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610)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610화(610/619)
EP.610 21. 한여름 밤의 꿈 (6)
“그러니까 요정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점수를 매기면 된다는 거잖아.”
“우리가 평론가가 되는 건가.”
“옛날에 지방 축제에서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었지. 재밌겠군.”
잠시 후, 들판 곳곳에서 천막들이 불쑥불쑥 솟아났다. 요정들에게는 천막을 세우기 위한 공사 작업이 따로 필요 없는 듯했다. 몇몇 천막은 아예 세상의 상식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공중에 떠 있는 천막이라든지, 웅장한 기와지붕을 가진 천막이라든지, 크기는 간이 화장실만 한데 안쪽을 보면 대밀림이 펼쳐져 있는 천막이라든지.
“개장 시간이군.”
오베론이 손짓하자 커다란 나팔 소리가 들판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온갖 색깔의 등불들이 치솟았고, 각양각색의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판 너머에서 족히 수만 명은 되어 보이는 요정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설마 저들 모두 단원인 것은 아니겠지?”
“저들은 손님이다. 너희들은 저들 틈에서 공연을 관람하면 된다.”
“그러면 줄도 서야 하나?”
“아니. 너희들은 어떤 천막이든 최우선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을 해 두었다.”
오베론은 사람들에게 공연의 종류와 해당 공연이 열리는 천막 번호가 병기된 목록을 나누어주었다.
“원하는 순서대로 자유롭게 둘러봐라.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시간이 많다고? 공연을 130여 개나 봐야 하는데. 이걸 하룻밤 만에 다 끝내는 건 힘들지 않나.”
“이곳은 현실과 꿈의 경계다. 시간이 바깥보다 매우 느리게 흐르지. 꿈에서 몇 년을 보내도 눈을 떠 보니 30분밖에 안 지났다는 이야기는 흔하지 않나. 이곳 기준으로 2주가 바깥에서는 6시간 정도 되겠군.”
하룻밤이면 끝난다고 해서 금방 돌아가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만 체념하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어떤 공연이 있는지 목록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페어리들이 많기 때문일까. 확실히 환상을 활용하는 곳이 많군. 은막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들이 꽤 보여.”
“클라라 선배가 나갔던 ‘듀얼’도 있네. 부연 설명에 동물 왕중왕전이라고 적혀 있는데?”
“주제를 동물로 제한해서 싸우는 건가. 이것 봐. 공룡도 나온다고 되어 있어.”
“공룡?”
오는 내내 침울해 있던 루엘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역시 애들의 주의를 끄는 데는 공룡 만한 주제가 없었다.
“인간들의 서커스단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 많군요. 이거 뭐부터 볼지 고민되는데요.”
허수아비는 몽유병 원더스타인이 어색함 없이 자리에 섞여 있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다소 두서없이 의견을 개진하는 이런 자리에서는 그의 부자연스러움은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 이것부터 보러 갈래, 아저씨? 동물들을 이용한 놀이터라고 되어 있어. 기린 미끄럼틀에 코뿔소 트램펄린, 원숭이 그네 등등. 직접 참여하는 서커스 같은데?”
“그런 거라면 자신 없군요. 보다시피 몸이 이 꼴인지라. 저는 괜히 엘라 양의 발목만 붙잡을 것 같은데요. 그냥 따로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섭섭한 소리! 아저씨는 나 안 보고 싶었어?”
엘라가 크게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허수아비는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그녀를 달랬다.
“그럴 리가요. 물론 보고 싶었죠. 매일 엘라 양 생각만 했습니다.”
“헤헷, 정말이야?”
“그럼요.”
“그러면 여기 있는 동안은 계속 나랑 같이 다니는 거다?”
허수아비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원더스타인으로 있을 때와는 너무 달라진 그녀의 태도에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잠시 후, 각자 볼 공연을 고른 그들은 차례로 오베론의 천막을 나갔다. 허수아비는 엘라와 함께 그녀가 가장 보고 싶어 했던 동물 놀이터를 찾았다.
엘라는 너무나 능숙하게 동물들의 몸 위를 미끄러지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녀의 신체 능력도 능력이지만 동물들과 호흡을 맞추는 솜씨가 너무 뛰어났다. 동물들을 조련하는 요정들이 놀라 정도였다.
반면, 허수아비는 툭 하면 미끄러지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한번은 코끼리한테 지푸라기와 막대기째로 뜯어먹힐 뻔했다.
“우왓, 아저씨 괜찮아? 판 한쪽이 없어졌어!”
