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595)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595화(595/619)
EP.595 20. 방황하는 성자 (62)
“미구엘은 제 무덤을 판 거야.”
생애 마지막으로 후련한 승부를 펼친 덕분일까. 코르도바 남작은 혈육에 대한 정에 초탈해서 객관적인 시선에서 아들의 죽음을 바라볼 수 있었다. 트라이머리 형제는 그런 그를 보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든가. 막무가내로 죽이려 들다가 지금 와서 이게 뭐야.”
“이건 차별이야, 차별!”
“맞는 말씀. 유라 씨가 귀족 자제라도 이랬을까?”
그들의 항의에 코르도바 남작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첫 마디.”
“뭐?”
“저 아이 목에 칼을 들이밀고 질문했을 때, 첫 마디가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이길 바랐다. 그 한마디를 바라고 그 먼 길을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었어. 사정을 듣고 싶었다.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지만 저 애는 내 기대를 배신했지. 자신이 죽였다고 했어. 나는 또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수배 전단을 보고 알게 됐지. 너희 단장. 그 남자의 인상착의. 그는 발렌틴을 되살렸다는 남자와 동일 인물이었어. 내 아들이 혹시 두 사람에게 농락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랬군요…….”
유라크네는 이제야 남작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이번 일은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셈이었다.
원더스타인이 그녀의 오두막을 찾았던 것은 과연 남편이 그녀와 재회하는 데 성공하고 영면을 맞이했는지 확인하고 위해서였다. 남편을 잃은 그녀가 잘살고 있는지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그녀는 그를 남편의 원수로 여기고 죽이려 했었다.
사건의 원인은 그녀의 남편이 별빛을 몰래 훔쳐서 그녀에게 먹인 탓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걱정한 나머지 솔직하게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아마 며칠 있다가 말하려고 했을 것이다. 자신은 이미 죽었고 얼마 안 있어서 세상을 떠날 거라고.
아나이스와 바텔은 아무 말 없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유라크네의 증언과 남작의 이야기에 나온 비행선 사고는 그들도 익히 알고 있던 것이었다. 아나이스의 아버지가 4년 전 그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설마 원더스타인이 그 자리에 있었다니.
‘그 장난스러운 미소 뒤에 얼마나 깊은 사정을 숨기고 있었던 건지.’
아나이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녀는 원더스타인이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책임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등 굽은 노인네’와 ‘지네 영감’이라 불리는 작자들이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원더스타인과 대적중인 자들. 그들이 그녀의 아버지와 유라크네의 남편을 죽였다.
하지만 아나이스는 그 사실 자체보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그가 자신에게 숨긴 것이 섭섭했다. 아버지에게 자신을 고쳐 달라는 부탁을 받아 놓고 막상 그녀를 보러 왔을 때는 그녀의 돈에만 관심 있는 척 접근했다. 고마우면서도 참으로 얄미운 사내였다.
“우리 6인의 합격진은 사실 육검술을 여섯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나눈 것이다. 네가 우리집 며느리로 들어오게 된다면, 혹시나 네 자식도 너처럼 팔이 여러 개라면 어떤 검술을 익히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어느 날 벼락처럼 떠오른 것이지.”
코르도바 남작은 검술이 적힌 교본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그것을 익힐 수 있을지는 걱정하지 않았다. 방금 그와 겨뤘던 이반이나 그의 스승이라는 원더스타인 같은 실력자라면 알아서 잘 지도해 줄 것이다.
“프롤로 그자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은 미안하구나. 설마 그런 악독한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죽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유라크네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문제 없을 테니까.”
“약 만드는 속도로 봤을 때, 모두 구하긴 무리인 것 같던데.”
“약은 위중한 환자들을 위해 사용한 거였어요. 실제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따로 있었죠. 보실래요?”
유라크네는 그를 부축해 천막 입구로 끌고 갔다. 그제야 남작은 바깥에서 들리는 비명과 고함이 고통과 공포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실컷 웃으며 보냈다.
***
“나만 믿어.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찰리는 떨리는 클라라의 몸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그녀의 가슴에 손을 갖다 댔다.
‘으으, 불결해. 손 떼. 이 더러운 자식아. 내 몸은 오라버니 것이라고.’
클라라는 그에게 욕을 한 바가지 내뱉고 싶었지만 그를 속여야 했기에 그러지 못했다. 그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몸을 뺄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더욱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2년 전만 해도 이 반대였었다. 클라라가 그에게 안기려 했고 찰리가 모르는 척 밀어냈었다. 그때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고향에는 엘라라는 미래를 약속한 친구가 있었고, 그 황금 천칭 레이나도 편지로 그에게 구애하고 있었다. 클라라는 그에게 3순위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엘라, 레이나, 라테나, 니카 등에게서 경멸받고 남자로서 자존감은 한도 끝도 없이 추락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좋아한다고 매달렸던 클라라가 원상태로 돌아오자, 그는 반쯤 이성을 잃었다. 다소 무리해서라도 남자로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다.
“하, 하하, 서, 선배, 조, 좀 이상하다. 응?”
클라라는 계속해서 끈덕지게 달라붙는 찰리를 한 대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한 선택인지는 둘째치고 그녀가 그를 이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이곳은 성역이었고 마도의 힘은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체적 능력이 높은 그가 그녀보다 강했다.
“딱딱하게 선배라니. 아까 말했잖아. 이제 오빠라고 부르라고.”
“아하하…… 왜, 왠지 입에 안 붙어서…….”
오빠는 누구 마음대로 오빠야. 나한테 오빠는 한 명뿐인데.
“그거 알아? 집시는 사촌끼리도 결혼할 수 있대.”
“그, 그래요?”
어쩌라고 개자식아.
