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91)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91화(591/619)
EP.591 20. 방황하는 성자 (58)
아홉 자루의 검이 쉴 새 없이 휘몰아쳤다. 그들의 대결은 10분이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빨라졌다. 끊임없이 베고 찌르고, 막고 흘렸다.
보통 검사들끼리 싸울 때는 2, 3분 정도 검을 섞다가 서로 떨어져서 호흡을 고르고 동작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폭주하는 열차처럼 한계까지 치닫고 있었다. 잠시라도 속도를 늦추는 순간, 이 대결의 승부가 갈림을 다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덟 명의 검사는 정교한 기계장치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서로의 공격과 방어가 거의 대등한 수준의 사고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마치 미리 짠 것처럼 동작들이 막힘없이 흐르는 것이다. 오직 그들의 숨 가쁜 호흡만이 불규칙적으로 들릴 뿐이었다.
분명 그들의 기세는 흉악하기 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눈에 그들의 싸움은 전투라기보다 일종의 군무처럼 보였다. 투기가 발하는 붉은색 궤적들이 어지러이 뒤얽히면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내뿜는 붉은빛에 피는 한 방울도 섞여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직 누구도 서로에게 상처를 내지 못했다.
코르도바 남작을 위시한 여섯 명 검사의 합격진은 말 그대로 ‘완벽’이라 칭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 맞서는 두 사람 역시 만만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이반은 이미 코르도바 남작보다 한두 수 위의 인물이었으고, 리히텐은 가면을 벗었을 때는 남작보다 약하지만 쓰면 그보다 강했다.
그렇게 10분 넘게 싸우다 보니 양측 다 이제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서서히 자신들의 몸이 둔해짐을 느끼는 것이다. 어떻게든 승부를 내야 한다는 필사적인 궁리 속에서 코르도바 남작은 무언가를 눈치챘다. 그것은 바로 상대의 약점이었다.
머리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집중력을 극한으로 발휘하다 보니 그의 감각과 경험이 그것을 가까스로 포착해 낸 것에 가까웠다. 그는 도박하는 심정으로 그 ‘약점’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이반은 코르도바 남작이 조급함에 무리수를 던졌다고 생각했다. 그의 공격은 그렇게 위협적인 것도 아니었고 명중률도 높지 않았다. 운이 좋다고 해도 가면의 끄트머리를 약간 스치는 선에서 끝날 것이다.
‘잠깐, 가면이라고?’
이반이 뭔가 불길한 직감을 느꼈을 때, 그 일은 이미 벌어진 뒤였다. 코르도바 남작의 검이 리히텐의 가면에 달린 끈을 끊어버린 것이다.
경국의 허점. 그것은 바로 가면을 묶는 끈을 지나치게 싸고도는 것이었다. 몇몇 선택지에서 그는 몸보다 가면을 보호하려 들었고, 남작이 그것을 읽어냈다.
경국지색의 가면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리히텐을 향해 고정되었다. 싸움을 구경하던 시민들, 병사들,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에 같은 노천극장의 가면 배우들도 그를 보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저 모습은…….”
“세상에! 그 경국지색이 설마 남자?”
“30대 아저씨가 그런 목소리를 냈단 말이야?”
“그것보다 난 저 사람이 패왕에게 아양 떨었던 게 더 큰 충격인데.”
처형대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숨죽이고 대결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다들 리히텐을 손가락질하며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크윽.”
리히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려하던 일이 결국에 벌어지고 말았다. 사방에서 그를 보며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남자 누군지 알겠어. 리히텐. 맞아. 그 사람이야.”
“리히텐이라면…… 프라빈 최고의 검수 말이야?”
“검술 도장 주인이잖아. 그런 남자가 기녀 연기를 했다고?”
벌써 그의 신분을 알아보는 자도 나왔다. 그가 방금 보여준 놀라운 검술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체가 연상된 것이다.
리히텐은 고개를 푹 숙였다. 상상했던 것만큼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금까지 사람들 앞에서 간드러진 목소리로 패왕에게 교태를 부렸던 그로서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대단한 합격진이군요. 저 혼자라면 3분도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이반은 화제를 리히텐에게서 돌리려고 애썼다. 그가 여기서 평정심을 잃는다면 합격진에 대항하기 어려워졌다.
“과찬일세. 자네 정도 되는 무인에게 여럿이 덤벼서 오히려 미안하군.”
“선배님들의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서 그런지 마치 여섯 자루의 검을 한 사람이 쓰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의 말에 남작은 움찔하고는 뭔가 말하려다가 말았다. 곧 그의 친구가 날카롭게 리히텐을 쏘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동료가 정신을 차리도록 시간을 끄는 것 같은데.”
“약점을 제대로 찌른 모양이야.”
“저 정도 되는 검사가 여장하고 무대에 선다니. 쯧쯧, 사회주의 것들은 문화가 이상하단 말이야.”
“이만 끝을 내지.”
코르도바 남작의 신호에 다섯 명의 검객들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들은 두 사람을 향한 총공세를 펼쳤다.
리히텐은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고 검을 들었으나 이전의 날카로운 기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정체를 드러낸 마당인데도 그의 몸은 저절로 움츠러들어 ‘경국지색’으로서의 연기가 드러나지 않도록 근육과 관절에 제약을 가했다.
“크읏!”
실제로 대결이 재개되자 그는 순식간에 양손에 든 검이 튕겨 나가며 처형대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이반은 그것을 보고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설프게 버티고 서 있다간 목숨이 위태로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제는 나인데.’
여섯 검객이 이제 이반 하나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상대를 여섯 명의 검객이 아닌, 여섯 개의 검을 휘두르는 한 명이라 생각하자 공략의 실마리가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합격진을 깨트릴 방법을 발견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도박이다. 내 직감을 따르자.’
