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01)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01)화(101/151)
며칠 뒤 레이첼의 앞으로 초대장이 도착했다.
케이티가 건네준 초대장을 살핀 레이첼의 눈이 가늘어졌다.
[최근 수도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하여 뒤숭숭한 사교계의 분위기를 전환할 겸 친히 자선 음악회를 열고자 하니 수도에서 머무르는 귀족들은 반드시 참석하여 내 뜻을 돕도록 하라.
시가르 아이사]
‘분위기 전환? 나 참. 본인이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주범 중 하나라는 걸 모르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
테오도르가 저토록 기고만장하게 날뛴 것은 반쯤 시가르의 영향이었다. 그가 뒤에서 지지하고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놈도 이 정도로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자선 음악회를 열어 분위기 전환을 하겠다니 어이가 없었다.
레이첼의 입꼬리가 삐뚤게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케이티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정말 이상하죠? 황제 폐하께서 즉위하신 지 10년이 지났는데 자선 음악회를 여시는 건 처음이에요. 거기다가 수도에서 지내는 귀족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니요.”
“그러게.”
시가르는 자선도 음악도 즐길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트레이유의 생일 연회조차 모든 귀족에게 반드시 참석하라는 초대장을 보내지는 않았었다.
‘대체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황제는 지치지도 않는 건가?’
레이첼이 한숨을 푹 내쉬었고 케이티가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설마 또 레이첼 백작님께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건 아니겠지요?”
“글쎄. 모를 일이지.”
“걱정되네요. 테오도르가 사라져서 이제 좀 편해지나 했는데 이번에는 황제 폐하께서 나서시다니. 황제 폐하는 그 자식처럼 함정을 파서 처리할 수도 없잖아요.”
“그렇겠지.”
슬쩍 레이첼의 기분을 살핀 케이티가 조심스레 물었다.
“백작님은 두렵거나 무섭지 않으신가요?”
“글쎄, 별로…….”
생각해 보니 레이첼은 베아트릭스나 벨윈더처럼 시가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가르는 분명 위협적인 인물이었다. 용의주도하거나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테오도르와 달리 쓸 수 있는 자원이 많은 제국의 황제였으니까.
케이티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백작님께는 라일러스 주교님과 대공 전하가 계시니까요.”
시안의 이름을 듣자 레이첼의 가슴이 또 쿵쿵 거칠게 뛰었다.
레이첼이 굳어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케이티가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엔 주교님이 알려주실 테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대공 전하께서 지켜주실 테니 무섭지 않으신 것도 이해가 가요.”
그렇다.
시안이라면 시가르가 레이첼에게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게 지켜줄 것이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사실이 그의 마음을 자각하고부터는 숨 막힐 듯한 애정으로 느껴졌다.
케이티가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레이첼 백작님은 무척 멋진 분이니까요. 대공 전하나 주교님께서 애정을 쏟으시는 것도 이해가 가요. 저도 두 분만큼 백작님께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요.”
“무슨 소리야. 케이티가 나한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
“상냥하기도 하시지. 하지만 저는 저를 잘 알아요. 저는 대공 전하나 주교님처럼 백작님을 지켜드릴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케이티는 두 분보다 나를 더 자주, 더 현실적으로 구해주잖아?”
레이첼이 웃으며 케이티가 들고 온 서류 더미를 가리켰다.
“바로 저 서류 더미로부터. 전에 케이티가 출장 갔을 때 나 혼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나 이제 케이티 없이는 못 살아.”
“어머. 정말인가요?”
“그럼, 정말이지.”
“아아……. 백작님. 제가 살면서 들은 칭찬 중에서 가장 황홀한 칭찬이네요. 앞으로 자주 말씀해 주세요.”
“얼마든지. 자, 케이티. 어서 나를 서류 더미에서 구해줄래?”
“물론입니다.”
활짝 웃은 케이티가 얼른 서류 더미를 들고 와 레이첼의 앞에 놓았다.
레이첼은 케이티와 처리해야 할 일을 하나씩 정리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내내 시안을 생각했다.
아직 약혼은 취소되지 않았다. 시가르가 주최하는 자선 음악회에 시안과 함께 참석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 * *
자선 음악회 당일, 레이첼은 시안의 에스코트를 받아 황궁 안으로 들어섰다.
“대공 전하와 예비 대공비를 뵙습니다. 오늘도 무척 잘 어울리시는군요.”
“두 분 덕분에 궁이 더욱 빛나는 기분입니다.”
귀족들은 아름다운 시안과 레이첼을 연신 칭찬했고, 시안은 언제나처럼 말을 받았다.
“레이첼 백작이 아름다운 덕입니다.”
“오호호! 대공 전하께서는 레이첼 백작을 정말 사랑하시네요.”
“사교계에서 정략이나 정치가 얽히지 않고 이토록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나타나다니, 참 멋진 일이에요.”
“저도 제게 일어난 일이 꿈만 같습니다.”
시안은 너무도 평온하고 여전히 행복해 보였다. 파혼 얘기를 나눈 적 없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이름 모를 귀족과의 대화가 끝날 무렵, 시안은 정말 행복하다는 듯 곁에 선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레이첼은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히면서 괜히 눈을 피했다.