복도를 거닐다가 방에 들어오자, 찰리의 행동은 더 과감해졌다. 그녀가 작은 신호라도 준다면 당장이라도 그녀를 덮칠 기세였다.
‘으앙, 오빠. 나 어떡해.’
클라라는 마침 방안에서 주운 가위를 등 뒤로 몰래 쥐었다. 만약 이 재수 없는 자식이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선을 넘는다면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만히 있지 않을 작정이었다.
‘유혹하는 건가.’
찰리는 그녀가 뒷짐을 지고 자신을 향해 눈을 치켜뜨는 행동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그는 그녀에게 끈적한 눈빛을 보내며 서서히 다가갔다.
‘이 자식이 진짜…….’
클라라는 더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가위를 휘두르려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계십니까?”
찰리를 도련님이라 부르는 것은 프롤로의 여섯 자식밖에 없었다. 프롤로는 최측근인 그들에게는 찰리의 정체를 공개했다. 일부는 경계하고 일부는 질투하는 듯했지만, 방금 문을 두드린 사람은 그래도 그를 가장 정중하게 대했다.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이러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형님.”
찰리는 좋은 분위기를 망친 요벨에게 짜증을 느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오른팔이라는 남자에게 무례하게 굴 수는 없었다. 난쟁이는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바깥의 상황을 그에게 전달했다.
“드디어 원더스타인의 처형이 진행되는 겁니까?”
“네. 앞으로 15분 정도면 놈이 이 건물의 중앙홀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기대되는군요. 용건은 그것뿐입니까?”
“저, 아버님께서 그러시기를 포획한 괴물서커스단의 여자 단원들에 대한 처분은 도련님에게 맡기셨다고 하시더군요.”
“맞습니다. 혹시 누굴 잡았습니까?”
“루엘로라는 아이입니다.”
“아.”
찰리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엘라나 레이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니카였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애도 마귀에 쓰여 있었습니까?”
“네. 정확하십니다. 그 아이의 머리카락에 마귀가 있었습니다. 여기 오면서 본 건데 몸을 뺏기도 하는 모양이더군요.”
“원더스타인 그자가 심어놓은 거겠죠.”
찰리는 이제 그가 진짜 악당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클라라의 경우도 그렇고, 그 아이도 그렇고, 엘라나 레이나에게도 분명 더러운 수작을 부려놓았을 게 틀림없었다.
“그 애의 몸에서도 마귀를 제거해 줘야겠군요.”
찰리는 자신이 방금 떠올린 방법을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요벨은 조금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요?”
“일단 시도해 보는 건 나쁘지 않죠. 여기 제 여동생 클라라의 몸에서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봤잖습니까.”
“그렇긴…… 하죠.”
요벨은 찰리의 결정을 따르기로 하고 루엘로가 있는 감옥으로 내려갔다. 클라라는 옆에서 그것을 말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정체가 들통날 게 뻔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루엘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원더스타인의 처형에 관한 것이었다.
“저, 저기…… 오, 오빠?”
“클라라, 드디어 날 그렇게 불러주는 거니?”
“네, 네네. 그런데 저 그러니까 음, 그 처형이라는 거 보러 가고 싶은데요?”
“아, 그래. 그 남자가 죽는 꼴이 보고 싶은 거구나. 그렇지?”
“무, 물론이죠…….”
“네 마음에 충격을 줄 것 같아서 그랬는데…… 네가 바란다면 가야지.”
찰리는 그녀를 데리고 대성당의 가장 깊은 홀로 향하면서 준비한 무기가 무엇인지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성 마테오의 소신. 그것을 들은 클라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설마 그것을 보관하는 장소가 여기였다니. 그거라면 충분히 원더스타인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어쩌면 혼이 소멸할지도 몰랐다.
“찰리, 왔느냐.”
홀의 가장 높은 테라스에 프롤로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래로 보니 홀 안에는 대성당에 남아 있는 병사들이 모두 집결해 있는 듯했다. 그 수만 100여 명이 넘었다.
“그 옆에 아이는 오늘 아침에 퇴마 의식을 받았던 아이구나. 네가 꺼냈느냐?”
“네. 아무래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아서요.”
“흠,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중에 구마 사제에게 확인받아 보거라.”
“네, 아버지. 그런데…… 그건 뭡니까?”
찰리는 프롤로의 발치에 있는 상자를 보며 질문했다. 프롤로는 그를 보며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금 한니발이 귀환했다. 그리고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지. 원더스타인 녀석에게 보여주면 좋아할 거다.”
프롤로는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한니발이 말해주었다. 그는 찰리에게 차마 그것의 정체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서커스단의 여자애들을 많이 걱정하던데 이것이 무엇인지 알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왔군.”
잠시 후, 쾅 하며 홀의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바닥을 나뒹구는 병사들을 밟고 넘어 원더스타인이 홀 안으로 진입했다.
‘오라버니…….’
클라라는 수심에 잠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수백 명의 전력을 모두 깨부수고 기어이 여기까지 도달한 그가 자랑스러우면서도 걱정됐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성화 앞에서 혼을 제 형태로 유지할 수 없을 터였다.
“검은 마도사를 막아라!”
병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를 홀의 중앙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그러면 성스러운 불꽃이 내려와 그를 불사를 것이었다.
어차피 성화는 평범한 사람의 혼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 믿음이 투철한 사람일수록 열기조차 느끼기 힘들었다. 설사 혼에 직접적인 타격이 간다고 해도 그들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생각이었다. 악과 싸우다 성스러운 불꽃에 혼이 불타 승천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어떡하지? 도대체 어디서…… 아!’
초조하게 홀을 둘러보며 불꽃을 찾던 그녀는 홀의 천장 중 일부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