이반은 검을 고쳐 쥐었다.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그는 검에 실은 투기를 거두어들였다. 어차피 이번 시도에서 검과 검이 부딪칠 일은 없었다. 상대를 베든가 아니면 자신이 베여 쓰러지든가.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합!”
그가 마음속으로 대전 상대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360도 전방위를 관찰할 수 있는 시야와 여섯 자루의 검.
자연스럽게 트라이머리 형제와 유라크네가 떠올랐다. 이반의 입에서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반의 상상 속에서 삼두육비의 괴물은 여섯 개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정확히 여섯 검객이 쓰는 합격진과 일치했다.
이반은 놈이 휘두르는 칼들 사이로 어떤 틈을 보았다. 그는 그곳을 향해 뛰어들었다.
투기를 발하면 거기에 신경을 쏟느라 속도와 반사 신경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일단 투기가 실리면 검은 어지간한 물질은 그대로 두 동강 내버리는 위력을 발휘했다.
이 합격진을 부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투기가 실린 검이 공격해 온다고 해도 그것을 피하거나 투기로 맞받아치면 안 됐다. 투기를 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기를 사용하는 상대에게 뛰어들어야 했다.
그것도 아무에게나 시도하면 안 됐다. 합격진의 중심에 있는 코르도바 남작을 노려야 했다.
‘간파한 건가?’
코르도바 남작은 자신이 창안한 합격진의 약점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것을 싸움 중에 알아낼 상대는 없다고 여겼는데, 여기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이반의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처형대가 흔들렸다. 이반의 검이 코르도바 남작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아쉽게 됐군.”
아니, 그건 이반의 바람일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 남작은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했고, 어깨만 베이는 선에서 그칠 수 있었다.
“체력만 건재했다면 그대가 이겼을 것이다.”
코르도바 남작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반을 바라봤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반의 등에서 X자 형태로 상처가 벌어지더니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는 자신의 공격이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공격 역시 허용하고 말았다. 이내 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코르도바 남작은 그가 차라리 이런 식으로 무력화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처럼 재능 있는 검사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지 않았다.
“자, 이제 유라크네. 네 차례군.”
남작은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함성을 내지르는 것을 들었다. 역시 군중은 군중. 방금까지 야유하던 그들이 지금은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역시 약자들은 이기는 쪽의 편을 들기 마련이다.
“아버님…….”
“그래. 다시 말해 봐라. 발렌틴을 네가 죽이지 않았다고? 그게 무슨 의미냐.”
코르도바 남작은 검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대답 여하에 따라 바로 그녀의 목을 날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몇 발짝을 떼기도 전에,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웠다.
“멈추시오.”
“누구지? 아, 자네군.”
뒤를 돌아본 남작은 리히텐이 다시 처형대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왼쪽 다리를 절뚝이며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처형대 위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다리를 다친 듯했다.
“그 다리로 싸울 건가.”
“그렇소.”
리히텐은 양손에 검을 쥔 채 그를 노려보고 섰다. 아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놀라울 정도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냥 약간의 응원이…… 있었소.”
볼썽사납게 처형대 위에서 나가떨어진 그를 구해준 것은 바로 수지였다. 그녀는 가면을 써 역발산기개세를 발휘해 10m 위에서 추락하는 그의 몸을 받아냈다. 힘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데 서툴다 보니 그 과정에서 그의 왼쪽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끄윽, 제가 평소에 여자는 깃털처럼 다뤄야 한다고 말했잖습니까?”
“지금 경국님은 여자가 아닌데…….”
둘은 입을 다물고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연인은 상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었지만, 기대했던 대로의 사람이었다. 패왕은 용감했으며, 경국은 정열적이었다.
“방금 검술 너무 멋있었어요.”
“굴러떨어진 게 말입니까?”
“아니, 그전까지 그랬다는 거…….”
“그것보다…… 일단 좀 내려 주시겠습니까? 그래도 남자인데 이런 자세로 안겨 있으니 좀 민망하군요.”
“앗? 네, 네!”
수지는 공주님처럼 안고 있던 그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그는 그녀가 부러뜨린 발목의 상태를 가늠해 봤다. 아무래도 더 싸우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저는 물러나야 할 것 같군요.”
“죄송해요…….”
“아니요. 어처구니없게 무너진 제 잘못이죠. 의도하지 않아도 몸이 굳어버리더군요. 정체가 공개되어 버렸으니까.”
“아.”
수지는 리히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아까 그랬다. 가면을 벗고 사람들 앞에 서니까 몸이 떨리고 자신감이 뚝 떨어졌었다. 그나마 그때는 사람들이 자신의 다음 말을 기다려 주기라도 했었지, 0.1초의 방심이 승부의 향방을 가리는 검술 대결에서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수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리히텐을 바라봤다. 자신은 아까 병사들에게 조롱당하던 중에 그의 도움을 받아 가면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자신 쪽에서 그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곧 답을 찾았다. 그녀가 패왕으로서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도 한결같이 자신을 패왕으로서 대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관중들의 소리를 들어보니 결판이 난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이반 군이 진 모양입니다. 그래도 괴물서커스단에는 다른 동료들이 있으니까, 그들이 알아서 하겠…… 저기, 패왕님?”
리히텐은 그윽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수지를 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는 그녀가 내려다보는 것 같은 위압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등과 허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리히텐은 기겁했다. 이 동작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모를 그가 아니었다.
“자, 잠시만……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그대는 내 연인이오.”
“지금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데…… 읍!”
수지는 그의 몸을 안고 그대로 그에게 입맞춤을 날렸다. 사람들의 열광적인 함성이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