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608)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608화(608/619)
EP.608 21. 한여름 밤의 꿈 (4)
클라라는 다시는 안 속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또다시 사람에게 의지하고 마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것은 일종의 애정 결핍이었다. 어린 시절 가족에게 버려지고 배신당한 경험이 그녀에게 자꾸 기댈 만한 누군가를 찾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그 경계망을 뚫고 다가와 준 대상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주곤 했다. 그러다가 그 대상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받는 것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특히 그중 찰리의 배신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교칙과 학업을 핑계 삼아 확답을 자꾸 피해 놓고 졸업하기 직전에 뒤통수를 쳐버렸다.
이미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그러면 둘만 있을 때 왜 내 손을 매번 잡은 건데. 친구들이 나랑 무슨 관계냐고 물었을 때 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 거냐고. 왜 내가 다른 남학생에게 데이트 신청 받았을 때는 거절하라고 했지?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학창 시절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에 불과했다. 이성적인 무언가를 즐기고 싶지만, 책임은 지기 싫으니, 정식으로 사귀는 것을 피하며 간만 본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에게 매달렸었다.
얼마 전에 그가 완전히 몰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그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흥. 그딴 인간. 나도 처음부터 이용하려고 만난 거니. 잘 됐어.’
물론 그녀는 그것이 거짓말임은 잘 알고 있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해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변명할 뿐이었다.
클라라는 자신을 향해 웃는 원더스타인을 바라봤다. 사람 좋은 척하고 있지만 태연히 자신을 방패막이로 써먹은 남자였다.
아마 파이렌 교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일 것이다. 친절과 이해를 미끼로 사람을 꾀어내어 이용하는 위선자. 의남매라니. 우습지도 않았다. 그걸 선뜻 받아들인 것을 보면 지난 1년간 자신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게 분명했다.
“그래 주시면 고맙고요.”
클라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누그러진 태도로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어쨌든 앞으로 생활을 잘 풀어 나가려면 그와 잘 지내는 건 필수적이었다. 상대에게 동정심을 베풀 여지를 줬으니, 자신은 그걸 잘 받아먹으면 됐다.
“조금 춥긴 하네요. 기대는 것 정도는 괜찮죠?”
“얼마든지요.”
지금도 그를 이용할 뿐이었다. 잘생기고 몸이 좋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베개 대신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혹시 몰라. 그가 자신에게 이성적인 흥미를 느끼면 그건 또 그것대로 이용하기 좋았다.
두 사람은 몸을 맞댄 채 밤하늘을 바라봤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터라 하늘은 좁았지만, 오히려 산들이 암막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인지 별들은 평소보다 훨씬 밝게 보였다.
그렇게 10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주변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장막이 쳐진 듯 깜깜해지더니 주변에 보이던 도시의 다른 풍경들도 어둠에 잠겨가는 것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차분하게 상황을 살폈다. 시에라마드레에 대해 그가 들은 소문의 반만 맞아도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소낙비처럼 지나가는 기상 현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클라라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녀는 갑자기 그의 허리를 꽉 껴안더니 몸을 떨어댔다.
“다, 단장님? 이, 이게 다 뭐죠?”
“클라라 양?”
그녀의 이런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이었다. 진짜 클라라는 감정 표현에 솔직했고 호들갑도 잘 떨었기에 이런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그러나 가짜 클라라는 감정 표현을 절제했고 항상 냉소적으로 굴었기에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원더스타인은 겁에 질린 그녀의 어깨를 재빨리 토닥여 주었다.
“진정하세요. 잠시 하늘이 어두워졌을 뿐입니다. 아마 산운이 하늘을 가린 건 아닌가 싶은데요.”
“어, 어두워져…… 마, 마치 갇힌 것처럼…… 병 속에…….”
클라라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필사적으로 그를 꽉 껴안았다.
“도, 돌아가기 싫어요……. 거, 거기는…… 심해 깊은 곳…… 나, 나는…….”
