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612)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612화(612/619)
EP.612 21. 한여름 밤의 꿈 (8)
그의 말에 마야는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원래 단장님을 죽일 운명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마야의 머릿속에 온갖 질문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게 해석하기 힘든 말이었다.
단장님이 죽는다. 그것도 자신이 죽인다? 그게 자신의 운명이다?
마야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말도 안 돼.
그녀는 자꾸만 뻗어나가려는 상상력을 자제시켰다. 가만히 따져 보면 상대의 말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도 없었다.
앞서 보았듯이 상대는 동문서답이 기본이었다. 그것은 상대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모르겠다’나 ‘그렇지 않다’라고 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생각할 수 없었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는 명령을 받으면 뇌는 필연적으로 코끼리라는 존재를 떠올려야만 했다. 일단 코끼리라는 존재를 충분히 머릿속으로 구성한 다음에야 그것에 해당하지 않는 요소를 짚어볼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의 육체가 이상한 대답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질문이 들어오면 가장 크게 자극받는 정보와 기억을 문장으로 구성해 내뱉을 뿐이었다. 그것이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이든 아니든 말이다.
마야는 원더스타인의 말을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운명 같은 추상적인 내용에 대해 질문했기에 저런 헛소리가 나오는 것일 것이다.
“저를 제일 좋아한다는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이렇게 내용을 한정해서 질문하면 대답이 요지에서 벗어날 일도 적었다. 물론 머리카락이 하얘서 좋다거나 똑똑해서 좋다 같은 김빠지는 대답이 나올 수 있어도 추상적인 질문과 달리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튈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또 한 번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조종하기 쉬워서요.”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에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조종하기 쉽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악의에 마야는 눈가가 떨려왔다. 자신이…… 조종하기 쉽다고……?
“하아, 하아…….”
호흡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자신이 조종하기 쉬워서 좋다고?
마야는 자신의 질문을 되짚어 봤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오해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그녀는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싶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냥 지금까지 들은 것을 모두 잊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가 버린다면 그녀는 평생 그를 의심하며 살아야 했다. 그것이 몇 배는 더 힘든 일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 좀 더 자세하게 캐물어 보는 거야. 오해가 있다면 풀면 돼. 조종……. 통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와 준다는 그런 좋은 뜻일지도…….
그녀는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다시 질문했다.
“단장님이 저를 조종했다고요?”
“네. 당신만큼 조종하기 쉬운 사람도 없죠. 제가 의도한 대로 딱딱 움직여 주더군요. 호감도를 올리기도 수월했고요. 물론 여기는 제 타고난 외형 덕도 좀 있습니다만.”
마야는 숨이 턱 막혀왔다. 설마…… 설마 모든 게 다 그의 손바닥 위였던 걸까. 그녀가 그에게 품은 감정도 모두 그가 의도한 것이었을까.
그녀는 가슴을 누가 꽉 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팠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사실 몽유병 원더스타인의 사고는 가장 좋아하는 게 뭐냐는 마야의 질문에 ‘트릴 시리즈’라고 대답했을 때부터 그쪽으로 편향되어 있었다. 그가 보기에는 이어지는 질문들은 모두 연계된 질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트릴 트릴로 시리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묻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마야 렌데린’이라고 답한 것이었다.
그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혼선이 조금 있었다. 그녀를 가장 좋아한다고 대답했는데 재차 질문하는 것을 보면 ‘좋아한다’라고 대답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빼놓고 그녀에 대한 감정을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다행히 그에겐 ‘좋아한다’라는 단어를 가장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불쌍하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호감과 동정심을 자주 혼동하는 남자. 그래서 그는 불쌍한 아이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그가 실제로 그녀를 불쌍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불쌍하냐는 그녀의 질문에는 꿈을 꾸는 사람답게 ‘모르겠다’라거나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최대한 연관된 사실들을 모아 답을 들려주었다. 운명 얘기는 그래서 나온 것이었다.
조종하기 쉽다는 것도 다른 의미가 아니었다. 플레이어 캐릭터로서 그녀가 가장 다루기 쉽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3차원 공간을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사지가 없이 태어난 허수아비는 머릿속으로 공간을 그리는 일에 익숙했다. 그가 타고난 외형 덕을 봤다는 것도 그 말이었다.
호감도를 올리기 쉬웠다는 것도 말 그대로였다. 서포트 캐릭터들 얘기였다.
기사는 도덕적인 캐릭터들의 호감도를 올리기 쉬웠지만, 자유롭고 반사회적인 캐릭터들의 반감을 사기 쉬웠다. 도적은 반대로 범죄자나 마도사 계열 캐릭터들의 호감을 사기는 쉬웠지만, 사회 주류 캐릭터들의 호감도를 올리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마야만은 양측의 호감도를 모두 적절한 선에서 올릴 수 있었다. 자신이 쓰는 몇몇 서포트 캐릭터들만 빠르게 올리려면 기사나 도적이 대화를 주도하는 게 효율적이었지만, 모든 캐릭터 100% 호감도 달성 같은 것을 목표로 한다면 마야가 대화를 주도하는 게 편했다.
그러나 이런 사정들을 마야가 알 리 없었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이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했다.
“단장님은…… 저를 보며 이성으로서 호감을 느낀 적 있나요?”
그것은 마야가 잡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는 자신을 교묘하게 쥐락펴락했을 수 있었다.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 확인할 수 있다면 그녀는 그것들을 용납할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이 자신을 이성으로 여기느냐 안 여기느냐. 만약 그가 자신을 이성으로서 좋아한다면 앞의 말들도 정상참작 가능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원더스타인은 머릿속에 담긴 기억을 모두 검토한 후 대답했다.
