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613)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613화(613/619)
EP.613 21. 한여름 밤의 꿈 (9)
어떻게 보면 지금 그들은 그를 감금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물론 고작 몇 시간뿐이고 그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그가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상황을 꾸며냈다. 키르쿠스는 제멋대로 세상일에 끼어드는 듯했지만, 그 역시 유희의 마신으로서 규칙은 지키고 있었다. 개연성 있는 이야기의 형태로만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 원칙은 원더스타인이 퀘스트를 받을 때도 적용되었다. 그가 직접 실마리가 될 상황을 마주하기 전까지 키르쿠스는 그에게 어떠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았다.
꿈의 요정들은 원더스타인이 키르쿠스와 정확히 어떤 형태로 계시를 주고받는지는 몰랐지만, 그 기본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숙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본질을 피하고 에두르는 형태를 취해 그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덕분에 허수아비가 이곳에 올 때까지 어떠한 퀘스트 창도 뜨지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클라라의 빚을 갚기 위해 요정들의 서커스단을 찾아서 도우미 일을 하는 걸로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 이곳에 누가 공격을 가하진 않겠죠?”
“우리들이 모두 힘을 합쳐 변수를 계산했잖습니까? 공격의 징후는 없어요. 앞으로 1시간 동안 평온할 겁니다.”
“모르지. 마신 이상 정도 되는 자들의 의지는 우리도 예측할 수 없으니.”
“그렇긴 하지만 그들의 의지를 집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섬기는 인간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통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어요.”
“맞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세운 방어벽은 사도 몇 명 정도 힘을 합친다고 해서 뚫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정교회의 교황과 추기경들이 떼를 지어 날아와 이곳에 몸을 들이박지 않는 이상 이곳은 안전할 겁니다.”
다들 가만히 기다리려니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사실 꿈이 흔들리는 일은 해안 지방의 태풍만큼이나 자주 벌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잠든 혼돈의 파편이 지상을 활보하는 와중에 발생한 적은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였다.
그런 데다가 그 육체의 주인은 현재 빛의 신으로부터 신명까지 받은 상태였다. 만약 이 조건에서 꿈이 흔들려 버린다면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혼돈의 힘과 빛의 힘이 충돌해서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할 수도 있었고, 반대로 서로 상쇄되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미지수였다.
이러니 요정계의 현자라는 자들이 불안에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나마 그들이 얌전히 이곳에 둘러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퍽이 미리 안배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특히 축제 도우미 일인 것처럼 원더스타인을 속여서 퀘스트 창을 봉인한 방식은 상당히 세련되었다.
“자, 이제 얼마 안 남았군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태 종결 3분 전이 되었다. 이 정도면 이제 외부에서 마신이 직접 강림해서 돌진해 온다고 해도 여기까지 도달할 수 없었다. 벌써 축배를 들려는 샌드맨 몇이 보였다. 그들 중 하나가 웃으며 퍽에게 이번 일의 성공을 축하하려는 순간, 커다란 폭음이 천막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
***
“헤헤, 사랑해…… 사랑해, 단장.”
엘라는 허수아비의 등에 업혀서 잠꼬대를 반복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술을 마시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놓아 버렸다. 그리고 끝내 테이블에 코를 박고 뻗어버리고 말았다.
“으이구, 잘하는 짓이다! 애한테 술을 왜 그렇게 먹였어?”
“제가 먹인 게 아닙니다.”
“옆에서 말렸어야지!”
“말릴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엄청나게 신나 했거든요. 말도 많이 했고.”
“무슨 말? 뭐 때문에 그렇게 신났었는데?”
“그건…… 엘라 양의 개인적인 사정이라 말하기 그렇군요.”
“우씨, 요정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호기심에 미쳐버리는 거 몰라? 뭔데? 뭔데? 뭔데? 얘한테는 비밀로 할게.”
“안 됩니다.”
“흥. 그렇게 나오기야? 뭐, 사실 관심 없어! 어린애의 사정이래 봤자 거기서 거기지.”
“엘라 양은 어린애가 아닙니다. 내일이면 만으로 18살이 되는걸요.”
“18살이면 충분히 애지.”
“아, 죄송합니다. 루미 씨 나이를 깜빡했군요.”
“너!”
루미가 막 그에게 발길질하려고 할 때, 무언가가 그들 사이로 날아와서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두 사람은 바닥에 떨어진 덩어리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원더스타인의 몸뚱어리였기 때문이다.
“끄으…… 아픕니다…… 아파요…….”
아무리 봐도 그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의 팔다리는 모두 부러져 있었고 곳곳에서 피를 흘려댔다.
“뭐야, 얘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누군가에게 공격받은 듯합니다, 아!”
그가 날아온 방향을 올려다본 원더스타인은 입을 딱 벌렸다. 하늘에 뜬 커다란 보름달을 배경으로 눈처럼 새하얀 소녀가 그들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마야 양?”
“뭐야, 마야? 네가 이런 거야?”
마야는 대답 대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녀는 잠시 후 뭔가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 거였어.”
“뭐?”
“당신 둘…… 예전부터 서로 알고 있었지?”
“뭐야! 당신? 이 녀석이 스승님하고 사부님에게 말투가 그게 뭐니?”
“어서 대답해!”
마야의 일갈에 루미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현재 마야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진한 분노와 혐오가 베여 있었다.
“지, 진정하세요, 마야 양. 루미 씨와 제가 알고 지낸 건 맞습니다. 그게 왜 화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마야는 그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모르겠다고? 뻔뻔하기는.
