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87)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87화(587/619)
EP.587 20. 방황하는 성자 (54)
유라크네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숨을 헐떡였다. 설마 코르도바 남작이 갑자기 여기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그녀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등을 보며 간신히 숨을 가라앉혔다.
“이반 씨? 당신도 와 계셨던 건가요?”
“네. 원래는 더 일찍 나오려 했습니다만 당신을 향한 심상치 않은 적의가 감지되어서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죠.”
“고, 고마워요. 이반 씨가 없었다면 전 죽었을 거예요.”
1주일 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반은 달라진 점을 한 가지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태도였다. 이전에는 자신의 목숨에 대해 어딘가 체념한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자신이 살아난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눈빛이나 말투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미키, 방금 나한테 아줌마라고 했지!”
“아뇨. 누나, 누나라고 했어요!”
“……두 사람 다 제 뒤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너무 여유로워진 것 같기도 하고.
“저 사람 뭐야. 갑자기 칼을 휘두르고.”
“잠깐, 저 사람 코르도바 남작 아냐?”
“코르도바? 그게 누구야?”
“처형 공고에 사진까지 실렸잖아. 거미 여인을 살인자로 고발한 사람.”
처형대 근처의 구경꾼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웅성거렸다. 코르도바 남작은 그들의 목소리가 불과 2시간 전과 달리 유라크네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오히려 그를 향한 눈빛이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이 사달을 일으킨 게 프롤로이니 그와 한패인 남작도 뭔가 더러운 짓을 하지 않았겠냐는 것일 것이다. 그로서는 억울하다고 할 수 있었다.
“난 내 아들 발렌틴의 정당한 복수를 집행할 뿐이다! 비켜라!”
남편 얘기가 나오자, 유라크네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녀는 이전처럼 목숨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에겐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를 위해서라도 살아야 했다.
“전…… 안 죽였어요!”
설사 거짓말을 해서라도.
“뭐라고……?”
“전 발렌틴을 죽이지 않았다고요!”
코르도바 남작은 그녀를 노려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이 저지른 짓을 부정했다.
그가 가진 확신에 균열이 가해졌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있던 아주 작은 의구심. 그것이 고개를 들었다.
***
“반년 전 추락한 비행선 사고의 사망자 명단에 발렌틴이 있습니다.”
어느 날, 첫째 아들이 가져온 소식에 코르도바 남작은 그만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하녀와 눈이 맞아 몇 년 전에 집을 나가버린 둘째 아들의 소식을 이런 식으로 들을 줄은 몰랐다. 아예 잊고 살아서 무슨 소식을 들어도 무덤덤할 줄 알았는데, 막상 아들의 부고를 마주하는 순간, 그는 목구멍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네가 가서…… 발렌틴의 시신을 수습해 와라.”
마음 같아서는 직접 가고 싶었지만 영주로서 영지를 비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기 두려웠다.
첫째 아들 미구엘이 사람들을 이끌고 동생을 찾으러 떠났다. 그런데 그는 얼마 안 있어 놀라운 소식을 전해 왔다. 사망자 명단에 발렌틴이 있었던 것은 착오였다는 것이다.
“이쪽 관청에서 시체를 확인하고 안치소로 보냈는데…… 거기서 시체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누가 훔쳐 간 것 아니냐?”
“저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안치소에서 걸어 나가는 발렌틴을 목격한 사람들이 꽤 많더군요. 아마 부상이 심해서 구조원들의 착각으로 안치소로 옮겨졌던 것 같습니다. 관청에서 발표한 사망자 명단에는 그런 부분이 반영되지 않았던 거고요.”
코르도바 남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신에 대한 감사와 함께 감히 아버지의 가슴을 들었다 놓았다 한 아들에 대한 괘씸함을 느꼈다.
“그 자식을 찾아서 데려와라! 한번 혼꾸멍을 내줘야겠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런데 유라크네 그 여자는 어떻게 하죠?”
