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614)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614화(614/619)
EP.614 21. 한여름 밤의 꿈 (10)
허수아비는 환영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는 죄책감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만큼 그녀가 보여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마야는 그를 가만히 노려봤다. 그가 최소한 표정 변화라도 보이길 기대했다. 하지만 헝겊에 누덕누덕 기운 자국으로 표현된 입과 단추로 만들어진 눈으로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었다.
루미는 안절부절못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허수아비를 일방적으로 감쌌던 그녀였다. 하지만 환상을 보고 난 지금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말 없는 대치가 계속되던 중에 원더스타인의 육체가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영상을 감상하는 사이 부러진 팔다리를 회복시킨 것이다.
마야는 커다란 쇳덩어리를 그의 위에 소환했다. 몸을 일으키던 그는 꽥 소리를 내며 쇳덩어리에 짓눌려 바닥에 다시 몸을 눕혔다.
상의 신비를 깨달은 뒤로 그녀가 행사할 수 있는 물리력이 몇 배로 증가했다. 폴리곤 환상에 염동력을 두르는 것과 마음의 환상으로 ‘무거운 것’을 상상해 의지 그대로 힘을 싣는 것은 효율적인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이 시점에서 그녀는 이미 원작의 마법사를 뛰어넘고 있었다. 적어도 기술적인 면에서는 말이다.
“알고 있었어요?”
마야의 목소리는 놀랄 정도로 차분했다. 말투도 다시 존댓말로 돌아왔다. 그러나 허수아비는 그것을 보고 그녀의 기분이 풀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게 말이죠…….”
“제발.”
마야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거짓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이미 충분히 했잖아요. 저 이미 많이 알아보고 왔다고요. 그러니 그냥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스승님.”
허수아비는 그녀가 호감도 50 보상인 메모리 레코드를 써서 원더스타인의 기억을 뒤져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웠다.
이반의 기억을 복구시킬 때 그녀가 그것은 영적 기록을 읽는 마도구라고 했다. 원더스타인의 육체에는 영혼이 없으니, 그것을 사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대화를 통해 정보를 끌어낸 것일 것이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이미 여기까지 와서 발뺌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역시…….”
그녀는 그렇게 한 마디 읊조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상처 입은 짐승의 신음 소리 같은 것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 마야? 괜찮아?”
루미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향해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채 한발을 떼기도 전에 마야가 고개를 치켜들더니 고함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그녀를 중심으로 폭풍과도 같은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허수아비는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날려갔다. 그런 그를 붙잡아준 사람은 바로 루미였다.
“루, 루미 씨? 고맙습니다. 저, 그런데…… 에, 엘라 양은?”
“저기 있어!”
루미가 가리킨 방향에는 은빛 장포를 휘날리는 아르노가 나타나 엘라의 몸을 폭풍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었다.
“이제 다 이해가 돼.”
마야의 싸늘한 음성이 천둥처럼 귓가를 때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내가 당신을 죽일 운명이었다는 것도, 불쌍하다고 한 것도, 나를 이용한 것도, 나를 통해 누군가를 본다는 것도. 그래. 무슨 의미인지.”
“마야 양? 그건 또 무슨 소리…….”
“혼과 육체를 나눠 놓아서 좋군. 당신을 두 번 죽일 수 있을 테니.”
마야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환상으로 만들어진 쇠사슬들이 사방에서 솟아났다. 대형 화물선의 닻을 묶을 때나 쓸 정도로 굵은 녀석들이었다.
“크헉!”
쇠사슬들은 원더스타인의 사지와 목을 감아서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마야는 허수아비 쪽을 돌아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일단 이것부터 조각내 줄까?”
그녀의 뒤로 새하얀 칼날들이 수십 개 떠올랐다. 그녀가 막 그것을 내쏘려는 그때, 누군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멈춰!”
그것은 바로 엘라였다. 방금 막 정신을 차린 그녀는 마야가 원더스타인을 공격하려는 것을 보고 놀라서 뛰쳐나온 것이었다.
“마야? 마야 맞지? 뭐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엘라, 비켜.”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진정해!”
“모르겠으면 그냥 닥치고 비켜! 난 저 인간을 죽여야 해!”
마야는 당장이라도 칼들을 내찌를 듯 그녀 앞에 내밀었다. 그러나 엘라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실 마야가 그녀를 피해 원더스타인을 공격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엘라의 저지에 주춤한다는 것은 아직 마음에 번민이 있다는 뜻이었다. 엘라도 그것을 알아채고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이해해.”
“…….”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난 이해할 수 있어. 나도 저 인간을 죽이고 싶어 했으니까.”
엘라는 잠시 옛 기억을 회상하며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반대네. 그때와.”
“그때?”
“레카체프 지하에서 기억나?”
11개월 전, 거기서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다. 물론 두 사람의 위치는 반대였다. 엘라는 원더스타인을 죽이려 했지만, 마야가 그녀를 막았다.
“만약 네가 날 막아주지 않았다면 난 평생 후회했을 거야.”
“저자가 우리 엄마를 죽였어.”
엘라는 그녀의 손에 있는 은빛 원반의 정체를 알아봤다. 한때 그녀가 엄마의 유품이라며 보여줬던 것이었다.
“메모리 디스크……. 그랬구나. 그걸 봤구나. 하지만 있지…… 나도 비슷해. 마을 사람들과 학교 친구들이 죽은 현장에 서 있는 저 인간을 봤어. 네가 들어오기 전에는 아예 숲속 주민들과 병사들을 죽이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지. 하지만 거기에도 사정이 있었잖아. 이번에도 한 번 저 사람에게 기회를 줘보면 안 될까?”
