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90)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90화(590/619)
EP.590 20. 방황하는 성자 (57)
정교회의 문장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남자는 겉으로 봐서는 신실하고 정의로운 성기사 같았다. 그는 심지어 그 방황하는 성자 프롤로의 호위 기사라는 직함까지 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마치 개돼지라도 도살하듯 일반 시민들을 문답 무용으로 죽여버렸다.
무심하게 도끼에 묻은 살점을 털어내는 그를 보면 도저히 막 살인을 저지른 사람 같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현실을 인식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으아악!”
“사, 사람이 죽었다!”
구경꾼들은 허겁지겁 한니발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죽인 사람들도, 자신을 보고 겁에 질린 사람들도 별로 관심 없는 듯 레이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레이나는 그의 발치에 널린 시체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그들을 방패막이로 썼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죄책감에 얼굴이 굳어진 그녀는 떠듬떠듬 말을 내뱉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다니…….”
“성자님의 명을 집행하는 나의 앞길을 막은 것만으로 그들은 죄를 저지른 것이다.”
“살인이 더 큰 죄…… 아닌가요?”
“너는 도끼로 나무를 벤 것이 살인이라고 생각하나?”
그의 대답에 레이나는 분노해서 소리쳤다.
“저들은 사람이잖아요!”
“사람?”
한니발은 싸늘한 눈빛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굴러다니는 머리통 하나 위에 발을 얹더니 그대로 힘을 주어 으깨버렸다.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버님과 형제들뿐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빈정거림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 생각을 무덤덤하게 전달하고 있을 뿐이었다. 레이나는 등골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진짜 괴물이군요. 몸은 몰라도 마음만큼은.”
“내가?”
한니발은 잠시 낮은 소리로 웃더니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갑자기 투구의 턱끈을 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투구를 벗고 맨얼굴을 드러냈다.
“뭐, 뭐야, 저 모습은? 저, 저런 게 성기사라고?”
“우욱, 역겨워. 징그러워.”
“괴물이다! 괴물이야!”
사람들은 갑옷 안에 숨겨진 한니발의 진짜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레이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평소에 괴물 단원들이나 원더스타인이 자기 몸을 가지고 장난치는 모습을 많이 봐왔음에도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한니발의 피부는 탁한 백색 빛을 띠었고 털 뽑힌 닭처럼 우둘투둘했다. 게다가 반투명하기까지 해서 그의 몸 안에 있는 혈관과 근육, 장기 따위가 꿈틀대는 것이 대놓고 보였다. 거기다 그의 얼굴에는 입 대신 커다란 부리가 달려 있었다. 투구가 새의 두상을 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투구에 이어서 신발도 벗었다. 그의 발은 새의 발처럼 여러 갈래로 쫙 갈라져 날카로운 갈고리발톱이 자라 있었다.
한니발은 자신을 보고 굳어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조소했다.
“저들은 날 괴물 취급하는데, 난 왜 저들을 사람 취급해 줘야 하지?”
레이나는 그의 목소리 아래에 크나큰 분노와 슬픔이 잠들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저지른 짓은 용서할 수 없었다.
“당신은 성자의 호위라면서요. 매번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였나요?”
“그래.”
“진짜 처형당해야 할 사람은 유라크네 씨가 아니라 당신이었군요.”
“글쎄? 그건 그 여자가 어설펐던 거다. 죽인 사람의 무덤을 만들어 주다니. 나는 다르다.”
그는 다시 도끼를 쥐더니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레이나는 기겁해서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목격자를 처리하는 거지.”
“이봐! 멈춰요!”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레이나는 우는 여자의 가면을 쓰고 소품실의 사물함에서 작두를 꺼내 들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한니발이 휘두른 도끼가 그녀의 작두를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보도블록이 들썩였다. 가공할 만한 힘이었다. 완력 자체는 우몬 아래였으나 속도는 그보다 2배 가까이 빨랐다.
그래도 그녀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채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가면을 쓴 그녀는 원더스타인의 신체 능력을 빌릴 수 있었다. 손이 저릿저릿했으나 버틸 만했다.
