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0)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0)화(10/151)
레이첼이 시안과 이야기를 마치고 홀로 나왔을 때 반대쪽 홀 입구에서 테오도르가 들어섰다.
음침하고 낯선 남자의 등장에 테오도르가 경계했다.
“레이첼. 이 사람은?”
“길드에서 온 정보원이에요. 제가 의뢰를 맡겼거든요.”
“길드, 정보원, 의뢰.”
원래 잘못한 놈이 제 발을 저리는 법이었다. 켕기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테오도르는 바짝 긴장하며 시안을 노려보았다.
자신을 겨냥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시안이 테오도르 쪽으로 예를 갖췄다.
“엘로사 백작님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길드의 정보원, 알리아스라고 합니다.”
“그래. 레이첼에게 의뢰를 받았다고?”
“예.”
안대로 가려진 시안의 시선이 정확히 테오도르를 향했다.
테오도르는 오전에 아들에게서 끔찍한 살의를 느꼈던 터라 잔뜩 예민한 상태였다. 그는 움츠러드는 어깨를 일부러 곧게 펴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뭐지?”
“백작께서는 무척 행복하시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테오도르가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행복하겠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이는군.”
“실례했습니다. 부인께 ‘그런’ 선물을 받는 분이라면 행복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 선물?”
테오도르가 레이첼을 돌아보았고, 레이첼은 어깨를 으쓱했다.
특별한 의미도 없는 물건이니 빨리 처리해 버리는 게 낫겠지.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준비했어요.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라는 뜻을 가진 선물이래요. 내일 황태자 전하의 생신 연회에서 당신이 커프스에 달아주면 기쁠 거예요.”
멀리서 지켜보던 베렝겔라가 후다닥 달려와 상자를 열었다. 분홍 다이아몬드가 영롱한 빛을 뿜었다.
중년 여성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테오도르는 억지로 기쁘다는 뜻을 표했다.
어쩜 이런 선물을 준비했냐는 모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사이, 시안은 자취를 감췄다.
* * *
연회장에서의 반응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어머, 엘로사 백작! 귀해서 아무나 구하지 못한다는 커프스단추 아닌가요!”
“공식 석상에 매번 백작만 얼굴을 비추기에 부부 사이가 나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떠돌았는데, 이제 보니 다 헛것이었어요. 정말 부럽습니다, 엘로사 백작.”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대체 이걸 어떻게 구하셨지요?”
“이웃 나라에서 제국으로 수입해 들어온 것이 딱 한 개뿐이라고 하더군요. 대체 누가 그 귀한 걸 차지할까 궁금해하던 차였는데 황제 폐하도, 공작 각하도 아닌 백작께서 구하셨다니, 정말 놀랍네요!”
“아하하…….”
테오도르는 멋쩍게 웃었고, 베렝겔라는 귀부인들에게 둘러싸여 신나게 떠들었다.
“우리 엘로사 백작 부인이 이렇게 멋지답니다. 그동안 몸이 안 좋아 공식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게 미안하다고 준비해 주었습니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에요.”
“어머머, 베렝겔라 부인. 정말 좋으시겠어요. 어쩜 저런 며느리를 얻으셨을까.”
멍청하다고 은근히 욕할 때는 언제고, 없는 얘기까지 지어서 청산유수처럼 떠들어댔다.
베렝겔라와 달리 테오도르는 말 붙이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대꾸하며 연회장 구석을 지켰다.
“백작, 몸이 불편하신가요? 연회 준비를 하느라 무리하신 게 아닌지.”
“아, 예. 조금 피곤하지만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연회장에 들어올 때부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뭔가 찾는 듯했으나 커프스단추 때문에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였다.
대체 뭘 찾는 걸까.
높으신 분들께 잘 보이고 싶어서 연회 준비까지 한 게 아니었나? 기껏 지체 높은 귀족들이 먼저 살갑게 말 걸어 주는데 왜 저러는 걸까.
아들이 못마땅한지 베렝겔라가 몇 번이나 테오도르의 옆구리를 찔렀다.
베렝겔라의 눈치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척하는 건 잠시였다. 테오도르는 다시 연회장을 살폈다.