남작은 2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기어이 팔 한 짝을 내놓고 아비를 떠났던 고집불통 아들놈이었다. 그에게서 그녀를 떼어 놓으려 한다면 또 무슨 엉뚱한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일단 데려와라. 어쨌든 영지의 주민이니까.”
그렇게 장남은 동생을 찾으러 떠났다. 남작은 이제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 믿었다. 발렌틴 녀석이 팔 한 짝이 없기는 하지만 검술에 대한 재능 하나만은 대단했다. 돌아오면 성에서 검술 교관이라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설마 손주를 보지는 않았겠지? 아니, 모를 일이지. 남자일까, 여자일까. 남자면 좋겠군. 그런데 만약, 자식도 흉한 꼴로 태어난다면……. 음, 육검술의 코르도바. 나쁘지 않을지도…….’
그의 걱정, 그의 기대, 그의 바람. 얼마 가지 않아 그것들은 모두 헛된 것으로 드러났다. 둘째 아들이 진짜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범인을 잡겠다고 떠났던 첫째 아들마저 시신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코르도바 남작은 그때부터 복수를 목표로 영주의 자리도 내던지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그는 우선 아들들이 들렀던 장소를 방문해 단서를 수집했다.
그런데 비행선 추락 현장에 세워진 위령비를 방문했을 때, 그는 근처 마을 사람들로부터 무언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 예. 이쪽 마을에서는 제법 화제가 됐던 이야기라 다들 알고 있습니다. 시체가 일어나서 도망가 버린 셈이니까요.”
“관청에서 실수한 것 아닌가? 산 사람을 죽었다고 착각했다고…….”
“그런 말 마십쇼.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고, 머리가 반쯤 으깨졌는데 그게 어떻게 산 사람입니까.”
“그럼 죽은 자가 일어나서 도망가 버렸다는 건가?”
“그게 그렇다고 딱 죽었다고 말하기 뭐한 게.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다른 사망자들도 몸이 이상했습니다. 그거 뭐지? 그 역병 말입니다. 사람 몸이 변형되는…….”
“저주 역병?”
“네! 맞습니다. 데볼루트에 감염된 사람들처럼 몸들이 막 이상하게 날뛰고 있는 겁니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늘어나 있고, 쪼개진 피부 사이로 머리카락이 자라 있고, 눈알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오질 않나……. 그런 마당에 시체 하나가 발작을 일으켜서 어디론가 뛰쳐나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이전에 미구엘이 왔을 때는 이 정도로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때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겁에 질려 이 일에 대해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구엘도 동생의 행방을 쫓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사고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사고는 그냥 평범한 비행선 추락일 뿐이었다.
항공사 측이나 유족이나 시체에 남은 불길한 흔적에 대해서는 뒷말이 나오는 건 원하지 않았기에 관련자 외에는 그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나마 연고 없는 시체들은 사고 현장 인근 마을에 방치되었기에 주민들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들 겁에 질려서 어쩔 줄 몰라 했어요. 그나마 지나가던 장의사 한 분이 도와주셔서 망정이지 우리끼리라면 못했을 겁니다. 그 장의사 양반 아주 잘생긴 젊은 남자였는데……. 어쨌든 그날 시체가 도망쳤고 우리는 신부님을 불러 남은 시체들을 화장하고 위령비도 세우고 제사도 성대하게 치러줬지요. ”
코르도바 남작은 비행선 추락 현장에서 알게 된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죽은 아들이 일어나서 아내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녀 손에 죽었다?
어쩌면 이번 일에는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
그는 의혹을 떨쳐 버리고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어쨌든 아들을 죽게 만든 건 그녀였다. 악마의 소행이건, 다른 내막이 있건. 그녀만 없었다면 아들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신호를 내리자, 사람들 사이에서 다섯 명의 검객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그의 가신이자 친구이자 전우였다. 젊었을 때부터 그와 교분을 나누고 절차탁마 해온 자들로 모두 뛰어난 검술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만만치 않겠는데.’
