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616)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616화(616/619)
EP.616 21. 한여름 밤의 꿈 (12)
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원더스타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살펴봤다. 얼굴이나 체형은 기존 세계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에는 마술사 모자 대신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있었고, 연미복 대신 방풍 코트를 걸치고 있었으며, 옷걸이에는 망토 대신 판초가 걸려 있었다. 단원들의 복장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서부극의 분위기를 풍겼다.
원더스타인은 퍽이 건네준 책을 꺼내서 펼쳐봤다. ‘해몽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그것은 샌드맨 세계의 보물 중 하나로 자신이 꾸고 있는 꿈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해몽서의 내용을 정독한 그는 평행 세계의 자신이 원래의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단장으로 있는 이곳은 대외적으로 서커스단 행세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악명 높은 도적단이었다.
‘검은 복면들’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들은 등장한 지 1년 만에 강도질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라이프니츠 저택 학살 사건, 장미 풍차 카지노 습격 사건, 대륙 종단 열차 강도 사건 등. 신문에 크게 보도된 것만 해도 여러 건이었다.
그런데도 수사당국은 그들의 이름은커녕 수배 전단에 실을 얼굴 하나 알아내지 못했다. 이는 모두 원더스타인이 제공한 ‘검은 복면’ 덕분이었다. 그것을 쓰면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강력하게 왜곡되었다. 괴물 단원들 같은 특이한 외모도 사람들의 인식을 마구 비틀어 특징 없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이 세계의 단원 관리 창에는 원래 세계에 없던 항목이 있었다. 바로 단원들이 저지른 범죄 목록이 기재되어 있었다.
살인, 방화, 협박, 강도, 고문, 폭행 등등. 다들 전과가 넘쳤다. 가장 어린 루엘로조차 사기와 절도 몇 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상태창의 다른 부분도 가관이었다. 서커스단의 명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악명과 현상금 총액이 기재되어 있었고, 단원들의 호감도는 충성도로, 공연 퀘스트는 모두 작업 퀘스트라고 해서 돈이 될 만한 일거리를 소개하고 있었다. 당연히 모두 범죄였다.
이 정도면 이곳에 있는 단원들은 원래 세계의 단원들과 외모와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봐야 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격만 해도 완전히 달랐다.
엘라는 음침하고 소심했으며, 마야는 시끄럽고 활기찼다. 다른 단원들도 지금껏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들을 취하곤 했다.
단원들의 직업을 봐도 기가 찼다. 미노바는 대부업자에, 가스통은 마약상, 도스빌은 장물아비, 설리반은 소도둑, 니카는 사기꾼, 한트케 교수는 반정부 활동가로 수배 중인 사람이었다.
다들 묘하게 원래 직업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게 신기하다면 신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약력 또한 원래 세계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알렌과 조의 경우 원래 극단의 광대였으나 우연히 살인을 저질러 피 맛을 보고 칼잡이로 전직했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우스운 것은 원더스타인 본인의 직업일 것이다. 그의 표면상 신분은 바로 목사였다. 갈 곳 없는 이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뒤로는 도적질을 일삼는 것이다.
“작전 당일 은행 내부에 상담 약속을 잡아 놓았어요.”
사치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카렌이 도도한 걸음걸이로 캠프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명망 높은 귀족 집안의 아가씨였는데 담배와 알코올 중독 때문에 수녀원에 갇혀 살다가 탈출해 도적단에 합류한 것이었다. 그녀는 단원 중 몇 안 되는 확실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주로 작전 목표를 정찰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렇듯 현실의 서커스단과 이들 도적단은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나도 달랐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단원들끼리의 유대감이었다. 다들 주류 사회에서 배척받는 별종이라 그런지 단원들 사이가 상당히 끈끈했다.
“단장…… 카, 카렌이 돌아왔으니…… 이제 준비는 끝난 셈이야…….”
엘라가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심하고 기가 죽어 있는 엘라라니.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됐다.
