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03)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03)화(103/151)
몰아치는 듯한 입맞춤이었다. 레이첼은 숨이 벅차고 어지러워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무너지는 레이첼의 허리와 밀려나는 뒤통수를 받치듯 꽉 안고 입을 맞추는 시안이 낯설었다.
레이첼은 구명줄이라도 되는 듯 시안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맙소사. 다정한 분이라 입맞춤도 점잖고 부드러울 줄 알았는데.’
시안의 입맞춤은 점잔과도 부드러움과도 거리가 멀었다.
참아보려 했지만 결국 레이첼은 얼굴이 벌게져서 시안의 가슴을 밀어냈다.
“잠, 잠깐……. 숨이, 숨 막혀요.”
시안은 아쉽다는 듯 잠시 레이첼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후우, 후우, 레이첼이 부족했던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안이 속삭였다.
“숨은 코로 쉬십시오.”
“네, 노력해볼……. 잠, 아직, 대공 전하, 저 아직!”
“못 기다립니다.”
“……!”
갈급한 사람처럼 달려드는 시안은 밤이라도 샐 기세였고 레이첼은 깜빡깜빡 아찔해졌다.
입술이 떨어져 틈이 생길 때마다 뭐라 말을 해보려 했지만 시안은 레이첼의 숨도 목소리도 남김없이 삼켰다.
“이제, 그만. 대공 전…….”
“…….”
“제발.”
못 들은 척 계속 입술을 맞대던 시안은 레이첼의 눈이 몽롱하게 풀리고서야 잠시 입술을 비켜주었다.
레이첼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툭 가져다 댄 시안이 밭은 숨을 쉬는 레이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름.”
“……네?”
“대공 같은 껍데기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그러면 오늘은 그만두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대공 전하의 이름을.”
‘어떻게 감히’라는 단어가 나오자 시안은 다시 자비 없이 입을 맞췄다.
버거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안의 이름을 부르다니. 그런 건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조금 기다리면 시안 역시 지쳐 입맞춤을 그만두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는 레이첼보다 체력이 월등히 좋은 사람이었고, 멈추거나 지치지 않았다.
‘이러다가 정말 해 뜰 때까지 입 맞추겠어. 그냥 부르자. 대공 전하 이름, 겨우 두 글자잖아. 한 번 부르는 게 뭐가 어려워.’
레이첼은 입맞춤이 잠시 멈출 때마다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각오와 달리 쉽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시…….”
실처럼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 나오자 시안이 입맞춤을 멈췄다. 그는 레이첼의 입술과 목소리에 온 감각을 집중했다.
“뭐라 하셨습니까?”
“시, 그러니까 시…….”
“제가 잘못 들은 거라면 다시.”
시안이 고개를 틀며 다시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 레이첼은 얼른 목소리를 짜냈다.
“시안!”
우뚝, 입술과 입술이 맞닿기 직전 멈췄다. 잠시 고르게 숨을 내쉬던 시안이 말했다.
“레이첼.”
등줄기에 찌르르 전율이 흘렀다. 뒤따라오던 호칭 하나를 뺐을 뿐인데 전혀 다른 말이 된 것 같았다.
동시에 시안과의 심리적 거리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레이첼은 자신의 마음이 온통 눈앞에 선 남자를 향한 애정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해요. 이러다가 음악회가 끝나버리겠어요.”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두지요.”
오늘은, 이라는 단어가 매우 걱정스러웠지만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멀쩡하게 땅을 딛고 서기도 쉽지 않았으니까.
레이첼이 바르르 떨며 말했다.
“대공 전……. 아니, 시안. 비켜주시겠어요?”
“놓아주시면 비키겠습니다.”
“놓아달라고요? 아.”
그제야 레이첼은 자신이 시안의 옷자락을 꽉 잡아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들짝 놀라 손을 떼자 시안이 몸을 바로 세우며 옷깃을 정돈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게 웃으면서.
“몇 번인가 제게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고 하셨었지요. 혹시 기억하십니까?”
