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Mother Of the Male Lead Who Lives With An Ad**terous Man RAW novel - chapter (112)
불륜남과 사는 남주 엄마가 되었다 (112)화(112/151)
“화, 황제 폐하께서 선황 폐하를 독살했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건 레이첼 백작이 추모식에서 귀족들에게 대접했던 유리 나무이지 않습니까!”
귀족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시안이 탁자 위에 올려놓은 주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천사의 자장가라 불리는 유리 나무는 차로 달여 마시면 잠이 잘 오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과하면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지요.”
“부작용이라고요?”
“1년 이상 꾸준히 마시면 잠이 늘다가 결국 영면에 들게 됩니다.”
“뭐…… 뭐라고요!”
귀족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유리 나무는 무척 비싸고 귀하기 때문에 1년 이상 꾸준히 마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약초꾼들도 이 차의 부작용을 모르는 자가 대부분이고요.”
“그, 그렇군요.”
“하지만 그런 부작용을 알고 일부러 구해서, 일부러 먹인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어떤 방법보다 조용히, 깨끗하게 누군가를 죽일 수 있죠.”
시가르가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 주머니를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그딴 차를 알지도 못하고, 선황께 드린 적도 없어!”
“제가 주머니를 꺼낼 때는 그렇게나 깜짝 놀라시더니 이제 와서 발뺌하시는 겁니까.”
“하! 내가 언제 깜짝 놀랐다고!”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 증언해줄 자를 불렀습니다.”
“증언? 하하하! 증언할 사람 따위가 남았을 것 같은가!”
시안의 입꼬리가 슬쩍 호선을 그렸다.
시가르가 저렇게 자신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는 제지우스를 죽일 유리 나무를 구하면서 자신과 거래했던 약초꾼을 남김없이 죽여버렸으니까.
테오도르처럼 자신의 명령을 따랐던 심부름꾼을 남겨두는 실수 따위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시가르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휘지우스, 들어와라.”
“……휘지우스? 길드 장?”
휘지우스라는 이름에 시가르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대회의장의 문이 열리고 새하얀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드러낸 휘지우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시가르를 노려보더니 뚜벅뚜벅 걸어가 시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태도에는 망설임도 어색함도 없었다.
“대공 전하와 그 반려께 변하지 않는 충성을.”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귀족들과 시가르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미리 알고 있던 스테판은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고, 레이첼은 고요히 시안과 휘지우스를 바라보았다.
시가르가 더듬거렸다.
“어, 어떻…… 어떻게 길드 장이 네놈 따위에게 충성을 바치는 거냐! 이게 어떻게 된!”
“네놈 따위?”
시안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휘지우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시가르의 등 뒤였다. 시가르의 목에 단검을 들이댄 채였다.
“황제. 지금 대공 전하를 ‘네놈’이라고 칭했습니까.”
“뭐 하는 짓이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단검을! 나는 황제다! 황제의 목에 단검을 들이대다니, 이건 반란이다! 당장 황제 살해 미수 혐의로 네놈의 숨통을 끊어버리겠어!”
“멍청한 건 여전하군. 과연 내가 죽는 것과 네가 죽는 것 중에 무엇이 빠를까?”
“큭!”
“어서 사과하십시오. 대공 전하를 ‘네놈’으로 칭한 것을.”
휘지우스가 당장이라도 단검으로 시가르의 목을 그어버릴 듯 손에 힘을 주자 시안이 고개를 저었다.
“휘지우스, 그만.”
“……알겠습니다.”
흉흉한 기세를 내뿜던 휘지우스는 시안의 한 마디에 곧장 단검을 치우고 물러났다.
시가르가 단검 날이 닿았던 목덜미를 움켜쥐며 으르렁댔다.
“여봐라! 거기 누구 없나! 당장 저 파렴치한 길드 장의 목을 잘라 내 앞에 바쳐라!”
“거기 밖에 선 기사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내가 황제의 목을 따 버릴 테니 알아서들 해.”
대회의장을 지키던 기사들은 휘지우스의 말에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젠장! 어쩌다 이딴 놈이 단검을 들고 황궁에 들어온 건지! 대체 문지기들은 무얼 했단 말이냐!”
“휘지우스의 황궁 출입을 허락한 건 황제 폐하가 아니십니까. 서신으로 출입증을 보내셨던데요.”
“그, 그건 휘지우스와 거래할 일이 있어서……!”
“이유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지금은 휘지우스가 여기 ‘왜’ 왔는지가 중요하니까요.”
휘지우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서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황제가 제게서 ‘최대한 많은’ 유리 나무를 구하고 싶다며 보내왔던 서신입니다.”
“그게 어쨌다는 말이냐!”
“머리가 나쁘군요. 유리 나무를 많이 복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당신이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그……!”
시가르가 입술을 씹었고 시안이 말했다.
“당신은 선황 폐하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선황 폐하께 차를 올렸습니다. 그걸 모르는 이가 황궁과 사교계에 없을 정도로.”
“매, 매일은 아니었다!”
“매일이었습니다. 황태자 책봉을 앞두고 선황 폐하께 점수를 얻기 위해서였다는 소문이 돌았으니까.”
사실이었다. 원래부터 시안을 질투하며 황제가 되고 싶어 하던 시가르가 드디어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며 뒷말이 많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선황 폐하께서는 확연히 잠이 느셨습니다. 1년 반쯤 지난 뒤에는 잠 때문에 국정을 돌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셨고요. 2년이 지날 즈음 돌아가셨습니다.”
시안이 고개를 기울였다.
“증거와 증인은 당신이 없애버려 남아 있지 않지만 저와 어머니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 스스로가 선황을 죽였다는 사실을 은근히 알려 왔으니까요. 아닙니까.”
