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611)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611화(611/619)
EP.611 21. 한여름 밤의 꿈 (7)
허수아비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좋아한다고? 누구를?
“저런 남자라고…… 한다면?”
아니겠지. 그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나 엘라는 단호한 어조로 그의 의심을 끊어내 주었다.
“우리 단장 말이야.”
“원더스타인…… 그 남자 말입니까?”
“응. 나 그 사람을 좋아해.”
엘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었다. 처음 말을 꺼낼 때는 어려웠는데 두 번째가 되니까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녀는 내친김에 아예 못을 박아버렸다.
“그래. 맞아. 나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 남자를 좋아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허수아비는 어쩌면 그녀가 사실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고 일부러 장난을 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지난 1년간 있었던 일들을 당신에게 들었습니다. 저는 분명 당신이 그를 미워하는 줄 알았는데요.”
“맞아. 그랬지.”
“혹시 그가 악당이 아니라는 걸로 판명 나서 그러는 겁니까? 성자의 힘을 얻어서…….”
“아니.”
엘라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전부터 좋아했어.”
“…….”
“그가 정말 사악하고 악마 같은 인간이라 생각했을 때부터 그를 좋아했어.”
허수아비는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상태칭에 보였던 엘라의 호감도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호감도와 비호감도는 별개로 적립된다는 가설을 세웠었다.
그런데 엘라는 지금 말하고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분명 증오하고 원망했었어.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점점 좋아하게 됐어.”
엘라는 아련한 눈빛으로 지난날의 추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부정하고 부정하려 했었지만, 마음이 기우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상하지? 하핫, 맞아. 이상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 나쁜 놈을, 그런 악마 같은 인간을 내가 좋아하게 되어버렸다니.”
“어떤 점이……. 어떤 점이 좋았나요?”
“너무 많아.”
엘라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차례로 떠올려 보았다.
“자기가 쓴 대본을 읽으며 검토해 나갈 때의 그 눈빛……. 헤프게 웃을 줄만 알던 그 남자도 그렇게 진지한 눈을 할 줄 알더라고. 그때 그와 눈을 마주친 적 있었는데 가슴이 설렜어. 그래서 일부러 그가 대본을 읽을 때마다 그의 눈앞에 얼굴을 불쑥불쑥 들이밀곤 했지.”
“아…….”
엘라가 털어놓는 추억들에는 허수아비가 기억하는 것도 있었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그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그녀는 장면 하나 대화 한 마디까지 깊게 간직하고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정원에서 잠들어 있는데, 햇빛이 얼굴을 비춰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어. 자리를 옮기면 되지만 그러기는 또 귀찮았지. 그런데 갑자기 그림자가 지는 것 아니겠어? 눈을 떠보니 그가 내 옆에 앉아서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어.”
“그건…… 우연이 아닐까요?”
“아니야. 그가 담요를 챙겨왔더라고. 그때는 이른 봄이라 아직 바람이 쌀쌀했는데 난 외투도 없이 누워 있었거든. 웃긴 건 뭔지 알아? 그 인간이 오는 동안 담요를 덥히겠다고 겨드랑이 사이에 껴서 가지고 왔더라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있지. 그게 생각보다 따뜻했어. 그리고 의외로 좋은 냄새가 났어. 다른 남자한테서는 한 번도 맡은 적 없는.”
그렇게까지 말하니 허수아비도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랐다. 담요와 햇빛을 가릴 물건이 필요하다는 단원 퀘스트였을 것이다. 담요는 구했지만, 햇빛을 가릴 물건은 없어서 그냥 그가 몸으로 직접 가려줬었다.
“또 한 번은 맛있는 디저트 집이 있다고 해서 데리고 간 적 있었어. 순전히 나 좋자고 간 거지만 그 사람도 입맛에 맞는 게 있었는지 입안 가득 파이를 넣고 우물거리더라. 그때 맛있어하는 그의 표정이 귀여웠어. 찍순이에게 해바라기씨를 주면 비슷하다? 이렇게 볼을 부풀리고.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 이 남자를 옆에 두고 계속 맛있는 걸 먹여주고 싶다고.”