뜬금없이 무슨 소리일까.
레이첼은 후끈거리는 뺨을 손등으로 꾹꾹 찍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게 프람 영지를 선물하셨을 때도 그랬고, 유리 나무 소식을 알려주셨을 때도 그랬어요. 매번 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때마다 저는 언젠가 받은 것을 갚으시라 말씀드릴 생각이라 했었고요.”
눈치 빠른 레이첼은 시안이 어떤 말을 하려는 건지 깨닫고 바짝 몸을 긴장했다.
그런 반응이 사랑스럽다는 듯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시안이 손가락으로 레이첼의 입술을 쓸었다.
“이제부터 그동안 밀린 빚을 받아낼 생각이니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싫다고 밀어내도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니까.”
“…….”
그제야 레이첼은 자신이 발돋움하여 시안에게 했던 입맞춤이 생각보다 큰 의미였음을 알았다.
그건 지금부터 망설임 없이 그녀를 사랑해도 좋다는 허락이나 다름없었던 거다.
‘큰일 났다.’
잊고 있었던 그레이엄과 돌로라사가 떠올랐다.
시안을 향한 애정과 그레이엄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레이첼의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엉켰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 * *
“어제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사교계의 소문은 말보다 빨랐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케이티는 레이첼이 저택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가짜 레이첼 소동을 알고 있었다. 온 사교계가 그 일로 난리라고 했다.
지난밤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미뤄둔 케이티의 호들갑이 햇살과 함께 레이첼을 찾아왔다. 그녀는 눈과 손으로 서류를 정리하면서 입으로는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대공 전하께서 멋지고 대단한 분이신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택 사용인들도 깜빡 속을 정도로 똑같이 생겼다던데 대체 어떻게 맞추셨을까요?”
꽤 많은 사용인이 가짜에게 속았다.
가짜 레이첼은 레이첼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당당하게 저택의 정문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레이첼의 집무실 청소를 담당한 사용인은 가짜 레이첼이 명패를 바꿔치기하는 걸 빤히 보면서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랬으니 어제 음악회에서도 그렇게나 당당했겠지.”
“못 마주쳐서 아쉬워요. 그렇게나 닮았나요?”
“응. 나도 깜짝 놀랄 정도였어. 내가 봐도 정말 나랑 닮았더라.”
“그런 가짜를 대공 전하는 대체 어떻게 맞추신 걸까요? 역시 사랑의 힘?”
케이티는 자기가 한 말이 재미있는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 모습에 레이첼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웬 사랑의 힘이야. 시안이 길드의 수석 정보원이라서 그런 거지.”
시안은 오랜 시간 길드의 수석 정보원으로 일한 사람이었다. 일반인보다 감각이 날카롭고 눈썰미와 기억력이 좋다는 뜻이었다.
어제는 당황해서 그런 사실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레이첼이 서류에서 눈을 떼 케이티를 바라보았다. 수석 정보원 얘기를 하면 역시 대공 전하가 멋있다느니, 할 줄 알았던 케이티가 조용한 탓이었다.
케이티는 입을 다문 채 안경 너머로 커다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케이티?”
“……언제 그렇게 되셨어요?”
“뭐가?”
“지금 대공 전하를 이름으로 부르셨잖아요.”
“아.”
어제 몇 번이나 이름을 부르게 한 시안 덕분에 벌써 입에 익어버린 모양이었다.
‘이름.’
‘……네?’
‘대공 같은 껍데기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그러면 오늘은 그만두겠습니다.’
새삼스레 어제의 일이 떠올라 레이첼의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평생 그런 입맞춤을 해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케이티가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상에, 백작님, 어제 무슨 일이 있었군요? 테오도르가 그렇게 못된 짓을 해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던 분이……. 모른 척해드릴 수가 없겠는데요?”
“저, 정말? 그 정도야?”
그렇다면 어제 시안은?
레이첼이 행복하고 기쁘고 좋아서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을 전부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각, 시안이 레이첼을 찾아왔다.
