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607)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607화(607/619)
EP.607 21. 한여름 밤의 꿈 (3)
상의 신비를 깨닫는 순간은 사람마다 달랐지만, 통계를 내보면 그래도 가장 많은 경우가 바로 실연당했을 때라고 한다.
마음의 도화지는 주인의 갈망을 채워 넣는다. 눈으로는 볼 수 있지만 결코 가질 수는 없다는 그 충격이 마음에 가장 깊은 자국을 남길 때가 사랑하는 존재를 잃을 때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마야에게도 적용되는 통계였다. 그녀도 죽은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각성한 순간 상의 신비에 들어설 수 있었으니까.
엄마의 죽음은 전해 들었을 뿐 직접 보지 못했다. 만약 그녀의 죽음이 기록된 기억을 직접 봤다면 진즉에 상의 신비를 깨달았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직접 풀겠다고 다짐했다. 아빠가 지인에게 부탁해 재생해 주겠다는 제안을 몇 번이고 거절했다.
정작 나중에 그녀가 그것을 재생할 수 있을 정도의 마법사가 됐을 때는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지 오래라 신비에 진입할 수 없었다. 모순적인 일이 아니지 않을 수 없었다.
월리를 마음에 되새긴 이후로 많은 것을 도화지에 담았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신비를 터득하지 못했다.
그래도 마야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녀의 스승, 원더스타인이 옆에 있었으니까. 그분만 믿고 따른다면 언젠가 엄마가 남긴 기억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과연 자신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많은 것을 베풀었는지 궁금했다. 지금이야 자신이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랐지만, 작년 초만 해도 신비 하나 터득하지 못한 초보 마법사에 불과했다.
‘마야 양이 예뻐서요.’
마야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심심했다. 조금 양념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미래의 제 아내에게 투자하는 데 다른 이유가 필요할까요?’
마야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좋긴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졌다.
‘마야 양에게 재능이 있어 보이더군요.’
마야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제일 확률이 높았지만, 재미는 별로 없었다. 그녀는 그것보다 앞선 경우일 때 자신은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지 상상해보는 게 좋았다.
‘평생 스승님 옆에 있고 싶어요.’
‘저는 스승님에게 제 모든 걸 드릴 수 있어요. 몸도 마음도.’
‘그러면 이제 스승님이 아니라 서방님이라 부를까요?’
마야는 숨이 턱 막혀 왔다. 정말로 그런 상황 온다면……. 안 되겠어. 오늘 밤 당장 잘스타인 씨를 불러 예행연습을…….
그때, 가만히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던 엘라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친구가 무표정한 얼굴과 별개로 속으로 엉뚱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근거는 바로…….
“마야, 저 기분 나쁜 고양이 좀 치워줄래?”
“……미안.”
월리는 그녀의 속마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튀어나와 마음을 대변하곤 했다. 지금도 녀석은 눈을 초승달처럼 휜 채 ‘픗픗픗’ 하고 웃으며 뒷다리로 일어서서 앞다리를 휘저으며 엉덩이를 씰룩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상당히 기괴한 꼴이었다.
마야는 녀석을 재빨리 지워버렸다. 대마법사가 되었으니 이제 다 같이 있을 때는 망상에도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혹시나 잘스타인 씨까지 멋대로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니까.
***
원더스타인이 눈을 뜬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체력이 남아돌았다. 그의 육체는 이미 보통 인간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정신력 역시 웃는 남자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터널을 몇 시간 걷는 정도로 지치지 않았다.
그는 마당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성자의 신앙이 몸에 스며든 뒤로 상태창의 활용이 힘들어진 그는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늘었다.
일단 메인 퀘스트의 진행은 순조로웠다. 배지를 3개나 얻었고, 나머지 3개도 서커스단의 전력이면 충분히 획득할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이 9개월이라는 것은 조금 빠듯해 보였지만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서커스 쪽으로는 이제 걱정할 게 없었다. 문제는 역시 이고르 서커스단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일단 베가스에 도착하면 그들에 대한 공략법부터 작성해서 단원들에게 숙지시킬 생각이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공격해 오든 대응할 수 있게 말이다.
도적 키아라에 대해서도 대책은 충분했다. ‘도플갱어’ 공략을 떠올리면 된다. 기사와 마법사로 도적을 때려잡는 법. 그것을 이반과 마야에게 익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역시 가장 큰 난관은 이고르였다. 명색이 ‘TT0의 최종 보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바이오맨서’라는 존재를 수천, 수만 번은 죽여 봤으니까.
생각에 잠겨 걷던 원더스타인은 아무 생각 없이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뭔가 물컹한 것이 느껴지더니 엉덩이 아래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클라라 양?”
“으윽, 갑자기 깔고 앉다니…….”
설마 벤치에 그녀가 누워 자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베개와 이불을 챙겨 나온 것을 보니 본격적으로 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째서 이런 곳에서 자는 겁니까?”
“그냥 안에 있기 불편해서요.”
원더스타인은 오늘 그녀와 방을 같이 쓰는 사람이 유라크네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 혹시 자꾸 베개를 팡팡 치던가요? 그건 유라크네 씨의 잠버릇…….”
“그걸 왜 단장님이 알고 있는 건데요?”
“……이라고 예전에 엘라 양이 알려줬죠.”
클라라는 수상쩍다는 눈초리로 그를 한 번 흘겨보더니 곧 이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계속 주무셔도 되는데요.”
“이미 깼어요.”
“그러면 안에 들어가실 건가요?”
클라라는 불안한 눈으로 숙소를 바라봤다. 정원에는 등불이 있어 그래도 빛이 있었지만, 건물 내부는 어두워서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여기 있을게요. 단장님 옆에 앉아도 되죠?”
“물론이죠. 원래 클라라 양 자리니까요.”
