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06)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06)화(106/151)
깊은 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호위 몇을 거느린 시가르가 불 꺼진 길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덜그럭덜그럭 금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시가르가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 길드 장의 집무실 문을 열었다.
의자에 반쯤 눕듯 기대앉아 있던 휘지우스의 흰 눈동자가 번뜩였다.
“왔습니까.”
망토로 가려지지 않은 시가르의 입꼬리가 일그러졌다.
“감히 황제의 앞에서.”
오만한 목소리에 휘지우스가 비웃음을 흘렸다.
“여기는 길드입니다. 내가 다스리는 내 성이고 이곳의 주인은 납니다. 알고 온 줄 알았는데요, 황제. 내 태도가 꼴 보기 싫다면 돌아가도 좋습니다.”
손해 보는 건 어차피 네놈일 테니까.
휘지우스가 비웃음 뒤에 감춘 말에 시가르의 심사가 뒤틀렸다.
‘젠장. 저딴 놈과 거래 해야 하다니. 이 내가. 제국의 황제인 시가르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휘지우스는 제국에서 유리 나무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입안의 살을 잘근잘근 씹던 시가르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럴 수는 없지. 난 아직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까.”
“유리 나무를 원한다고 했습니까.”
“그래. 비용은 얼마든 치르겠다.”
덜그럭, 시가르가 금괴 주머니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황실의 문양이 화려하게 수 놓인 거대한 주머니였다.
“오늘 내가 가져온 건 이 정도다. 필요하다면 나중에 더 가져오도록 하지.”
“그럼 이쪽도 물건을 내놓아야겠군요.”
이번에는 휘지우스가 낡고 작은 주머니를 탁자에 올렸다. 주머니에서 들리는 맑은 소리에 시가르가 전율했다.
“그래! 이 소리. 바로 이 소리야!”
시가르는 먹잇감에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덥석 주머니를 채가더니 안을 살폈다. 잠시 후, 그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닥에 주머니를 내던졌다.
파사삭!
주머니 안에 든 물건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열린 주머니 입구에서 검은 유리 나무 조각이 어지럽게 쏟아졌다.
“감히 나를 기만하는 거냐!”
소리친 시가르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휘지우스는 여전히 미소 지은 채였다.
“문제가 뭡니까.”
“이건 유리 나무 차를 우려내고 남은 찌꺼기가 아니냐! 겨우 이딴 것을 구하려고 이렇게 큰돈을 준비한 게 아니란 말이다!”
“아, 그렇습니까. 차로 우리기 전의 유리 나무가 필요하셨군요. 말씀하지 않으셔서 몰랐습니다.”
“젠장! 이거 말고, 투명한 원래의 유리 나무를 내놔라!”
“안타깝게도 그건 없습니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시가르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어둠 속에서 희게 번뜩이던 휘지우스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얘기한 그대로입니다. 제국에는 투명한 유리 나무가 남아 있지 않아요. 마지막 남은 유리 나무를 레이첼 백작이 모두 사 갔으니까요.”
“말도 안 돼! 그 여자가 어떻게 그 많은 유리 나무를 전부 구해갈 수 있나! 겨우 백작 가문의 재산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대신 다른 걸 받았습니다만.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아니.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레이첼이 무슨 돈으로 유리 나무를 샀느냐가 아니라 시가르 자신이 살 유리 나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시가르는 분노로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이 멎고 호흡이 가빠졌다.
“으아아!”
소리친 시가르는 바닥에 쏟아진 검은 유리 나무 조각들을 발로 짓밟아 버렸다.
‘시안을 죽일 수 없다고?’
묵직한 금괴 주머니를 밀어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와르르, 금괴가 쏟아져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젠장, 젠자앙!”
발광하는 시가르를 여유로운 얼굴로 바라보던 휘지우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유리 나무가 꼭 필요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래! 유리 나무는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어! 유리 나무로 그 망할 놈들을 죽여버려야 한단 말이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미 가루가 된 검은 유리 나무를 발로 찧어대던 시가르가 식식대며 발길질을 멈췄다.
“있다. 당장 눈앞에서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
“그럼 왜 유리 나무 따위를 찾는 겁니까?”
“……뭐라고?”
“잘 아시겠지만 유리 나무로 사람을 죽이는 데는 짧아도 1년 이상이 걸립니다.”
시가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건강했던 제지우스는 유리 나무를 먹고 죽는 데 2년이나 걸렸다.
휘지우스의 눈이 번뜩였다.
“그토록 증오하는 자라면 맹독으로 당장 숨통을 끊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당장 숨통을 끊을 수 있는 독이 있다고?”
“있지요. 말벌술처럼 여신의 뜻을 바랄 필요도 없습니다. 딱 한 방울. 입술에 닿기만 해도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죽는 독이 있지요.”
“그런 독이 있다는 걸 왜 이제야 말해주는 것이냐! 어서 그 독을 구해오란 말이다!”
시가르는 휘지우스가 모든 상황을 다 안다는 듯 말벌술을 언급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에게는 단 한 방울로 시안을 죽일 수 있는 독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휘지우스가 허리춤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병을 꺼내 들었다. 안에 든 파란 액체가 달빛을 받아 섬뜩하게 반짝였다.
