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606)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606화(606/619)
EP.606 21. 한여름 밤의 꿈 (2)
클라라는 자신의 병이 상당히 위중했음을 짐작했다. 야망을 잠시 접어두고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삼류 서커스단에 들어갔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다 믿어도 자신이 몸을 던져 원더스타인을 구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었다. 자신은 결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 타인은 도구에 불과했다. 그녀가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찰리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를 짝으로 선택했던 것도 그가 유용했기 때문이지 다른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선배, 여기 선배 짐이요.”
“고마워.”
클라라는 레이나가 건네는 가방을 부드러운 태도로 받아 들었다. 지금 그녀는 레이나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그녀가 레이나를 미워했던 것은 자신이 점찍은 남자가 감히 다른 여자를 선택한 것이 자존심 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찰리는 범죄자로 수배당한 상태였다. 한때 존경받던 업계 유망주가 한낱 범죄자로 전락했다. 지금 보면 그랑 엮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특히, 그가 클로팽의 손자로 밝혀진 이상 이제 그는 그녀에게 있어서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툴 잠재적 경쟁자에 불과했다. 그녀는 그가 영원히 업계로 복귀하지 못했으면 하고 바랐다.
“단장님, 기다리면서 새로 살 장비들을 카탈로그 형식으로 뽑아 봤어요.”
베르너 가도는 짐의 무게에 따라 요금을 받았고 그 가격은 상당히 비쌌다. 그래서 그들은 낡은 도구와 장비는 모두 프라빈에서 처분하고 베가스에 도착하면 새로 사기로 했다. 클라라는 그것을 혼자서 하루 만에 용도별로 브랜드별로 가격별로 모두 정리한 것이다.
“빠르군요.”
원더스타인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보고서는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악령 주제에 일 처리 능력만큼은 진짜 클라라보다 나은 것 같았다.
“이 정도는 기본이죠. 학생회 서기부터 시작해서 동아리 총무, 전교 회장까지 맡았는걸요.”
클라라는 원더스타인의 명령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그와 거리를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는 이용할 가치가 있는 남자인 동시에 조심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그를 오빠라고 부르면서 따르기까지 했다니 더욱 믿기 힘들었다. 그녀는 자라면서 겪은 일 때문에 ‘가족’이라는 개념을 혐오했다.
실제로 자신이 깨어난 이후로 자신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묘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자신의 기억에 대해 질문하면서도 뭔가 재보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그를 구했다는 것은 그의 증언 외에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어쩌면 이 남자는 자신을 방패막이로 썼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당장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1년 동안 정확히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알아내기 전까지 이곳에 붙어 있기로 했다.
숙소에 들어선 단원들은 짐만 풀고 바로 식당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러나 루엘로만은 식사 생각이 없다며 빠졌다. 우몬과 함께 서커스단 제일의 대식가 자리를 다투던 그녀가 머리카락이 밀린 뒤로 괴력도 식탐도 잃어버렸다.
“조금이라도 먹지 그래. 아침 먹은 뒤로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입맛 없어.”
“그래도 아빠는 우리 루리가 걱정되는데…….”
“아 씨 진짜.”
루엘로의 입에서 짜증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노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생각 없다고!”
루엘로는 그렇게 버럭 소리치고는 모자를 눌러쓰고 숙소를 나가버렸다. 충격에서 깨어난 미노바는 뒤늦게 그녀를 쫓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지만, 원더스타인이 제지했다.
“혼자 있게 두죠.”
“하지만 6살짜리 애를 어떻게…….”
“호크를 붙였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예요. 사방에는 레인저들이 경계를 펼치고 있는데 가 봤자 어딜 가겠습니까.”
미노바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서 루엘로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그러다 이제는 뒤쫓아 가기에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그는 겨우 포기하고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루엘로는 그날 이후로 상당히 반항적으로 변했다. 사춘기가 일찍 찾아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늘 혼자 있고 싶어 했고, 잘 웃지도 않았다. 그녀가 느끼는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괴력이나 식욕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몸을 공유하던 친구를 잃어버렸다.
디들 그녀를 걱정했고 그녀에게 평소보다 몇 배는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신경을 더 곤두서게 만든 것 같았다. 그녀는 결국 며칠 전에 한 번 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로 주변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이해해. 이해할 수 있고말고.”
트라이머리 형제는 루엘로가 나간 방향을 보며 낮게 읊조렸다. 그는 단원중에서 유일하게 루엘로를 이전과 다름없이 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일을 함께해 왔다. 타인에게는 상당히 삐딱하게 구는 그들도 서로에게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샴쌍둥이들끼리의 유대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견고했다. 그들만큼 운명 공동체라든가 삶의 동반자라는 단어를 깊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힘들 거야. 내버려 둬. 남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으니까. 이해하는 척하는 게 더 그애를 힘들게 하는 거야. 부모라고 예외는 없어.”
그 말에 미노바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트라이머리가 그렇게 말해주니 그나마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자, 그러면 식당으로 이동할까?”
엘라가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 덕분에 단원들은 금방 활력을 회복했다. 서커스단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에 그녀만 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스스럼없이 구는 그녀도 현재 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어? 뭐, 뭐라고 했어? 아, 그, 그거? 그렇지…….”
방금 원더스타인은 그녀에게 가벼운 잡담을 건넨 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프라빈을 떠난 이후 계속 이랬다. 그녀는 원더스타인과 마주하면 재빨리 시선을 피하거나 그가 말이라도 걸면 화들짝 놀랐다. 실제로 프라빈을 떠나고 나서 두 사람은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안나의 생존과 이고르의 존재를 안 뒤로 그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변했다.
