집중시켜야지.”
엘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성자의 명을 받들어 길을 지키는 병사들이 수배 중인 여자애 몇 명 나타났다고 한쪽으로 몰려올까?
“사신을 꺼내면?”
“그래. 몰려오긴 하겠다. 그걸 넘어 아예 인근에 주둔 중인 군대까지 오겠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야.”
“단장님께 여쭤볼까?”
“안 돼. 이미 성역에 들어선 것 같아.”
“그러면 우리가 경비병들을 직접 공격하는 건 어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우리가 진짜 범죄자가 되잖아.”
“아, 그러면…… 힘들어 보이는데. 그냥 우리가 들어가서 공연하면 안 돼? 마야가 투명화를 걸어주면 될 것 같은데.”
“들어가봤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무조건 이 작전을 성공시켜야 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엘라는 순간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이번 일과 비슷한 상황을 예전에 경험해 본 적 있는 것 같았다. 수배령, 경비, 출입, 속임수…….
‘아, 원더랜드에서였나.’
그녀는 그때도 경비병들에게 쫓기는 신세였었다. 오즈와 루미. 두 사람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원더랜드 입구의 검문소에서 붙잡혔을 것이다.
지금 그녀의 처지는 그때와 정반대였다. 그녀가 가이드로서 광장 안으로 사람들을 들여보내 줘야 했다.
그때 허수아비 아저씨는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안에 데려갔더라? 당시의 기억을 되새기던 엘라는 불현듯 뭔가가 떠올랐다.
여섯 서커스단을 들여보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자꾸 저곳을 돌파하는 그림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원더랜드에서의 경험이 당연한 사실 하나를 상기시켜 주었다. 경비는 들어가는 사람만 막는 게 아니었다.
***
가스통이 치료제를 제조하는 동안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은 광장을 돌아다니며 상태가 위중한 환자들을 선별했다. 랫맨 6명의 피로는 여기 있는 사람 모두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장 급한 사람들부터 구하고 남은 사람들은 원더스타인이 불렀다는 ‘외부의 조력’을 기다리는 게 맞았다.
“자, 이러면 기도가 확보되어서 당장 숨 쉬는 데 불편함은 없을 거요.”
“하아, 하아, 가, 감사합니다.”
“이거 골반이 틀어졌군. 셋 하면 돌릴 테니 아파도 참아보게. 셋!”
“끄악! 쿨럭, 쿨럭! 끄으으, 하나, 둘은 왜 생략하는…….”
“그러면 몸에 힘이 들어갈 테니까.”
단원중 가장 능숙한 일 처리는 보이는 사람은 바로 바텔과 칼슨이었다. 둘은 군대에서 부사관으로 20년 넘게 복무한 덕에 야전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익숙했다. 그들의 노련한 솜씨 덕분에 위급한 환자 절반이 목숨을 건졌다.
“여기! 집사! 이 사람도 한 번 봐줘! 계속 몸을 뒤틀고 있어!”
“우몬! 그 사람을 처형대 쪽으로 옮겨! 아니, 그 사람 말고, 그 옆에 사람. 어, 맞아. 그리고 칼슨 씨! 저쪽 돌담 뒤에 아까 누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지금 소리가 안 들려요. 서둘러 가주세요!”
아나이스와 니카는 각자 구역을 나눠 환자들을 분류하고 약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번호표를 발부하고 필요한 인원을 투입했다. 부상자 처치에는 바텔과 칼슨, 힘이 필요하면 우몬과 트라이머리, 사람을 진정시키는 일에는 스벤과 밴딕이 제격이었다.
“내 아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제일 먼저 치료해 줘!”
“하지만 선생님 아들은 고작 붉은 반점이 좀 있는 게 다잖아요.”
“뭐, 고작? 이 새끼가 말하는 버릇 하고는!”
처형대 앞에서는 미키가 약을 달라고 몰려온 사람들과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매점과 매표소를 맡았던 덕분에 여기서도 대기열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가스통의 말에 따르면 만들 수 있는 약은 200인분 정도밖에 안 될 거라고 했다. 광장에 있는 사람 중 3% 정도밖에 못 받는 것이다. 정말로 위독한 사람에게만 약을 지급해야 했다. 그래서 아나이스와 니카가 광장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의 용태를 살피고 번호표를 나눠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절차를 무시하고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와 약을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들이 죽어간다는 남자는 정작 당사자인 아들이 손사래를 치는데도 약을 달라고 억지를 부려댔다.
“네. 드렸습니다.”
결국 그 남자에게는 스벤이 가서 물이 든 병을 넘기며 약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의 인스피라인 광대의 허언 덕분에 남자는 단번에 속아 넘어갔다. 그는 약을 받자마자 자신이 들이키더니 기막힌 명약이라 감탄했다. 물론 그의 얼굴에 일어난 각질은 그대로였다.
“고, 고맙소…….”
유라크네는 처형대 위를 오가며 우몬과 트라이머리가 이송해 온 환자들에게 약을 먹여 주었다. 사람들은 차마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그녀의 죽음을 구경거리 삼아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녀는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사람이라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가식이다. 이 괴물.’
병자들을 돌보는 그녀를 대기 중인 사람들 틈에서 증오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코르도바 남작이었다. 그는 거적때기를 몸에 두르고 얼굴을 가린 채 약을 기다리는 환자인 척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달려들기 적절한 위치와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할아버지, 번호표 보여주세요.”
앞에 선 사람들이 모두 빠지고 미키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가 딱 적절한 기회였다. 그는 검 손잡이에 손을 얹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죽어라, 이 괴물!”
“뭐, 뭐야, 아, 아줌마, 피해요!”
환자들을 돌보던 유라크네는 놀란 얼굴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인을 돌아봤다. 그녀는 상대와 눈을 마주친 순간, 상대의 정체를 알아챘다.
“남작님!”
코르도바 남작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동안 충분히 관찰했다.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지금 그의 칼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의 칼이 그녀의 몸을 베려는 순간, 처형대 근처의 벤치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그의 칼을 받아쳤다.
“너는!”
남작은 황금히 뒤로 물러났다. 그는 검을 맞대자마자 상대가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 한 번 본 적 있는 검이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들 속에 숨어 있던 살기의 정체는 당신이었군요.”
이반이 덮고 있는 두건을 벗어 던지고 그의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