“…….”
“업무량이 과중해서 지칠 때마다 그를 불러내곤 했어. 표면적으로는 그에게 불평하고 욕하기 위해서였지만, 사실 그의 몸에 기대고 싶어서였어. 일부러 내가 그의 가슴과 어깨에 머리를 콩콩 박곤 했지. 몇 번 그러다가 슬쩍 몸을 갖다 대면 그 인간이 내 정수리 부분을 긁어주더라? 그렇게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아무리 지쳐도 힘이 나는 거 있지?”
“좋은 일만…… 있었나요?”
“그렇지 않아. 그 인간은 비밀도 많고 혼자 멋대로 구는 경우도 잦아서 마음고생 많이 했지. 그러면서 얼마나 여유만만인지. 죽을 위기를 앞에 두고도 느긋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좀 얄미웠어. 하지만 이상하게 보고 있으면 위기감이 사라졌지. 이 남자만 믿고 있으면 다 잘 풀릴 거다. 그런 생각에 마음을 놓곤 했지.”
엘라는 원더스타인과의 추억을 말하면 말할수록 점점 감정이 고조되는 듯했다. 술을 들이켜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녀는 그의 작은 동작 하나, 지나가는 말 한마디, 때때로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이 어떻게 그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나 늘어놓았다.
“그랬군요…….”
듣고 있으면 조금 민망해지기도 했다. 그는 별 생각 없이 한 행동들이 그녀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았을 줄은 몰랐다.
“그의 등에 업혔을 때, 그의 머리카락 냄새가 어땠는지 알아? 사람이 냄새만으로 흥분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지. 그의 목에 고개를 박고 내가 이렇게 숨을 불어 넣으면 머리카락이 살랑거리면서 향기가 훅하고 코를 간질이는데…….”
그녀는 진솔하게 자신의 모든 감정을 털어놓았다. 그로 인해 웃었고, 울었고, 화났고, 보람찼고, 슬펐고, 즐거웠고, 즐거웠고, 즐거웠고, 즐거웠다.
그녀의 고백에 허수아비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 그녀가 이야기를 풀어 놓을수록 그도 떠오르는 기억이 많아졌다.
그녀와 함께한 기간이 벌써 1년 반 가까이 됐다. 그녀는 그동안 직접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었다. 그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설명이 되지 않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최근 그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였다.
“그런데 여기 와서는 그와 별로 말을 나누는 것 같지 않던데요?”
허수아비의 지적에 엘라는 말을 멈추었다. 방금까지 신나 있던 그녀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사실…… 말 안 한 지 벌써 2주는 됐어.”
“왜 그렇죠?”
엘라는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곧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그에게 그동안 모질게 굴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허수아비는 재빨리 그녀를 변호하고 나섰다.
“그건 원더스타인이 당신에게 진실을 숨겼기 때문에 일어난 오해가 아닙니까? 당신 책임이 아니에요.”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게 아니야.”
누가 원인을 제공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가 진짜 악당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
“그럼 그를 얼마든지 미워하고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허수아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그는 엘라의 고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자고 한다면 알아낼 수 있었다. 감독실은 단서가 갖춰지면 갖춰질수록 질문에 대한 대답 비용이 내려갔다. 이고르와 안나의 존재를 알게 된 시점에서 2주 치 데볼루트를 쏟아부으면 그날의 일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된 대본을 감독에게서 내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2주 치 데볼루트가 아깝기도 했고 무엇보다 원더스타인이 정말로 악당 짓을 한 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기껏 큰 비용을 치르고 얻어낸 정보가 여정에 별 도움도 안 되고 심적으로 괴롭기만 한 것이라면 차라리 보지 않는 게 이득이다 싶었다.