그때 뿌우, 하는 나팔 소리와 함께 연회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이제 겨우 열 살인 황태자 아트레이유는 황금 가마를 타고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를 따라 황제 시가르와 황후 베아트릭스, 황태후 벨윈더, 대성자 티티예니스, 마지막으로 시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일행이었지만 레이첼의 눈에는 시안의 모습만 보였다.
‘저렇게 생긴 사람이었구나.’
원작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멋졌다.
검은 후드 아래 완벽하게 가려졌던 칠흑 같은 머리카락, 그 아래 황금빛으로 번뜩이는 눈동자, 베일 듯 날카로운 콧날과 턱선, 붉고 단정한 입술이 완벽하게 조화로운 미남이었다.
얼굴은 어여쁜데 키가 크고 어깨도 넓었다. 단련된 근육이며 균형 잡힌 몸매, 우아하고 기품 넘치는 움직임과 당당한 자태까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주변을 둘러보는 눈빛은 위엄 있기까지 했다.
저렇게 멋진 모습을 망토며 안대로 가리고 있었다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얼굴을 드러내고 다녔다면 이름까지 바꾼 잠행에 아무 의미도 없었겠지만.
‘급이 다르구나. 테오도르도 꽤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대공에 비하면 그냥 원숭이야.’
일행이 단상을 올라 옥좌에 앉자 귀족들이 몸을 숙이고 예를 갖췄다.
“황제 폐하 만세!”
“오늘은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이니 다들 즐기도록 하라.”
황제 시가르의 명이 떨어지자 연회장은 다시 북적였다.
연회가 무르익어 가는데도 테오도르는 여전히 뭔가 찾아 헤매듯 어수선을 피웠다.
“뭘 찾으십니까.”
“아, 별거 아닙……. 헉.”
지금까지처럼 대충 대꾸하려던 테오도르가 말을 건넨 사람을 보더니 숨을 들이켰다.
시안이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공이야. 어쩜, 대공이 왜 여기까지 내려왔지?”
“연회에 참석하더라도 자리만 지키다가 가버리는 분인데.”
“엘로사 백작과 무슨 인연이라도 있나?”
“그나저나 정말 아름다운 분이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니까.”
베렝겔라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어 먼저 예를 갖췄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엘로사 백작의 모친, 베렝겔라 엘로사입니다.”
“시안 디카르시냐크입니다.”
상냥하지도, 쌀쌀맞지도 않은 담백한 대답이었다. 알리아스라는 이름으로 잠행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레이첼이 뒤를 이어 무릎을 굽혔다.
“처음 뵙겠습니다. 엘로사 백작의 아내, 레이첼 엘로사입니다.”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레이첼과 눈을 맞췄다.
‘증거를 받을 준비는 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마지막으로 테오도르가 인사했다.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아, 안녕, 아니. 처음 뵙겠습니다. 테오도르 엘로사 배, 백작입니다.”
“그대가 소문의 엘로사 백작이군요.”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테오도르는 흠칫 놀랐다.
“부인께 분홍색 다이아몬드가 달린 커프스단추를 선물 받으셨다고요.”
“아, 예에.”
“저도 받고 싶었던 물건입니다. 부럽군요. 부부 금실이 무척 좋으신 모양이네요.”
불륜을 숨긴 테오도르도, 테오도르에게 들키지 않게 이혼을 준비하는 레이첼도 천연덕스러웠지만 시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는 제가 제 손으로 구해다 준 물건을 처음 보는 양 들여다보면서 진심으로 부럽다는 듯이 탄식했다.
레이첼은 감탄했다. 저렇게 연기를 잘하다니, 연기 대상감이다. 정말 부러워하는 것 같잖아?
인사가 끝나자 모여선 귀족 영애와 부인들이 바빠졌다. 다들 뺨을 발갛게 물들인 채 어떻게든 시안에게 말을 건네려고 애썼다.
“대공 전하, 제가 드리는 선물도 괜찮으시다면……!”
“엘로사 가문의 부부 금실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해드릴 수 있습니다……!”
“두 분이 어린 시절 어떻게 결혼을 약속했는지 궁금하시다면……!”
