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605)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605화(605/619)
EP.605 21. 한여름 밤의 꿈 (1)
시에라마드레 산맥은 훈련받은 레인저가 아니면 몇 발짝 떼기도 전에 길을 잃는다는 악명 높은 마경이었다. 나무를 캐러 들어갔던 청년이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든가 외부와 300년 동안 접촉이 없었던 촌락이 발견되었다든가 하는 종류의 소문이 무성했다. 카리브해의 선박 실종 사고만큼이나 잡지사 기자들이 가십거리로 자주 이용하는 소재였다.
레인저의 안내 없이 일반인이 시에라마드레를 넘기 위해서는 ‘베르너 가도’를 이용해야 했다. 그것은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로 길이가 장장 100여 km에 달했다.
베르너 가도는 세계 물류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고 ‘세계의 목구멍’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그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최소 1달 전부터 표를 구매해야 했다. 게다가 요즘은 카리브해에서 해적들이 활개 치는 바람에 표를 구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괴물서커스단은 아나이스가 수완을 발휘한 덕에 비교적 표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때는 8월 말. 프라빈을 떠난 그들은 베르너 가도에 진입했다.
베르너 가도를 통과하는 일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엄청난 피로를 유발했다. 높이 10m에 폭은 50m나 되는 거대한 규모의 터널이었으나 안은 수레와 사람들로 북적여 혼잡했다. 전등을 켜 놓아도 어둡기 짝이 없었으며, 공기 질도 결코 좋다고 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앞사람을 따라 가만히 따라가기만 하는 일은 단조롭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베르너 가도 중간 중간에는 터널 밖으로 나가 쉴 수 있는 휴게소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휴게소는 하나하나가 소도시 하나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분지였다. 그곳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와 상인들을 위한 교역소가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무역품이 이곳에서 산맥 건너편 어느 곳에 배송될지 결정되곤 했다. 곳곳에서 거래권을 두고 경매가 벌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그곳을 유심히 살피던 아나이스는 가끔씩 경매에 끼어들어서는 몇 가지 품목의 거래권을 낙찰받아 왔다.
그녀는 산맥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그것들의 가격이 몇 배는 뛰어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실제로 그녀가 낙찰받은 품목은 휴게소를 나갈 때쯤에는 가격이 무조건 올라 있었다.
그들이 베르너 가도를 통과하는 동안 그녀가 구매한 거래권은 그녀가 산 가격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즉, 그녀가 구매한 가격은 모두 시세의 최저점이던 것이다.
“놀랍군요. 어떻게 하신 겁니까?”
“시세 변동을 주시하고 있던 품목 몇 개가 있었거든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때다 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때 산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감이라는 소리다. 원더스타인은 살면서 이보다 더 놀라운 기예를 본 적이 없었다.
덕분에 고작 며칠 만에 아나이스는 그들의 1년 치 경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그녀가 어쩐지 서두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래도 한 달 뒤에 있다는 베르그송 상회의 주주총회 때문일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대표 이사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다. 상회의 각종 사업권과 혜택을 피에르에게 넘기면서 말이다. 그 모든 일은 그녀 본인이 아니라 부두교에서 만든 그녀의 도플갱어가 주도할 것이다.
아나이스는 부두교와 담판을 지어주겠다는 원더스타인의 말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 스스로 싸울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는 갖춰두려 했다. 바로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한 지분이었다. 그녀가 프라빈을 출발하면서부터 필사적으로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도 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에게 안심하고 있으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요즘 들어 그는 점점 부두교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리브해에서 들려오는 수상쩍은 소식들도 소식들이지만, 그의 신경을 가장 자극하는 것은 바로 도적 키아라 문제였다.
엘라의 말에 따르면 키아라의 다른 이름은 안나로 그녀와 같은 서커스 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2년 전에 원더스타인이 마을을 찾아왔을 때 죽었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부단장으로 부리면서 신생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으로 있는 이고르라는 노인이 수상한 것은 확실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연구서에도 조수로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였다. 스벤의 과거와 대조하면 그의 행적이 대충 그려졌다.
그의 존재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등장한 시점에서 원더스타인 이상 가는 흑막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키아라가 어쩌다 그와 엮이게 되었냐는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배경 설정을 곰곰이 되새겨 봤다.
원작에서 그녀는 언행이 가벼운 듯하면서도 비밀이 많은 존재였다. 주절주절 개인사를 털어놓으면서도 항상 핵심적인 내용은 은근슬쩍 피해 갔다.
‘내가 여기에 왜 왔냐고? 훔치고 싶은 보물이 있거든. 트릴이라는 보석에 대해 들어봤어?’
‘원더스타인이라는 남자. 암흑가에서도 꽤 이름이 퍼져 있지.’
‘싸울 이유? 충분하지. 내 친구 몇 명도 저자와 연관되어 죽었거든. 무엇보다 저놈은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걸 가지고 있어!’
지금까지 그 친구들이라는 건 암흑가의 범죄자들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건 서커스 학교 친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키아라는 4년 전 베가스의 암흑가에 데뷔해야 했었다. 그녀는 가족을 해친 적대 조직을 단신으로 몰살시키고는 그녀에게 덤벼드는 조직들도 모두 물리쳐 암흑가를 평정했다.
원더스타인은 지금까지 도적에 대한 소문을 수집하면서 원래 역사와 조금 어긋나는 점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법사와 기사의 경우처럼 나비효과가 어떤 식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엘라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2년 전까지 계속 서커스 학교에 있었다고 했다. 그건 나비효과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더스타인이 이 세계에 넘어온 것은 1년 반 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전에 있었던 일들은 원래 역사대로 흘러가야 했었다.
