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02)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02)화(102/151)
머리채를 잡힌 가짜 레이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떻, 어떻게…….”
시안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가짜 레이첼의 드레스 자락 사이에 숨겨진 단검을 꺼냈다. 별다른 무늬는 없지만 예리하게 벼려진 단검이었다.
“이런 날붙이까지 숨기고 있었군.”
“흐윽.”
“이딴 방법으로는 날 암살할 수 없을 거라고, 의뢰인에게 전하십시오.”
그러더니 깜빡했다는 듯 씩 웃으며 덧붙였다.
“그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지만.”
회장에 모인 귀족들이 술렁였다.
“맙소사, 암살 시도라니. 다른 곳도 아니고 어떻게 황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지요?”
“요즘 사교계는 정말 뒤숭숭하네요. 분위기 전환을 위한 자리에서 이런 일이라니요. 레이첼 백작이 큰일을 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레이첼 백작을 죽이려고 했던 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전 남편이라면서요? 하지만 이번에는 대공 전하시라니. 대체 누가 감히 대공 전하께 이런 짓을…….”
“쉿.”
주절주절 수다를 늘어놓던 귀족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시안에게 검을 들이댈 사람이 온 제국을 통틀어 단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레이첼이 시안에게 붙잡힌 가짜 레이첼을 보며 침음했다.
‘……시가르 아이사.’
레이첼과 시안을 비롯한 귀족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시안을 해치려 할 사람은 시가르뿐이었다.
이곳이 시가르가 심어놓은 자들로 가득한 황궁이기에 아무도 입을 열어 이름을 말하지 못할 뿐이었다.
‘나와 닮은 사람을 데려와 대공 전하를 암살하려 했던 거야. 일이 성공했다면 나는 꼼짝 없이 누명을 써야 했을 테고. 실패하긴 했지만 머리를 잘 썼는걸.’
아마 시가르는 이번 작전의 성공을 확신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이 많은 사람 앞에 가짜 레이첼을 내보냈겠지.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가짜 레이첼은 진짜 레이첼이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으니까.
‘대공 전하는 저 사람이 내가 아닌 걸 어떻게 알아보신 걸까? 심지어 내 명패까지 훔쳐서 가지고 있었는데.’
사랑의 힘, 같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레이첼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시안은 가짜 레이첼에게 정체가 무엇인지, 의뢰인이 누구인지 등을 물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가짜 레이첼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결국 시안은 더 묻기를 포기했다.
쿠당탕!
“악!”
가짜 레이첼을 바닥에 내팽개친 시안이 기사를 불러 모았다.
“나를 암살하려 하고 레이첼 백작의 명예에 흠집을 낸 이 자를 원로회로 압송하겠다. 포박해라.”
“예!”
기사들이 가짜 레이첼을 묶는 동안 시안이 뒤돌아서서 진짜 레이첼을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혹시 놀라지 않으셨을까 걱정스럽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대공 전하께서 가짜를 너무 바로 맞추셔서 놀랐어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헷갈렸을 거예요.”
“다른 사람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시안은 레이첼의 손 위에 가짜가 훔쳤던 귀족 명패를 올려주었다.
“가짜를 원로회 지하 감옥에 가둬두고 돌아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돌아가는 길을 제가 에스코트하고 싶으니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혼자서도 돌아갈 수 있…….”
“우리, 아직 약혼 중입니다.”
시안이 싱긋 웃고 몸을 돌렸다.
그는 언제 웃었냐는 듯 얼굴을 굳히더니 포박당한 가짜 레이첼을 데리고 회장을 빠져나갔다.
나긋하게 속삭이던 기다려 달라는 말에 레이첼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시안이 가짜 레이첼을 끌고 사라진 뒤, 레이첼은 회장 구석의 테라스 한곳으로 숨어들었다.
원래는 연인들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혼자 있고 싶었어.’
레이첼에게는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을 닮은 사람이 나타난 것도, 시안이 망설이지 않고 그가 가짜라는 것을 알아챈 것도 놀라웠지만 레이첼의 마음을 괴롭히는 일은 따로 있었다.
‘그 가짜, 나보다 사랑스러웠어. 스스럼없이 팔짱을 꼈고, 목소리에 애교도 잔뜩 섞여 있었고…….’
가짜에게 시안의 시선의 닿는 순간 마음에 폭풍이 쳤다.
아까는 당황스러워서 미처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테라스로 나와 찬 바람을 맞는 동안 레이첼은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질투라는 것을 깨달았다.
레이첼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대공 전하는 그냥 바라보셨을 뿐이라는 거 알아. 게다가 상대는 나였잖아. 지금 나한테 질투를 하는 거야?’
파혼한 뒤 시안이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레이첼은 다른 사람과 다정하게 사랑을 주고받는 시안을 지켜보지 못할 것이다.