“진즉에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 혹시 베란다 있는 방을 루엘로 양에게 뺏긴 것 때문에 아직 화났나요?”
클라라는 매일 몇 시간 먼저 앞서가서 숙소를 잡는 대신 가장 먼저 방을 고를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오늘은 식사를 마치고 오니 어느새 돌아온 루엘로가 먼저 방을 잡고 자고 있었다. 그것도 안에서 문을 잠그고 말이다. 결국 클라라는 찜했던 방을 포기하고 유라크네와 함께 잘 수밖에 없었다.
“저도 알아요. 애가 우선이죠. 외부인 주제에 눈치가 없진 않아요.”
“클라라 양은 외부인이 아닌데요? 같은 식구죠.”
“…….”
클라라는 말없이 원더스타인을 바라봤다. 그녀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곧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원더스타인은 중간중간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겉으로 봐서는 마야의 평소 표정과 비슷했다. 나른하고 무심했다.
그러나 그녀의 무심함은 애써 가장한 것처럼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를 안에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현재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여전히 자신이 클라라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으로 충분한 걸까. 아니면 자신 쪽에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는 걸까.
그때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몸을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추운 모양이었다. 아직 8월이라고 해도 이곳은 산맥 깊은 곳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며칠간 먼저 몇 시간 일찍 일어나서 출발한다고 무리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코트를 벗어서 그녀를 덮어주려 했다. 악령이건 뭐건 그녀의 몸은 진짜 클라라의 것이었다.
“됐어요.”
그러나 클라라는 그의 호의를 거부했다. 심지어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리깐 눈으로 가만히 정면만 응시할 뿐이었다.
“꽤 추워 보이는데요?”
“애써 저한테 친한 척할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싸늘한 기색에 원더스타인은 동작을 멈췄다.
“친한 척이라뇨.”
“말했잖아요. 제가 눈치가 없진 않다고. 다 느껴져요. 단장님이 절 경계하시는 거.”
“아, 그건…….”
“제가 싫으신 거죠? 가끔 적대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단원들 앞에서는 티를 안 낼 테니까요. 그때는 그냥 친절한 단장님인 척하셔도 돼요. 다만 굳이 둘이 있을 때도 이러실 필요 없어요.”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표정에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쓸쓸함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배려가 부족했군요.”
“괜찮아요. 익숙하니까.”
“익숙해요?”
클라라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입을 열었다.
“푸리 다이랑 클로팽과 만나셨다면 제 과거에 대해 다 알고 있겠군요.”
“대충은요.”
“철이 들기도 전에 아빠는 할아버지한테 손발이 잘려서 쫓겨났어요. 거리를 전전하며 여전히 곡예로 연명을 해보려다 얼마 안 되어서 돌아가셨죠. 어머니는 진즉에 아버지를 내버리고 도망쳤고요. 그러다 재혼을 잘했는지 부잣집에 들어갔어요. 새 남편분은 재혼한 여자의 아이를 불러들일 정도로 도량이 넓었죠.”
거기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저 클라라가 그동안 집에 연락을 한 번도 안 하는 것을 보고 사이가 안 좋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새아버지는 친절했어요. 선물도 자주 사 주셨죠. 비참한 몰골의 아빠랑 함께 거리를 떠돌던 제게 있어서 그 집에서 생활하는 건 천국과도 같았죠.”
클라라는 차가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을 번뜩였다.
“새아버지는 저를 당신의 무릎 위에 앉혀두는 걸 좋아하셨죠. 그리고 밤에 제방에 들어오는 것도 좋아하셨어요. 때로는 낮에도요. 엄마가 없는 시간에는 특히.”
원더스타인은 그만 탄식을 내뱉고 싶어졌다. 그랬었나? 언제나 밝은 클라라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나? 자신은 정말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저는 제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단장님에게 무엇을 드렸죠?”
“네? 그게 무슨…….”
클라라는 입가에 가득 조소를 띤 채 그를 바라봤다.
“단장님이랑 잤나요?”
“클라라 양!”
원더스타인은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클라라는 그를 보며 빙글빙글 미소를 지었다.
“알아요. 그러지 않았다는 거. 제 몸인데 잘 알죠. 새아버지처럼 겁쟁이였던 건지 선은 안 넘은 모양이더군요. 그래도 키스는 했겠죠?”
“어, 그건…….”
당황하는 원더스타인을 향해 클라라는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가 곧 몸을 뺐다.
“단장님 입 냄새를 맡아 보니 알겠어요. 한 번 진하게 마셔본 적 있는 냄새예요.”
“……클라라 양이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기 전에 그랬습니다. 제가 한 게 아니라 클라라 양이 한 거였어요.”
“와, 미리 선금을 낸 거였구나. 나 똑똑하네.”
클라라는 자신을 보고 벙찐 원더스타인의 모습을 보며 깔깔 웃었다. 원래 그는 그녀의 자나친 농담에 한마디 질책을 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깨어난 뒤로 웃는 것은 처음 봤다. 오랜만에 원래 클라라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클라라 양은 클라라 양입니다.”
그에 대한 보답 차원일까. 원더스타인은 그것이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이 악령이 언제 진실을 깨달을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그래도 클라라로서 그녀를 대해주기로 했다.
“당신에게 어떤 과거가 있든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당신을 대할 겁니다. 지난 며칠 동안은 죄송했습니다.”
클라라는 그가 입에 발린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눈빛은 변한 것 같았지만 그 정도야 훈련받은 연기자라면 쉽게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이용하면 이용했지. 이용당하지는 않아.’
누군가를 함부로 믿기에 그녀는 너무 많이 배신당해 왔다. 할아버지에게도, 엄마에게도, 새아버지에게도, 좋아하는 선배에게도, 존경하는 스승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