그녀가 자신의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내자, 한니발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넌 정체가 뭐지?”
“레이나 원더스타인. 나는…… 단장님의 딸이다!”
가면을 썼을 때는 그림자가 그녀의 몸을 주도했다. 이제 2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거의 한 사람에 가까운 그녀였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림자는 그의 딸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다.
“자, 도망들 치세요! 어서요!”
“가, 감사합니다!”
“가자, 가, 가자…….”
구경꾼들은 이제 더는 못 버티겠는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레이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작두를 거두고 한발 물러났다.
“그렇군. 검은 마도사의 딸이라. 네 잘린 목을 보면 그자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데.”
한니발은 진심으로 즐거운 듯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레이나는 그를 보며 심호흡했다. 아무래도 이런 위험한 인간을 계속 풀어두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할 것 같았다.
“당신은 여기서 내가 쓰러트려 놓아야 할 것 같군.”
작두와 도끼의 날에 반사된 빛이 번뜩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땅을 박차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카진스키는 검은 마도사 수사팀에 있으면서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워낙 주변에 괴물 같은 인간들이 득실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수사팀에 있으면서 자신이 제국 정보부와의 연결 창구 기능 이상은 못 한다는 느낌을 늘 받았다. 판단력은 대장인 바예르가 훨씬 뛰어났고, 탐문과 조사는 기자인 레빈스가 초일류 첩보원 수준의 능력을 보여줬으며, 임기응변과 경험은 퀴네스가 압도적이었고, 힘에서는 노들을 이길 자가 없었으며, 재능과 성장 속도는 발렌티나가 발군이었다.
상급 요원이라고 하면 정보부 내에서는 나름 고급 인재인데 이들 사이에 있으니 사무실 보조 인력과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그들 사이에서 구른 덕분에 지난 반년간 그는 여러 방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전투력 면에서는 이미 특급 요원 수준에 달했다. 매일 같이 발렌티나, 퀴네스, 노들 같은 이들과 훈련하다 보니 실력이 급격하게 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강해진 게 맞는지 체감할 수 없었다. 고작 곡예사 한 명을 상대로 쩔쩔매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맡은 상대는 바로 카렌이었다. 퀴네스, 발렌티나, 요벨은 자신이 눈여겨 봐둔 상대가 있다고 달려갔고, 결국 남은 두 사람을 한니발과 나누었다.
처음 카렌과 맞붙었을 때만 해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10대 여자를 상대로 우쭐대긴 그랬지만, 분명히 자신 쪽이 더 강했다. 그러나 그녀가 새로운 능력을 써야겠다며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원래 복장도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던 그녀였다. 전신 타이츠에 민망한 부분만 핫팬츠와 짧은 조끼로 간신히 가렸다. 그러나 그녀가 갈아입고 나온 옷은 단연 압권이었다. 그것은 바로 개 인형 옷이었다.
특성: 인스피라-탈놀이
적용 대상: 동물 옷
효과: 입은 동물 옷의 힘을 빌려올 수 있습니다. 공연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 옷일수록 위력이 상승합니다. (주의: 동물 역할 놀이에 너무 과몰입하지 마십시오.)
요구 자원: 카렌의 호감도 15
그녀가 엘라에게 부탁해 의상실에서 꺼낸 옷은 ‘들개들’ 연극 때 입었던 장트와일러 복장이었다. 전신이 검은색 털로 뒤덮인 데다가 엉덩이에는 꼬리, 손에는 발바닥 볼록 살까지 재현되어 있었다. 사람으로서 모습이 드러나는 건 딱 얼굴 부위뿐이었다.
“진지하게 묻겠는데 정말…… 그 옷 입고 싸울 거냐?”
“그, 그래! 생긴 건 이래도 위력은 무시 못 할 걸?”
카렌은 얼굴을 붉히며 카진스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예상했던 힘의 반의반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옷의 무게 때문에 동작만 더 굼떠진 것 같았다.
“……뭐가 달라진 거지?”