“좋습니다. 그러면 내일은 예정대로 은행 근처에 방을 잡으러 가죠.”
그래도 그는 티를 내지 않고 평소처럼 그녀를 대하려고 애썼다. 이곳의 그도 웃는 남자라는 특성을 달고 있었기에 연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는 작전 계획표를 검토하는 척하면서 캠프를 둘러봤다. 마야는 환상으로 위조품을 만들어 장물아비인 도스빌 남작의 평가를 듣고 있었고, 미노바는 지역 금융기관에서 사 온 채권들을 검토하며 알렌과 조가 처리할 만한 인물들을 골라주고 있었으며, 니카는 적당한 지역 명사 하나 잡아서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아 돈을 뜯어낼 생각인데 배우로 참여할 생각 없냐며 루엘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이중 꿈을 꾸고 있는 동료는 도대체 누구일까. 원더스타인은 동료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피며 퍽이 준 시계를 봤다. 남은 시간은 대략 10일. 그 안에 일행들을 현실로 데리고 나가야 했다.
***
꿈의 세계로 떠나기 전에 퍽은 남은 시간이 표시된 시계를 원더스타인에게 주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꿈에 뚫린 구멍이 닫혀서 영영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남은 시간이 고작 10일? 그 안에 10명을 찾아서 데려오라는 겁니까? 엄청 빠듯해 보이는데요.”
“첫 번째 꿈만 10일입니다.”
퍽은 그에게 현실과 꿈의 시간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꿈은 현실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릅니다. 시대마다 계절마다 그 비율은 달라지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대략 50배 정도군요. 그 예로 당신들이 한여름 밤의 서커스에 온 지 벌써 닷새가 지났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2시간 반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들판도 꿈이었습니까?”
“네. 세상과 세상 사이의 공터 같은 곳입니다. 원래는 우리 샌드맨들의 회합 장소로 쓰이는 곳이죠. 어쨌든 다른 꿈에 들어가도 시간이 거기와 같은 속도로 흐를 겁니다. 현실보다 50배 느리게 말입니다. 하지만 귀향자 당신이 첫 번째 꿈에서 누군가를 깨우는 일에 성공한다면, 그 사람을 기준으로 그곳이 현실이 되고 그다음 세계가 꿈이 됩니다. 만약, 10일 중 9일을 소모해 첫 번째 꿈을 해결한다고 하면, 2번째 꿈에서는 남은 하루가 50일로 뻥튀기된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불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거 편리하군요.”
“그게 마냥 편리하기만 했다면 많은 사람이 꿈에서 시간을 보냈겠죠. 생각해 보세요. 수련, 연구, 공부 이런 걸 꿈에서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깨면 기억이 안 나서?”
“맞습니다. 그걸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꿈에서의 정신은 오롯이 내 정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행 세계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 명의 ‘나’가 공유하기 때문이죠. 꿈에서 책을 한 권 썼다고 칩시다. 꿈에서 깨면 그 안의 문장들은 무작위로 나뉘어 수천 명의 ‘나’들에게 분배됩니다. 당연히 눈뜨고 몇 초 지나면 머릿속에서 지워질 수밖에 없죠. 이따금 아주 중요한 한두 장면이나 단어 하나 정도가 ‘영감’이라는 이름으로 포착될 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꿈으로 시간을 뻥튀기하는 게 왜 위험하다는 거죠?”