“네. 당신을 보면서 이성적인 매력을 느낍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마야는 예쁘게 잘 만든 캐릭터였고 남자치고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것은 힘들 것이다.
마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이 그녀의 뒤통수를 꽝 하고 때렸다.
“정확히 말해 눈앞의 당신이 아니라 당신을 통해 다른 누군가를 비춰보는 것이지만.”
다른 누군가? 누구?
만약 마야가 이 시점에서 그에 대해 질문했다면 그는 ‘미래의 그녀’라고 대답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이 이상 그의 속내를 파헤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뭐가 더 튀어나올지 두려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에게 그녀는 소중한 제자도, 아끼는 단원도, 사랑하는 여인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가르침을 베푼 것은 적선과 다르지 않았고, 그녀를 단원으로 받아들인 것도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서였으며, 그녀와 나누었던 교감도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존경하는 스승님, 믿음직한 단장님, 사랑하는 남자로서의 원더스타인은 허상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존재는 없었다.
“더는 볼일이 없나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홀로 내버려 두고 떠났다. 입가에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가득 띤 채.
“아아.”
원더스타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 마야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차라리 열어보지 말 걸 그랬다. 남의 마음 따위 들여다보지 말 걸 그랬다.
그녀의 얼음 같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얼굴이 고통과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실연. 그녀의 첫사랑은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오랫동안 견고하게 자리를 지켜왔던 마음의 둑이 터지며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그녀는 마침내 ‘상(相)’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이란 현실 그 자체가 아닌 현실을 맺힌 유리와 같은 것. 같은 것을 보더라도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같은 형태로 맺히지 않는다. 환상 마법사들은 그 형태에 훈련받은 마법을 더해 현실과 비슷하게 빗어낼 수 있지만 절대 현실과 같지는 않았다.
왜 환상 마법사들이 상의 신비를 터득하는 계기 중에 실연이 가장 많은지 마야는 깨닫게 됐다. 현실과 마음에 품은 환상이 어긋나는 순간을 가장 절절하게 느끼기 쉬운 때가 사랑이 거절당했을 때였기 때문이다.
“흑, 흐윽!”
마야는 이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넘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슬픈 일일 줄 몰랐다. 사랑이 좌절되는 것이.
아직도 그가 말한 것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가 무엇을 위해 자신을 이용했다는 건지, 운명을 바꾸었다는 게 뭔지. 자신을 보고 누구를 떠올린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에게 그녀는 별로 소중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흑, 아흑, 으흑흑…….”
마야의 볼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입에서는 통곡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드디어 바라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사실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카렌이라도 옆에 있었다면……. 그녀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
마야는 품에서 은색 원반을 꺼냈다. 거기에는 엄마가 죽기 전에 자신에게 남긴 환상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엄마의 모습을 보면 조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뭐든 좋았다. 위로받고 싶었다. 그녀는 메모리 레코드를 재생했다.
***
다섯 곡예사 일행은 한여름 밤의 서커스에 온 뒤로 한 번도 퍽을 보지 못했다. 오베론이 나눠준 공연 프로그램 목록에는 그의 공연도 들어 있었지만, 이번 일정에서는 모두 제외되어 있었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바빴다. 중요한 회의가 그의 천막에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양각색의 잠옷을 입은 30여 명의 사람들이 천막 안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 중 비슷하게 생긴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노인에 요염한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 여인에 퍽보다 더 어린 코흘리개도 있었다.
생긴 건 제각각이었지만 그들 모두 샌드맨이었다. 요정 세계에서 현자로 불리는 꿈의 요정들. 그들이 이번에 이곳에 모인 것은 잠든 혼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꿈이 흔들리고 있어.”
한 요정의 말에 나머지 요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세상을 가리켰다.
이런 말이 있다. 잠든 혼돈이 꾸는 꿈 하나마다 세상이 하나 있다고. 혹자는 아예 이 세상 자체가 혼돈이 꾸는 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무 자르게 단칼에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진실과 맞닿은 부분이 있었다.
잠든 혼돈이 완전히 눈을 뜨면 서로를 꿈이라고 부르며 구분해 놓았던 세상의 경계들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세계와 세계 간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 우주는 파멸이었다.
그렇기에 잠든 혼돈에 관련된 문제는 그들에게 아주 중요했다. 꿈이 흔들리는 것은 꿈들끼리 충돌하는 것보다는 덜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잠든 혼돈의 눈 몇 개를 뜨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어쩌면 수십 개가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훨씬 중대한 위기로 발전할 수 있었다.
“전조는 4년 전부터 있었네.”
“우리들의 예측에 따르면 아마 1시간 안에 흔들림이 발생할 거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대비했죠.”
퍽은 그들 앞에 영상 하나를 띄어서 보여주었다. 허수아비와 엘라가 마주 보고 앉아서 술을 마시는 장면과, 원더스타인이 막 마야를 내버려 두고 홀로 걸어가는 장면이 나타났다.
“키르쿠스의 단말이 우리가 만든 이 영역 안에 있으니, 흔들림이 발생해도 잠든 혼돈에는 별다른 영향이 가지 않을 겁니다. 끽해야 눈 한두 개가 떠지는 정도겠죠.”
“다행이군.”
“내 심장이 다 떨리는군. 하필 신성을 얻어버려서 막판에 일을 그르칠 뻔했어.”
“빛의 신이 개입하는 영역까지 우리가 읽을 수는 없으니까요.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어쨌든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한여름 밤의 서커스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건 오베론과 퍽이 지어낸 핑계였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바로 오늘 밤 원더스타인을 이곳에 묶어두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