이고르. 그는 유라크네의 이야기에 나오는 또 다른 바이오맨서였고, 프롤로의 증언에 따르면 원더스타인을 창조하는 데 일조했으며, 스벤의 말을 들어보면 교활한 악당이었다, 그런 자가 죽은 줄 알았던 안나를 데리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처럼 괴물서커스단을 이끌면서 말이다.
엘라는 당연히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의 범인으로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원더스타인은 단원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이고르는 자신과 오랫동안 대립해 온 존재며 어쩌면 앞으로 부딪칠지도 모른다고.
혹시 그 ‘대립’이 일어난 장소에 그녀의 고향 마을도 있는 걸까?
만약 엘라가 그것에 대해 질문했다고 해도 그는 제대로 대답해 주기 힘들었다. 그로서는 ‘TT0의 최종보스’라는 퀘스트 창에 떠오른 내용과 밝혀진 사실들을 적당히 조합해 진상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원본 원더스타인의 과거를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감독실에 물어보고 싶어도 그는 현재 상태창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의 영혼에 부여된 성자의 신앙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성역에 있을 때처럼 마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데 제약을 가했다.
물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해도 감독이 그에 대해 제대로 답해줄지 의문이었다. 지금에야 느끼는 건데 이 감독실은 만능 QnA가 아니었다. TT0의 감독을 자처하는 키르쿠스의 의도가 진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퀘스트 창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그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 들었다.
설마 거짓말까지야 하지 않겠지만 어떻게 자신을 극적인 갈등으로 몰아 넣을지 몰랐다. 돌이켜 보면 놈이 제안한 퀘스트와 조언 때문에 원래라면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했을 부분도 방심하고 말았다.
다행인 점은 지금까지 엘라가 과거에 대한 질문을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언급하는 것을 상당히 주저하고 있었다.
프롤로 사건이 끝나고 원더스타인이 마을 사람들과 병사들을 학살한 이유가 밝혀지면서 엘라는 ‘자신이 살던 마을에도 그 정도 사정이 있다면 이해해 주겠다’라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안나의 생존과 이고르의 존재까지 드러나면서 아예 ‘원더스타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가정이 생겨났다. 정말 그렇다면 그녀는 엉뚱한 사람을 그동안 원망해 온 꼴이 됐다.
물론 그동안 원더스타인이 일부러 진실을 숨겨온 죄도 있었다. 하지만 앞선 사례에서 봤듯이 그의 행동에는 다 숨은 배려가 있었다. 만약 그가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면?
‘당신과 잠시라도 함께 있기 싫어. 이 쓰레기.’
‘역겨운 소리 하지 마, 악마 주제에.’
‘흥. 당신이 같이 뒈지지 않아서 아쉬울 뿐이야.’
‘왜 살아 있는 건데? 죽어! 죽어 버리라고!’
그동안 그녀는 그에게 셀 수 없는 폭언을 가했다. 말뿐인가. 그를 죽이려고 칼을 휘두르기까지 했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얼마든지 그를 욕하고 걷어차고 상처 입힐 수 있었다. 그가 한 짓을 보라며 자신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가 사실 악당이 아니라면 그녀는 그에게 큰 죄를 저지른 셈이 됐다. 물론 혹자는 그가 진실을 숨겼으니, 자업자득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서로가 남일 때 책임 소재를 따질 때나 가능한 셈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오랫동안 상처 주고 괴롭혔다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게 했다.
지금까지는 ‘당신이 그런 일을 저질렀지만 나는 그래도 당신을 좋아해 주겠다.’라는 식으로 그녀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인 체하며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이 그녀가 알던 것과 다르다고 판명 난다면. 그녀는 감히 그를 계속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녀는 요즘 원더스타인과 마주치는 것이 버거웠다. 차라리 예전처럼 얼마든지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그에게 저지른 짓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을 텐데.
단원들 몇은 그런 엘라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서로 눈치를 봤다. 클라라도 그렇고, 루엘로도 그렇고 어째 서커스단의 공기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그런 와중에 늘 한결같은 사람이 있다면 마야뿐이었다. 그녀는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뒤로도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에서 무슨 풍파가 벌어져도 혼자만의 생각에 몽롱하게 잠겨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대마법사가 되었음을 밝혔을 때, 원더스타인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떠올렸다. 그는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양어깨를 토닥이기도 했고 와락 껴안고 제자리에서 돌기도 했다.
‘해냈군요. 해냈어! 마침내 드디어! 이제 1년 뒤에는…….’
‘1년 뒤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쨌든 축하합니다! 드디어 한시름 덜었군요.’
‘무슨 시름이요?’
‘하하, 불세출의 천재를 이대로 정체시켜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요.’
스승님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바보 같긴. 자신은 언제나 감사하기만 한데.
마야는 그날의 기억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밤만 되면 혼자 으슥한 곳에 가서 잘스타인 씨를 소환해 그날의 기억을 재생하게 했다. 물론 갈수록 사심이 들어갔는지 잘스타인 씨의 애정 표현이 과격해졌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대마법사에 올랐음에도 아직 그녀는 ‘상(相)’의 신비를 완전히 터득하지 못했다. 대마법사가 설마 신비 하나 깨우치지 못한 채 그 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면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었다. 마력의 진리를 깨우쳤음에도 아직 신비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엄마가 남긴 메모리 레코드를 읽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