베렝겔라는 여인들 틈에 섞여 시안에게 달려들었다. 싱싱한 인간에게 달려드는 좀비 떼 같았다.
레이첼은 혀를 내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무리를 빠져나오고 보니 곁에 서 있던 테오도르가 보이지 않았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연회장이 어둑해졌다. 춤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짝을 찾아 회장 중앙에 섰다.
시안은 몇몇 여성에게 은근히 춤 신청을 해달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고, 레이첼에게 춤을 권해야 할 테오도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춤이 시작된 연회장 구석에 나란히 서 있었다.
시안의 시선이 슬쩍 레이첼의 얼굴을 스쳤다.
“춤은, 추지 않을 겁니까.”
“여기 춤추러 온 건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증거는 언제 주실 건가요? 저는 마음이 급해요.”
조명도 어두워졌고, 사람들의 시선도 멀어졌고, 뭔가를 은밀히 건네받는다면 지금이 적기였다.
시안이 연회장 벽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좋습니다. 마침 드리기 좋은 때인 것 같군요. 따라오십시오.”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시안을 따라갔다. 연회장 구석을 빙 돌아 테라스가 늘어선 곳에 도착했다.
각 테라스는 전부 커튼이 쳐져 있었다. 연회에서 만난 남녀가 밀회를 즐기는 중이라는 뜻이었다.
남녀가 빈 테라스로 들어가 커튼을 친다. 커튼 뒤에서 뜨거운 정을 나눈다. 들어간 사람들이 스스로 커튼을 걷을 때까지 누구도 커튼을 열어서는 안 된다. 귀족 사회의 불문율이었다.
테라스는 대부분의 귀족 자제가 만들어진 장소였으며, 앞으로 만들어질 장소였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애용하는 장소였기에 절대 사라질 일이 없었다. 은밀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안은 커튼이 쳐진 한 테라스 앞에 멈춰 섰다.
“제가 지금 드릴 것은 부인의 남편이 도망치거나 변명하지 못할 확실한 불륜의 증거가 될 겁니다. 이 증거를 보고 혹시 부인이 놀라거나 충격받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괜찮겠습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놀라거나 충격받을 이유가 있나요?”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까요.”
“설령 놀라거나 충격받는대도 상관없어요. 무를 생각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짧게 답한 시안이 닫힌 커튼의 끝을 쥐었다. 근처에 서 있던 귀족 몇몇이 깜짝 놀랐으나 감히 대공에게 뭐 하시는 거냐고 묻지는 않았다.
시안은 당장 커튼을 걷을 것처럼 팔을 들었다. 놀라는 귀족의 수가 늘어났다. 몇몇 귀족은 춤을 멈추기도 했다.
시안은 더 많은 사람의 시선이 제게 모이기를 기다리는 듯 팔을 들고 태연하게 기다렸다.
점점이 번진 시선은 연회장에 흐르던 음악을 멈추게 했다.
‘설마 커튼을 열겠다는 거야? 아무리 대공이라지만 그래도 되는 거야?’
수많은 눈빛이 질문을 던졌다.
레이첼 역시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테라스 안으로 들어가서 물건을 전달하려는 게 아니었나?’
시안이 검지 손가락을 세워 단정한 입술에 가져다 대고 쉿, 소리를 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쫘악!
두꺼운 커튼이 시안의 손길에 뜯어져 연회장 바닥에 떨어졌다.
“꺄악!”
나이가 어리거나 비위가 약하거나 수줍음이 많은 자는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눈동자는 테라스에서 난잡하게 몸을 섞던 남녀에게 고정됐다.
테라스에서 한때를 즐기던 두 사람, 테오도르와 제인은 엉킨 자세 그대로 굳어졌다.
테오도르의 커프스에는 레이첼이 선물한 분홍색 커프스단추가 반짝였다.
시안이 속삭였다.
“어떻습니까, 부인. 제가 준비한 ‘확실한’ 불륜의 증거가.”
아내가 선물한 사랑의 증표를 매단 채 다른 여자를 품던 테오도르는, 황태자의 생일 연회에서 온갖 귀족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가장 추한 방식으로 자신의 내연녀를 세상에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