“……큭.”
시안의 말을 듣던 시가르의 얼굴에 불현듯 희열이 어렸다. 그는 탁자에 놓인 주머니를 열더니 안에 든 검은 유리 나무를 꺼냈다.
검고 아름다운 막대를 빛에 비추며 흥분된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이던 시가르가 바닥에 주머니를 떨어트렸다.
파사삭!
그의 발이 검은 유리 나무를 짓밟았다.
“그래! 내가 했다! 이렇게 된 마당이니 멍청한 연기 따위 집어치우지! 너희가 알고 있는 게 맞다. 내가 제지우스를 죽였어!”
“마, 맙소사!”
귀족들이 탄성을 터트리며 웅성거렸고, 시가르는 더 크게 웃었다.
“크하하! 맞다! 겁쟁이 황태후도, 네놈도, 내가 제지우스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네놈들 역시 죽여버릴까 봐 두려워 여태 조사조차 하지 못했을 뿐!”
“그랬지요.”
차분한 시안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 듯 시가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귀찮아질까 봐 그동안 숨겨왔지만 예니스도 떠난 마당에 뭐가 무섭겠나! 나는 황제다! 내가 선황을 죽였다 한들 네놈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 확신하십니까.”
“원래 반란은 실패했을 때나 죄가 되는 것이다! 성공해서 황제가 되고 나면 누구도 죄를 물을 수 없지! 감히 제국의 황제에게 누가 죄를 묻겠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선황을 죽였더라도, 귀족과 예니스가 돌아서더라도 어쨌든 시가르는 황제였다. 그는 제국 기사단과 귀족, 군대의 최종 지휘권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시가르의 명령을 얼마나 잘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원칙적으로는 그랬다.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누구도 당신에게 죄를 물을 수 없죠.”
“하하하, 그렇지! 네놈의 퇴위 요구 따위, 기분은 나쁘지만 묵살해 버리면 그만이야!”
“하지만…… 만일 내가 당신의 목숨을 죗값으로 받겠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뭐?”
시가르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네, 네놈이 나를 죽여?”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설마 못할 것 같아서?”
자신을 제치고 황제가 된 형에게 충성을 다하고, 자신이 돌보는 자들에게 자비와 아량을 베풀었지만 시안은 제국의 누구보다 검을 잘 다뤘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시안은 검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자신이 가볍게 휘두른 검이 누군가에게는 절대 막지 못할 무자비한 폭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시가르는 시안을 검 솜씨가 좋아 함부로 암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가 검을 휘둘러 자신을 해칠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당당하게 황제를 죽이겠다는 시안의 말에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이건 반란이 아닙니까. 저, 저래도 되는 겁니까?”
“황제 폐하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황제를 지켜야 한다고? 왜죠?”
“…….”
저 휘지우스와 시안에게 맞서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시가르가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아니.
결국 귀족들은 나서지 않고 숨죽인 채 사태를 지켜보는 쪽을 선택했다.
휘지우스가 들고 온 단검을 시안에게 내밀었다.
“더러운 일은 제게 맡기셔도 됩니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동안 그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했어.”
시안은 펜을 쥐듯 익숙하게 단검을 쥐었다.
시가르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네가! 네놈 따위가 감히 나를 죽이겠다고! 네놈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너 따위가 감히 반역이라니!”
“바로잡겠습니다.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았던 겁니다.”
많이 봐줬다는 의미였다.
“젠장! 나는 네놈의 그 태도가 싫어! 내가 황제가 되었을 때도 그깟 황제의 자리, 주고 말겠다는 듯 여유를 부렸었지!”
“이기고 싶어 하지만 노력은 하지 않는 형에게 괴롭힘받지 않으려면 적당히 봐줘야 했거든요. ”
“건방진 놈!”
“그런 걸 마음에 두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과하지요. 사죄의 의미로 지금부터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저를 막아보십시오.”
시안의 금빛 눈동자가 살의로 번뜩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벌컥, 대회의실 문이 열렸다.
“잠까아안!”
늘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나타나는 아트레이유였지만, 오늘의 등장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시안도, 시가르도, 레이첼과 스테판을 비롯한 귀족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
아트레이유는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자 머리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었다.
“헤헤헤. 다들 안녕? 다들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 줄래? 쑥스럽다고.”
시안은 얼른 단검을 거꾸로 쥐며 팔을 내렸다. 아무리 시가르가 몹쓸 인간이어도 아이의 앞에서 아버지에게 단검을 들이댈 수는 없었다.
“……황태자 전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숙부 안녕? 볼일이 있어서 왔어.”
그러고는 씩씩하게 걸어 시가르와 시안 쪽으로 다가왔다. 아트레이유의 허리춤에 매달린 장검이 덜그럭거렸다.
시안과 시가르 사이를 가로막듯이 선 아트레이유가 시가르를 향해 예를 갖췄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밖에서 언뜻 들으니 황제 폐하께서 선황 폐하를 죽이고 황제가 되셨다고 하던데요.”
“그걸로 나를 비난하기라도 할 셈이냐?”
“그럴 리가요. 지난번에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이 되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스릉, 아트레이유가 허리에 찼던 검을 천천히 뽑았다.
시가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혹시 아트레이유가 자신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가 검술을 배우지 못하게 했었다.
분명 그랬는데.
대체 어디서 배운 건지 아트레이유는 검을 똑바로 쥐고 검 끝으로 시가르를 겨냥했다.
“그동안 말 안 들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아버지의 모든 것을 배우고 따르는 훌륭한 아들이 되려고요.”
아트레이유가 씩 미소 지었다.
“시작은…… 역시 반란이 좋겠네요.”