“끙. 걱정하지 마세요. 영체는 밥 먹고 잠자면 회복되니까요.”
작년에 원더랜드에서 팔다리가 잘렸을 때는 현실에서 한동안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지만, 그건 급히 그곳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영혼 상태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친 곳도 금방 회복되었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식사와 잠자리는 충분하게 제공되었다. 그들은 서커스단의 모든 시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늘이 달밤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시간의 흐름을 알기 힘들었던 그들은 공연 5개를 기준으로 식사했고, 12개를 기준으로 잠을 청했다.
그들은 매일 숙소를 바꾸었다. 한번은 그냥 들판에 누워 자기도 했다. 그때는 엘라가 허수아비의 몸을 헤집고 들어와 그의 몸을 침대 겸 이불 겸 베개로 삼았다.
“우와, 무지 따뜻해.”
“지푸라기나 헝겊보다는 숙소의 침구가 낫지 않나요? 다들 고급이던데.”
“응? 나는 아저씨 품속이 좋은데?”
엘라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푹 파묻고 비벼댔다. 허수아비는 그녀가 자신에게 왜 이렇게 깊은 호감을 표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끽해야 1년 전에 잠시 어울렸던 인연일 뿐인데 말이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먹고 자며 며칠 동안 같이 공연을 보러 다녔다. 요정들의 서커스는 확실히 참신하고 기발한 것들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완성도에 있어서 떨어지는 부분도 꽤 있었다.
기본적으로 요정들은 어린애들과 성향이 비슷했고, 자기들 기분에 따라 쉽게 공연 내용을 바꾸거나 공연 자체를 내던져 버리는 일이 잦았다. 연극을 하면 지루한 갈등 부분을 모두 생략하고 대뜸 극적인 장면으로 치닫지를 않나, 곡예를 하다가 한 번 삐끗하더니 안 한다고 울면서 무대에서 내려오기도 했고, 환상으로 배경을 만들 때 자기가 만든 것을 돋보이게 하려고 서로 경쟁하다가 무대를 개판 오 분 전으로 만들기도 했다. 한번은 공연하는 도중에 밖에서 신기한 모양의 구름을 발견했다며 다들 그것을 구경하러 우르르 나가기는 일도 있었다.
“야, 이것들아! 너희는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격언도 모르냐!”
처음에는 진지하게 평론 일에 임했던 엘라는 곧 요정들의 행태에 질려 평가판을 내던져 버렸다. 그녀가 보기에 공연 내용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자세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단원들이 너무 많았다.
“이게 전부 다 오베론 단장이 애들을 풀어주기 때문에 그런 거야. 이러니 서커스단 전체의 질이 떨어지지. 그렇게 생각하면 새삼 우리 단장이 일을 잘 처리했다는 생각이 드네. 본인은 공포로 단원들 위에 군림하면서 내게 전권을 몰아 주었지. 덕분에 단원들을 심신 양면으로 장악하기 쉬웠어. 초반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 서커스단은 첫 시험을 통과하기 쉽지 않았을 거야. 설마 그 인간이 의도한 걸까? 흠흠, 그렇다면 대단한 거고.”
허수아비는 그녀와 붙어 다니면서 몇 가지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마무리가 대개 원더스타인에 대한 칭찬으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우린 단장이라면 이랬을 텐데, 이걸 보면 단장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더라, 단장의 무엇 덕분에 자신들은 이럴 수 있었네, 등등.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그녀가 원더스타인의 숭배자처럼 보일 수 있었다. 평소에 그가 그녀에게 무시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이러는 것은 의외였다.
“응? 왜 그래?”
“아니요. 보니까 엘라 양은 단장님과 껄끄러운 사이인 것 같으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네요?”
그의 말에 엘라는 입을 딱 다물었다. 자신이 그렇게 티를 많이 낸 것일까. 지난 며칠 간의 일을 돌이켜 본 그녀는 확실히 자신이 그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말이지…….”
엘라는 잠시 고민했다. 원더스타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털어놓을지 말지.
그때, 그들이 들어선 공터 구석에서 왁자한 함성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녁으로 가볍게 맥주와 빵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른 것이었는데 먼저 온 손님들이 있었다.
“어머, 젊은 오빠들이네!”
“오베론 아저씨한테 얘기 다 들었어! 지상에서 알아주는 곡예사들이라며?”
“우리 무용단 점수 좀 잘 부탁해!.”
홉스, 미노바, 원더스타인 세 사람이 한 무리의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분명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체구는 보통 사람들보다 작았다. 귀가 뾰족한 것을 봤을 때 그들 역시 요정이 분명했다.