‘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공 전하를 사랑하나 봐.’
밤바람이 드레스 위로 드러난 목과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눈을 꾹 감고 양팔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늘한 기온 때문인지 질투 때문인지 시안이 보고 싶어졌다. 괜히 코끝이 찡했다.
“대공 전하…….”
“부르셨습니까.”
“앗.”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레이첼이 퍼뜩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환상처럼 시안이 서 있었다.
어깨 위에 묵직한 외투가 놓였다.
“바람이 차가운데 왜 여기서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요. 금방 다녀오셨네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당연하다는 듯 빙긋 웃어주는 시안의 모습에 레이첼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어떻게 하지? 정말 좋아.’
차갑던 얼굴이 순식간에 뜨끈해졌지만 평소처럼 고개를 돌려 숨기지 않았다. 여기는 밤의 테라스였으니까.
“저…… 대공 전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물어보십시오. 무엇이든 답하겠습니다.”
“가짜가 제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아내셨나요? 저도 헷갈릴 정도로 닮았던 데다가 귀족 명패까지 갖고 있었잖아요.”
“당연한 것을 물으시는군요. 그자는 레이첼 백작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무슨?”
“제법 그럴싸하게 흉내 내긴 했지만 백작과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머릿결과 귓바퀴의 모양부터, 걷는 속도, 목소리의 높낮이, 억양, 눈빛, 눈동자를 굴리는 버릇까지 전부.”
레이첼은 할 말을 잃었고 시안은 웃었다.
“그토록 연모하고 원했던 사람입니다. 흉내 낸 가짜 따위와 헷갈릴 리가 없지요.”
“연…….”
연모?
시안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뱉은 단어에 레이첼의 심장이 다시 쿵쿵 바쁘게 뛰어댔다. 목소리가 떨렸다.
“연모라니…….”
“이제 숨기지 않겠습니다. 레이첼 백작도 이미 알고 계실 테니까요. 제 마음.”
그러더니 지긋이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레이첼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히 빛을 발하는 시안의 금빛 눈동자를 홀린 듯 바라보았다.
“연모합니다, 레이첼 백작.”
“대공 전하…….”
“짐작하시겠지만 프람 영지를 사들였던 것도, 거짓 약혼을 제안했던 것도 전부 백작을 연모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연모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었는지, 무얼 의미하는지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 듣는 타국의 언어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레이첼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대답을 기다리던 시안이 조금 더 레이첼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몸이 닿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그의 체온이 느껴질 만한 거리였다.
시안은 상체를 숙여 레이첼의 얼굴 가까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제 마음에는 언제나 백작을 향한 욕심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백작의 전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요.”
“…….”
“하지만 나를 끔찍한 질투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던 놈은 사라졌습니다. 나는 이제 내 욕심을 막는 게 무척 힘이 들어요. 그래서…….”
욕심, 질투.
그것들이 시안의 안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동시에 그가 자신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기쁘고, 행복했다.
엿듣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안은 레이첼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백작의 입술을 빼앗을까 합니다. 지금, 여기서.”
“……!”
“싫다면 밀어내십시오. 백작이 거절한다면 순순히 물러나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습니다. 테오도르가 백작에게 저지른 짓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레이첼이 테오도르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 시안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시안은 잠시 멈춰서 레이첼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레이첼은 미치도록 두근거려서 대답은커녕 제대로 된 생각을 하기도 어려웠다.
시안의 입술이 귓가에 닿을 듯 가까웠고, 그가 천천히 고르게 내쉬는 더운 숨이 너무 자극적이었다.
‘아…….’
레이첼이 대답하지 않자 시안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아주 느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레이첼의 입술 가까이 가져갔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숨이 섞일 무렵, 레이첼이 얼른 두 손을 들어 시안의 가슴을 짚었다. 단단한 가슴과 그 아래서 힘차게 뛰는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손바닥에 느껴졌다.
“자, 잠깐.”
시안은 말없이 제자리에 멈췄고, 레이첼은 입술을 물었다.
지금 손에 힘을 줘 밀면 시안은 말한 것처럼 미련 없이 뒤로 물러나 다시는 레이첼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레이첼은 시안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 아닌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했다. 그게 자신을 닮은 여자라 해도.
“…….”
시안이 자신을 원한다는 사실이 기뻤고 레이첼 역시 그를 원했다.
레이첼은, 시안을 사랑하니까.
시안의 옷깃을 움켜쥐며 발돋움했다. 멈춰선 그의 입술에 떨리는 자신의 입술을 툭, 가져다 댔다.
‘다른 사람은 보지 말아요. 나만 봐주세요. 나만…… 사랑해 주세요.’
차마 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리고 곧.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시안이 레이첼의 입술 위로 깊고 짙고 긴 입맞춤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