“여기 있습니다. ‘파란 파도’라 불러주십시오.”
“내놔라! 당장 그 독을 내놔!”
“선불입니다.”
“얼마! 얼마면 되겠나! 얼마든 줄 테니 당장 그 독을……!”
“바닥에 쏟아진 금괴를 다시 주우셔야겠습니다.”
시가르의 시선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금괴에 닿았고, 휘지우스는 빙긋 웃었다.
“추가금은 필요 없습니다. 갖고 오신 금괴를 모두 두고 가시면 딱 맞을 테니까요.”
바닥에 쏟아진 금괴들. 스테판과 레이첼, 시안이 시가르에게 빌려준 돈이었다.
시가르는 바닥에 엎드려 허겁지겁 금괴를 주워 모았다.
* * *
같은 시각, 시안이 황태자궁을 찾았다.
아트레이유는 자신을 찾아온 숙부를 반가워하며 맑게 웃었다.
“에헤헤, 숙부 안녕! 이제 숙부도 나처럼 문보다 창문으로 여기 들어오는 게 더 익숙하지?”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그렇군요.”
“크하하, 그렇다니까!”
맑게 웃는 아트레이유를 보며 시안이 쓰게 웃었다. 오늘 그는 아트레이유에게 어려운 것을 부탁하러 왔으니까.
침대를 뒹굴며 낄낄거리던 아트레이유가 발딱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근데 오늘은 왜 온 거야? 나야 숙부가 자주 만나러 와줘서 좋기는 한데, 숙부 원래 할 말도 없이 나 찾아오는 사람 아니잖아.”
시안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아트레이유가 걸터앉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고개 숙이고 두 손으로 고급스러운 상자를 들어 내밀었다.
“이걸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선물! 선물 좋지!”
냉큼 상자를 받아 연 아트레이유가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뭐야. 선물이 아니네?”
아트레이유가 상자 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소원 쿠폰아트레이유가 아무 소원이나 들어줌]
시안의 목소리가 낮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동안 제게 주신 소원 쿠폰 100장입니다.”
“그걸 하나도 안 버리고 다 모았어?”
“당연한 일 아닙니까.”
아트레이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 진짜. 내가 숙부를 안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이 쿠폰을 제게 줄 때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어. 기억해. 소원 빌 거야?”
“예.”
숨을 크게 들이쉰 시안이 고개를 들어 아트레이유와 눈을 맞췄다.
“……부디.”
열 살.
또래보다 똑똑하고 몸놀림이 날렵하지만 아트레이유는 아직 열 살이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아직 8년이나 남았고, 너무 많은 짐을 지우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시안은 알면서도 이런 부탁을 해야 하는 자신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부디 훌륭한 황제가 되어주십시오.”
지금의 황제와는 다른, 감정이나 의심 때문에 함부로 사람의 목숨을 해치지 않고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는 황제가.
시가르가 무력화된다는 건 황태자 아트레이유의 즉위를 의미했다.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에게 황제의 자리와 관이 지나치게 무거울 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레이첼과 시안 자신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트레이유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시가르가 존재하는 한, 아이는 절대 어머니인 베아트릭스의 품에 안길 수 없었으니까.
“제가 돕겠습니다. 원하신다면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무슨 일에든 저를 이용하십시오.”
“언제든, 무슨 일이든 할 거야? 나를 위해서? 진짜로?”
“물론입니다.”
“흐음.”
눈치 빠른 아트레이유는 시안의 소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을 텐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긁적이며 쩝, 소리를 낼 뿐이었다.
* * *
“자는 겁니까? 너무 잔인한데요.”
나긋하게 속삭이는 시안의 목소리에 레이첼이 움찔 눈을 떴다. 뺨에 닿은 단단하고 따뜻한 것의 감촉이 낯설었다.
졸음이 가득 담긴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엎드려서 자고 있었던 건지 온몸이 찌뿌둥했다.
“일어났군요.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혼자 잠들어 버린 줄 알았어요. 하마터면 원망할 뻔했습니다.”
“으음, 시안. 그게 무슨 말씀…….”
무슨 말씀이시냐고 물으려던 레이첼이 눈을 크게 떴다.
단추가 풀린 셔츠를 입고 침대에 누운 시안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어서였다. 어둠 속에서 시안의 금빛 눈동자가 요요히 빛났다.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나려던 레이첼은 그제야 자신이 시안의 가슴 위에 엎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내리고 서둘러 옷을 점검했다.
‘다행이다. 오늘은 옷을 입고 있네.’
뭘 기대한 거지?
부끄러운 마음에 레이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자 시안이 생긋 웃었다.
“너무 귀여우면 곤란한데.”
“귀, 귀엽다니요.”
“밤새도록 날 괴롭히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종일 당신이 나를 어떻게 괴롭혀 줄지 기대했단 말입니다.”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이제 와서 마음이 바뀐 건 아니겠지요.”
눈앞이 빙글 도는가 싶더니 레이첼의 몸이 푹신한 침대 위에 뉘었다.
순식간에 레이첼의 위로 올라간 시안이 속삭였다.
“아니면, 혹시 내가 괴롭혀 주길 바라는 겁니까.”
“…….”
잠시 머뭇거리던 레이첼은 여유로운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이 행복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레이첼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술을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