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07)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07)화(107/151)
따뜻하고 간지러운 느낌에 레이첼이 눈을 감았다.
‘꿈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꿈.
약혼식 이후 레이첼은 종종 시안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꿈을 꾸었다. 그와 입을 맞춘 후에는 더 자주, 선명하게 꿈을 꾸었다.
내용도 점점 대범해져서 처음에는 어찌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내 레이첼은 꿈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레이엄과 돌로라사 문제 때문에 섣불리 시안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현실과 달리 꿈에서는 마음껏 그에게 안길 수 있었다.
현실에서 하지 못한 고백을 마음껏 할 수도 있었다.
“시안, 좋아해요.”
“그 말이 나를 얼마나 기쁘고 설레게 하는지 모를 겁니다.”
이마에 닿았던 시안의 입술이 미간과 콧마루를 타고 내려와 입술에 닿았다.
“더 말해보십시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말 좋아해요. 아름다운 분이시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려요. 제게 달콤한 말을 속삭여 주실 때는 당장 녹아버릴 것 같고요. 늘 곁에 있고 싶어요.”
“또.”
“제게 고백해주셨을 때 저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완전했습니다. 입을 맞춰 주셨을 때는 저와 당신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고요. 또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시안이 고개를 틀며 레이첼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원하신다면 얼마든.”
레이첼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달콤하고 행복해서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오늘도, 같은 생각을 하며 꿈에서 깨어났다.
* * *
늦은 밤.
시안과 스테판, 레이첼이 프람 저택 뒤쪽 작은 응접실에 모였다. 휘지우스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레이첼은 몰려오는 피로를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매일 밤 이어지는 꿈 덕분에 몸이 무거웠다.
위아래로 움직이던 레이첼의 고개가 곁에 앉은 시안의 팔에 툭, 닿았다.
“아. 죄송합니다.”
화들짝 놀라 몸을 바로 하자 시안이 레이첼의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당겼다. 그녀의 머리가 살며시 시안의 어깨 위에 놓였다.
“피곤하실 테니 잠시 기대고 계십시오.”
“괜찮습니다. 잠깐 존 것뿐이에요. 피곤하지 않아요.”
“그래도 기대고 계십시오. 그편이 제가 더 행복하니까.”
시안의 말에 몰려오던 졸음이 확 달아났다.
레이첼이 눈을 굴려 마주 앉은 스테판을 살폈다. 그는 기묘한 표정으로 레이첼과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안 네가 연애를 시작하면 평소에 못 보던 모습을 많이 보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뭘.”
“내 앞에서 민망하지도 않아?”
“민망해야 하는 상황인가? 피곤해하는 약혼자를 내게 기대게 하는 게?”
“야, 너 지금 완전 다른 사람이거든? 목소리도 말투도 내가 아는 시안 같지가 않다고!”
“당연한 거 아닌가. 설마 내가 레이첼 대하듯 너를 대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와우, 젠장. 제발 그러지 말아 줄래?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미쳐버릴 거야.”
“그럼 입 다물어. 너 때문에 레이첼이 못 쉬고 있잖아.”
“…….”
못마땅한 듯 입술을 삐죽인 스테판이 입을 다물었다.
여상한 시안과 달리 레이첼은 민망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살짝 찾아왔던 잠이 훨훨 날아가 버렸다.
‘시안은 누가 있든 없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데다가 전보다 훨씬 더 다정해.’
고개를 들고 시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레이첼이 바라봐주길 기다린 사람처럼 눈을 맞추며 웃었다.
‘게다가 행복해 보이고.’
레이첼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과 눈을 맞추며 행복해하는데 설레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잠은 다 깼지만 피곤한 척 시안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꿈처럼 대담하게 행동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역시 현실은 꿈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했다.
얼마나 시안에게 기대 있었을까. 끼익, 창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공 전하와 공작 각하, 그리고 백작님을 뵙습니다.”
소리 없이 세 사람이 앉은 의자 근처로 다가온 휘지우스가 예를 갖췄다.
레이첼이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고, 시안은 그녀의 어깨 대신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자리가 정돈되길 기다렸던 휘지우스가 들고 온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시가르가 휘지우스에게 준 금괴 주머니였다.
“명받은 대로 시가르에게 파란 파도를 팔고 대금을 받아왔습니다.”
“잘했다. 액수는, 정확한가?”
“예. 세 분께 거둬들인 액수 그대로더군요. 1골드도 더 빼거나 더하지 않았습니다.”
휘지우스의 말에 스테판이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그놈이 그렇지, 뭐. 자기 돈은 한 푼도 쓰기 싫었을 테니까. 더 적게 가져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놈이 챙겨올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이었을 겁니다. 유리 나무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구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하여간. 이런 데서는 참 일관성 있는 분이셔. 뭐, 덕분에 빌려준 돈 그대로 돌려받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빌려 간 시가르가 갚을 생각이 없으니 빌려준 쪽에서 알아서 잘 챙기는 수밖에.