다행히 점심을 먹으며 마음이 차분해진 덕에 레이첼은 평소처럼 시안을 맞을 수 있었다.
“대공 전하를 뵙…….”
예를 갖추던 레이첼이 화들짝 놀라 말을 고쳤다.
“어서 와요. ……시안.”
“보고 싶었습니다.”
애정이 담뿍 담긴 말이었다.
다시 몽글몽글 설렘과 애정이 피어오르려는 것을 애써 꾹꾹 눌러 담았다. 지금은 사랑 얘기를 나눌 때가 아니었으니까.
시안과 레이첼이 응접실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어제 붙잡은 가짜를 조사하느라 늦었습니다. 의뢰인은 끝내 불지 않았지만 여자의 신상은 알아냈어요. 여기서 멀지 않은 영지에서 일하는 농사꾼의 딸이라고 합니다.”
“농사꾼의 딸……. 그런 사람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죠?”
“성공하면 작위에 큰돈까지 준다는 말에 혹해서 따라온 모양입니다. 연습하다가 아예 진짜가 된 듯한 착각을 느낀 것 같아요.”
“자기 세뇌를 당했군요.”
“이유가 어쨌든 저를 암살하려 한 것은 사실이라 아마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레이첼과 닮았다는 이유로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물들이고 위험한 작전에 소모품으로 쓰인 셈이니까.
시안이 탁자 위에 단검을 툭 올려놓았다. 검날 부분을 천으로 감싸 투박한 손잡이만 드러나 있었다.
“가짜가 갖고 있던 단검입니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네, 기억나요. 테오도르가 저를 공격할 때 썼던 단검하고 같은 모양이네요.”
“맞습니다. 시내 대장간 중 한 곳에서 파는 평범한 단검이지요. 자신이 누구인지 들키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수를 쓴 것 같습니다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황제의 보좌관과 황궁 연회에 참석한 가짜 귀족이 똑같은 단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군요.”
“맞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던 단검이 같다는 것은 그것을 나눠준 조력자 혹은 의뢰인이 같다는 의미였으니까.
가짜가 붙잡혔을 때부터 들었던 의심이 더욱 커졌다.
“……역시 황제 폐하께서 꾸미신 일일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말벌술을 내릴 때보다 더 교묘하고 은밀해졌어요.”
“앞으로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두렵지 않으신가요?”
“두렵습니다.”
담담하게 대답한 시안이 레이첼과 눈을 맞췄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 암살 시도를 당한 쪽이 저였지만 다음에는 시가르가 레이첼, 당신을 노릴지도 모르니까요. 당신이 상처 입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아마…… 노리겠지요.”
“…….”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아요.”
당신이 지켜줄 테니까.
애정과 신뢰가 가득 담긴 뒷말은 내뱉지 못했다. 레이첼이 시안에게 그을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이었다.
이미 마음을 다 내준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아직 그레이엄과 돌로라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레이첼이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예.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시가르가 다시는 우리를 노리지 못하게 막아야 해요.”
시안은 뒷말을 삼켰지만 레이첼은 그것이 무엇일지 짐작했다.
설득이나 부탁 같은 온건한 방법이 통할 리가 없으니 남은 것은 하나, 시가르를 무력화시키는 것뿐이었다.
황제인 시가르를 무력화시키려면 폐위시키거나 목숨을 빼앗아야 했다.
‘황제를 무력화시키다니. 보통은 생각도 못 했을 일인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손 놓고 있다가는 레이첼과 시안의 목숨이 위험해질 테니까.
“혹시 황제 폐하께서 다음에 어떤 수를 쓸지 알 수 있을까요? 이쪽에서도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 같아요. 황제 근처에 첩자를 심어 둔다거나.”
“시가르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측근을 매수하기가 어렵습니다. 조금만 수상해도 바로 죽여버리니까요. 측근에게 모든 작전을 설명하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요?”
“한 가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시안이 입을 열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시가르가 준비할 만한 일을 한 가지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