“이, 이거 연습 때는 안 이랬는데……. 왜 이러지……. 아, 설마…….”
카렌의 얼굴이 더욱 붉게 변했다. 그녀는 인스피라를 각성하고 시험해 봤을 때를 재현했다. 허리를 숙이고 엎드려 네발로 기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러자 그때처럼 전신에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후각도 개처럼 몇천 배나 예민해졌다. 멀리 있는 친구들의 냄새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크르릉.”
그녀는 앞발로 바닥을 긁으며 몸을 낮추고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자연스럽게 입에서 으르렁거림이 나왔다. 지금 도약하면 몇 미터는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크와앙!”
카진스키가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카렌은 번개 같은 속도로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그를 공격했다. 그녀는 앞발 한 방에 건물 외벽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능력치가 늘어난 것에 반비례해 지능도 동물 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녀의 움직임은 야성적이고 날카롭긴 했지만 사람일 때 보였던 유려함은 없었다. 만약, 그녀가 힘과 기술 두 가지 다 갖췄다면 카진스키는 지금처럼 겨우겨우 버티는 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왜 이런 놈들하고만 싸우지?”
카진스키는 반년 전 자신을 엿 먹였던 붉은 머플러의 닌자를 떠올리며 욕을 내뱉었다. 둘 다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으면서 강하기는 더럽게 강했다.
***
루엘로 앞에 나타난 적은 그녀와 키가 비슷하면서도 전신을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바짝 세우며 상대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그는 루엘로를 가만히 바라보며 주저할 뿐 달려들지는 않았다. 계속 머뭇거리던 그는 잠시 후 투구를 벗더니 그녀 앞에 정체를 드러냈다.
“오랜만이구나, 꼬마야.”
“어, 아저씨는…….”
루엘로는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고 경계 태세를 풀었다. 그는 바로 1주일 전에 미용실에서 만났던 난쟁이 요벨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텅 빈 거리를 나와서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1주일 전과 달리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을 보고 아무도 그에게 시비를 걸지 못했다.
“아저씨가 성자님의 부하인지는 몰랐어요.”
“나도 설마 네가 원더스타인 서커스단 소속일지는 몰랐다. 수배령이 떨어졌을 때 알았지.”
요벨은 루엘로에게 해를 끼치기 싫었다. 자신의 본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편견 없이 친절하게 대해준 아이였다. 검은 마도사는 처벌해도 그녀만은 아버님께 상주해 살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니 그냥 얌전히 이곳에 있는 게 어떠니. 원한다면 네 아빠도 살려주마.”
요벨의 제안에 루엘로는 아이스크림을 퍼먹던 손을 멈췄다. 그녀는 멀뚱히 표정으로 요벨을 바라보더니 곧 숟가락을 손에서 놓았다.
“그런 조건이라면 받을 수 없어요. 저도 서커스단의 일원인걸요. 아이스크림도 안 먹을래요.”
“……벌써 파인트를 3통째 먹은 걸 잊었니?”
“웃, 그, 그건…… 제, 제가 낼게요. 용돈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어?”
주머니를 뒤지기 위해 일어선 루엘로는 갑자기 띵 하고 머리가 울리는 것을 느끼며 제자리에서 비틀거렸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일까?
“우욱, 어, 어지러워…….”
“저, 정신 차려라, 루리…….”
삼손도 힘이 빠지는지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요벨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안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아까 가게 주인에게 부탁해 아이스크림에 약을 탔단다. 세 숟가락 먹는 시점에서 넌 곯아떨어졌어야 하는데 그걸 세 통이나 퍼먹을 때까지 버티다니. 너도 대단하구나.”
“우웅, 치, 치사해…….”
루엘로는 고개가 푹 꺾이더니 기절하듯 잠들고 말았다. 요벨은 그녀를 어깨에 짊어지고 이만 가게를 떠났다.
그는 이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괜히 한니발 같은 놈한테 걸렸다간 그녀는 끔찍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그는 이대로 사태가 끝날 때까지 그녀를 감옥에 넣어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