“현실에 몸이 있으면 사실 꿈이 몇 번 중첩이 되든 상관없어요. 혼과 육의 상호작용으로 정신이 강제로 현실로 끌려 나오게 되니까요. 하지만 지금 당신의 동료들은 육체와 혼이 함께 꿈에 휩쓸려 버렸죠. 그들에게는 강제 탈출 장치가 없어요. 그래서 억지로 정신을 깨워 현실로 끌어올려야 하는 데 꿈 위에 꿈이 있고 그 위에 또 꿈이 있는 식이면 현실까지 끌어올리기 힘듭니다. 그래서 꿈안의 꿈으로 진입할수록 시간은 늘어나지만, 꿈을 꾸는 대상을 깨우기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꿈의 동료가 ‘여기는 꿈이다’라는 한 마디에 깰 수 있다면, 두 번째 꿈의 동료는 하루 종일 붙잡고 대화해야 가능할 것이고, 세 번째 꿈의 동료는 몇 주를 공을 들이고, 네 번째부터는 몇 년을 함께 보내야 정신을 차릴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그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시간이 늘어난다고 단순히 좋아할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한 번에 구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구해야 할 동료는 10명. 운이 좋다면 한두 명은 같은 세계에 있을 수 있겠지만, 최악을 가정합시다. 일단 저는 3, 3, 2, 2 전략을 추천합니다.”
“3단계 밑으로는 안 내려가는 게 좋다는 거군요.”
“시간이 부족하면 어쩔 수 없이 그래야겠지만 되도록 1, 2단계에서 처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첫 번째 꿈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중요했다. 거기서 많은 시간을 소모하면, 뒤에 가서는 무조건 4, 5단계가 강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그들의 꿈을 깨우죠?”
그의 질문에 퍽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은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네? 제가 그런 것을 알 리가…….”
“단원중 한 명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자아를 찾아내 표면으로 건져 올리는 데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
잠시 생각에 잠겼던 원더스타인은 곧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레이나의 단원 퀘스트인 ‘라하이나 눈’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의 억눌린 욕망을 자극해서 그림자를 성장시켰다.
“그것과 원리는 비슷합니다. 꿈의 인격 아래에 잠들어 있는 본래 세계의 인격을 자극해서 표면으로 끌어내는 겁니다. 본래 인격을 꾀어낼 당근을 준비해도 좋고, 꿈의 인격을 물러나게 만들 채찍을 준비해도 좋습니다. 즉, 꿈 세계의 동료는 싫어하겠지만, 본래 세계의 동료는 좋아할 만한 환경을 조성할수록 꿈에서 깨어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원더스타인은 이제야 자신이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혔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꿈을 꾸는 동료가 누구인지는 어떻게 알아냅니까?”
“제가 준 시계를 사용하십시오.”
“뭔가 특수한 능력이 있는 겁니까?”
원더스타인은 시계의 앞뒤를 살펴봤다. 정면은 평범한 회중시계였고 후면에는 12자리 숫자판이 부착되어 있어서 남은 시간을 알려줬다. 별다른 기능은 없어 보였다.
“보다시피 그건 그저 평범한 시계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건 꿈에서 일종의 토템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계의 가장 큰 기능은 시간을 알려준다는 겁니다.”
그게 왜 중요한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원더스타인을 향해 퍽은 말했다.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꿈에서는 시계를 읽지 못한다고. 정신이 여러 평행 세계에 걸쳐져 있기에 시간 감각에 혼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세계의 원래 주민들은 이 시계를 본다면 시계를 잘 읽어낼 겁니다. 그들에게 그곳은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이 시계를 보면 엉뚱한 숫자를 말하거나 혼란스러움을 느낄 확률이 높습니다. 온통 무채색으로 칠해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유채색을 가진 이 시계를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유채색의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품속에 조심히 갈무리했다. 그렇게 떠날 준비를 마친 그는 주저 없이 문을 열고 꿈속으로 뛰어들었다. 시계의 숫자가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샌드맨들이 꿈의 격류 속에서 형성한 이 공간은 현실과 꿈의 중간에 속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현실보다는 빨랐지만 진짜 꿈보다는 느렸다. 퍽에게 설명을 듣는 30분 사이 벌써 남은 시간이 5시간이나 줄어들었다.
꿈의 격류 속에서 그는 여러 세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가 경험한 세상과 비슷한 곳도 있었고 전혀 다른 곳도 있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정말 꿈을 꾸는 기분과 비슷했다. 그렇게 격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보니 그는 마침내 괴물 도적단의 세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