그녀와 그. 둘 다 진실을 캐물을 용기가 부족했다.
“두렵지 않나요?”
“뭐가?”
“원더스타인이 정말 당신의 원수라면 어쩌죠? 마을을 학살한 게 정말 그라면?”
허수아비는 자신이 또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엘라는 오히려 활짝 웃으며 답했다.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
“왜요?”
“그를 믿거든.”
“…….”
“그동안 의심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나는 그 사람을 믿어. 절대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닐 거야. 진실을 숨기는 것도 다 사정이 있겠지. 그러니 그를 믿고 기다릴 수 있어.”
용기가 부족한 건 자신뿐이었나. 허수아비는 자조했다. 동시에 원더스타인의 몸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할 일이 떠올랐다.
그의 유능한 부단장과 계속 이런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는 건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손해였다. 그녀의 믿음에 그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
몽유병 원더스타인을 데리고 나간 마야는 사람이 적은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그동안 스승님이 그를 자극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해서 접근하지 못했지만, 드디어 허락을 받아냈다. 일부러 님프들에게 저녁 시간에 맞춰 단장님을 찾아가 보라고 부추긴 보람이 있었다.
원더스타인이 허수아비와 동일 인물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루미, 클라라, 마야까지 해서 총 3명이었다. 그중 그의 육체를 믿고 맡긴다면 마야는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클라라는 아직 믿기 힘들었고, 루미는 요정으로서 장난기가 언제 도질지 몰랐으니까.
물론 허수아비도 마야가 원더스타인의 환상으로 혼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그녀에게 선뜻 몸을 맡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무표정 뒤에 어떤 생각이 들끓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원작의 마법사를 기준으로 놓고 보고 있었다.
마야는 며칠간 원더스타인의 몸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녀는 둘만의 데이트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쉬는 날에 뭐 하면서 보내냐고요? 데굴데굴? 침대 위를 굴러다녀요!”
“무엇을 제일 좋아하느냐고요? 역시 트릴 시리즈죠!”
대화를 시도해 봐도 영 엉뚱한 소리만 하기 일쑤였다. 물론 쉬는 날에는 침대 위를 굴러다닐 수 있었고, 키르쿠스의 사도니까 트릴을 좋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한 이성끼리 오가는 대화는 이런 게 아니었다.
이래서야 잘스타인 씨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못했다. 이럴 바에 그냥 데이트는 포기하고 바로 침대로 끌고 가서 껴안고 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음, 역시 마야 렌데린이겠죠?”
하지만 마지막에 자포자기하듯이 던진 질문이 그만 적중하고 말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마야는 흥분으로 날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조심히 다음 질문을 골랐다.
“단장님…… 그러면 단장님은 마야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첫 번째 질문이 적중했다면 두 번째 질문은 그와 연계되어서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 쉬워졌다. 과연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미래의 연인?
사랑하는 제자?
가장 아끼는 단원?
“마야는.”
원더스타인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그는 마야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을 내놓았다.
“불쌍한 아이지요.”
마야의 창백한 손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불쌍한 아이?
불쾌감과 모욕감이 동시에 솟구쳤다. 차라리 그가 그녀를 귀찮아 하거나 껄끄러워 했다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쌍한 아이라니. 그에게 애 취급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가 그녀에게 베푼 것들이 호의나 기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정심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마야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지금 상대는 꿈을 꾸고 있잖아. 분명 또 엉뚱한 방식으로 질문을 해석한 게 틀림없어. 어쩌면 나이에 비해 몸매가 어린애 같아서 불쌍하다는 것 아닐까? 열 받지만 그럴 수 있어.
마야는 차분히 심호흡한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게…… 무슨 말이죠? 제가 왜 불쌍하나요?”
“저 때문에 운명이 바뀌었으니까요.”
“운명이 바뀌어요? 그게 무슨…… 원래 제 운명이 어땠는데요?
원더스타인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저를 죽여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