난처해진 원더스타인은 계속 그녀를 보듬어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어둠은 점점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좁혀 왔다. 이제 숫제 바로 옆에 있던 건물조차 안 보일 정도였다.
그제야 원더스타인은 이것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클라라 양, 잠시 떨어져 주십시오. 이러면 제가 몸을 움직이기 불편…….”
“싫어요! 놓지 마세요! 절대 놓지 마세요. 절대…….”
클라라는 그에게 달려들더니 아예 매미처럼 그의 몸에 꼭 달라붙었다. 두 팔로 그의 어깨를 감싸고는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껴안고는 몸을 와들와들 떨어댔다.
“왁!”
은빛 머리의 여자애가 소리를 내지르며 튀어나온 것은 그때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그의 품에 안긴 클라라를 보고는 표정이 핼쑥해졌다.
“두, 둘이 뭐, 뭐 하는 거야, 이 야밤에!”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루미의 등장에 원더스타인은 비로소 주변을 뒤덮은 어둠이 누구 짓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모두 그녀가 만든 환상이었다.
“어서 거두십시오!”
그가 버럭 소리치는 것을 보고 루미는 그제야 클라라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눈치챘다. 그녀는 재빨리 마법을 해제했다. 그러자 도시와 하늘의 빛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클라라 양, 정신 차리십시오. 다시 밝아졌습니다.”
“허억, 허억, 허억, 끄, 끝났어요?”
클라라가 식은땀에 젖은 몸을 축 늘어뜨렸다. 바닥에 발을 디딘 그녀는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렸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몸을 받쳐 조심스럽게 벤치에 눕혀 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원더스타인의 추궁에 루미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웃, 나, 나는 그냥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마야가 저번에 밤을 몰고 오는 환상을 써봤다길래 따라 해본 건데…….”
“다른 뭔가를 한 건 아닙니까? 안 그러면 클라라 양이 왜 이렇게 된 거죠?”
그때, 정원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누워 있는 클라라의 모습을 흘끗 바라보더니 한 마디 내뱉었다.
“폐소 공포증이군.”
“당신은…… 오베론 씨?”
커다란 덩치에 푸른색 피부. 사자처럼 자라난 갈기와 대비되는 정숙한 정장 차림. 그는 바로 요정들로 이루어진 서커스단인 ‘한여름 밤의 서커스’의 단장인 오베론이었다.
“당신이 여긴 어쩐 일…… 아니, 그것보다 폐소 공포증이라고요?”
폐소 공포증은 좁고 닫힌 공간을 두려워하는 정신병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클라라 양은 며칠 동안 터널을 지나왔는데…… 아……!”
그 순간 원더스타인의 눈앞에 지난 며칠간 그녀가 보였던 행동들이 지나갔다. 그녀가 계속해서 혼자 앞서 나갔던 것은 단순히 단원들과 함께 있기 어색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폐소 공포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단원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조건 통창이 달린 개방감 있는 숙소를 고집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인지 그런 방을 겨우 하나밖에 구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그 방을 루엘로가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마당에 나와 잔 것이다. 이곳의 나머지 방들은 창문들이 작아서 다른 단원들도 살짝 답답함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허억, 드, 들켰네요, 허억…….”
클라라는 이제 제정신을 차린 듯했다. 그녀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언제부터 그랬던 겁니까?”
“프라빈에서 깨어났을 때부터요. 좁거나 닫힌 곳에 있으면…… 끔찍한 이미지들이 떠올라요. 마치 병 속에 꽉 끼어버린 것처럼 몸을 조여오는 압력이 느껴지죠. 그와 동시에 깊은 심해에 갇혀 귀가 먹먹하게 울리는 듯한 속삭임들이 들려와요. 그러면 숨이 막혀오는 것이…… 흐윽!”
“더는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좀 더 누워 계세요.”
“……네.”