마야는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녀도 엘라가 말한 내용을 진즉에 상정하고 있었다. 그녀도 무턱대고 그를 악인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야는 원더스타인과 함께 저주 역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그가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것도 봤다. 엄마를 죽인 것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좋게 해석한다고 해도 한 가지는 해소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그녀를 똑바로 봐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마야는 불쌍한 아이지요.’
‘저 때문에 운명이 바뀌었으니까요.’
‘원래 운명은 저를 죽이는 거였죠.’
‘조종하기 쉬워서요.’
‘정확히 말해 그녀를 통해 다른 누군가를 비춰보는 것이지만.’
엄마를 죽인 그는 엄마의 딸인 자신을 동정했다. 그런 그가 그녀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은 마법을 가르쳐 주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그의 유도대로 잘 따라왔고 대마법사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
그걸 두고 운명이 바뀌었다고? 내가 마법을 잘 배우지 못했다면 내게 복수를 하라고 목이라도 들이밀었을 거란 소리야?
날 도대체…… 뭐로 보고. 나는 그냥 당신의 죄책감을 해소하는 대용품이었을 뿐이야? 나 자신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냐고?
마야가 진짜 서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자신이 그저 죽은 엄마에 대한 빚을 갚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원래는 원더스타인에게 그것을 따져 물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 질문 뒤에 숨겨진 그녀의 감정 때문이었다.
사실 메모리 디스크를 해독하고 난 다음에 그녀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원더스타인에 대한 증오가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감정의 정체는 바로 질투였다. 자신이 받아야 할 그의 관심과 사랑을 빼앗아 버린 엄마에 대한 질투.
하지만 마야는 자신이 그런 감정을 품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애써 엄마에 대한 복수를 되뇌며 원더스타인에 대한 분노를 표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는…… 너, 너랑 달라. 넌 이해 못 해. 저 사람은 나를…… 나를…….”
“이거 어쩌지? 상당히 불안정해 보이는데?”
루미는 겁에 질린 눈으로 마야와 엘라를 번갈아 쳐다봤다. 예전이었다면 그녀가 힘으로라도 마야를 제지했겠지만, 그녀가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뒤로는 이제 불가능해졌다.
“아무래도 제 몸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이러다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겠군요.”
“하, 하지만 퍽 님은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했는데…….”
“누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허수아비는 원더스타인의 몸을 바라보며 속으로 강하게 소리쳤다.
‘나는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다! 나는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다! 나는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다!’
쑥 하며 영혼이 끌려가는 느낌이 전해졌다. 백일몽이 깨지면서 혼이 원래 육체로 끌려가려는 것이다.
허수아비의 몸이 휘청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이곳은 원더랜드가 아니었기에 원칙적으로 영혼은 페르소나의 형태를 띠지 않았다. 허수아비의 몸은 한여름 밤 서커스단의 공예팀이 만들어 준 소품이었기에 이처럼 혼이 떠나도 껍데기는 남아 있었다.
“무슨 짓이야!”
마야는 그것을 몰랐기에 갑자기 수상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허수아비를 제압하기 위해 마력을 발산했다. 엘라 역시 그녀가 팔을 뻗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그녀가 본 것은 마야의 염동력을 맞고 바닥에 쓰러지는 허수아비였다. 그녀는 놀라서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 사이 원더스타인은 본인의 육체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몸에 깃듦과 동시에 육체에 걸린 백일몽은 깨졌고 성자의 신성력 역시 돌아왔다. 쾅 하는 폭음과 함께 새하얀 섬광이 세상을 뒤덮었다.
이곳은 어비스와 현실의 중간지점. 게다가 원더스타인을 이곳에 묶어두기 위한 각종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신성력은 그것을 부정한 힘의 작용으로 받아들이고 자동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우와앗, 귀향자! 안 됩니다!”
“이미 늦었어!”
“아이고, 망했다!”
폭음을 듣고 천막에서 뛰쳐나온 샌드맨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원더스타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간 백광이 주변 공간을 종잇장처럼 마구 찢고 있었다. 결계는 외부의 공격을 막는 데 특화되어 있었기에 내부의 공격에는 취약했다.
그렇게 찢겨나간 틈새로 오로라 같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을 본 요정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팔방 도망치기 시작했다.
“꿈결이다!”
“휩쓸리면 안 돼!”
“어서 탈출해라!”
요정들의 반응을 보고 엘라는 이것이 보통 사태가 아님을 느꼈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만해! 위험한 것 같아!”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멋대로…… 윽!”
오로라 일부가 원더스타인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성스러운 빛과 부딪쳤다. 그 순간,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거친 폭음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들판에 있는 요정들이 단체로 바닥에 나자빠졌고 천막들이 와르르 주저앉았다.
그것은 들었다는 것만으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일은 따로 있었다.
두 힘이 충돌한 자리가 공간째로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쇠를 비트는 것처럼 천천히 찌그러지던 그것은 점점 속도가 붙더니 강물처럼 속도가 빨라졌다. 원더스타인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난 것이다.
“우와악, 빠, 빨려 들어간다!”
“사, 살려줘!”
“안 돼!”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그 흐름에 휩쓸렸다. 요정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의 일행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와악, 다, 단장!”
“엘라 양!”
원더스타인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엘라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소용돌이의 중심부에 있는 그에게는 강력한 압력이 작용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단장님……!”
“마야 양!”
그나마 마력을 사용해서 버티던 마야도 결국 힘의 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흐름에 휩쓸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그의 주변을 맴돌더니 그의 발밑 아래에 있는 무저갱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