하지만 카아라의 운명은 그전부터 틀어져 있었다. 즉, 그가 빙의하기 전에 어떤 외부 요인이 이 세계에 작용했음을 의미했다.
원더스타인이 가장 의심스럽게 여기는 곳은 바로 부두교였다. 이 세계의 다른 역사는 대부분 그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부두교만은 뭔가 달랐다.
TT3에 등장한 부두교는 지난 10년간 크고 작은 악행을 벌였었다. 파괴 공작, 암살, 인신 공양 등. 하지만 이 세계의 부두교는 그가 빙의한 시점부터 해서 딱히 대단한 활동을 한 게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들리는 소식이 카리브해에서의 활동이 거칠어졌다는 것이었다.
TT3에서 10년 전이라면 역시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을 의미했다. 바로 도적 키아라가 암흑가에 데뷔했어야 할 시점과 일치했다.
그때 벌어진 일이라면 바로 비행선 사건을 들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이 이고르와 비행선에서 충돌하고 경매로 나온 별빛을 손에 넣었을 때.
따져 보면 그 비행선 사건은 뭔가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별빛은 비싸긴 하지만 공공연히 시장에 풀리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과거의 원더스타인은 유독 그때 경매에 올라온 별빛만은 이고르와 충돌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입수하려 했었다.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물건일까? 그것을 왜 그렇게 원한 것일까? 그런데 그게 어쩌다 미래를 바꾸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일까? 아니, 그게 미래를 바꾼 원인이 맞긴 한 걸까?
‘골치 아프군.’
지난 며칠간 원더스타인은 이 문제에 매달렸지만, 이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도 며칠 만에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니카의 공이 상당했다.
그가 프롤로에 의해 성화에 타죽기 직전까지 몰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뱀 마녀는 노발대발했다.
-두두의 원수를 갚겠다고 벼르더니 결국 계획이라는 게 정면으로 부딪치는 거였습니까? 신이 당신을 빅터의 후계자로 선택해 주길 바라고? 이 멍청이! 잘 풀렸으니 망정이지 그러다 당신이 죽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그녀는 장문의 잔소리에 더해 전 대륙의 제국 정보부의 창구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편지에 동봉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언제든 도움을 청하라는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그 권한을 니카에게 이양했다. 어차피 그는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이 시대의 첩보망은 인터넷처럼 검색어를 입력한다고 원하는 정보가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원더스타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까다로운 조건식과 명령어를 동원해야 원하는 정보를 캐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니카와 그녀의 시녀인 나타샤가 놀라울 정도로 잘 처리했다.
16세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업무 능력이었다. 그녀는 역시 고작 일개 서커스단의 운영 책임자로 두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원더스타인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뱀 마녀에게 부탁해 니카에게 작은 영지라도 떼어주는 게 어떤가 싶었다. 그거라면 그녀가 가문에 복귀한다고 해도 어깨를 펴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단장님, 1km 앞에 저희가 오늘 쉬기로 한 휴게소가 있어요.”
생각에 잠겨 앞사람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오늘 일정도 끝났다. 그들은 총 1주일에 걸쳐 베르너 가도를 통과하기로 했다. 하루에 15km를 걷고 나머지 시간은 분지에서 쉬는 것이다.
화물을 운반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60km를 걷기도 한다지만 그들은 그렇게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여행자용 레인은 화물용 레인에 비해 보행 속도도 느렸기에 빨리 가기도 힘들었다. 베르너 가도에서는 안전상의 이유로 추월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측의 갈림길을 따라 터널을 빠져나가니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가 나타났다. 그들은 마을 입구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클라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셨나요.”
단정한 차림새에 차가운 표정으로 사무적인 말투를 쓰는 그녀에 대해 단원들은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원더스타인, 루미, 마야, 설리반을 제외한 사람들은 그녀가 영혼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성화에 직격당한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와, 클라라 양, 고생 많았어요. 매일 2시간 먼저 일찍 출발하려니 안 힘들었어요?”
“덕분에 우리가 편하군. 숙소도 다 괜찮고. 솔직히 다시 깨어난 뒤로 일 처리가 뭔가 깔끔해진 느낌이야.”
“선배, 내일은 저랑 같이 갈까요? 숙소 구하는 건 그렇다 쳐도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단원들은 그런 클라라에게 어색함을 느꼈지만 그래서 일부러라도 더 친근하게 말을 붙이려고 애썼다. 그녀가 다친 것은 유라크네를 구하려다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쪽에서 불편하다는 이유로 거리를 둔다면 그것도 못 할 짓이었다.
활달하던 사람이 갑자기 차분해지니 괜히 안쓰러웠다. 게다가 이렇게라도 하면 그녀의 기억이 빨리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클라라로서는 그런 그들의 호들갑이 짜증스러웠다. 그녀는 엘리트 학교의 수석에다 전교 회장 출신이라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어쨌기에 이들이 자신을 그렇게 애 취급하는지 알 수 없었다.
“됐으니까 빨리 이동하죠?”
그녀는 차갑게 톡 쏘아붙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달라붙으려는 카렌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우니까 좀 떨어지지?”
“우왓, 선배. 너무 해. 예전에는 가슴을 만져도 그냥 받아줬는데…….”
“닥쳐.”
카렌은 그녀의 구박에도 뭐가 좋은지 깔깔 웃었다. 그녀의 감정을 끌어내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클라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자신이 이런 곳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사정은 들었다. 파이렌 교수가 자신을 대상으로 흑마술을 펼쳤고, 그 때문에 몸 상태가 나빠진 자신은 유일하게 그 병을 다룰 수 있었던 원더스타인에게 몸을 의탁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