클라라는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얼굴을 붉히며 휙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성인이 남자 품에 매달려 어린애처럼 운 게 부끄러운 것 같았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원더스타인은 다소 냉랭한 태도로 루미와 오베론을 쏘아봤다. 두 사람은 미안한 나머지 서둘러 용건을 털어놓았다.
“연회 도우미요?”
“잊은 거야? 원더랜드에서 약속했잖아.”
“아.”
원더스타인은 1년 전의 일을 기억해 냈다. 오베론이 듀얼 랩 배틀에서 우승하면서 클라라를 1년 동안 하인으로 부려 먹을 권리를 얻었다. 원더스타인 일행은 그것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 대가로 내년 여름에 있을 연회를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오랜만이네요, 귀향자!”
오베론의 등에는 루엘로 또래의 소년이 업혀 있었다. 그는 소매와 옷자락이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커다란 잠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눈을 다 가릴 정도로 고깔 형태의 커다란 나이트캡을 쓰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퍽. 요정들 사이에서 현자로 불리는 잠과 꿈의 요정, 샌드맨으로 한여름 밤 서커스의 부단장이기도 했다.
그는 사람의 운명을 통찰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사람을 이름 대신 별칭으로 불렀다. 원더스타인의 경우 원더랜드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귀향자’였다. 역시 1년 뒤에 원래 세계로 돌아갈 그의 미래를 읽은 것일까?
“지금 당장 우리랑 가면 돼요! 요정들의 땅에서 연회가 벌어지고 있어요!”
“지금요? 한밤중인데……. 게다가 요정들의 땅은 여기서 멀지 않습니까?”
“원더랜드는 더 멀지 않았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와 동행하면 단 하룻밤이면 갔다 올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당신들이 시에라마드레에 발을 들일 때까지 기다린 거랍니다!”
퍽이 오리 새끼처럼 꽥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시에라마드레는 컬럼비아 대륙에서 요정들의 세계와의 장벽이 가장 얇은 곳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내인을 보내 놓았소.”
“다른 사람?”
“그때 원더랜드에 왔었던 일행들. 지몬 마기어, 홉스, 이렇게 둘이 되겠군. 거기에 여기 루미 누님까지 해서 총 3명. 당신과 엘라, 미노바, 루엘로, 클라라, 마야, 레이나, 카렌. 11명 중 무려 8명이 이 서커스단에 있어서 평범한 요정들로는 ‘길’을 열기 힘들 것 같아서, 여기는 우리가 직접 온 거요. 그러니 어서 떠날 준비를 하시오.”
원더스타인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약속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요정들의 연회라고 하니 궁금증도 일었다.
“흠, 그런데 귀향자에게는 문제가 있군요.”
“뭐가 말입니까?”
“영혼에 두른 신성이 너무 강해요. 그건 온갖 신비와 마도를 밀어내버리죠. 그 상태로 우리 세계로 진입하기는 힘들 겁니다. 억지로 끌어들이다간 길이 붕괴할 수 있어요.”
프롤로와 대적하면서 얻게 된 방황하는 성자의 힘. 그게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혼을 뽑아내면 되지 않습니까?”
오베론의 의견에 퍽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이건 육체에 박힌 힘이 아니에요. 영혼을 뽑아낸다고 해도 신성은 여전히 ‘프랑크 원더스타인’의 혼을 보호할 겁니다.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면 방법이 없는 겁니까?”
“없지는 않아요. 귀향자는 특이하게도 ‘영혼’으로서는 다른 정체성을 하나 보유하고 있죠.”
“정체성이요?”
“귀향자. 당신은 원더랜드에서 ‘허수아비’로 활동했죠?”
“네.”
“그리고 본래 몸으로 돌아와서는 ‘허수아비’의 정체성을 사용한 적이 없죠?”
“물론이죠.”
“그럼 속일 수 있을 것 같네요. ‘백일몽’을 활용하면.”
“백일몽?”
퍽은 원더스타인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그는 손에서 반짝이는 가루 같은 것을 생성하더니 그의 눈앞에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