이반은 그들을 보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카스티유 검객들은 여러 명이서 한 명을 상대하는 합격진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당장 코르도바 남작의 실력만 해도 인형의 집에서 싸웠던 황실 기사단 서열 5위보다 한두 수 위였다. 거기에다 그의 가신이라는 자들은 다들 베르카에 준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은 베르카보다 약했지만, 그들 5명이 합격진에 가담하면 한 명 한 명이 베르카 이상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어림잡아 본 승률은 1할 이하였다. 합격진의 무서운 점은 바로 ‘투기’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대1 전투에서 투기는 보통 쓸모가 없었다. 그런 곳에 집중력과 기력을 쏟고 있으면 정작 상대의 검술에 대처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람을 파괴하는 데는 무딘 검 한 자루면 충분했다. 굳이 날붙이의 위력을 높이겠다고 투기를 쓰는 건 헛짓거리였다.
투기가 유용한 건 갑옷을 입은 자들끼리 싸울 때였다. 갑옷도 금속이었고 투기를 불어 넣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경우는 서로의 공격과 방어에 얼마나 투자해서 얼마나 타격을 줄 것인가를 절묘하게 계산하는 게 승패를 가르게 됐다.
하지만 맨몸으로 혼자서 여러 명과 싸우게 된다면 다수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한두 명만 투기를 써도 상대는 그것에 신경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들은 그때 그 양반들이잖아?”
“핫핫, 유라 씨의 고향 사람들이군요.”
“우리가 도와줄까, 이반?”
광장에 나가 있던 단원들이 처형대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다가왔다. 그러나 이반은 그들의 도움을 선뜻 받기 힘들었다. 그들이 가진 재주는 대단하지만, 이런 본격적인 칼부림에서 발휘되는 종류는 아니었다. 물론 도움은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단원들이 죽거나 다칠 수 있었다.
“소녀가 돕게 해주시어요.”
그가 마지못해 단원들의 도움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사람들을 헤치고 꽃무늬의 붉은 장포를 걸친 가면의 여인이 처형대 위에 올랐다. 이반은 그가 누군지 알아봤다. 그는 바로 경국지색의 가면을 쓴 리히텐이었다.
“선배님?”
“혼자서는 역부족임을 느끼시죠? 하지만 둘이 힘을 합쳐 싸운다면, 저들의 합격진에도 상대해 볼만 하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구경꾼들 사이에 있는 패왕에게 다소곳하게 인사했다.
“허락해 주시겠어요, 상공?”
“그, 그렇게 하시오.”
패왕은 두 사람이 등을 맞대는 것을 보고 조금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인과 나란히 서는 이반을 보고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다.
“명성 있는 여검객은 많진 않은데 어디서 왔는지…….”
“조심들 하게. 아까 보니 보통 솜씨가 아니었어.”
“저희도 봤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절대 남작님 아래로는 안 보였습니다.”
여섯 명의 검객이 두 사람을 둘러쌌다. 다행히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는 듯했다. 일부가 그들을 상대하는 사이 나머지가 유라크네를 공격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마르틴은 이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복수와 별개로 재능 있는 이와 검을 대치한다는 것은 검사로서 흥분되는 일이었다.
“이반 페트로프라고 했지? 괜찮다면 자네 스승을 물어봐도 되겠나.”
“프랑크 원더스타인. 제가 있는 곳의 단장 되십니다.”
“그자가 검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나? 놀랍군. 하긴 마도사는 어디에서든 나올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아쉽게 됐어. 이 자리에서 자네가 이기든 지든 자네 스승은 죽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스승님은 저보다 강하십니다.”
“방황하는 성자의 군대는 그보다 더 강하네.”
“그들이라면 저도 도망을 다니는 동안 20명 정도 쓰러트렸습니다만?”
“성자의 앞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었겠지.”
남작의 얼굴에 조소가 어렸다. 바깥사람들은 아무도 프롤로가 보유한 병사들의 진짜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섣부른 도발입니다. 눈앞의 적에게만 집중하시길.”
리히텐의 충고에 이반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르틴은 두 사람을 보고 만만치 않은 승부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짧은 침묵이 지나가고, 아홉 자루의 검이 처형대 위를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