스테판이 씩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돈을 돌려받긴 했는데 그 자식한테 돈 빌려줬다는 증서는 아직 남아 있잖아. 이걸로 한 번 더 돈 받아내면 안 돼?”
시안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애. 왜 안 돼? 나 장사꾼이란 말이야. 돈 벌고 싶어. 그 자식 나쁜 자식이잖아. 탈탈 털어먹을래.”
“지금 시가르는 돈을 갚을 능력이 안 돼. 그걸 갚으라고 요구하면 분명 후작 이하 귀족들을 닦달하거나 국고에서 돈을 빼돌릴 거야. 그런 일이 생기게 둘 수는 없어.”
“쳇.”
챙겨온 차용증을 꺼내 눈으로 슥 읽어본 스테판이 입술을 삐죽이며 종이를 찢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던 레이첼이 휘지우스를 돌아보았다.
“해독제는 건네지 않으셨죠?”
“예. 시키신 대로 해독제 얘기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혹시 몰라서 한 병 구해두긴 했습니다만.”
휘지우스가 품에서 빨간 액체가 담긴 병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에 걱정이 어렸다.
“정말 해독제 없이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 마세요. 아빠가 보증한다고 하셨어요.”
“…….”
예니스 교에서 가장 유능한 성직자 중 하나인 라일러스의 보증.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었다.
휘지우스는 병을 다시 품에 넣으며 예를 갖췄다.
“곧 시가르에게서 연락이 올 겁니다. 대공 전하와 백작님을 초대하고 싶다는 식의 연락일 테니 미리 준비해 두십시오.”
“고마워요, 휘지우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 * *
며칠 후, 케이티가 황실에서 온 초대장을 건네주었다.
[레이첼 백작, 시안과 그대를 황궁에 초대하겠소.개인적으로 약혼을 축하하고 싶으니 꼭 참석해 주길 바라오.
시가르 아이사]
너무 휘지우스의 예상대로라 레이첼은 피식 웃어버렸다.
“이렇게 정직하게 못된 짓 하는 것도 능력이라니까.”
케이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백작님은 정말 두렵지 않으신가요?”
“응. 아빠가 조용하시잖아. 시가르 만나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빠가 가만히 계셨겠어?”
“알아요. 아는데도 무서운걸요. 저는 무서워서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레이첼도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잔 건 마찬가지였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꿈에서 시안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느라 그렇다는 게 다른 점일 뿐이었다.
요즘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얼른 밤이 오기를 바랐다.
지난밤에 꾼 꿈을 떠올리자 레이첼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케이티가 놀랍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세상에. 이 상황에서 또 대공 전하 생각하면서 좋아하시는 것 봐. 대공 전하가 그렇게 좋으셔요?”
“……케이티도 참. 내가 언제 시안 생각을 했다고 이래.”
“얼굴에 다 써 있는데요? 어디 보자, 대공 전하하고 달빛 아래 분수대에서 입 맞추는 상상이라도 하신 모양이에요.”
“……!”
지난밤에 꾼 꿈 내용을 정확하게 맞추는 케이티의 말에 레이첼의 얼굴이 화륵 달아올랐다. 당황해서 목소리가 떨렸다.
“어, 어떻게 알았어?”
“찍었어요.”
“…….”
“하여튼, 테오도르나 황제 폐하께서 위협할 때는 눈 하나 깜짝 안 하시는 분이 대공 전하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빨개지셔서는. 정말 독특한 분이시라니까요.”
“그런가…….”
민망해진 레이첼은 괜히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웃음을 흘렸다.
그때 똑똑똑,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레이첼과 케이티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시간에 누구지?”
“그러게요. 백작님이 집무실에 계실 때 여기 문을 두드릴 사람이 저 말고 또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제가 나가볼게요.”
케이티가 집무실 문을 열고 찾아온 사람을 확인했다.
그녀는 손님의 모습을 확인하자 화들짝 놀라며 깊게 몸을 숙였고, 레이첼은 영문도 모른 채 의자에서 일어섰다.
“케이티? 누가 찾아왔길래 그래?”
“그, 그게.”
집무실 문이 활짝 열리며 티티예니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뒤에 라일러스가 단정한 예복 차림으로 반듯하게 서 있었다.
레이첼이 깜짝 놀라며 급히 예를 갖췄다.
“예니스 교의 대 성자, 티티예니스 님을 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레이첼 프람 백작. 이렇게 따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군요. 예니스의 오른손 티티예니스입니다.”
“대 성자님께서 여기는 왜……?”
“예니스 님의 말씀을 전할 때가 되었거든요.”
“예니스 님의 말씀이라고요? 아. 혹시……?”
번뜩, 레이첼의 머릿속에 며칠간 이어지던 꿈이 떠올랐다.
티티예니스가 은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특유의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