“님프들이네.”
어느새 엘라와 허수아비 옆에 나타난 루미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 역시 막 식당에 도착한 듯했다. 엘라는 그녀의 표정에 깃든 경멸을 읽을 수 있었다.
“님프가 뭐야?”
“발라당 까진 요정들이야.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지. 마족들에게 서큐버스가 있다면 요정 쪽에는 님프가 있어. 서큐버스처럼 남성을 유혹하는 힘을 지니고 있지. 물론 기본적으로 요정들이니까 서큐버스처럼 정을 흡수하기보다는 남자들 데리고 장난치고 가지고 노는 게 보통이지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님프들 사이에서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곳을 본 엘라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노바가 갑자기 그들 앞에서 소매를 걷더니 팔근육을 과시하며 거드름을 피워댔다. 홉스는 질세라 물구나무를 서서 재주를 펼치며 그들의 관심을 끌려고 애썼다.
원더스타인은 다행히 그런 추태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님프들의 절반은 그의 얼굴을 보며 웃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에게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이 주는 과일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하하, 님프라는 종족은 전부 아름답기 그지없군요!”
“역시 미인이 주는 과일은 달고 맛있네요?”
“오늘 호강하고 갑니다! 매일 애들 돌보느라 고생하다가…….”
엘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녀가 욕을 내뱉기도 전에 뒤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는 카렌, 레이나, 루엘로가 와 있었다.
“자작님과 유라크네 언니가 없으니 완전히 고삐가 풀렸군.”
“서, 설마 지금까지 그분들 눈치 본다고 자제했던 걸까?”
“소문 대로인 거지. 바람둥이, 난봉꾼.”
“아, 아빠는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젠장, 루리, 우리가 왜 다 부끄럽냐. 홉스 저 병신이 업소 간 거 한두 번이 아니긴 한데. 하필 얘네들 앞에서…… 아오!”
결국 보다 못한 카렌과 루엘로가 달려들어 판을 엎어 버렸다. 그제야 님프들의 마법에서 벗어난 미노바와 홉스는 안색이 새파래지더니 서둘러 옷을 주워 입었다.
“이런 방해꾼들이 왔군요. 그러면 나중에 또 봐요, 아가씨들! 내일 무용 꼭 보러 갈게요!”
그런 와중에도 원더스타인은 님프들을 붙잡고 인사를 나눴다. 여성 단원들은 그에게 경멸 어린 눈빛을 보냈다. 허수아비는 기겁해서 루미에게 속삭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왜 나한테 물어? 흥. 평소 기억대로 움직이는 거 아니야?”
“저는 저런 적 없어요!”
“그러면 왜 저래?”
그때, 뒤늦게 공터를 찾은 마야가 그들 뒤에 나타나 조용히 속삭였다.
“육체적 본능이 강하게 작용해서 그래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정신이 부재하니까 몸이 원초적 욕구대로 움직이는 거죠. 아무런 작용이 없었다면 단장님도 저러지 않았겠지만, 님프의 마법에 걸려버렸으니…….”
허수아비는 이마를 탁 짚었다.
“그렇군요. 제가 너무 방심했군요. 그냥 내버려 둘 게 아니었는데.”
“너무 자책하실 필요 없어요. 단장님이 그러는 것도 백일몽의 영향이니까. 단장님도 ‘허수아비’가 되는 꿈을 꾸는 중이잖아요. 일종의 자기 최면이죠.”
“그런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대로 둘 수도 없는 건 사실입니다. 마야 양, 당신에게 저 몸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 님프들이랑 무슨 사고를 칠지 두렵군요.”
“네. 알겠어요.”
마야는 원더스타인을 끌고 공터 밖으로 나갔다. 그는 나가는 순간까지도 님프를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그가 그녀에게 몇 차례 얻어맞고 정신을 차릴 거라 예상했다.
“휴.”
그동안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엘라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야가 때맞춰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섰을지도 몰랐다.
“하하, 님프들의 장난이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허수아비는 계산대에서 받아온 맥주와 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어떻게든 방금 일에서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아저씨.”
가만히 맥주잔을 이리저리 기울이던 엘라는 뭔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아저씨한테는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럼요!”
“하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시 이런 말을 털어놓을 사람은 아저씨밖에 없네.”
허수아비는 그녀가 원더스타인에 대한 욕을 늘어놓을 거라 예상했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감정들을 토로할 거라고 말이다.
“나 있지.”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어쩌다 저런 남자를 좋아하게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