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RAW novel - Chapter (85)
〈 85화 〉 7. 장미 풍차 카바레의 시험 (19)
* * *
방에 도착한 나는 화장대를 뒤적였다.
그곳에는 온갖 잡다한 물약으로 가득했다.
방향제에 화장품에 입욕제까지.
아나이스가 내게 선물해준 것들이었다.
나는 그중 약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분명 원기회복에 도움이 되는 포션이라고 했다.
엘라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다시 메시지를 꺼내 읽었다.
그러나 몇 번을 읽어도 적혀 있는 내용 외에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 없었다.
몇 가지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으나 지금 시점에서는 막연한 상상일 뿐.
결론을 끌어내기에는 단서가 부족했다.
원더스타인과 엘라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에게 캐물으면, 뭔가를 더 알아낼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나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건 그 아이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거기다 묻기 힘든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나는 그 일을 저지른 당사자였다.
내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악마가 또 장난을 치려 한다고 여길 수 있었다.
나는 알림창을 내렸다.
섣부른 추측은 그만두고 지금 주어진 단서부터 살펴보는 게 우선이었다.
데볼루트 면역.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른 단원들을 대상으로 데볼루트를 쓰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정상적인 몸’에 대한 열망은 내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그들을 온전한 몸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진단을 해봤다.
진화연구소는 그때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고유 특성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내 ‘웃는 남자’를 제거하려 했을 때와 같은 알림이 떴다.
내 얼굴에 박힌 이 미소처럼 그들의 타고난 모습을 데볼루트로 개조하는 건 불가능했다.
고유 특성이라는 이유로.
원더스타인은 단순히 특이하게 생긴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 배경에 뭔가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엘라의 방에 도착했다.
방안에는 처음 보는 중년의 남자가 엘라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집고 있었다.
벌써 의사가 도착한 건가?
유라크네가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이곳에 묵는 분 중에 의사분도 계셨어요.”
서커스 그랑프리를 구경하러 몰려온 관광객들 때문에 루즈는 현재 숙소 가뭄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방이 없어서 마차에서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나이스와 베르그송 상회의 사람들이 ‘전후 처리’ 문제 때문에 루즈를 한동안 떠나면서, 빈방을 상회와 인연이 있는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아무리 호텔 전체를 전세 냈다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방을 십수 개나 비워두는 건 욕 먹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 친분 있는 대상에게 제공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마침 그중에 의사가 있었다니.
천만다행이었다.
“어떻습니까?”
나의 질문에 의사는 지금까지 환자의 가족들에게 수천 번은 더 지어 보였을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기립성저혈압입니다. 쪼그려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고 했지요?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뇌의 산소가 모자라 쓰러진 겁니다.”
엘라가 그렇게 몸이 약했나?
그는 내 눈빛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레스와 피로, 수면 부족, 불규칙적 생활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영양 포션을 마시고 푹 쉬면 금방 회복할 겁니다.”
결국에 무리한 탓에 쓰러졌다는 말이었다.
큰 병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녀가 왜 괜한 오기를 부렸는지는 짐작이 갔다.
서커스는 그녀의 성역이었다.
원더스타인에게 도움받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의사는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양 포션은 날이 밝고 연금술 길드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겁니다.”
“포션은 이걸 쓰면 안 될까요.”
나는 그에게 방에서 가져온 약병을 내밀었다.
그는 포션의 라벨을 살피더니 눈을 크게 떴다.
“오오, 이건 그 구하기 힘들기로 유명한! 그, 그런데 이런 걸 애한테 쓰기에는 좀…….”
“상관없습니다.”
의사의 반응을 보니 상당히 귀하고 비싼 물건인 듯했다.
단순한 몸살로 쓰기에는 아깝다는 말이겠지.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녀의 건강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주고 싶었다.
나는 재차 포션을 의사에게 내밀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그것을 거절했다.
“저기 그러니까 이거…….”
“얼마든지 쓰시죠. 엘라 양이 나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이거……남성들이 쓰는 정력제입니다.”
“…….”
“보이시죠? 약 이름이? 아내의 눈물입니다.”
갑자기 수치심이 밀려왔다.
웃는 남자가 없었다면,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아나이스는 내게 왜 이걸 선물한 걸까.
화장품, 입욕제와 같이 포장되어있던 걸 보면 연금술 길드에서 내놓은 선물세트 같은 거였나?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그러나 감히 원더스타인을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광대 기질이 발동한 스벤만이 입이 근질거리는지 턱을 달그락거렸다.
그때, 침대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킥……킥…….”
엘라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파리하게 떨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당신……벼, 별로였나 보지?”
“네?”
당황한 나를 보고 그녀는 웃음을 계속 흘렸다.
“킥킥……. 다, 다 봤거든……? 그날……둘이 침실에서…….”
그때, 마야가 갑자기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소 다급해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엘라의 이불을 그녀의 턱 끝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열이 심하네요. 아까부터 헛소리를 자꾸 하고.”
“킥킥……. 마야 너도……같이 봤잖아…….”
엘라가 이불을 붙들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아직 제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저 찬 빗속에서 한 시간을 누워있었으니 그럴만했다.
“단장님, 극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에요.”
마야는 아예 이불을 그녀의 머리끝까지 덮어씌우고는 시계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6시가 되었다.
지금쯤 랫맨들이 싣고 간 짐을 내려서 풀고 있을 것이다.
“벌써 시간이 저렇게 됐어?”