“언제부터.”
“네?”
“언제부터 알고 지냈어?”
그녀는 그에게 거리낌 없이 반말을 썼다. 그는 이제 스승도 은인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언제부터였더라? 레, 레카체프 학교에서부터…….”
“하.”
마야는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것을 본 허수아비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마야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당신은 아직도 내가 우습게 보여?”
“그, 그게 무슨 말씀인지…….”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마야는 마력을 끌어모았다. 끝까지 그가 자신을 기만하려 든다면 무력을 행사할 생각이었다. 그녀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은 루미는 재빨리 소리쳤다.
“자, 잠깐! 기다려! 이, 이게 왜 중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쟤, 쟤를 안 지 20년 좀 넘었어!”
그녀의 말에 마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엄마가 죽기 전부터 알고 지냈군?”
“응? 어, 그, 그렇지?”
“역시. 당신도 한패였던 거야?”
그녀의 밑도 끝도 없는 추궁에 루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얘가 진짜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소리야? 뭔데 이렇게 난리인 거야? 이 착각 대장이 또 어디서 무슨 오해를 품고 와서는……”
“오해?”
마야는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허수아비는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언제나 무표정하던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끼치면서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 알았어.”
“알았다고? 뭘?”
마야는 대답 대신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사랑하는 딸에게’라는 글씨가 새겨진 은빛 원반이었다.
“전부 알았어.”
마야는 메모리 디스크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루미는 그녀가 상의 신비를 터득했음에 놀랐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디스크 속에 담긴 내용이 재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환상은 흐릿하고 자글거렸다. 디스크에 환상을 담을 정도의 마법사가 실력이 모자라서 이 정도 환상밖에 못 만들었을 리 없었다. 이것은 환상을 디스크에 기록할 때, 시전자의 상황이 좋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실제로 환상에 비친 주변 상황은 끔찍했다. 시체들과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가 즐비했다.
“마, 마야?”
어느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루미는 그것이 누구 것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그녀의 친구이자 마야의 엄마인 루마 렌데린의 것이었다. 루미는 종종 그녀가 나오는 추억의 메모리 디스크를 재생하며 놀곤 했기에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곧 화면이 180도 회전하면서 그녀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그녀는 짐승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듯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굳데 굳게 뜯기고 찢긴 자국이 가득했다.
“우, 우리 딸. 아, 안녕? 엄마야.”
허수아비는 그것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했던 그는 마야와 똑 닮은 여성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렸다. 원더스타인의 업보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는 엘라나 다른 단원들과의 은원은 어떻게 해결될지 몰라도 마야와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작 시점에서 마야는 이미 이것을 해독한 상태였다. 비록 자기 얘기를 잘 안 하는 그녀라 확실하게 원더스타인이 엄마의 원수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제반 상황을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도록 단서가 배치되어 있었다.
“네, 네가 이걸 봤을 때, 며, 몇 살쯤 됐으려나? 우리 딸이 또, 똑똑하긴 하지만, 그, 그래도 레오가 2, 3살짜리에게 이걸 보여주지는 않을 테니…… 5, 5살부터 시작할까?”
루마는 떠듬떠듬 말을 이어 나갔다. 그녀는 마야가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해서 성인이 되는 해까지 그녀의 성장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한마디씩 했다.
“지금쯤 학교에 입학했을 텐데…….”
“엄마는 네 나이 때 말이지…….”
“혹시 아빠가 지금도 널 안고 자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단호하게 방밖으로 던져버려.”
때로는 걱정 섞인 덕담을 남겼고, 때로는 딸이 궁금해할 법한 옛날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때로는 분위기를 풀 겸 농담을 걸기도 했다. 마야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다섯 살 때부터 계속 엄마와 함께 살아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루마 너…….”
루미 역시 영상을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친구의 최후가 이랬다니.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화해하지 못했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영상 속 루마가 갓 성인이 됐을 딸의 앞날을 축복해 주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아, 아아, 그, 그자가 왔어. 아, 아무래도 여기까지 해야겠네…….”
“유언은 다 남겼습니까.”
갑자기 끼어든 어떤 남자의 목소리. 그것은 루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그 목소리 역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들었었다.
“제, 제발…… 나, 남편과 딸만은…….”
루마는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가족만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듯했다. 남자는 어깨와 팔 일부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상대가 애걸하는 것을 감상하듯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러다 뭔가 마음을 먹은 듯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 안 돼!”
루미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마야는 반대로 눈을 부릅뜨며 환상을 노려봤다. 허수아비는 그래도 혹시나 품고 있던 희망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영상에 얼굴을 드러낸 남자. 무표정한 얼굴에 긴 금발을 가진 그는 분명 원더스타인이었다. 그는 루마에게 달려들더니 그녀의 몸을 산 채로 뜯어먹었다.
으적으적. 살과 뼈와 으깨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그녀가 공격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이 급격하게 흔들리며 소리도 뚝뚝 끊기기 시작했다.
마법의 시전자인 루마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이다. 그 혼란 속에서 마야는 그녀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를 들었다.
“사랑해. 우리 딸.”
이후로 화면은 알아보기 힘든 형태로 일그러졌다. 이제 디스크에서는 원더스타인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잡음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대부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중간중간 단어 몇 개는 해석이 가능했다.
“당신 딸…… 얼마나 아름답고…… 맛있게…… 클지…….”
은빛 원반에서 나오던 빛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영상 재생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