심장이 쿵쿵 시끄럽게 뛰어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참이나 귀족들에게 시달리다가 본격적으로 연주와 춤이 시작되고서야 주변이 한적해졌다.
춤을 추지 않는 레이첼과 시안은 회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섰다.
시안이 몸을 굽혀 레이첼의 귓가에 속삭였다.
“음악 소리가 무척 크군요.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레이첼은 귓가에 닿는 숨결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손으로 귀를 덮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표정이 좋지 않은데…… 혹시 몸이 아프다거나.”
“아뇨,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솔직히 괜찮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신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힘들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지금도 파혼해 주지 않는데 내 마음을 알게 되면……. 절대 나와 헤어지려 하지 않으실 거야. 그럼 곤란해져.’
이대로는 시안이 끝도 없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걱정할 걸 알기에 레이첼은 얼른 말을 꾸며 냈다.
“황제 폐하께서 아직 나타나지 않으셔서요. 수도의 귀족들을 모두 불러 자선 연주회를 여신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주회 내내 제가 곁에 있을 테니까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레이첼 백작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지켜드리겠습니다.”
달콤한 말에 목이 간지러웠다.
고맙다고, 덕분에 무섭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레이첼은 한참 동안 말을 고르다가 희미하게 웃으며 겨우 한 마디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시안은 그것만으로도 기쁘다는 듯 활짝 웃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눈이 부셨다.
시가르는 음악회 1부가 마무리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행사가 무르익고, 적당히 술에 취한 귀족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회장을 울렸다.
그렇게 평화롭게 음악회 2부가 시작될 무렵 벌컥, 연주회장 문이 열렸다. 문 앞을 지키던 시종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어어.”
“뭘 하는 거지? 어서 내가 도착한 걸 알리지 않고. 설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아니,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가벼운 소란에 문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종은 결국 눈을 꾹 감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 프람 백작 가문의 레이첼 프람 백작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레이첼과 시안을 비롯한 귀족들 모두가 깜짝 놀라 문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도착했다고? 무슨 소리야? 나는 여기 있는데…….’
그때 기적처럼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이 열렸고, 누군가가 길을 따라 레이첼과 시안에게 다가왔다.
레이첼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저건 나잖아?’
시종의 말대로 회장에 나타난 사람은 레이첼이었다. 굽이치는 분홍빛 머리카락, 하늘을 닮은 눈동자, 이목구비며 걷는 모습까지 레이첼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멍하니 서 있으니 레이첼, 아니 레이첼을 닮은 여자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시안에게 예를 갖췄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먼저 황궁으로 가버리셨다고 하셔서 어찌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목소리까지 비슷했다.
시안이 알 수 없는 얼굴로 슬쩍 미소 지었다.
“그랬습니까.”
“그런데 옆에 선 사람은……. 저인가요?”
레이첼을 닮은 여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대공 전하께서 저를 두고 먼저 가신 이유를 알겠네요. 제가 봐도 저랑 정말 똑같이 생겼어요.”
나중에 나타난 레이첼은 당연하다는 듯 시안의 곁에 바짝 다가가 섰다. 그녀는 시안의 팔에 자신의 팔을 엮으며 야릇하게 웃었다.
레이첼의 마음에 울컥 화가 차올랐다.
‘뭐야, 저 여자. 감히 대공 전하와 팔짱을 끼다니.’
불편해진 마음 때문인지 레이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감히 나를 흉내 내다니. 겁도 없군요.”
“그대야말로 감히 나를 흉내 내다니. 겁이 없군요.”
목소리뿐만 아니라 말투도 억양도 똑같았다.
레이첼이 성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자 나중에 나타난 레이첼이 애교스럽게 웃었다.
“가짜 때문에 기분은 나쁘지만 괜찮습니다. 대공 전하께서 어느 쪽이 진짜인지 헷갈리실 리가 없으니까요.”
나중에 나타난 가짜 주제에 감히 시안에게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다니.
레이첼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어버렸다.
“하. 그대가 진짜라는 증거라도 있는 건가?”
“당연하지. 내게는 프람 백작 명패가 있으니까.”
“무슨 소리. 명패라면 내가…….”
‘……어?’
드레스 뒤쪽으로 손을 뻗은 레이첼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녀의 허리춤에는 묵직한 진짜가 아니라 가짜 명패가 달려 있었다.
뒤늦게 나타난 레이첼이 진짜 명패를 꺼내 얼굴 앞에서 흔들었다.
“이걸 찾고 있니? 가짜 주제에, 준비가 미흡했구나. 안 그런가요, 대공 전하?”
슬쩍 양쪽 레이첼을 살핀 시안이 뒤늦게 나타난 레이첼을 향해 싱긋 웃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시안은 나중에 나타난 레이첼의 분홍색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머리를 휙 뒤로 젖혔다.
“겨우 이 정도로 내 앞에서 레이첼 백작을 흉내 내다니. 준비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합니다.”
“윽, 대, 대공 전하……! 무슨 말씀을, 제가 바로 레이첼……!”
“닥치십시오.”
시안의 금빛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나는 그 더러운 입술에 내 약혼자의 이름이 담기는 꼴을 두고 볼 만큼 마음이 넓지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