“어서 가서 공연 준비를 해야지.”
“잠깐만요. 모두 다 가는 건 그렇지 않나요?”
“핫핫, 그렇죠. 한두 명이라도 남아서 번갈아 부단장을 보살피는 건…….”
“안 돼. 오늘이 연습 마지막 날이잖아. 리허설은 무조건 같이해야 해.”
“맞아.”
“제 생각도 그래요.”
“하지만 엘라는…….”
방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동시에 산발적으로 단원 퀘스트들이 떠올랐다.
단원들의 의견이 반으로 갈렸다.
나는 내용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는 모두 치워버렸다.
지금은 그들의 바람에 이끌려 다닐 수 없었다.
나는 방의 중앙에 섰다.
마구잡이로 떠들던 단원들이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들 모두를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 공연이에요. 오늘 연습은 아무도 빠질 수 없어요.”
“그러면 엘라는…….”
“호텔 직원에게 부탁하면 되죠. 솔직히 사람 돌보는 일은 우리보다 호텔 직원들이 더 잘할걸요? 마사지 서비스만 받아봐도 알잖아요.”
나의 말에 여러 군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여러분은 어서 방으로 가서 짐을 들고 오세요. 로비에서 모이죠.”
단원들이 각자의 방으로 떠나고 방 안에는 나와 엘라만이 남았다.
그렇게 몇 분쯤 지났을까.
“우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그녀가 이불 위로 눈을 빼꼼히 내밀었다.
그녀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더니 다른 곳을 바라봤다.
무슨 의도지?
나는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 가서 섰다. 그러자 그녀는 또 시선을 홱 돌렸다.
나는 질세라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또 이동했다. 그러면 그녀는 또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우리는 시선 술래잡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녀는 마침내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나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뭐야…….”
“후후, 항복인가요?”
“씨……. 왜 귀찮게 하는 건데……가뜩이나 피곤한데…….”
“자꾸 시선을 피하니까 그렇죠.”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하려고 했던 말을 꺼냈다.
“이번 일에 대해 저에게 하고 싶은 말 없습니까?”
나는 그녀가 내게 화를 냈으면 했다.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컸다.
그녀가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듣고 나면,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그녀에게 귀찮게 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미안…….”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사과를?
왜?
“……엘라 양이 왜 사과하는 겁니까.”
“자기 관리도 중요한 일이야. 봐. 그걸 못하니까 결국에 팀에 폐가 됐잖아.”
이 무슨.
그녀가 아무리 성실하다 해도 이건 아니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다들 그동안 엘라 양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어요. 엘라 양이 한 고생은 모두를 위한 일 아니었습니까?”
그녀는 잠시 우물거리더니 답했다.
“아냐. 그게 아냐. 나 있지……굳이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했어.”
“그럴 리가요.”
“맞아. 당장 안 해도 될 일을, 그냥 넘어가도 충분한 일을, 자꾸 만들어서 했어. 왠지 알아?”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그녀가 감춰왔던 속마음을 얘기했다.
나는 안타까움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 이 아이의 마음속은 이렇게 수라장이 되었던 걸까.
“저와 엘라 양 사이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엘라 양이 그랬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요.”
“아냐.”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공연은 약속이야……. 아무리 미운 상대라 해도 연인 역으로 섰으면, 무대 위에서는 연인 연기를 해야 해. 설사 원수라고 해도…… 공중그네에서 붙잡아주는 역할을 맡았으면…… 손을 뻗어줘야 해. 그게 원칙이야. 나랑 당신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건 그걸로 공연을 망치면 안 돼. 관객들의, 극장의, 다른 단원들의 신뢰도 함께 엮인 일이란 말이야. 그런데 그걸 나는 사적인 이유로 망쳤어. 그러면 벌을 받는 거지 키르쿠스에게. 유령이 당했던 것처럼……. 그래. 나는 벌을 받은 거야…….”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돌아왔다.
그녀는 침대 모서리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누워 계세요.”
“가야지……. 내가 할 일을 해야지…….”
“엘라 양은 환자입니다. 쉬어야 해요.”
“쇼는 계속되어야 해. 망칠 수 없단 말이야……윽.”
일어서던 그녀의 자세가 무너졌다.
그녀는 팔꿈치로, 주먹으로 가까스로 몸을 지탱해가며 나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내, 내가 없으면……누가 사회자를 해……?”
“제가 하죠.”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 당신이……?”
“제가 쓴 대본입니다. 잊으셨습니까?”
나의 말에 그녀의 호흡이 조금 흐트러졌다.
“그, 그치만 무대에 서는 건 전혀 다른 일이야. 당신은…….”
“말했잖아요. 저 3만 명 앞에서 공연한 적도 있다고요.”
비록 모니터 너머였지만.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저희를 믿고 쉬고 계세요, 엘라 양. 아시겠죠? 몸을 회복하는 게 우선입니다.”
나는 그렇게 방을 나서려다 말고 발을 멈췄다.
가장 중요한 말을 안 했다.
내가 방에 남았던 것도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엘라 양.”
“……응?”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녀를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그동안 힘든 일을 모두 맡겨서 미안했어요.”
“뭐……?”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엘라를 두고 나는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단원들은 모두 각자의 도구를 들고 로비에 집합에 있었다.
“갑시다.”
우리를 모두 실은 3대의 마차가 폭우를 뚫고 카바레를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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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Han pasado 84 añ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